재정 확대와 책무성의 오래된 불균형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서 가장 가시적인 변화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연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정 대학과 분야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겠다는 계획은 그 자체로 강력한 정책 신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재정이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입 규모가 커질수록, 그 재정이 어떤 기준과 책임 구조 속에서 사용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에서 재정 지원과 책무성의 관계는 늘 불안정했다. 정부는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하겠다고 말해 왔지만, 실제 재정 지원 방식은 단기 성과 중심의 관리와 행정 통제를 반복해 왔다. 대학은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지표를 채우는 데 집중했고, 그 결과 재정 지원은 교육과 연구의 질적 개선보다는 제도 순응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한 회의론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이번 회차는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이 과거의 재정지원사업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반복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재정 확대가 대학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책무성 구조가 필요하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진다.
왜 재정 지원은 늘 불신을 낳는가
대학 재정 지원 정책에 대한 불신은 단순히 ‘돈을 써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 투입과 성과 사이의 연결 구조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과거의 많은 재정지원사업은 사업 목적과 성과 지표가 일치하지 않았고, 대학의 고유한 미션이나 지역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 결과 대학은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단기적으로 측정 가능한 성과에 맞춰 행동하게 되었고, 정책이 의도한 체제 변화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국립대학의 경우, 법적 지위와 운영 구조로 인해 재정 지원이 곧바로 자율성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되어 왔다. 예산은 늘었지만 인력 운용, 보상 체계, 조직 개편 등 핵심적인 의사결정 영역에서는 여전히 제약이 유지되었고, 이는 대학 내부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재정은 투입되었지만, 그것을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은 충분히 이전되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기존 정책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원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재정과 책무성의 관계를 재설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집중 지원이 관리 강화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자율성과 책임의 새로운 균형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이 정책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성과 중심 지원의 한계
대학 재정지원 정책에서 가장 자주 동원되어 온 방식은 성과 중심 지원이다. 일정한 지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에 따라 재정을 배분함으로써 대학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접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이고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과 지표가 대학의 실질적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문 수, 취업률, 산학협력 실적과 같은 정량 지표는 비교와 관리에는 유용했지만, 대학 내부의 교육과 연구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문제는 지표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대학은 재정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지표를 맞추는 데 조직의 에너지를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장기적인 전략이나 구조 개편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쉽다. 연구 성과는 단기간에 계량화될 수 있는 분야로 쏠리고, 교육 혁신은 측정 가능한 프로그램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러한 방식은 일정 기간 동안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대학의 체질을 바꾸는 데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 역시 동일한 경로를 밟을 위험을 안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정부는 성과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대학은 그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지표 중심의 관리 체계에 적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새로운 체제 설계가 아니라, 기존 성과 중심 재정지원의 규모만 확대한 정책으로 귀결될 수 있다. 재정 투입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과 역시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대학 재정지원 정책에서 책무성이라는 개념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 책임의 주체와 방식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재정을 지원하면서 대학에 성과를 요구해 왔지만, 그 성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실패했을 경우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지는지에 대해서는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책무성은 실질적인 책임 구조라기보다, 재정 통제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국가 균형성장과 지역 소멸 대응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제시하지만, 개별 대학이 그 목표를 어떤 방식으로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동시에 재정 집행과 성과 관리에서는 중앙정부의 통제와 점검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목표 설정은 포괄적이고, 책임 추궁은 세부적인 구조에서는 대학이 실패의 부담을 떠안게 되는 비대칭적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책무성을 실질적인 개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책임의 주체를 보다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 지역 연계라는 영역에서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목표를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재정적 조건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또한 지역 혁신을 정책 목표로 설정한 이상, 지방정부와 지역 산업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의 주체로 포함되어야 한다. 책임을 대학에만 귀속시키는 방식으로는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어렵다.

집중 지원과 자율성의 교환
재정 확대가 대학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지원과 함께 자율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국립대학 정책에서 이 교환은 번번이 실패해 왔다. 재정은 늘었지만 규제는 유지되었고, 자율성은 선언적으로만 강조되었다. 대학은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았지만, 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인사·조직·보상 체계의 조정 권한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이 불균형은 대학 내부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동일한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 거점국립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가 단순히 재정 투입에 머무를 경우, 대학은 확대된 예산을 기존 구조 안에서 소진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재정 확대를 계기로 대학이 학문 구조를 재편하고, 인력 운용과 평가 방식을 바꾸며, 지역 연계 전략을 재설계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한다면, 집중 지원은 체제 전환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자율성이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은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이다. 자율성과 책무성의 교환은 일회성 선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조정되어야 하는 관계다. 정부가 모든 위험을 관리하려 할 경우 자율성은 형식에 그치게 되고, 대학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경우 정책은 신뢰를 잃게 된다. 거점국립대학 집중 지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정 확대를 계기로 규제와 통제를 재설계하고, 실패의 가능성까지 제도 안에 포함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정책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조건에 가깝다.
3회차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핵심 쟁점은 재정 그 자체가 아니라, 재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집중 지원이 기존의 성과 중심 관리와 행정 통제를 반복한다면, 이 정책은 과거의 대학재정지원사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재정 확대를 계기로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 구조가 함께 재편된다면, 거점국립대학은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체제 전환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 선택은 정책 설계의 세부에서 드러난다. 어떤 성과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지, 실패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그 실패의 부담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재정은 늘었지만 평가 기준은 그대로라면, 대학은 다시 지표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대학의 미션과 전략에 기반한 성과 협약이 설계된다면, 재정 지원은 관리 수단이 아니라 학습과 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러한 책무성 구조가 실제 정책 설계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이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정책이 ‘서열 완화’가 아닌 ‘서열 재편’으로 읽힐 위험은 없는지를 점검할 예정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이제 대학 내부를 넘어, 대학 간 관계와 생태계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연재목록]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① ] 왜 지금 ‘서울대 10개’인가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위기의 교차점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② ] 연구중심대인가, 지역혁신 허브인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③ ] 집중 지원은 어떻게 책임이 되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④ ] 서열을 없애는가, 다시 그리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⑤ ]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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