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④ ] 서열을 없애는가, 다시 그리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이후의 대학 생태계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기대는 대학 서열 구조의 완화다. 상위권 대학의 수가 늘어나고, 지역마다 선택 가능한 거점대학이 존재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위계 구조는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정책이 과연 서열을 해체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재편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대학 서열은 단순히 명칭이나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연구·인재 흐름이 결합된 구조적 결과다. 특정 대학에 연구비와 우수 학생, 교수 인력이 집중되면, 그 대학은 다시 더 많은 자원을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반대로 이 흐름에서 벗어난 대학은 점차 선택지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상위 대학군의 확장’은 서열을 없애기보다는, 서열의 상층을 넓히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이번에는 거점국립대학 집중 지원이 대학 간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를 살펴본다. 이는 서울대와 거점국립대의 관계를 넘어, 수도권 사립대학과 지역 대학, 국립대 내부의 위계까지 포괄하는 문제다. 서열을 줄이겠다는 정책이 새로운 서열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그 구조적 위험을 하나씩 짚어본다.

상위 대학군의 확장은 무엇을 바꾸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기존의 단일 정점 구조를 다극 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단일 상위 정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상위 거점이 존재하는 체제를 통해 선택지를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접근은 입시 병목을 완화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상위 대학군의 확대가 곧바로 서열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 역시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위 대학군이 확대될 경우, 경쟁은 완화되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는 서울대학교와 일부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경쟁이 집중되었다면, 이후에는 ‘서울대급 거점국립대’ 내부에서의 미세한 위계와 차이가 새로운 경쟁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학문 분야별 강점, 연구 성과, 취업 성과에 따라 대학 간 서열이 다시 형성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는 서열의 해체라기보다 재편에 가깝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위 대학군에 포함되지 못한 대학들의 위치다.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자원이 집중될 경우, 지역 내 중소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은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조건에 놓일 수 있다. 이들이 담당해 온 교육과 지역 인재 양성의 역할이 약화될 경우,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의 균형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 상위 대학군의 확장은 새로운 중심을 만드는 동시에, 주변부를 더 넓게 만들어낼 위험을 함께 안고 있다.

거점국립대 중심 체제의 파급 효과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은 해당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점국립대학이 지역의 최상위 대학으로서 위상을 강화할 경우, 우수 학생과 교수, 연구 자원이 자연스럽게 그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책이 의도한 효과일 수 있지만, 동시에 지역 내 다른 대학들의 역할과 생존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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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특히 지역 사립대학과 중소 국립대학은 거점국립대학과의 관계 재설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과거에는 수도권 상위 대학과의 격차가 가장 큰 문제였다면, 이제는 지역 내부에서 ‘상위’와 ‘비상위’가 보다 분명하게 구분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 모집, 재정 확보, 교수 충원 등 핵심 영역에서 경쟁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도 크다. 거점국립대학의 강화가 지역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내부 격차가 단순한 탈락과 도태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정책 설계에서 이러한 파급 효과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이다.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축으로 삼는 전략은 명확하지만, 그 주변에 위치한 대학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만약 거점국립대학만을 대상으로 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는 ‘강한 중심과 약한 주변’이라는 또 다른 불균형 구조를 형성할 위험을 안게 된다.

수도권 사립대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명시적으로 수도권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그 영향은 이들 대학을 비켜 가지 않는다. 특히 수도권 중상위권 사립대학은 현재의 고등교육 체제에서 입시 수요와 사회적 인식을 통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최상위 사립대학 사이, 그리고 그 아래 대학군을 연결하는 완충 지대 역할을 해온 셈이다. 상위 대학군이 지역으로 확장될 경우, 이 완충 구조는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거점국립대학이 서울대에 준하는 교육·연구 여건을 갖추게 된다면, 일부 수도권 사립대학은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약화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학생 모집의 문제가 아니라, 교수 채용과 연구 자원 확보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우수 인력을 유치해 왔던 대학들이, 새로운 경쟁자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수도권 사립대학 내부에서도 전략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곧바로 수도권 사립대학의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 대학은 교육 특성화나 국제화 전략을 강화하며 새로운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고, 또 다른 대학은 전문 직업 교육이나 평생교육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체계적인 정책 설계 속에서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개별 대학의 대응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를 재편하는 정책이라면, 수도권 사립대학의 역할 변화 역시 정책적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올라올 필요가 있다.

GPT 생성이미지 [ 프롬프트 :A high-resolution, minimalist policy illustration visualizing the restructuring of university hierarchy. Multiple identical university emblems are arranged in layered tiers across a subtle map of South Korea, suggesting shifting centers rather than a single top institution. The composition emphasizes redistribution and reconfiguration rather than elimination of hierarchy. No single emblem is highlighted. No text, no real logos, no people, no political symbols. Neutral, restrained color palette with an analytical and professional tone, suitable for an in-depth higher education policy feature.]

서열 완화라는 기대의 한계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한 기대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대학 서열 구조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위 대학의 수가 늘어나고, 지역마다 선택 가능한 거점대학이 형성된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위계는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대학 서열은 단순히 상위 대학의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서열은 재정과 연구, 인재 이동, 사회적 인식이 장기간에 걸쳐 결합되며 형성된 구조적 결과다.

이 점에서 ‘상위 대학군의 확장’은 서열 완화보다는 서열 이동에 가까운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최상위 정점이 단일 구조에서 다극 구조로 바뀔 수는 있지만, 그 내부에서는 다시 미세한 위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학문 분야별 경쟁력, 연구 성과, 졸업생의 진로에 따라 대학 간 차이는 다시 드러나고, 이는 새로운 비교와 경쟁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서열은 사라지기보다 형태를 바꿔 재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한계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속도다. 대학의 위상은 정책 설계나 재정 투입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변한다. 특정 대학이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동일한 선택지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식의 지체는 정책 효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조급한 판단을 유도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정책의 방향이 다시 흔들릴 위험도 내포한다. 서열 완화는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단기간에 달성될 수 있는 성과 지표로 설정되기에는 구조적으로 무리가 있다.

4회차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학 서열을 해체하기보다는, 고등교육 생태계의 중심을 재배치하려는 정책에 가깝다.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위 대학군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수도권 집중과 입시 병목을 완화하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서열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그 작동 방식과 범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재편이 전체 생태계의 균형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것인지에 있다. 거점국립대학 중심 체제가 지역 내부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수도권 사립대학과의 경쟁 구도를 새롭게 고착화한다면, 정책은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거점국립대학이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 다른 대학들과 기능적으로 연결되고,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면, 서열은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체계의 일부로 관리될 수 있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던지는 질문은 대학 서열을 없앨 수 있는가가 아니라, 서열이 고등교육 체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가에 가깝다. 서열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이 만들어내는 집중과 배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정책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러한 생태계 재편이 실제 정책 설계와 제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실험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연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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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④ ] 서열을 없애는가, 다시 그리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⑤ ]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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