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산업·민간자본 결합한 ‘작지만 정교한 대학’ 확산
조기 연구 참여·다학제 교육·글로벌 인재 유치 앞세워…학위 수여권과 재정 지속가능성은 과제
중국 고등교육에서 대형 종합대학 중심의 성장 경로와 다른 형태의 대학들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학부생을 수십 명에서 수백 명 수준으로 선발하고 과학기술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른바 ‘스타트업 대학’, 중국에서 말하는 ‘신형 연구형 대학’이다. 2012년 선전시 정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남방과학기술대학(SUSTech)을 시작으로 선전이공대학(SUAT), 항저우의 서호대학(Westlake University)이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닝보동방이공대학(EIT), 대만구대학(GBU), 푸야오과학기술대학 등이 첫 학생을 맞으며 관련 대학이 8곳으로 늘었다. 추가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이들 대학의 목표는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과 같은 기존 명문 종합대학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규모와 학문 분야를 제한하는 대신 연구와 산업 연계, 학생 밀착 교육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대학을 운영하는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가깝다.
신형 연구형 대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소이정(小而精)’, 즉 작지만 정교한 대학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여러 학문 분야와 대규모 학생 조직을 유지하는 종합대학 모델 대신 인공지능, 생명과학, 첨단공학, 반도체 등 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 조직을 구성한다. 학생 교육도 강의 중심에서 연구 참여 중심으로 이동한다. 선전이공대학은 학부생이 입학 초기부터 연구에 참여하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했다. 주중 나흘 동안 수업을 진행하고 금요일에는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대학은 2024년 첫 학부생 120명을 선발했으며, 당시 합격자들의 성적도 광둥성 대학 가운데 상위권에 해당했다.
이러한 교육의 목적은 특정 기술을 익히게 하는 데만 있지 않다. 연구 문제를 정의하고, 접근 방법을 설계하고, 결과에 따라 방법을 수정하는 능력을 학부 단계부터 훈련하는 것이다. 전공 간 경계를 낮춘 다학제 교육과 조기 연구 참여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학생보다 지식을 생산하는 학생을 길러내겠다는 구상이다.
외국어 교육 방식도 기존 대학과 다르다. 선전이공대학은 별도의 어휘·문법 중심 영어 수업보다 외국 연구자와 소통하고 국제 연구팀에서 협업하는 과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서호대학은 주요 교육과 연구를 영어로 운영하고, 학부생에게 입학 초기부터 연구실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 측 자료에서도 영어 교육 환경과 ‘첫날부터 시작하는 연구 기회’를 주요 교육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산업이 대학의 설계자가 되다
신형 연구형 대학은 지역 산업과의 관계에서도 기존 대학과 차이를 보인다. 남방과학기술대학과 선전이공대학이 위치한 선전은 첨단 제조업과 정보기술 기업이 밀집한 지역이다. 대학 주변의 기업과 연구기관은 단순한 취업처가 아니라 교육과 연구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파트너가 된다. 전통 대학은 이미 형성된 학과와 행정 체계 때문에 새로운 산업 수요에 맞춰 전공을 신설하거나 학문 조직을 빠르게 바꾸기 어렵다. 반면 신설 대학은 설립 단계부터 지역 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학과와 연구소를 구성할 수 있다. 대학과 산업이 각각 교육과 채용을 담당하는 분업 구조에서 벗어나 연구 주제 설정, 학생 교육, 기술 이전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는 방식이다.
대학의 지리적 분포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의 대표 대학들이 베이징과 상하이에 집중돼 있는 것과 달리 닝보동방이공대학은 저장성 닝보, 대만구대학은 광둥성에 자리 잡았다. 중국 지방정부가 대학을 지역 혁신과 산업 성장의 기반 시설로 인식하면서 신형 연구형 대학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이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을 넘어 연구 인력과 기업, 투자, 첨단시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경제적 ‘가속 장치’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 신형 대학의 부상을 단순한 교육 실험이 아니라 지역 산업정책의 일부로 봐야 하는 이유다.
공립 중심의 남방과학기술대학·선전이공대학과 달리 서호대학은 민간 기부를 기반으로 설립된 비영리 사립 연구대학이다. 초대 총장인 스이궁은 미국 프린스턴대의 종신교수직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왔고, 대학은 미국과 유럽 연구기관에서 활동하던 과학자와 수학자, 의학 연구자들을 영입했다. 이들 대학이 해외 학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제 수준에 가까운 급여와 연구비, 독립적인 연구실 운영 체제가 있다. 서호대학은 학과 중심의 위계적인 조직보다 수석연구자 중심의 독립 연구실을 운영하고, 학제 간 연구와 국제 협력을 강조한다. 대학 측은 학문적 자유, 연구 수월성, 학제 간 협력과 국제 교류를 주요 운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교육 철학 역시 연구 중심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미 축적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질문을 만들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다른 전공·문화권의 사람들과 협력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신형 연구형 대학이 강조하는 능력은 단순한 취업 기술보다는 연구와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문제 설정 능력에 가깝다.
중국 신형 연구형 대학의 확산은 지방정부나 민간 기부자의 개별적인 실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국의 제15차 5개년 계획은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 신형 연구형 대학을 추가 설립하고, 인공지능과 집적회로 등 전략 분야의 학문 조직을 확대한다는 방향을 명시했다. 2026년 발표된 중국 교육발전 제15차 5개년 계획도 교육·과학기술·인재 정책을 통합하고, 국가 전략과 산업 수요에 대응하는 고등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신형 연구형 대학이 기존 대학 체제 주변의 예외적 실험이 아니라 국가 혁신체제 안에 공식적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기존 ‘쌍일류’ 대학의 규모와 연구 역량을 확대하는 동시에 별도의 소규모 연구대학을 설립하는 이중 전략을 택하고 있다. 대형 종합대학은 광범위한 학문 기반과 대규모 인재 양성을 담당하고, 신형 연구형 대학은 전략 기술과 융합 연구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선도 조직의 역할을 맡는 구조다.
학위 수여권과 학벌 체제라는 현실적 장벽
그러나 신형 연구형 대학의 빠른 성장이 곧 안정적인 대학 모델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분석보고서는 이들 대학이 직면한 첫 번째 제도적 병목으로 독립적인 학위 수여권 문제를 지적한다. 신설 대학이 자체적으로 석·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면서 기존 대학과 공동으로 대학원생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공동 배양’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 배양은 신설 대학의 연구시설과 교수진, 기존 대학의 학위 수여권을 결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학생 소속과 지도 체계가 복잡해지고, 대학별 졸업 기준과 행정 절차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선전이공대학은 여러 대학 및 연구기관과 석·박사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인지도도 변수다. 중국에서는 과거 국가 중점 육성사업인 ‘985공정’과 ‘211공정’에 포함된 대학들이 오랫동안 명문대의 기준으로 인식돼 왔다. 공식 정책은 ‘쌍일류’ 체제로 전환됐지만, 대학 서열과 채용시장의 인식에는 기존 대학군의 브랜드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신설 대학이 높은 입학 성적과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더라도 졸업생의 취업 성과와 동문 네트워크, 장기적인 대학 브랜드는 단기간에 형성되기 어렵다. 신형 대학의 성패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단계를 넘어 이들이 노동시장과 학계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 거버넌스에서도 긴장이 나타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신형 연구형 대학에 기대하는 역할은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등 국가 전략 분야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연구 인력과 예산을 특정 과제에 집중하는 ‘조직화된 연구’를 요구한다.
반면 해외에서 영입된 연구자와 독립 수석연구자 제도는 연구자의 자율성과 장기적인 기초연구를 전제로 한다. 연구자를 국가 프로젝트와 기업 과제에 집중시키면 단기 성과는 높아질 수 있지만, 대학이 약속한 학문적 자율성이 약화될 수 있다. 반대로 연구자의 자유 탐색만 강조하면 지방정부와 산업이 기대하는 기술 성과를 충분히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재정 구조도 장기적인 시험대다. 지방정부 예산이나 특정 기부자의 자금에 크게 의존하는 대학은 경기 침체나 정책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학이 재정 자립을 위해 연구 성과의 사업화와 기업 프로젝트를 확대할 경우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기초과학이나 인문사회 분야가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산업 연계를 강화하면서 비영리 대학의 공공성과 장기 연구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중국의 신형 연구형 대학은 대학 규모를 줄인 사례라기보다 대학의 기능을 다시 조합한 실험에 가깝다. 학생 수와 학문 분야는 줄이되 학생 한 명에게 투입하는 연구 자원과 교수진, 산업 연계는 확대한다. 대학 설립 이후 학과를 산업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연구시설과 기업 생태계를 먼저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학을 설계한다. 이 모델이 모든 대학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 학생과 높은 연구비, 우수 교수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규모 고등교육 수요를 담당하기 어렵고, 정부와 민간의 장기적인 재정 투입도 필요하다. 학생 교육을 국가 산업전략에 지나치게 밀착시킬 경우 대학의 비판적·독립적 기능이 약화될 위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중국의 실험은 하나의 질문을 분명하게 제기한다. 대학은 반드시 여러 학문 분야와 대규모 학생을 보유한 종합대학의 형태로 성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특정 연구 분야와 지역 산업에 집중하면서 작지만 높은 밀도의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도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중국의 ‘스타트업 대학’은 아직 완성된 성공 모델이라기보다 국가, 지역정부, 산업, 민간자본이 결합해 새로운 대학 운영 방식을 시험하는 단계에 있다. 이들 대학이 전통 대학과 다른 교육·연구 성과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초기의 혁신성을 제도와 재정의 지속가능성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글로벌 고등교육계가 지켜볼 핵심 지점이다.
211공정: 21세기를 대비해 약 100개 대학과 중점 학문 분야를 집중 지원한다는 국가 사업입니다. 숫자 ‘211’은 ‘21세기’와 ‘약 100개 대학’을 뜻합니다.
985공정: 1998년 5월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육성한다는 구상에서 출발한 사업으로, 베이징대·칭화대 등 39개 대학이 포함됐습니다. 985대학은 211대학 가운데서도 한 단계 더 높은 최상위 대학군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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