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조건과 한계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하나의 정책이라기보다, 한국 고등교육 체제가 오랫동안 미뤄두어 왔던 질문을 다시 꺼내 놓은 실험에 가깝다.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입시 과열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더 이상 개별 제도 조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 체제 자체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연재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정책은 재정 확대, 대학 정체성 선택, 책무성 구조, 대학 간 관계 재편이라는 여러 층위의 문제를 동시에 건드리고 있다.
그만큼 이 실험의 성공 여부는 단순한 정책 집행 성과로 판단하기 어렵다. 특정 지표가 개선되었는지, 몇 개 대학의 순위가 상승했는지와 같은 결과만으로는 이 정책의 성격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이 고등교육 체제의 작동 방식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정착할 수 있는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성과를 요구받는 정책이지만, 동시에 시간을 요구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이 실험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을 하나씩 점검한다. 거점국립대학의 역할은 어디까지 설정되어야 하는지, 재정과 자율성의 관계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정책이 정치적 구호가 아닌 체제 개편으로 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살펴본다. 이는 정책의 가능성을 낙관하거나 비관하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를 냉정하게 따져보기 위한 과정이다.
조건 1: 목표의 명확성과 선택의 일관성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험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조건은 목표의 명확성이다. 거점국립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할 것인지, 지역 혁신을 이끄는 연구거점으로 자리매김시킬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분명하지 않다면, 정책은 집행 과정에서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2회차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두 목표는 동일한 언어로 병기될 수는 있어도 동일한 전략으로 동시에 달성되기는 어렵다. 목표의 모호함은 정책의 유연성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책임 회피와 전략 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선택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재정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고, 성과 평가는 일관성을 잃게 된다. 이는 대학 내부에 혼란을 낳을 뿐 아니라,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험이 실패했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호함은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체제 개편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 선택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이는 모든 대학을 하나의 모델에 맞추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 대학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에 맞는 평가와 지원 체계를 설계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실험의 성공은 바로 이 선택의 명확성에서 출발한다.
조건 2: 재정의 지속성과 정치적 안정성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험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예산 투입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재정의 지속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거점국립대학의 교육·연구 여건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단일 회계연도나 몇 개의 사업으로 완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교수 충원과 연구 인프라 구축, 대학원 체계의 강화는 시간이 축적되어야 효과를 발휘하며, 중간에 재정 흐름이 끊길 경우 오히려 불균형만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교육 재정 정책은 정치적 주기에 취약한 구조를 반복해 왔다. 정권 교체나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명칭과 방향이 바뀌고, 중장기 계획이 조정되거나 축소되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이러한 환경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안정적인 실험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특정 정부의 국정과제가 아니라 고등교육 체제 개편에 대한 국가적 합의 수준으로 격상될 필요가 있다. 재정의 지속성은 예산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다.
정치적 안정성은 정책의 유연성을 제한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대학의 장기적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거점국립대학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인력과 학문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향후 몇 년간의 정책 환경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축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대학은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정책이 기대하는 구조적 변화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실험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재정과 정책의 안정성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조건 3: 성과 협약과 책무성의 재설계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기존 대학재정지원정책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성과를 관리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재정지원정책은 지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책무성을 구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대학의 전략적 선택을 촉진하기보다는, 동일한 기준에의 수렴과 형식적 대응을 유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실험이 체제 개편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과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협약의 결과로 다루는 접근이 필요하다.
성과 협약의 핵심은 대학마다 서로 다른 미션과 전략을 인정하는 데 있다. 거점국립대학이라 하더라도 지역 여건과 학문적 강점, 산업 구조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대학에 동일한 성과 지표를 적용하기보다는, 각 대학이 설정한 중장기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를 정부와 협의하고, 그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방식이 보다 적절하다. 이는 성과 평가를 느슨하게 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성과의 기준을 보다 구조적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이러한 책무성 모델에서는 실패의 해석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일정 기간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지원을 축소하거나 방향을 전환하는 방식은 장기 실험과 양립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다음 단계의 정책 설계에 반영하는 학습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험이라면, 책무성 역시 통제가 아니라 학습과 조정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조건 4: 지역 생태계와의 실질적 결합
거점국립대학을 강화하는 정책이 지역 소멸 대응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학 내부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학이 아무리 교육과 연구 역량을 갖추더라도, 그것이 지역 산업과 고용, 공공 영역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청년 정주와 지역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역 균형 발전을 정책 목표로 설정한 이상, 대학은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의 일부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과 지역의 결합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산학연 협력과 지역 연계는 많은 정책 문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대학의 교육·연구 구조와 지역 산업의 수요가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학은 학문적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받고, 지역 산업은 단기적 성과와 인력 수급을 중시하면서, 협력의 접점은 형식적인 사업 단위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만 강화하는 정책은 지역과의 연결 고리를 충분히 만들기 어렵다.
실질적인 결합을 위해서는 역할 분담과 책임 구조가 명확해야 한다. 대학은 연구와 인재 양성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지방정부는 정책 조정과 인프라 구축을 책임지며, 지역 산업은 고용과 연구 성과의 수요처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 세 주체가 각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대학에만 지역 혁신의 부담을 지울 경우, 정책은 다시 대학 중심의 성과 관리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 생태계와의 결합은 대학의 확장이 아니라, 역할의 재배치를 요구하는 과제다.
조건 5: 실패를 허용하는 정책 구조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험으로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성공뿐 아니라 실패의 가능성 역시 제도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고등교육 정책은 실패를 관리의 실패로 간주해 왔고, 그 결과 정책은 단기간의 성과를 증명하는 데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대학 체제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동반하며, 모든 시도가 동일한 결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정책은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하게 되고, 이는 체제 전환과는 거리가 먼 결과로 이어진다.
실패를 허용한다는 것은 무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의 기준과 해석 방식을 사전에 합의하고, 그 결과를 다음 단계의 정책 설계에 반영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을 뜻한다. 특정 거점국립대학이 설정한 전략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경우, 그 원인이 재정 부족인지, 제도적 제약인지, 혹은 전략 선택의 문제인지를 분석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즉각적인 지원 축소나 낙인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대학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패를 허용하는 정책 구조는 장기 실험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대학은 단기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구조 개편을 시도할 수 있고, 정부는 정책의 방향을 고정된 설계가 아니라 학습 가능한 과정으로 관리할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체제 개편으로 남기 위해서는, 성공과 실패를 모두 포함하는 정책 언어가 필요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의 의미
5회차에 걸쳐 살펴본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하나의 정책을 넘어, 한국 고등교육 체제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실험이다. 이 정책은 재정 확대를 통해 대학 간 격차를 완화하고,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에 대응하려는 시도이지만, 그 성패는 단순한 예산 규모나 단기 성과로 판단될 수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실험이 고등교육 체제의 작동 방식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이다.
이 연재에서 확인했듯, 실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선택, 재정의 지속성, 성과 협약을 통한 책무성 재설계, 지역 생태계와의 실질적 결합, 그리고 실패를 허용하는 정책 구조라는 다섯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조건들은 개별적으로 작동하기보다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어느 하나라도 빠질 경우, 정책은 다시 과거의 재정지원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던지는 질문은 서울대가 몇 개인가가 아니다. 국가가 어떤 대학 체제를 필요로 하는지, 지역과 수도권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 그리고 고등교육을 통해 무엇을 공공의 가치로 남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특정 대학의 도약이 아니라 고등교육 체제 전체의 재구성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그 실패 역시 다음 선택을 위한 중요한 자산으로 남아야 한다. 실험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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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이 연재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정책을 찬반의 언어로 평가하기보다, 그것이 던지는 구조적 질문을 따라가려는 시도였다.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입시 과열이라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지만, 고등교육 체제 전체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접근은 드물었다. 이 정책은 완성된 해법이라기보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선택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만드는 계기라는 점에서 하나의 실험에 가깝다.
연재의 전반부에서는 정책이 등장하게 된 구조적 배경과 문제의식, 그리고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한 상향 평준화의 논리를 살폈다. 이어 거점국립대학이 어떤 정체성을 선택해야 하는지, 연구중심대학과 지역혁신 허브라는 두 모델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짚었다. 이는 단순한 전략 논쟁이 아니라, 고등교육이 무엇을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중반부에서는 재정 확대와 책무성의 관계를 다뤘다. 집중 지원이 과거의 성과 중심 관리와 어떻게 다른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 자율성과 책임은 어떤 방식으로 교환되어야 하는지를 검토했다. 이는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후반부에서는 대학 간 관계와 생태계의 변화를 살피며, 서열 완화라는 기대가 서열 재편으로 귀결될 위험을 점검했다. 정책이 의도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급 효과를 외면할 경우, 실험은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마지막 회차에서는 이 실험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을 정리했다. 목표의 명확성과 선택의 일관성, 재정의 지속성과 정치적 안정성, 성과 협약을 통한 책무성의 재설계, 지역 생태계와의 실질적 결합, 그리고 실패를 허용하는 정책 구조가 그것이다. 이 조건들은 어느 하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 연결된 구조로 설계되지 않을 경우, 정책은 다시 단기 사업의 반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서울대가 몇 개인가가 아니다. 국가가 어떤 대학 체제를 필요로 하는지, 고등교육을 통해 무엇을 공공의 가치로 남길 것인지, 그리고 지역과 수도권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특정 대학의 도약이 아니라 고등교육 체제의 작동 방식이 바뀌었다는 신호로 기록될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 실패 역시 다음 선택을 위한 중요한 자산으로 남아야 한다.
스포트라이트유는 이 연재를 통해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더 많은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정책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의 결과는 시간 속에서 검증된다. 이 실험이 어떤 궤적을 그리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고등교육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구조의 언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연재의 의미는 충분하다.
[연재목록]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① ] 왜 지금 ‘서울대 10개’인가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위기의 교차점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② ] 연구중심대인가, 지역혁신 허브인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③ ] 집중 지원은 어떻게 책임이 되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④ ] 서열을 없애는가, 다시 그리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⑤ ]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