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은 지금 세 개의 위기가 동시에 작동하는 국면에 들어와 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자원 집중은 더 이상 완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지방 소멸은 통계가 아니라 일상의 풍경이 되었으며, 대학 입시는 여전히 상위 소수 대학을 향한 병목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각각 독립된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구조 안에서 서로를 강화하며 작동해 왔다. 지역에 사람이 줄어들수록 대학은 버티기 어려워지고, 대학이 약화될수록 청년은 수도권으로 이동하며, 그 결과 상위권 대학을 향한 입시 경쟁은 더욱 과열되는 순환이 반복된다.
이 구조 속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생존 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 특히 거점국립대학은 지역 고등교육 체제의 최상단에 위치한 존재로서, 그 성쇠가 지역 내 다른 대학과 산업, 인구 흐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간 지방대학 정책은 ‘위기 관리’와 ‘구조조정’ 사이를 오가며 단기 처방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수도권 집중과 입시 과열이라는 구조 자체를 흔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정책이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이 정책은 서울대학교의 위상을 낮추거나 대학 서열을 일거에 해체하겠다는 접근이 아니라, 9개 거점국립대학을 포함한 국립대학을 대상으로 학생 1인당 교육비와 연구 여건을 서울대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고착된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한다. 단순한 재정 확대가 아니라, 지역 거점 국립대를 국가 균형성장의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하겠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 정책은 기존 지방대 육성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에서 ‘서울대 10개’까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표현은 최근에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제의식 자체는 오래전부터 한국 고등교육 담론 안에 존재해 왔다. 수도권 상위 대학으로의 쏠림과 학벌 중심 사회 구조가 고착되면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국립대학 체제 전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구상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논의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상은 대학 서열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공동입학·공동학위·공동운영이라는 급진적인 제도 개편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대학 간 이해관계 충돌과 사회적 수용성 문제를 넘지 못한 채 정책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후 등장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은 이러한 한계를 의식한 보다 현실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 대학 체제 전체를 단번에 통합하거나 제도를 급격히 바꾸기보다는, 재정과 연구 인프라의 격차가 곧 대학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상향 평준화를 시도하겠다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소수 상위 대학으로 집중돼 있던 교육·연구 자원을 지역 거점 국립대로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새로운 ‘상위 대학군’을 형성함으로써 수도권 집중과 입시 병목을 완화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지방대 육성 정책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과거 정책들이 다수의 대학에 재정을 분산 지원하는 방식이었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거점국립대학의 교육·연구 여건을 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정부가 제시한 정책 구상에서는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의 일정 비율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연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정 대학과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하는 방향이 명시돼 있다. 이는 ‘모두를 살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고등교육 체제 내에서 거점 역할을 수행할 대학을 명확히 설정하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왜 거점국립대학인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서 거점국립대학이 중심에 놓이는 이유는 단순히 국립대학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점국립대학은 지역 고등교육 체제에서 사실상 최상위에 위치한 기관으로, 학부·대학원 규모, 연구 인프라, 전임교원 수,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위상이 다른 대학들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들 대학의 변화는 해당 지역의 다른 국립대, 사립대, 전문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파급력을 갖는다. 다시 말해, 거점국립대학은 개별 대학을 넘어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기준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간 거점국립대학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왔다. 수도권 상위 사립대학과의 연구 여건 격차는 물론, 우수 학생과 대학원생 확보에서도 점차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서, 지역 고등교육 체제의 상층부가 비어가는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대학 전체가 경쟁력을 잃기보다는, 지역 내에서도 상향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제기됐다. 상위권 학생이 지역에 남아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 줄어들수록, 지역 고등교육 체제는 내부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어려운 구조로 굳어졌다.
정책 설계자들이 거점국립대학을 ‘국가 균형성장의 엔진’으로 다시 호출한 배경에는 이러한 인식이 깔려 있다. 모든 대학을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지역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연구 역량을 갖춘 국립대학을 중심축으로 세워야만, 인재 양성과 연구, 산업 연계가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구상에서 거점국립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전략산업과 연구개발, 인력 양성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된다.
상향 평준화라는 가정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중심에는 하나의 강력한 가정이 놓여 있다. 대학 간 격차의 핵심 원인은 능력이나 역사보다 재정과 여건의 차이이며, 충분한 규모의 재정 투입이 이루어진다면 경쟁력은 일정 부분 따라올 수 있다는 전제다. 실제로 서울대학교와 거점국립대학 사이의 차이를 비교할 때, 학생 1인당 교육비, 연구비 규모, 전임교원 확보 수준, 연구 인프라 접근성 등에서 상당한 격차가 존재해 왔다는 점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이 정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격차의 원인을 ‘구조적 불평등’으로 규정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재정 확대가 곧바로 교육과 연구의 질적 도약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학은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어내는 조직이 아니며, 특히 연구 경쟁력은 인력 구성, 학문 공동체의 밀도, 평가와 보상의 구조, 국제적 네트워크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장기간 축적되며 형성된다. 일정 기간 재정이 확대되더라도, 내부 제도와 운영 방식이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기대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은 과거의 여러 대학재정지원사업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상향 평준화는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대학 조직 전체의 작동 방식을 전제로 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위험과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상향 평준화의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거점국립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지역 전략산업과 공공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연구거점으로 자리매김시키려는 것인지에 따라 투자 방향과 성과 지표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경우 정책은 방향성을 잃기 쉽고, 제한된 재정은 분산되며, 결국 어느 쪽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상향 평준화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위로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선행되어야 한다.
입시 병목 구조는 완화될 수 있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대중적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정책이 입시 경쟁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현재의 입시 체제에서 상위권 수험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문제는 단순한 경쟁의 강도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상위 대학’의 폭이 지나치게 좁다는 데 있다. 서울대학교와 소수의 수도권 상위 사립대학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그 아래 단계로의 이동은 개인의 성취와 사회적 평가에서 큰 낙차로 인식되는 구조가 고착돼 왔다. 이 병목 구조가 유지되는 한, 입시 과열은 완화되기 어렵다.
정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상위 대학군의 확장이다. 지역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연구 여건을 갖춘 국립대학이 존재하고, 이들 대학이 서울대와 비교 가능한 교육비와 연구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면, 수험생의 선택지는 지리적으로 분산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단순히 정원을 늘리거나 입시 제도를 손보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으로, 대학 간 질적 격차 자체를 줄이려는 시도에 가깝다. 입시 경쟁의 원인을 제도 밖이 아니라 대학 체제 내부에서 찾겠다는 점에서 정책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접근이 실제로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의 평판과 신뢰는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으며, 교육비와 연구비의 증액이 곧바로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상위권 수험생과 학부모가 지역 거점국립대를 ‘대체 가능한 선택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졸업생의 진로, 대학원 경쟁력, 연구 성과, 산업 연계 성과 등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입시 병목 완화는 정책 목표일 수 있으나, 그 효과는 정책 집행의 속도보다 대학의 변화가 사회적으로 축적되는 속도에 더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 강화는 지역에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는가
입시 병목 구조의 완화와 함께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겨냥하는 또 하나의 목표는 청년 인구의 수도권 유출을 늦추거나 되돌리는 것이다. 정책 설계에서 거점국립대학은 단순히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에 머물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내는 핵심 인프라로 상정된다. 대학에서 양성된 인재가 지역 산업과 연구기관, 공공 부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면, 대학은 지역 소멸을 완화하는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곧바로 정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의 결정은 교육의 질뿐 아니라, 취업 기회, 임금 수준, 직업 이동성, 생활 인프라, 문화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학이 아무리 우수한 교육과 연구 환경을 갖추더라도, 졸업 이후 선택 가능한 경로가 제한적이라면 청년은 결국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때문에 거점국립대학 육성 정책은 교육 정책이면서 동시에 산업·고용·지역 정책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 그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책 구상에서 강조되는 산학연 연계와 지역 전략산업 중심의 특성화는 이러한 한계를 의식한 결과다. 대학에서의 교육과 연구가 지역 산업의 수요와 연결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개발과 고급 일자리가 지역에 형성될 경우에만 ‘지역에 남을 이유’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거점국립대학을 강화하는 정책의 성패는 대학 내부의 변화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대학을 둘러싼 지역 생태계가 함께 작동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선택과 집중의 그늘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 전략은 분명 기존 지방대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올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지역 내 대학 간 격차의 재편이다.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이 이루어질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와 자원이 부족한 지역 사립대학과 중소 국립대학은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지역 내부에서는 또 다른 불균형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다. 거점국립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예산 증액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안정적인 재정 투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 재정 여건과 정치적 환경이 변화할 경우, 이러한 집중 지원이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과거 여러 대학재정지원사업이 중장기 성과를 내기 전에 방향을 바꾸거나 축소된 사례를 떠올리면,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동일한 위험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책임의 구조다.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무성과 성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예산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정책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으며, 교육과 연구의 변화가 지역 사회와 국가 전체에 어떤 방식으로 환류되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전략이 될 수 있지만, 그 선택이 공공성을 기반으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정책은 쉽게 정당성을 잃게 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완성된 해법이라기보다, 한국 고등교육 체제에 던져진 하나의 질문에 가깝다.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입시 과열이라는 오래된 문제가 더 이상 개별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 체제 자체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정책은 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고등교육의 중심축을 재배치하려는 시도이지만, 그 성공 여부는 재정 규모가 아니라 선택의 명확성과 실행의 일관성에 달려 있다.
만약 거점국립대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없이 ‘서울대 수준’이라는 모호한 목표만 남는다면, 이 정책은 또 하나의 재정 투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대학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지역 산업과 고용, 연구 생태계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고등교육을 통한 지역 재생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정책이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보다, 무엇을 끝까지 바꾸지 않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있다.
이 연재는 바로 그 선택의 문제를 하나씩 짚어볼 것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거점국립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려는 구상과, 지역 혁신의 허브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전략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정책의 성패를 어떻게 가를지를 살펴본다.
[연재목록]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① ] 왜 지금 ‘서울대 10개’인가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위기의 교차점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② ] 연구중심대인가, 지역혁신 허브인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③ ] 집중 지원은 어떻게 책임이 되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④ ] 서열을 없애는가, 다시 그리는가
[특집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실험 – 지역 소멸과 고등교육 체제 재설계 ⑤ ]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는가
#서울대10개만들기 #거점국립대 #지역소멸 #수도권집중 #입시과열 #고등교육개혁 #대학정책 #국가균형성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