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AI를 사용하는 학생들과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의 간극
2025년 대학 교육을 규정하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학생들의 빠른 AI 도입 속도와 대학 제도적 대응의 지연 사이에서 발생하는 근본적 불일치이다. HEPI와 Kortext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학부생의 절대다수가 학업 과정에 AI를 사용한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평가 활동에서의 활용 비율이 88%에 달한다는 결과는 대학의 기존 교육 설계가 더 이상 학생들의 실제 학습 행위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술적 환경의 확장 차원을 넘어서 교육의 핵심을 이루던 학습·평가·지도 방식 전반을 다시 정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 당면한 상황을 종합하면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범 중심의 대응은 이미 실효성이 사라졌고, 학생들이 당연하게 활용하는 도구에 맞추어 교육의 목표와 과정, 그리고 평가 기준을 재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부상했다. 본 회차에서는 이 문제를 중심으로 보고서 1장이 제시하는 AI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분석하고, 대학이 왜 이 능력을 ‘새로운 기본 능력’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생성형 AI는 특정 사용자가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부가적 도구로 이해되었으나, 2024년 이후 상황은 이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생성형 AI 기능은 더 이상 독립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별도의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고, Microsoft Office의 Copilot이나 Blackboard 학습관리시스템, Grammarly와 같은 기존 소프트웨어 내부로 자연스럽게 통합되었다. Borthwick이 이를 생활적 통합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학생은 글쓰기, 강의 정리, 참고자료 구성, 요약 등 학습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AI 기능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심지어 AI 사용 여부를 인식하지 못한 채 AI가 개입한 결과물을 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은 이러한 기술적 환경을 단순 도구 확산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AI의 통합은 학습의 전제조건을 바꾸는 환경적 변화이기 때문에 기술의 사용 여부를 규율하는 방식보다 사용을 전제한 학습 설계가 요구된다. AI는 이미 학생들의 학습 방법에 깊이 들어와 있으며, 대학은 이 변화가 초래하는 교육적·윤리적·인지적 영향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교육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기존 평가 체계의 한계 — 학습자 산출물이 더 이상 학습자의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
생성형 AI는 학습의 표면적 산출물에 관여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고 전개의 거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작성해야 할 문장의 흐름을 제시하거나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하고, 더 나아가 아이디어 구성 단계에서부터 심화된 해석까지 학생 대신 제안하는 방식으로 학습 행위 자체를 대체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Borthwick이 설명한 것처럼 대학이 전통적으로 학습자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활용하던 과제나 보고서 작성 활동은 생성형 AI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고, 그 결과 학생의 실제 이해와 사고 능력은 평가 결과에서 분리되기 쉽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표절 문제나 기술 오용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AI가 학습 과정의 초기 단계부터 최종 산출물까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서는 평가를 통해 확인하려는 ‘학습자의 고유한 사고 과정’이 더 이상 분리 가능한 영역이 아니게 된다. 대학은 학습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평가하거나, 과정 기록을 통해 학습자의 사고 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평가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한다. 이는 AI 도입 이후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 변화이기도 하다.
AI 리터러시의 핵심 — 기술 사용 능력을 넘어 사고 체계의 재형성
AI 리터러시는 단순히 AI 도구를 다루는 기술적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고서에서 Borthwick은 AI 리터러시를 책임 있는 학습과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포괄적 사고 체계로 이해한다. AI의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결과를 검토하는 능력, AI의 산출물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태도, 기술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사회적 영향을 인식하는 감수성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관점은 AI 시대의 대학 교육이 AI를 활용하되 그 위에 종속되지 않는 인간 중심의 사고 구조를 갖추도록 학습자를 안내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AI 리터러시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단순히 조작과 생산의 차원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제시하는 정보와 조언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학습자의 판단과 비판적 검토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대학이 이 능력을 기본 역량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대학 교육의 핵심 목표가 지식 전수에서 판단과 사고의 성숙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리터러시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 요소는 생성형 AI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이다. 생성형 AI 모델은 특정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적합해 보이는 문장을 이어붙이는 예측 모델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러한 본질적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용자는 AI의 결과를 사실로 오해하거나, 출처와 근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활용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AI가 환각이라는 형태로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그럴듯한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이유 역시 이 원리와 연결된다. 모델은 자신이 생성한 문장에 사실적 근거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으며, 통계적 패턴만을 기준으로 문장을 조합한다. 따라서 대학은 학습자에게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과 한계를 이해시키고, 결과를 맹신하기보다 검증하는 태도를 교육해야 한다. 대학이 AI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확보하려는 핵심은 기술의 정확성이 아니라 기술을 판단하는 인간의 비판 능력이라는 점이 여기에 있다.
대학 구성원의 협업 필요성 — 리터러시는 개별 학부나 교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AI 리터러시는 단일 학과나 특정 교과목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AI 도입의 영향은 학과별 교육 내용, 평가 방식, 학사행정, 연구지원 시스템 등 대학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조직 전체가 협력해야만 실질적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Southampton 대학이 학생과 교수, 디지털 학습지원팀, 도서관, 교육개발센터가 함께 AI 지침을 개발한 사례는 이러한 협업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대학이 구성원 간의 협업을 통해 AI 리터러시를 정의하고 적용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명확해진다. 하나는 AI 사용의 현실적 다양성 때문에 어느 한 조직이 전체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AI 활용 수준과 목적이 학과별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단일 기준만으로는 적용 범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협업 구조를 통해 대학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하고 균형 잡힌 원칙을 세울 수 있다.
대학이 AI 사용 원칙을 학습자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AI 사용을 허용할지 금지할지 결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학습의 본질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AI가 일부 학습 과정을 자동화하거나 단축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학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습자의 사고 과정과 판단 능력을 축적하는 경험이라는 점을 학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학습자에게 AI 사용의 목적과 제한을 설명하는 과정은 대학이 지식 전달 기관을 넘어 사고 능력 개발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과정과도 겹친다. 대학은 AI 사용의 적절성, 학습 목표와의 연결, 결과 검토의 중요성을 명확히 소통함으로써 학습자에게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사고 기반 학습의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AI 활용의 투명성 — 교원의 AI 사용도 공개되어야 하는 이유
AI 시대의 대학 교육은 학생뿐 아니라 교원과 직원의 AI 활용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문화를 요구한다. 강의자료 작성, 문제 구성, 과제 평가, 피드백 제공 과정에서 교수나 직원이 AI를 사용했다면 이를 명시적으로 알리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투명성은 AI 활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 학생에게 적절한 활용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책임 있는 AI 사용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대학이 투명성을 강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생이 AI를 사용할 때 과도한 금지나 제재 중심 규정이 오히려 음성적 활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사용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문화는 기술을 숨기기보다 적절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AI 리터러시 교육은 기술 활용의 윤리적·사회적 함의를 포함해야 한다. 생성형 AI는 학습데이터의 편향 문제, 개인정보 처리, 저작권 침해 가능성, 사용자의 데이터가 재활용되는 구조적 위험 등 다양한 윤리 문제와 연결된다. 대학은 학습자에게 이러한 윤리적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감수성을 훈련시키고, 기술 활용 과정에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생성형 AI가 프롬프트와 결과물을 내부적으로 학습 과정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학생과 교원이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며, 대학은 이러한 위험을 명확히 설명하고 데이터 처리 방침을 안내해야 한다. 윤리 교육은 대학이 AI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 문제를 예방하는 중요한 장치다.
생성형 AI의 기능과 성능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대학의 정기적인 교수개발 프로그램이나 연례 가이드라인 개정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AI는 단기간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기존 기능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AI 리터러시 교육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Borthwick이 강조하는 지속학습의 원리는 대학이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대학은 변화하는 AI 환경에 맞춰 교수와 직원의 교육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이 필요한 경우 빠르게 실험하고 그 결과를 전파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AI 리터러시가 기술 이해 수준을 넘어 판단과 윤리의 문제와 연결되는 만큼 학습자뿐 아니라 교수와 직원도 함께 학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AI 리터러시가 대학 조직에 필수적인 구조적 이유
AI 리터러시가 대학의 선택적 확장 과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필수적인 요구로 떠오른 이유는 여러 제도적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첫째, AI는 정부 정책과 대학 규제 체계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AI Action Plan은 대학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틀을 제시하고 있으나, 기술 발전 속도는 이러한 규제체계를 훨씬 넘어선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기술 도입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학생 간 AI 접근의 차이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HEPI 조사에서 확인된 성별·소득·전공 분야별 AI 접근 격차는 특정 집단이 AI 활용의 이점을 누리는 반면 다른 집단은 기술적·경제적 한계로 인해 불리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대학은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AI 리터러시 교육을 제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셋째, 대학은 AI를 둘러싼 공식적 입장과 사용 지침을 학생과 교원에게 명확하게 제시해야 학업 성과의 공정성과 제도적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학생은 AI 사용의 허용 범위, 학습 과정에서의 적절성, 평가에서의 기준을 알고 싶어 하며, 대학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불확실성이 커지고 교육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다.
AI 리터러시의 도입은 대학 교육의 목표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은 이미 생성형 AI가 상당 부분 수행할 수 있으며, 대학의 역할은 학습자가 기술적 도움 속에서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
AI 시대의 대학 교육은 학생이 자기 자신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고 제어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펼쳐져야 한다. 또한 AI의 정보를 검토하고 그 타당성을 판단하는 비판적 사고 능력, 다양한 정보의 질을 비교하고 신뢰성을 판별하는 정보 판단력, 기술 활용 과정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수행하는 윤리적 판단 능력 등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모두 인간의 사고 과정이 중심이 되는 교육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2025년 대학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AI의 사용을 제어하거나 금지하는 차원을 넘어, 학생과 교원 모두에게 AI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하는 것이다. AI 리터러시는 기술적 조작 능력을 넘어 판단, 윤리, 정보 해석 능력 등을 포함한 포괄적 문해력이며, AI 시대 대학의 신뢰성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AI가 이미 학습 환경 전반에 깊숙이 침투한 상황에서 대학은 기술의 흐름을 따라가는 조직이 아니라 기술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사고력을 키우는 기관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결국 AI 리터러시를 강화하는 일은 대학이 교육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혁신이다. AI 시대의 고등교육은 기술과 인간 능력의 조화를 추구하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판단과 책임이 자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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