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신입의 일을 가져간 자리,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기업은 AI 활용능력 넘어 판단·소통·문제해결 능력 요구
AI 고노출 초급직일수록 ‘경력자형 역량’ 요구 확대
한국 청년 일자리 감소 94%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
지식 전달 넘어 경험하고 판단하는 교육으로 전환 필요

인공지능(AI) 시대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누구일까. 당연히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생성형 AI를 능숙하게 활용하고 업무에 필요한 도구를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사람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노동시장 자료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 기업들은 AI 활용능력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분석적 사고, 판단력, 창의성, 소통능력, 회복탄력성, 리더십 같은 이른바 ‘인간의 역량’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과 거리가 있어 보이던 능력이 오히려 중요해지는 역설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9월 공개한 ‘AI 시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이에게 기업은 어떤 역량을 원하는가’라는 글도 이 변화를 다룬다. 기업들이 젊은 구직자에게 원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지식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울 수 있는 학습민첩성,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 감성지능, 회복탄력성, 사람과 연결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학위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학위만으로 그 사람이 직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증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이 달라졌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AI가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신입사원이 조직에서 경험을 쌓아가던 방식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역량은 ‘생각하는 능력’

WEF가 2025년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보고서(Future of Jobs Report 2025)’를 보면 현재 기업들이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핵심역량 가운데 1위는 분석적 사고다. 조사 기업의 69%가 이를 핵심역량으로 꼽았다. 회복탄력성·유연성·민첩성이 67%,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이 61%, 창의적 사고가 57%로 뒤를 이었다. 기술문해력은 51%, AI와 빅데이터 활용능력은 45%였다. 물론 앞으로 중요성이 가장 빠르게 증가할 역량으로는 AI와 빅데이터가 가장 높은 순위에 있다. 그러나 현재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의 상위권은 여전히 분석, 적응, 창의, 리더십과 같은 능력이 차지하고 있다.

AI 역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AI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빠르게 기본역량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AI 역량과 인간 역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활용하면서 문제를 정의하고,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검토하며, 무엇이 적절한지 판단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함께 요구한다. AI와 빅데이터 활용능력이 빠르게 중요해지는 동시에 분석적 사고와 창의성, 회복탄력성, 리더십의 중요성도 유지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청년에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하나 숨어 있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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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은 ‘직업’보다 먼저 ‘신입이 하던 일’

AI와 일자리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질문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없앨 것인가’다. 그러나 현재 노동시장에서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직업 전체의 소멸보다는 직업을 구성하는 업무의 변화에 가깝다. 하나의 직업은 여러 종류의 업무로 구성된다. 자료를 검색하고 정리하는 일, 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 기본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 간단한 코드를 만드는 일, 정해진 형식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고객 문의에 일차적으로 대응하는 일 등이 한 직무 안에 섞여 있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대체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업무들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까지 조직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담당하던 업무였다는 점이다.

신입사원은 처음부터 중요한 판단을 맡지 않았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면서 조직의 작동방식을 배웠다. 잘못된 문서를 만들기도 하고 상사의 수정을 받기도 하면서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어떤 판단이 필요한지, 조직에서 실제 업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익혔다.

단순한 업무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훈련과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AI가 바로 그 영역에 들어오고 있다.

WEF와 PwC가 지난 6월 공동으로 발표한 ‘AI와 초급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전 세계 젊은 근로자 세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AI에 의한 업무 변화에 중간 이상으로 노출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AI 문제를 단순한 일자리 감소로 다루지 않고 ‘일자리 접근(job access)’, ‘직무 설계(job design)’, ‘인재 육성경로(talent pipelines)’, ‘교육체계와의 정렬(education system alignment)’이라는 네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가 초급직을 모두 없애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직에 진입해 경험을 쌓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징후는 분명해지고 있다.

신입인데 경력자의 능력을 요구한다

PwC의 ‘2026 글로벌 AI 일자리 바로미터’는 이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PwC는 6개 대륙에서 10억 건이 넘는 채용공고를 분석했다. 미국의 초급 일자리 240만 건을 별도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초급직이 AI 노출도가 낮은 초급직보다 리더십, 창의성, 대면 상호작용 등 전통적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직급에서 요구되던 역량을 요구할 가능성이 7배 높게 나타났다. PwC는 이를 초급 일자리의 ‘시니어화(seniorisation)’라고 설명한다. AI가 반복적인 업무를 담당하면서 사람에게 남는 업무의 무게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일자리가 반드시 줄어들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PwC 분석에서 이른바 ‘시니어화된’ 초급직 채용공고는 2019년 이후 35% 증가한 반면 다른 초급직은 10% 감소했다. AI에 의해 초급직 전체가 사라진다기보다 초급직 안에서 살아남고 성장하는 직무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청년에게 새로운 역설이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경험을 쌓은 뒤 맡았던 일을 이제는 경력이 많지 않은 단계부터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판단력과 문제해결 능력은 대개 실제 업무를 경험하고 실패와 수정을 반복하면서 형성된다. 경력이 없기 때문에 신입인데, 신입이 하던 단순 업무가 AI로 넘어가면서 경력을 통해 배웠던 능력을 처음부터 요구받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AI는 ‘경력 사다리’의 가장 아래 단계를 압축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들은 조직에 들어간 뒤 비교적 낮은 위험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암묵지를 쌓았다. 문서를 작성하면서 왜 이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배우고, 회의자료를 만들면서 조직이 어떤 정보를 중요하게 보는지를 익혔다. 고객을 상대하면서 책에는 없는 예외상황을 만났고, 선배의 수정과 피드백을 통해 판단기준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AI가 초안과 분석, 정리와 반복업무를 상당 부분 담당한다면 청년들이 이런 경험을 축적하는 경로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 시대의 일자리 문제는 그래서 단순히 ‘몇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더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신입사원이 더 이상 신입사원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디에서 경력자가 되는 법을 배울 것인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경력 사다리’의 이상 징후

이 문제는 먼 미래의 해외 노동시장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는 국내 노동시장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국민연금 가입자 자료와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 4년 동안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천 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6만8천 개, 전체 감소분의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발생했다. 정보서비스업의 청년고용은 31.4% 감소했고 출판업은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업은 16.6%, 전문서비스업은 11.6% 감소했다. 주목할 부분은 같은 업종에서 50대 고용은 증가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이를 기술 변화가 경력과 경험을 가진 근로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연공편향 기술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학력별 노동시장에서도 변화가 관찰됐다. 과거에는 대졸 청년과 전문대졸 이하 청년의 실업률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22년 11월 이후 대졸 청년의 평균 실업률은 7.0%로 전문대졸 이하 청년의 5.4%보다 1.6%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AI 노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직종에 대졸 청년들이 많이 분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지식노동을 중심으로 AI의 영향을 먼저 받고 있는 현상에 가깝다. AI가 문서작성, 데이터 분석, 코딩, 조사·연구와 같은 화이트칼라 업무에 빠르게 들어오면서 그동안 대학 졸업자가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하던 경로가 먼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취업한 이후에도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청년고용 감소가 신규채용 감소뿐 아니라 기존 청년 근로자의 유출 증가에서도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특히 AI 고노출 업종에서 실업자로 이동하는 청년이 늘었다. 이는 청년이 조직 안에서 경력을 유지하면서 경험과 숙련을 축적하는 과정 자체가 약화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를 곧바로 ‘AI가 청년 일자리를 28만 개 없앴다’고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은행 역시 최근 청년고용 부진을 AI 하나의 영향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팬데믹 당시 과잉채용 이후의 조정, 기업의 경력직 선호, 내부교육 축소, 재택근무 확산 등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타나는 현상은 AI만의 독립적인 결과라기보다 기존에 진행되던 채용과 업무방식의 변화를 AI가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방향은 분명하다. 청년들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에 들어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전제를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

한국은행 연구에는 대학 교육에도 중요한 함의를 주는 또 하나의 결과가 있다.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이라고 해서 모두 청년고용이 같은 방식으로 감소한 것은 아니었다.

AI를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는 자동화(automation) 방식으로 활용하는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는 청년고용 감소가 크게 나타났다. 반면 AI가 사람의 업무를 돕는 증강(augmentation) 방식으로 사용되는 업종에서는 이 같은 고용감소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AI 도입 여부 자체보다 AI와 사람이 어떤 관계로 일하도록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대학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AI 논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대학들은 생성형 AI 등장 이후 학생들에게 AI 사용을 허용해야 하는지, 과제에서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 AI가 작성한 보고서를 어떻게 판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왔다. 최근에는 생성형 AI 활용교육이나 프롬프트 작성법을 교육과정에 넣는 대학도 늘어나고 있다.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변화까지 고려하면 대학의 AI 교육은 ‘AI 도구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준에서 멈출 수 없다. 핵심 질문은 학생에게 AI를 사용하게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AI와 함께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AI에게 정확한 명령을 내리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AI가 제시한 답변 가운데 무엇이 옳은지 확인해야 하고 서로 충돌하는 정보를 비교해야 한다. AI가 만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맥락과 목적에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최종 결과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AI 활용능력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판단능력이 덜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학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학위만으로 증명하는 시대’가 끝난다

노동시장의 또 다른 변화는 채용의 기준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대학·고용주협회(NACE)의 ‘Job Outlook 2026’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0%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역량기반 채용(skills-based hiring)을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년 65%에서 다시 증가한 수치다. 기업들은 지원자가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소통능력이 뛰어나다’고 적는 것보다 실제 어떤 경험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보여주기를 원한다.

여기에서도 학위가 쓸모없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대학 학위는 여전히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전문지식을 습득했다는 중요한 증명이다. 하지만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협업할 수 있는지, 새로운 기술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지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WEF가 소개한 Young Business Agency 설립자 올라주모케 아데케예 역시 학위와 자격증은 학습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지만 기업이 알고 싶은 것은 졸업한 이후에도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라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중요하게 보는 것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학습민첩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의 핵심은 학위의 소멸이라기보다 학위가 노동시장에 보내던 신호의 변화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과 전공, 학점이 지원자의 능력을 상당 부분 대신 설명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학위와 함께 ‘무엇을 해보았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보았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보았는가’에 대한 증거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학위만으로 역량을 증명할 수 있었던 시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학생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대학으로 돌아온다. AI 시대에 대학이 해야 할 일을 AI 관련 교과목 몇 개를 개설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 생성형 AI 사용법을 가르치고 프롬프트 작성법을 교육하는 것은 필요하다. AI 윤리와 저작권, 개인정보 문제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각 전공에서 AI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가르치는 교육과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초급 업무의 감소’와 ‘초급직의 시니어화’라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실제로 판단해본 경험이 있는가. 정답이 없는 문제를 다뤄보았는가. 여러 자료 가운데 무엇을 믿을 것인지 결정해보았는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때 수정해보았는가. 다른 사람과 의견이 충돌할 때 설득하고 협의해본 경험이 있는가. 실패한 프로젝트를 다시 설계해본 적이 있는가.

학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능력과 불확실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반드시 같지 않다. WEF가 최근 일 기반 학습(work-based learning)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Global Apprenticeship Network의 캐서린 로완은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는 견습과 현장기반 학습을 통해 기술적 역량과 소프트스킬을 함께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생이 실제 업무를 경험하면서 조직문화와 문제해결 방식을 동시에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은행 역시 비슷한 방향을 제안한다. 기존 초급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보존하는 것보다는 청년들이 AI와 함께 일하면서 경험과 암묵지를 축적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력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맞는 직업훈련, 기업의 훈련과 멘토링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이 논의를 대학으로 가져오면 교육의 방향 역시 달라진다. 수업에서 지식을 얼마나 전달했는가만이 아니라 학생이 그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해보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해진 답을 찾는 과제보다는 문제를 정의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개인 보고서만 제출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결과를 조정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를 금지하는 것보다 AI가 만든 여러 결과를 비교하고 오류를 찾아내고 더 나은 결과로 수정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현장실습도 단순히 일정 기간 기업에 학생을 보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캡스톤디자인, 프로젝트 기반 학습, 산학협력, 인턴십, 지역사회 문제해결 프로젝트 등 대학이 운영해온 여러 프로그램을 학생의 ‘실제 판단 경험’을 만드는 구조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AI가 답을 만드는 시대, 대학은 판단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AI가 대학 교육에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학생들이 과제를 직접 작성해야 하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생성형 AI는 상당한 수준의 글을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코드를 만들고 발표자료를 구성한다. 앞으로 그 능력은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대학은 AI와 지식 생산의 속도를 경쟁할 수 없다.

오히려 대학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더 분명해질 수 있다. 학생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 서로 다른 주장과 정보를 비교하게 하는 것,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하게 하는 것, 자신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 실패하고 수정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의 중심 역시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 지식을 얼마나 기억했는가에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로, 정답을 얼마나 정확하게 만들었는가에서 결과를 어떻게 검증하는가로, 혼자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에서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능력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도 졸업장 하나가 아니라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해봤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의 축적이어야 한다.

AI가 초급자의 반복업무를 줄일수록 이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기업이 더 이상 신입사원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가르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학생에게 실패해도 되는 환경에서 문제를 다루고 판단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 공간이 대학이어야 한다. AI는 청년의 일자리를 없앨 수도 있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한국은행 연구가 보여주듯 AI를 인간을 대신하는 자동화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증강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AI 시대 대학의 과제는 AI와 경쟁할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AI를 잘 활용하면서도 AI에게 무엇을 맡겨야 하고 무엇은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수많은 정보와 답 가운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지식 자체의 희소성이 줄어드는 시대에는 판단의 가치가 오히려 커진다. AI 시대에 대학이 길러야 할 사람은 AI보다 더 많은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내놓은 수많은 답 가운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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