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고등교육국제연구소가 공개한 글로벌 고등교육 트렌드 자료는 세계 고등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동안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포트라이트유 특집 기획안은 이 흐름을 5부작 연속 기획의 두 번째 주제로 설정하고, 거버넌스와 법제 프레임워크, 외부 질 보증 체계를 중심으로 대학 자율성의 후퇴와 한국 대학의 제도적 조건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등교육의 성장은 대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세계 고등교육은 지난 20여 년 동안 빠르게 확대됐다. 등록자는 늘었고, 국제학생 이동은 커졌으며, 더 많은 국가가 고등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수가 늘고 학생의 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대학이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네스코 자료가 짚은 핵심 문제 중 하나는 고등교육의 제도적 팽창과 학문의 자유의 후퇴가 같은 시기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안은 학문의 자유 지수가 5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고, 법적 보장과 실제 환경 사이의 간극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주요 발견사항으로 정리했다.
이 대목은 고등교육을 단순한 산업이나 인력 양성 체계로만 바라볼 때 놓치기 쉬운 문제를 드러낸다.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 성과를 내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사회가 아직 합의하지 못한 질문을 제기하고, 권력과 시장이 불편해하는 지식을 탐구하며, 다음 세대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적 공간이다. 대학의 규모가 커져도 이러한 기능이 약화된다면 고등교육의 성장은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학문의 자유는 대학 내부의 특권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연구자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특정 주제를 피하고, 교수가 행정적 불이익을 우려해 공개 발언을 자제하며, 학생이 민감한 주제를 토론하기 어려워진다면 대학은 지식 생산의 장이라기보다 관리되는 교육기관으로 좁아진다. 고등교육의 위기는 학생 수나 재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잃어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는 많은 국가의 법과 제도 안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자료가 주목하는 것은 법적 보장 자체보다 그것이 실제 대학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기획안은 법적 보장과 실제 환경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정치적·행정적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격차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부가 대학 재정을 강하게 통제하면 대학은 정책 우선순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 평가와 재정지원이 특정 지표 중심으로 설계되면 대학은 장기적 학문 생태계보다 단기 성과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연구비 배분이 국가 전략 분야에 집중될 때 기초학문과 비판적 사회연구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외부 질 보증과 인증 제도가 대학의 질을 높이는 장치로 기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표준화된 관리 체계로 작동하면 대학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제한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제와 책무성의 균형이다. 대학은 공적 재원을 사용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관이기 때문에 아무런 평가나 감독 없이 운영될 수 없다. 그러나 책무성이 곧 행정적 통제와 동일시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대학이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말은 정부나 평가기관이 정한 지표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학은 때로 사회의 다수 의견과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당장의 효율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연구와 교육을 지속하며,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지적 기반을 축적해야 한다. 그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자율성이다.
질 보증은 대학을 살릴 수도, 획일화할 수도 있다
고등교육의 질 보증은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흐름에 있다. 대학이 늘어나고 교육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학생과 사회는 대학 교육의 질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요구한다. 외부 인증, 평가, 성과관리, 학위 인정 체계는 고등교육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국제학생 이동이 확대되고 온라인·디지털 교육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질 보증은 국가 간 신뢰와 학습 결과의 인정에 필수적인 기반이 된다.
그러나 질 보증은 양날의 제도다. 질을 확인한다는 명분이 대학의 실제 교육과 연구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긍정적이다. 반대로 지표와 서류, 절차와 순위 중심으로 굳어지면 대학은 자신이 무엇을 잘 가르치고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보다 평가에서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질 보증이 대학의 내적 성찰을 돕는 장치가 아니라 외부 보고를 위한 행정 체계로 변할 때, 대학은 개선보다 대응에 익숙해진다.
한국 대학은 이 문제를 오래 경험해왔다. 대학기본역량진단, 기관평가인증, 각종 재정지원사업 평가, 학과 구조조정 지표, 취업률과 충원율 중심의 성과관리는 대학 운영의 기본 조건이 됐다. 일정한 수준의 관리와 공적 책임은 필요하지만, 평가 체계가 대학의 교육 철학과 지역적 역할, 학문적 다양성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는 별도의 질문이다. 수도권 대규모 대학과 지역 중소규모 대학,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 특성화 대학과 일반대학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할 때 대학의 다양성은 제도 안에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질 보증의 목적은 대학을 줄 세우는 데 있지 않다. 학생이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대학이 약속한 교육을 충실히 제공하고 있는지,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학위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질 보증은 획일적 통제보다 맥락 기반 평가로 이동해야 한다. 대학이 처한 지역, 학생 구성, 설립 목적, 교육 모델, 연구 역량을 함께 보지 않는 평가는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비슷하게 만드는 제도가 될 수 있다.
한국 고등교육에서 자율성은 오래된 의제다. 대학 자율화는 여러 차례 정책 과제로 제시됐지만, 실제 대학들은 여전히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 지표, 정원 규제, 등록금 정책, 각종 행정 절차에 강하게 묶여 있다. 특히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 재정지원사업 의존도가 결합되면서 대학의 전략적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다. 대학은 자율을 말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정부 사업의 언어와 평가 지표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 구조에서는 대학의 의사결정도 방어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전공을 만들고 싶어도 정원과 재정, 평가 지표를 고려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어도 단기 성과를 제출해야 한다. 기초학문을 유지하고 싶어도 충원율과 취업률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행정, 평가, 사업계획서, 성과보고서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대학 자율성의 문제는 총장이나 이사회만의 권한 문제가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실제로 어떤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유네스코 자료가 고등교육 교원 문제를 별도의 핵심 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획안은 15% 미만의 국가만이 교원 복지를 국가 우선과제로 명시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대학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는 교원의 노동 조건과 분리될 수 없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연구 시간이 부족하며, 행정 부담이 과도하고, 성과 압박이 강한 환경에서 학문적 자유는 제도 문구로만 남기 쉽다. 자유롭게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으려면, 그 자유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시간과 지위와 안전이 필요하다.
학문의 자유가 후퇴할 때 대학은 반드시 큰 사건으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위축은 조용히 진행된다. 연구자는 논쟁적인 주제를 피하고, 교수는 공개 발언을 줄이며, 대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제도적 입장을 내지 않는다. 학생 토론은 안전한 주제로 제한되고, 대학 구성원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이 안정은 대학의 본질적 기능을 조금씩 약화시킬 수 있다.
대학의 침묵은 때로 현실적 선택이다. 재정이 어렵고, 평판 리스크가 크고, 정치적 갈등이 심하며, 구성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 대학이 모든 사안에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학이 계속 침묵하는 방식으로만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면, 결국 대학은 사회가 기대하는 비판적 지성의 역할을 잃게 된다. 대학이 사회의 갈등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갈등을 사유할 언어와 토론의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의 공공성이다.
한국 대학에도 이 질문은 중요하다. 대학은 입시, 취업, 연구비, 재정지원, 지역소멸, 인구감소, AI 전환이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이 클수록 대학은 왜 자율성이 필요한지 더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자율성은 대학이 편하게 운영되기 위한 권한이 아니다. 자율성은 사회가 아직 답하지 못한 문제를 대학이 자유롭게 탐구하고, 학생들이 단순한 적응자가 아니라 비판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다.

평가받는 대학에서 질문하는 대학으로
세계 고등교육의 거버넌스 변화는 한국 대학에 하나의 경고를 던진다. 대학이 평가와 재정, 인증과 규제의 언어에만 갇히면 고등교육의 본래 목적은 흐려질 수 있다. 대학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평가받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다. 대학은 성과를 내야 하지만, 성과표에 잡히는 활동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도 아니다. 대학은 사회 변화에 응답해야 하지만, 사회의 즉각적 요구를 그대로 수행하는 기관으로 축소되어서도 안 된다.
한국 대학이 자율성을 말하려면 동시에 책임의 언어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대학 자율성은 무책임한 독립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조건이어야 한다. 대학은 스스로 교육의 질을 설명하고, 연구의 의미를 사회와 공유하며, 학생 지원과 구성원 보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와 사회는 대학을 신뢰하되, 그 신뢰가 폐쇄적 특권으로 흐르지 않도록 투명성과 공공성을 요구해야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자율성은 방임으로 오해받고, 책무성은 통제로 변질된다.
고등교육의 미래는 더 많은 대학을 세우는 데만 있지 않다. 더 많은 학생을 받아들이는 데만 있지도 않다. 앞으로의 핵심은 대학이 어떤 조건에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며, 어떤 학생에게 어떤 배움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인가에 있다. 학문의 자유가 후퇴하는 시대에 대학의 침묵은 안전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는 대학은 결국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잃는다.
한국 대학이 지금 물어야 할 것은 단순하다. 우리는 평가를 잘 받는 대학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평가를 넘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대학을 만들 것인가. 세계 고등교육의 전환점에서 이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 논쟁이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는 한국 고등교육이 위기를 통과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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