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재난은 가족을 구했지만, 영화를 구하지는 못했다

공룡이 덮어버린 갈등…「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이 가족의 회복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

1982년 미국 미시간주의 평범한 주택가 오크 스트리트가 하룻밤 사이 통째로 선사시대로 옮겨진다. 전기와 수도는 끊기고, 익숙했던 집과 골목은 공룡이 돌아다니는 생존의 공간으로 변한다.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의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은 황당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에서 출발한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 공룡을 풀어놓고, 이미 붕괴하기 시작한 가족을 그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영화는 자신이 꺼내놓은 두 가지 이야기를 어느 쪽에서도 충분히 완성하지 못한다. 가족의 갈등은 재난에 덮이고, 공룡은 그 빈자리를 채울 만큼 압도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앤 해서웨이와 이완 맥그리거라는 배우까지 불러들였지만, 정작 두 배우가 연기해야 할 감정과 관계는 이야기 속에서 깊어지지 않는다.

플랫 가족의 위기는 공룡이 나타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렉은 직장을 잃은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 채 피자 배달 일을 하고 있고, 드니스는 지하실에서 소설을 쓰며 현재의 결혼생활과는 다른 삶을 꿈꾼다. 겉으로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부부 사이에는 이미 말해지지 않은 실망과 단절이 쌓여 있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가 단순한 공룡 생존극을 넘어 가족의 붕괴와 회복을 다룰 것이라는 기대를 만든다. 선사시대라는 극단적인 환경은 가족이 감춰온 진실을 드러내고,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은 곧 이 가족이 이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룡이 등장하는 순간 가족의 갈등은 탐색의 대상에서 생존에 방해되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도, 감춰온 상처와 욕망을 마주하는 장면도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다. 당장 살아남아야 한다는 더 큰 문제가 생기면서, 이전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된다. 이 가족은 서로를 이해했기 때문에 다시 하나가 된 것이 아니다. 공룡에게 쫓기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뿐이다.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강제된 가족애

재난 속에서 가족이 협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함께 도망치고 서로를 구하는 행동이 곧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복에는 상대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알아가는 과정과,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선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영화에는 그 과정이 거의 없다. 드니스는 처음에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제시된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가정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욕망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재난 이후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다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어머니의 자리다. 드니스가 위기에서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여성의 주체적 성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는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지만, 그 강인함이 결국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렉도 마찬가지다. 실직을 숨겼다는 사실만으로 위선적인 가부장이라 부르기에는 인물의 내면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장의 책임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나 취약성이 깊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악하거나 비겁한 사람이기보다 충분히 쓰이지 않은 인물이다.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라는 기능은 수행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후회하고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동은 더욱 기능적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무모한 선택을 하고, 부모가 아이를 구하러 나가면서 다시 위기가 벌어진다. 장르영화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행동의 이유가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에서 충분히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은 관객의 이해를 얻지 못한 채 사건을 만들기 위한 ‘진상 캐릭터’로 남는다. 이들의 선택은 이야기를 확장하기보다 멈춰 있는 서사를 다음 위기로 밀어 넣는 장치처럼 보인다.

황당한 설정보다 부족한 것은 설득력

평범한 주택가가 선사시대로 이동한다는 설정이 황당하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의 약점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힘이고, 황당한 설정은 때로 가장 독창적인 상상력의 출발점이 된다. 문제는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이 그 설정만으로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도 인물의 감정과 영화 내부의 논리가 단단하다면 관객은 기꺼이 그 세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가족의 관계에도, 선사시대의 공포에도 충분한 현실감을 부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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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CG와 움직임도 압도적인 위협을 만들어내기에는 완성도가 아쉽다. 일상의 공간에 공룡이 나타난다는 시각적 대비는 흥미롭지만, 그 발상이 반복될수록 처음의 낯섦은 빠르게 사라진다. 액션의 긴장감이나 공간을 활용한 연출도 가족서사의 빈자리를 메울 만큼 강하지 않다.

인물에게 마음을 줄 수 없다면 공룡에게라도 눈을 빼앗겨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쪽도 해내지 못한다. 가족드라마로 보기에는 감정의 축적이 부족하고, 공룡 블록버스터로 보기에는 볼거리와 긴장이 약하다. 타임킬링용 오락영화에 기대하는 속도와 쾌감마저 충분하지 않아, 99분의 상영시간은 예상보다 길게 느껴진다. 앤 해서웨이와 이완 맥그리거의 존재는 영화에 기대를 더하지만, 각본은 두 배우가 가족의 균열과 변화를 설득할 만한 장면을 내어주지 않는다. 두 배우의 연기가 부족하다기보다, 이들이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의 깊이가 처음부터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영화는 재난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처럼 결론 내리지만, 실제로 재난이 한 일은 가족의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더 급한 문제로 덮어버린 것이다. 생존을 위해 뭉친 가족은 위기가 끝나면 다시 이전의 문제와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후를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과거의 자리로 돌려보낸 뒤, 가족도 회복됐다고 선언한다.

오크 스트리트는 돌아왔고 가족도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한 가족의 마지막 날을 보여주겠다고 시작했지만 새로운 가족의 첫날로 나아가지 못한다. 공룡이라는 재난은 흩어지던 가족을 한곳에 모아놓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미완의 가족서사와 부족한 장르적 쾌감 사이에서 헤매는 영화까지 구해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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