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의 강의가 AI를 규제한다 –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2022년 말 ChatGPT가 공개된 직후, 대학 캠퍼스는 일종의 경계 상태에 들어갔다. 과제 대필과 표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됐고, 일부 강의에서는 생성형 AI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대학의 대응은 처음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AI를 둘러싼 긴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응 방식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이 변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가 최근 발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고등교육연구센터(Center for Studies in Higher Education)의 이고르 치리코프(Igor Chirikov) 연구원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한 대형 공립 연구대학에서 수집한 3만 1,000여 개 강의계획서를 분석했다(How Instructors Regulate AI in College: Evidence from 31,000 Course Syllabi) . 연구는 ChatGPT 등장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 교수들이 학생의 AI 사용을 어떻게 규제해 왔는지를 종단적으로 추적했다. 설문이 아니라 실제 강의계획서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교수들의 ‘태도’가 아니라 ‘실제 수업 설계’를 읽어낸다는 데 의의가 있다.
분석 결과, 2021~2022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던 AI 관련 정책이 2025년 가을 학기에는 전체 강의의 55%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더 주목할 점은 정책의 양적 증가보다 그 질적 변화다. 초기에는 전면 금지에 가까운 강경한 규제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특정 과업에서는 허용하고 다른 과업에서는 제한하는 방식으로 세분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교수들은 AI를 단순히 차단하는 대신, 어떤 학습 활동을 학생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지 다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면 금지에서 과업별 통제로 – 규제의 정교화
치리코프 연구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교수들이 AI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규제는 점점 세분화되고 있었다. 동일한 강의 안에서도 과제 유형에 따라 AI 사용을 다르게 규정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전면 금지나 전면 허용은 오히려 줄어들고, 특정 과업에 대해서만 제한을 두는 사례가 증가했다. 2025년 가을 학기 기준으로 보면, 초안 작성(drafting)이나 논증 구성과 같은 핵심 글쓰기 단계에서는 AI 사용을 제한하는 비율이 높았다. 문제 해결(reasoning) 과제에서도 제한이 두드러졌다. 반면 문법 교정이나 표현 다듬기와 같은 편집(editing) 단계에서는 허용 비율이 훨씬 높았다. 학습 보조(study support)나 자료 정리, 요약과 같은 영역에서도 AI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글쓰기 수업’ 안에서도 무엇을 학생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나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교수들이 AI를 하나의 통일된 도구로 보기보다, 학습 과정의 특정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과업 기반(task-based) 접근’으로 설명한다. 노동경제학에서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틀을 교육에 적용한 것이다. AI가 학생의 과업을 대신 수행하면 연습 기회가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보조적으로 작동하면 학습을 강화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교수들이 과업별로 AI 사용을 구분하는 흐름은 바로 이 지점과 연결된다. 학생이 반드시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연습 영역은 보호하고, 비교적 기계적이거나 보조적인 단계에서는 AI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학습 설계를 조정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전면적 거부가 아니라, 연습의 핵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재설계에 가깝다.
왜 글쓰기와 코딩 수업이 가장 민감했나
연구는 단순히 AI 정책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어떤 수업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반응했는가이다. 분석 결과, ChatGPT 등장 이전인 2021~2022년 기준으로 글쓰기와 코딩 과제가 많이 포함돼 있던 수업일수록 2025년에 AI 정책을 도입할 확률이 높았다. 과목의 과업 구성(task composition)이 이후의 규제 여부를 예측한 것이다. 이는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현재 생성형 AI의 역량이 가장 강하게 발휘되는 영역이 바로 텍스트 생성과 코드 작성이기 때문이다. 에세이 초안 작성, 보고서 구성, 프로그램 코드 생성과 같은 과제는 AI가 빠르게 개입할 수 있는 분야다. 학생이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할 영역과 AI의 자동화 가능 영역이 겹칠 때, 교수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에 나서는 경향을 보였다.
학문 분야별 차이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문학(Humanities) 분야는 상대적으로 더 제한적인 정책을 유지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경영학(Business) 분야는 비교적 빠르게 허용 방향으로 이동했다. 공학과 수학·컴퓨터과학(Math/CS) 분야는 규제 채택률 자체는 낮았지만, 과업별 차등 규제는 점차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동일한 AI 기술이라 하더라도, 각 분야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교수들이 AI의 존재 여부 자체보다 ‘학생이 반드시 연습해야 할 능력’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쓰기와 코딩은 단순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 과정과 문제 해결 능력을 형성하는 핵심 훈련 영역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의 AI 개입은 단순 편의성 문제가 아니라 기술 형성 과정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과업이 많을수록 규제가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는, 대학이 여전히 ‘연습’이라는 전통적 학습 원리를 중심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다 – AI는 수업 안으로 들어왔다
AI 규제가 확대됐다는 사실만 보면 대학이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강의계획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흐름도 동시에 나타난다. AI를 단순히 통제 대상이 아니라 학습 활동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다. 연구에 따르면 2025년 가을 학기 기준으로 약 11%의 강의에서 새로운 AI 기반 과제가 명시적으로 등장했다. 수치로 보면 아직 소수지만, 2023년 이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제에는 프롬프트 작성 연습, AI가 생성한 결과의 오류 분석, AI 출력의 논리 구조 비판,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설계 등이 포함된다. 학생이 AI를 단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다루고 검증하고 통제하는 활동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는 연구가 제시한 ‘과업 재등장(task reinstatement)’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학습 과제가 AI의 등장으로 생겨난 것이다.
학문 분야별 차이도 이 영역에서 뚜렷하다. 경영학 분야는 새로운 AI 기반 과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영역으로 나타났고, 사회과학과 예술 분야도 일정 수준의 도입이 확인됐다. 반면 인문학과 자연과학 일부 분야에서는 여전히 도입 비율이 낮았다. 이는 단순한 보수성의 문제라기보다, 각 분야가 AI 활용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간주하는지 여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지점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대학이 AI를 단순히 금지할 대상이 아니라, 학생이 다루어야 할 새로운 환경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체 도입률이 아직 10% 남짓이라는 점은, 이러한 전환이 보편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점도 동시에 보여준다. AI는 이미 강의계획서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것이 교육의 중심이 됐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더 중요한 질문 – 대학은 무엇을 보호하려 하는가
이 연구를 단순히 ‘AI 정책 증가’로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대학이 무엇을 보호하려 하고 있는가이다. 강의계획서에 나타난 규제의 세분화, 과업별 차등 허용, 새로운 AI 기반 과제의 등장이라는 흐름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문제를 향하고 있다. 학생이 반드시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연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치리코프는 노동경제학의 과업 기반 이론을 교육에 적용한다. 노동시장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과업을 대체(displacement)하기도 하고, 보완(augmentation)하기도 하며, 새로운 과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틀을 교육에 옮기면, 학생은 과업을 수행하면서 기술을 형성한다. 만약 AI가 학생 대신 과업을 수행하면 연습 기회가 줄어들고, 핵심 역량 형성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AI가 보조 도구로 작동한다면 학습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AI를 다루는 새로운 과업이 등장하면 또 다른 역량이 형성될 수 있다.
교수들이 초안 작성과 문제 해결 단계에서 AI 사용을 제한하고, 편집이나 보조 학습 단계에서는 허용하는 경향은 바로 이 구분과 연결된다. 학생이 사고 과정을 직접 통과해야 하는 구간은 보호하고, 상대적으로 기계적이거나 반복적인 단계에서는 AI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AI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시도에 가깝다. 여기서 논문이 제기하는 한 가지 우려는 구조적이다. 만약 AI가 글쓰기와 코딩처럼 핵심 기술 형성 영역의 연습을 줄인다면, 졸업생의 실제 역량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약화된 인간 역량은 노동시장에서도 AI 의존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학생의 연습 감소가 노동시장 자동화를 가속하는 피드백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대학의 AI 정책은 교실 안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공급 구조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대학이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AI를 전면 금지하지도, 전면 허용하지도 않으면서, 무엇이 반드시 인간의 연습으로 남아야 하는지 탐색하고 있다. 규제의 증가는 불안의 신호라기보다, 판단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에 가깝다.
한국 대학은 어디에 서 있나
이 연구는 미국의 한 대형 공립 연구대학 사례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그 결과를 그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의계획서라는 구체적 문서를 통해 교수들의 판단 변화를 추적했다는 점에서, 대학이 AI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읽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한다. 이 기준점에 비춰볼 때, 한국 대학의 현재 위치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국내 대학에서도 ChatGPT 등장 이후 AI 사용에 대한 공지와 지침이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상당수는 전면 금지 혹은 포괄적 경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강의 단위에서 과업별로 세분화된 규제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의계획서 공개 수준과 정책 표준화 정도가 대학마다 다르고, 교수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 영역도 크다. 결과적으로 어떤 수업에서는 적극적 실험이 이루어지고, 어떤 수업에서는 사실상 방치되는 양극화 가능성도 존재한다.

과업 단위 접근은 특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AI 사용 여부를 하나의 윤리 문제로만 다루기보다, 학생이 반드시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연습 구간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하는 방식이다. 만약 글쓰기의 핵심이 논증 구조 형성에 있다면 그 구간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설계할 수 있고, 코딩 교육의 핵심이 알고리즘 설계 능력이라면 그 부분을 직접 수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일괄 금지나 일괄 허용보다 더 많은 설계 역량을 요구한다. 한국 대학이 직면한 문제는 AI를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학생이 직접 연습하도록 남길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이는 단기적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정 설계의 문제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학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대학이 졸업생에게 어떤 능력을 기대하는지에 따라, AI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3만여 개의 강의계획서가 보여주는 변화는 단순한 정책 확산이 아니다. 대학은 AI를 두고 허용과 금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반드시 인간의 연습으로 남아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에 들어가 있다. 전면 금지에서 과업별 차등 규제로 이동하고, 일부 수업에서는 새로운 AI 기반 과제가 등장하는 흐름은 그 탐색의 흔적이다. AI는 이미 대학 강의계획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교육의 중심이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강의 설계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어떤 단계는 보호하고, 어떤 단계는 허용하며, 어떤 단계는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는 기술을 통제하는 문제이기보다, 연습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연구가 제기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만약 AI가 핵심 학습 과업을 대체한다면, 대학은 어떤 역량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인가. 반대로 AI를 활용한 새로운 과업이 확산된다면, 인간과 기술의 관계는 교육 단계에서부터 재편될 수 있다. 대학은 아직 답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를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단순한 사용 허용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형성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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