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고인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사후 디지털 정체성’의 경계

GPT 생성이미지

사진 복원 넘어 음성·대화형 아바타까지…위로와 ‘기억의 재작성’ 사이

국내 AI기본법은 생성물 표시 의무화…개인정보위도 사망자 프라이버시 기준 마련 예고

세상을 떠난 가족의 오래된 사진을 복원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다. 흐릿한 얼굴을 선명하게 만들고, 흑백사진에 색을 입히고, 사진 속 인물이 웃거나 고개를 돌리게 할 수도 있다. 몇 장의 음성 파일이 있다면 목소리를 복제할 수 있고,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영상과 SNS 기록을 충분히 모으면 고인의 말투와 기억을 흉내 내는 인공지능(AI)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AI가 고인을 ‘기억하게 해주는 기술’을 넘어 그 사람이 실제로 하지 않은 말과 행동, 살아 있을 때 갖지 않았던 모습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추모일까.

지난 10일 온라인 매체 Meer에 실린 ‘Erasing identity: the digital ethics of posthumous AI’는 이 질문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했다. 글에 따르면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장애가 있었던 자신의 사망한 남동생 사진을 누군가가 AI로 변형해 ‘장애가 없는 건강한 천사’의 모습으로 만든 일을 전했다. 어머니는 그 이미지에서 위안을 얻었지만, 누나는 동생의 장애 역시 그가 살아온 삶과 정체성의 일부였다며 이를 ‘정체성의 삭제’로 받아들였다. 다만 이 사례는 Meer 필자가 온라인 게시물을 바탕으로 소개한 것으로, 별도의 취재를 통해 사실관계가 검증된 사건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례 자체보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이다. 한 사람의 모습을 사후에 바꿀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유족은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원하는 기억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면 누구의 선택이 우선해야 하는가.

‘기억을 보관하는 AI’와 ‘새로운 고인을 만드는 AI’

현재 ‘디지털 사후세계(Digital Afterlife)’로 묶이는 기술들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StoryFile은 이용자가 생전에 촬영한 인터뷰 영상을 저장해두고 질문이 들어오면 AI가 가장 적절한 실제 답변 영상을 찾아 보여주는 방식을 활용한다. 회사가 2025년 미국 국립 명예훈장박물관에 적용한 시스템 역시 방문객의 질문과 참전용사들이 미리 녹화한 답변을 연결하는 구조다. 이 경우 AI는 새로운 답변을 창작하기보다 남겨진 기록을 찾아주는 역할에 가깝다.

반면 생성형 AI를 이용한 ‘데드봇(deadbot)’, ‘그리프봇(griefbot)’, ‘사후 아바타(postmortem avatar)’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고인이 남긴 문자, 이메일, 음성, 사진, 영상 등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할 법한 새로운 답변을 만들어낸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2024년 학술지 ‘Philosophy & Techn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서비스를 ‘디지털 사후세계 산업(Digital Afterlife Industry)’의 한 영역으로 구분했다. 이들은 고인의 데이터를 이용해 만들어진 AI 표현물을 ‘데드봇’으로 정의하면서,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전문적인 기술과 비용이 필요했던 고인 재현이 훨씬 손쉬워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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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생전에 남긴 영상을 다시 보여주는 것과, AI가 그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일한 ‘추모’라고 보기 어렵다. 전자는 기억의 보존에 가깝지만 후자는 기억의 생성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AI와 대화할수록 ‘실제 기억’도 달라질 수 있다

AI가 고인을 재현할 때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기억이다. 2026년 3월 공개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 연구에서는 실제 데드봇 이용자 2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단순히 AI가 만들어준 고인의 모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입력하고, 대화를 반복하며 표현을 수정하면서 실제 기억과 자신의 기대가 섞인 ‘이상화된 디지털 인물’을 함께 만들어갔다.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기억과 실제 기억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관찰이다. 연구진은 이를 기억 왜곡과 정서적 의존 가능성이라는 윤리적 문제로 연결하면서 장기적인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연구는 26명을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이며, AI를 이용한 애도가 장기적으로 인간에게 해롭다는 결론이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도 있다. 2026년 공개된 사후 아바타와 애도치료에 관한 연구는 상담 장면에서 사용하는 ‘빈 의자 기법’ 같은 기존 치료방법에 제한적으로 AI 아바타를 결합하거나, 고인의 기억을 정리해 아바타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치료적 활동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검토했다. 연구진 역시 효과와 위험을 판단하려면 앞으로 실증 연구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현재 연구가 말해주는 것은 ‘AI와 고인을 만나면 애도에 좋다’거나 ‘나쁘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누구에게,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도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 1월 22일부터 시행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생성형 AI 결과물에 대한 투명성 의무를 두고 있다. 법 제31조는 인공지능사업자가 생성형 AI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고,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이미지·영상은 이용자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AI 생성 사실을 고지하거나 표시하도록 규정한다.

유럽연합(EU)도 이달 2일부터 본격 적용된 AI Act 제50조를 통해 AI로 생성·조작된 이미지·음성·영상이 딥페이크에 해당할 경우 인위적으로 생성 또는 조작됐음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AI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표시하라’는 규칙과 ‘죽은 사람을 AI로 만들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다르다.

표시는 콘텐츠의 출처를 알려줄 수 있지만 고인이 자신의 얼굴과 음성을 AI가 사용하는 데 동의했는지, 유족 가운데 누가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 AI가 실제 고인과 다른 성격이나 가치관을 만들어도 되는지까지 답해주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도 아직 모호한 ‘사망자의 데이터’

이 점에서 국내 개인정보 제도에도 공백이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를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정의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지난 7월 16일 발표한 하반기 정책 방향에서 이 점을 직접 언급했다. 개인정보위는 현행법상 살아 있는 개인의 정보만 개인정보로 규정돼 있어 사망자 정보의 법 적용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사망자 개인정보 처리 기준을 담은 안내서를 마련하고 생전 의사표시에 따라 유족이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AI 시대에는 이 문제가 단순히 ‘사망자의 SNS 계정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진과 음성,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는 이제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인격을 생성하는 학습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인이 남긴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와 그 데이터를 이용해 ‘또 하나의 고인’을 만들어낼 권리는 별개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이미 일부 영역에서 이런 문제를 법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2024년 제정된 AB 1836은 상업적 가치가 있는 사망자의 목소리나 외모를 디지털 복제해 영상이나 음원에 사용하는 경우 일정한 사전 동의를 요구한다. 다만 이 법은 일반인의 일상적인 추모까지 포괄하는 규율이라기보다 연예인 등 상업적 가치가 있는 ‘deceased personality’의 디지털 복제에 초점을 맞춘 제도다.

장애를 없애면 ‘더 나은 모습’이 되는가

Meer가 소개한 사례가 특히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고인의 장애를 제거해 ‘건강한 천사’로 표현한 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진 편집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더 평온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안에는 하나의 가치판단이 들어간다.

장애가 없는 모습이 장애가 있었던 실제 삶보다 더 완전한 모습인가. 늙은 얼굴을 젊게 만들고, 질병의 흔적을 없애고, 고인이 평생 갖고 있던 외모의 특징까지 바꿔 ‘가족이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원문의 가족 사례에서 어머니가 위로를 받은 감정 역시 가볍게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누나가 느낀 ‘동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는 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후 AI의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선다.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기억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가 고인의 정체성을 다시 구성할 권리까지 자동으로 의미하는지는 별도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데드봇 서비스에 대해 고인의 데이터 제공자뿐 아니라 실제로 그 AI와 상호작용하는 사람의 동의까지 고려하는 ‘상호 동의(mutual consent)’ 원칙을 제안한다. 아동의 이용 제한, AI라는 사실에 대한 명확한 고지, 원할 때 데드봇을 종료할 수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봤다. 앞으로는 여기에 더 구체적인 질문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생전에 자신의 사진과 목소리를 사후 AI에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할 수 있어야 하는지, 기록을 단순 재생하는 것과 새로운 발언을 생성하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생성된 고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어느 범위까지 변경할 수 있는지, 서비스를 종료할 때 데이터와 AI 아바타를 어떻게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필요하다.

일종의 ‘사후 디지털 의향’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사진을 남기는 시대에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 속 사람은 새로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다르다. AI가 고인의 목소리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고, 존재하지 않았던 표정을 만들고, 살아보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기술의 질문은 이미 ‘죽은 사람을 얼마나 진짜처럼 되살릴 수 있는가’를 넘어섰다.

이제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오히려 그다음에 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 기억과 정체성을 다시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AI를 통해 만나고 있는 사람은 과연 우리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가, 아니면 남겨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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