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들이 AI 전환을 말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교육과 연구, 행정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는 만큼 대학도 더 늦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 대학의 재정만으로는 AI 인프라와 플랫폼을 구축하기 어려우니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비용이 든다. 대학마다 재정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AI 인프라의 격차가 그대로 교육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학이 새로운 기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공적 투자를 요구하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듣고 있으면 어딘가 공허하다. 지금 대학에 가장 부족한 것이 정말 AI에 투자할 돈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대학을 둘러싼 위기는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학령인구는 줄고 있고, 지역대학은 존립을 걱정한다. 대학 졸업장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믿음도 예전 같지 않다. 등록금과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대학에 가야 할 이유를 묻는 목소리도 커졌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등장했다. AI는 질문에 답하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고, 외국어를 번역한다. 수십 쪽짜리 보고서를 요약하고 자료를 비교하며 글을 쓰고 코드를 만든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 물을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하면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준에 맞춰 설명하는 개인교사의 역할까지 일부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가 대학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AI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다.
더 불편한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이만큼 할 수 있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
대학이 독점하던 것이 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대학에 가야 했고, 그 지식을 가진 교수의 강의를 들어야 했다. 도서관과 연구실,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갖춘 대학은 지식에 접근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인터넷이 그 독점적 지위를 한 차례 흔들었다면 생성형 AI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제는 정보를 찾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비교하고 정리하는 일까지 가능해졌다.
그런데 대학의 강의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교수가 90분 동안 설명하고 학생은 그것을 받아 적는다. 학기가 끝나면 얼마나 잘 기억하고 이해했는지를 시험으로 확인한다. 과제를 내고 보고서를 제출받는다. 물론 모든 대학과 수업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프로젝트 수업과 토론, 문제중심학습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 교육의 기본 골격이 AI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대학 AX의 첫 번째 화두가 서버와 플랫폼, 챗봇과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강의에 AI를 붙이고, 기존 학사시스템에 AI 기능을 넣고, 학생들에게 생성형 AI 서비스를 제공하면 대학은 AX를 한 것일까. 대학의 운영은 훨씬 편리해질 수 있다. 학생 서비스도 좋아질 것이다. 교수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연구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학이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AI를 대학 안으로 들여오는 것과 AI 시대의 대학으로 바뀌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답해야 할 것은 ‘그래도 대학은 왜 필요한가’이다
고등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AI 때문에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미 묻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예전만큼의 가치를 갖는가. 4년이라는 시간과 적지 않은 등록금을 투자할 만큼 대학 교육은 가치가 있는가. 취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다른 곳에서 더 빠르고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닌가.
AI는 이 오래된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지식을 얻기 위해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하는가. AI가 언제든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AI가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면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평가는 무엇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가. AI가 개인별 학습을 지원할 수 있다면 대학과 교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적 경험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대학에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 대학이 답해야 할 질문은 오히려 이런 것들이다.
그 답을 찾지 않은 상태에서 AI 투자를 확대한다고 대학의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기존 대학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값비싼 AI라는 새로운 층을 하나 올려놓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래서 대학 AX에는 순서가 필요하다.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은 대학은 이제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하는가이다.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로 질문하려면 알아야 하고,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를 판단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오히려 AI 시대에는 탄탄한 기초지식과 전문성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다만 교육의 목표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전달하고 기억하게 하느냐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학생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고, AI가 만든 그럴듯한 답에서 오류와 편향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자신의 판단을 만들고 그 판단의 결과에 책임질 수도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은 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대학의 가치는 강의 콘텐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만나고, 질문하고, 토론하고, 반박당하고, 다시 생각하는 경험이 있다. 연구실과 프로젝트에서 실패하고 동료와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있다. 한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해 온 교수와 만나 생각의 깊이를 확인하는 경험도 있다. AI가 지식을 더 쉽게 얻도록 만들수록 오히려 대학은 이런 경험의 가치를 더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질문은 자연스럽게 교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로 이어진다. 교수의 가치가 ‘학생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는 데만 있다면 AI의 발전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수의 역할이 학생에게 좋은 문제를 던지고, 쉽게 내린 결론을 의심하게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만나게 하며,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시대의 교수는 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결과물 하나를 제출받아 점수를 매기는 것에서 벗어나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는지,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무엇을 검증했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토론과 구술, 프로젝트와 수행 과정이 지금보다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다음에야 어떤 AI 플랫폼이 필요한지, 어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지,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대학에는 돈이 필요하다. AI 인프라는 공짜가 아니며 재정 여건이 어려운 대학이 독자적으로 모든 것을 구축하기도 어렵다. 대학 간 AI 격차가 학생들이 누리는 교육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할 영역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대학 총장들의 지원 요구가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이야기가 그것인지는 물어야 한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더 좋은 엔진을 사달라고 요구한다고 여행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어떤 학생을 길러낼 것인지, 학생들이 왜 대학에서 4년을 보내야 하는지, AI와 함께 살아갈 시대에 대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인지부터 답해야 한다. 그 답에 따라 교육과정을 바꾸고 평가를 바꾸고 교수의 역할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대학 AX의 순서는 철학에서 교육으로, 교육에서 기술로 가야 한다.
지금 대학의 위기는 AI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AI는 오래전부터 대학 앞에 놓여 있던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대학의 AX는 대학에 AI를 얼마나 많이 들여놓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AI가 지식과 교육의 질서를 바꿔놓은 세계에서 대학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어야 한다.
지금 대학에 가장 부족한 것은 AI를 살 돈이 아니라,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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