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과제를 대신 쓰는가, 아니면 배움을 지우는가? : 부정행위 논쟁에 가려진 ‘학습 생태계’의 균열

지금 대학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학생이 인공지능으로 과제를 대신 작성했는가, 이를 교수는 가려낼 수 있는가, 대학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생성형 AI가 확산된 이후 고등교육 현장은 탐지 기술과 사용 규정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이 과연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대학교(UMass Boston) 응용윤리센터(Applied Ethics Center)의 니르 에이시코비츠(Nir Eisikovits) 교수와 제이콥 벌리(Jacob Burley) 연구원은 최근 『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글에서 방향을 바꿔 묻는다. 인공지능이 대학에 미치는 가장 큰 위험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학습 자체의 침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AI가 이미 행정, 연구, 강의 설계, 학습 지원 등 대학의 전 영역에 스며들고 있으며, 그 변화가 학생의 일탈을 넘어 대학의 구조를 흔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지적은 단순한 윤리적 경고에 머물지 않는다. UMass Boston 응용윤리센터와 미래기술윤리연구소(Institute for Ethics and Emerging Technologies)가 수년간 수행해온 공동 연구의 맥락 속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다. 연구진은 생성형 AI와 대형언어모델(LLM)이 사고의 중간 과정을 수행하는 단계에 진입하면서, 대학이 의존해온 학습과 수련의 방식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고 본다. 과거의 소프트웨어가 계산을 돕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AI는 초안을 만들고, 설명을 구성하며, 실험 설계를 제안하고, 논문을 요약한다. 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부정행위라는 좁은 프레임

AI 논쟁이 ‘부정행위’에 집중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시험과 과제는 대학 교육의 핵심 평가 장치이고, 생성형 AI는 그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대학은 AI 탐지 도구를 도입하거나, 강의계획서에 AI 사용 범위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 대학은 과제 방식을 구술시험이나 현장 평가 중심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논의는 대체로 규제와 통제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문제를 개인 윤리의 영역으로 한정한다. 학생이 정직했는가, 규정을 어겼는가, 처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AI는 이미 학생 개인의 선택을 넘어 대학 조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입학 사정 과정에서 지원서를 분류하고, 학사 행정에서 위험 학생을 예측하며, 강의 자료를 자동 생성하고, 연구 데이터를 요약하는 데까지 활용된다. 기술은 교실 바깥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결국 질문은 달라진다. 누가 속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학습으로 남는가라는 물음이다. AI가 과제를 대신 써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제를 쓰는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논쟁이 윤리적 일탈에 머무는 동안, 대학을 지탱해온 학습의 구조는 조용히 재편되고 있다.

AI는 더 이상 계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생성형 AI와 대형언어모델은 목표만 제시되면 중간 사고 과정을 스스로 구성한다. 학생이 주제를 입력하면 개요를 제안하고, 초안을 작성하고, 반론을 덧붙이며, 문장을 다듬는다. 교수는 루브릭을 만들고, 강의안을 설계하며, 평가 의견을 생성하는 데 AI의 도움을 받는다. 연구자는 논문을 요약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실험 설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AI를 활용한다. 이 단계에서 학습의 성격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과거에는 도구가 계산을 보조했지만 사고의 흐름은 인간이 통제했다. 지금은 사고의 중간 단계를 기계가 수행한다. 사용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를 선택한다. 과정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그 결과 학습은 협력이라기보다 위임에 가까워진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평가의 책임과 지적 기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질문이다. 교수가 AI로 과제를 설계하고 학생이 AI로 초안을 작성한다면, 교수는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가. 피드백이 일부 자동 생성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학습의 상호작용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인간과 기계가 개입된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성격 자체를 흔드는 요소다.

인지적 외주화, 사라지는 ‘버거움’의 시간

인지과학과 교육심리학은 오래전부터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강조해왔다. 학습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겪어야 하고, 초안을 쓰는 과정에서 문장이 꼬여야 하며,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반복이 필요하다. 이른바 ‘생산적 고투(productive struggle)’와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는 학습자가 스스로 생각을 구성할 때 기억과 이해가 더 깊어짐을 보여준다. 쉽게 얻은 답은 쉽게 사라지고, 어렵게 구성한 답은 오래 남는다. 생성형 AI는 바로 이 비효율의 영역을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 막힌 문장을 이어주고, 개요를 제안하며, 설명을 정리해준다. 시험 대비 요약을 몇 초 만에 만들어내고, 복잡한 이론을 간단한 문장으로 바꿔준다. 학생 입장에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습의 핵심이 그 ‘버거움’에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혼란과 시행착오의 시간을 건너뛸수록 이해의 깊이는 얕아질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다. 기술은 효율을 약속하고, 효율은 유혹적이다. 대학 역시 더 빠른 성과와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받는다. 과제가 빨리 완성되고, 강의 자료가 신속히 준비되며, 연구 결과가 단기간에 정리된다면 제도는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지적 외주화가 일상화될수록 학습자는 사고의 근육을 덜 사용하게 된다. 생각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생각의 힘도 함께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 문제는 학부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전문가를 형성하는 수련의 체계다. 대학원생은 조교로서 강의를 돕고,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반복적인 데이터 정리와 분석을 수행한다. 이러한 ‘루틴 업무’는 겉보기에는 단순 노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문성을 축적하는 통로였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법을 배우고, 피드백을 받으며 판단력을 키웠다. 자율성이 높아진 AI 시스템이 이 루틴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구조는 달라진다. 연구 설계를 자동화하고, 실험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하며, 초안을 작성하는 기술이 보편화될수록 초보 연구자가 경험을 쌓을 기회는 줄어든다. 강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동 피드백 시스템이 과제를 평가하고, AI 튜터가 학생 질문에 답하는 구조가 확산되면 조교와 초임 교원이 담당하던 학습 지원 영역은 축소될 수 있다. 겉으로는 효율이 향상되지만, 내부에서는 전문성 형성의 통로가 얇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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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학은 정보 생산 공장이 아니다. 강의와 논문은 결과물일 뿐,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판단력과 책임감이 더 중요한 자산이다. 자동화가 결과물을 유지한 채 과정을 대체한다면, 대학은 여전히 학위를 발급하고 논문을 생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전문가가 자라나는 토양은 점차 약화될 수 있다.

AI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대학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나의 관점은 대학을 지식과 자격을 생산하는 기관으로 이해한다. 이 모델에서 핵심은 산출이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졸업하는가, 얼마나 많은 논문이 발표되는가, 연구비는 얼마나 확보되는가가 성과의 기준이 된다. 자율성이 높은 AI 시스템이 강의 설계와 연구 정리를 자동화해 산출을 늘릴 수 있다면, 제도는 이를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관점은 대학을 전문가를 형성하는 생태계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형성의 과정이다. 초보자가 실수를 통해 배우고, 멘토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판단력을 키우며, 반복적인 시도 속에서 숙련을 쌓는 구조가 대학의 핵심 자산이다. 이 모델에서 생산성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식이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역량이 형성되었는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 된다. AI는 분명히 첫 번째 모델에 친화적이다. 자동화는 효율을 높이고, 효율은 성과 지표를 개선한다. 그러나 두 번째 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자동화는 수련의 시간을 잠식할 위험을 내포한다. 학습이 고투와 반복을 통해 축적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기계가 대체할 때 대학은 무엇을 남기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전환점에 선 대학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생성형 AI와 자율적 에이전트는 더 정교해지고, 연구와 교육의 다양한 영역을 흡수해 나갈 것이다.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문제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도입 방식이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의 선택이 필요하다. 일부 영역에서는 의도적인 비효율이 유지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학생이 스스로 초안을 쓰고 수정하는 시간, 대학원생이 반복 실험을 통해 감각을 익히는 과정, 조교가 학생 질문에 직접 답하며 자신의 이해를 다지는 경험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수련의 핵심이다. 이를 모두 효율화의 대상으로 본다면 대학은 결과물은 유지한 채 형성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대학은 지식의 양을 늘리는 기관인가, 아니면 지식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기관인가. AI는 전자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여전히 인간의 시간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부정행위를 막는 규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과제는 학습 생태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있다. AI가 과제를 대신 써주는 시대에, 대학은 어떤 과정을 끝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이 문제는 해외 대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대학 역시 이미 AI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강의자료 자동 생성, 학습 분석 시스템, AI 튜터 도입, 입학 사정 데이터 분석, 연구 보조 도구 활용까지 확산 속도는 빠르다. 일부 대학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사용 교육을 실시하고, 과제 지침에 AI 활용 범위를 명시하기 시작했다. 기술 수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전략의 문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한국 대학이 처한 환경은 또 다른 압박을 더한다. 학령인구 감소, 재정 압박, 성과 기반 평가 체제는 효율과 생산성을 더욱 강하게 요구한다. 강의 준비 시간을 줄이고, 연구 성과를 빠르게 산출하며, 행정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 구조 속에서 AI는 ‘혁신 도구’로 환영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육의 형성 기능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특히 연구 인력 양성 구조는 민감하다. 박사과정생과 신진 연구자가 경험을 통해 숙련을 축적하는 시간은 장기적인 학문 생태계의 기반이다. 만약 반복적 분석과 초안 작성, 자료 정리 업무가 점점 자동화된다면, 이들이 체화하던 사고 과정은 어디에서 형성될 것인가. 단기적 성과 지표는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전문성의 축적 속도는 오히려 느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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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도입할 것인가의 질문은 이미 낡았다.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을 것인가다. 모든 반복 업무가 불필요한 노동은 아니다. 학습의 많은 부분은 반복과 수정, 실패와 재시도 속에서 형성된다. 이를 전면적으로 기계에 맡길 경우, 인간은 점점 ‘결과 선택자’로 축소될 수 있다.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전문성은 얕아질 위험이 있다. 대학은 본질적으로 시간의 기관이다. 단기간의 성과보다 오랜 수련을 통해 판단력을 형성하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기술이 효율을 앞세워 시간을 압축할 때, 대학은 그 압축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학습 생태계는 규정 하나로 지켜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설계와 선택이 필요하다. 부정행위는 통제할 수 있다. 탐지 도구를 강화하고 규정을 명확히 하면 된다. 그러나 학습의 침식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성적은 유지될 수 있고, 논문은 계속 발표될 수 있으며, 강의는 운영될 수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순간 드러날 수 있다. 사고의 근육이 충분히 단련되지 않았다면, 자동화가 멈춘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AI는 대학을 위협하는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학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시험하는 기술일 수 있다. 지식을 빠르게 생산하는 기관이 될 것인지, 지식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생태계로 남을 것인지의 선택이 남아 있다. 부정행위보다 더 큰 위험은 배움의 과정이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다. 대학이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 지금이 묻고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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