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책을 대신 읽어주는 시대,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완독이 사라진 강의실…읽기 분량을 줄이는 대신 ‘읽는 이유’와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대학 강의실에서 오래전부터 반복돼 온 말이 있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정된 책을 끝까지 읽기보다 요약본을 찾고, 긴 논문은 초록과 결론부터 확인한다. 최근에는 생성형 AI에 책이나 논문의 내용을 물어보는 것만으로 핵심 주장과 주요 개념, 토론 질문까지 얻을 수 있다. 이제 학생들은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말할 수 있다. 책 전체를 펼쳐보지 않아도 줄거리를 파악하고, 논문의 세부 논증을 따라가지 않아도 발표 자료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단순히 독서량이 줄었다는 데 있지 않다. 대학이 오랫동안 교육의 전제로 삼아온 ‘읽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생략될 수 있게 됐다는 데 있다.

미국 애머스트칼리지의 오스틴 새럿 교수는 최근 대학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로 학생들의 장문 독서 감소를 지목했다. 그가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었다고 응답한 성인은 10년 전 약 55%에서 2024년 약 49%로 줄었다. 미국 고교 영어 교사 1,2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 해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읽도록 지정한 책이 평균 2.81권으로 나타났다. 2008~2009년 조사에서 집계된 평균 4권보다 적다. 2025년 미국 고교 12학년 가운데 기초 수준에 미달하는 독해 성취를 보인 비율도 32%로, 2002년의 24%보다 높아졌다.

물론 미국의 수치를 곧바로 한국 대학의 현실로 옮겨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긴 글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 읽기 과제를 줄이는 교수자, 요약 콘텐츠에 익숙해진 학습 환경은 한국 대학에도 낯선 장면이 아니다. 여기에 AI가 더해지면서 질문은 더욱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책을 읽힐 것인가가 아니라, 책을 직접 읽지 않아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왜 여전히 읽어야 하는가를 대학이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것은 내용이지 독서 경험은 아니다

생성형 AI는 책의 핵심 내용을 빠르게 정리한다. 등장인물과 사건을 요약하고, 저자의 주장을 항목별로 나누며, 어려운 개념을 쉬운 말로 바꿔준다. 특정 장을 읽지 않았더라도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기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모든 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학술 활동에서도 선별적 읽기와 훑어읽기는 중요한 능력이다. 문제는 요약이 언제나 원문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AI가 제공하는 요약에는 대체로 결론이 남지만, 저자가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압축된다. 어떤 사례가 선택됐는지, 서로 충돌하는 근거가 어떻게 배열됐는지, 저자의 판단이 어느 문장에서 전환됐는지, 표현 속에 어떤 망설임과 한계가 담겼는지는 쉽게 사라진다.

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더 많이 얻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논리를 일정 시간 따라가고, 앞에서 제시된 개념을 기억한 채 뒤의 주장과 연결하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견디는 일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했다가 의심하고, 다시 근거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AI는 그 과정의 결과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독자가 직접 겪어야 할 사고의 시간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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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의 진짜 가치는 ‘사고의 지속성’에 있다

모든 책을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어떤 자료는 필요한 부분만 정확히 찾아 읽는 것이 효율적이고, 교육적 가치가 낮은 책을 완독하는 것보다 좋은 글의 한 장을 깊이 읽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학이 긴 글 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장문 독서는 짧은 정보 단위로는 훈련하기 어려운 ‘사고의 지속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짧은 영상과 요약문은 빠른 이해와 즉각적인 반응에 적합하다. 반면 한 권의 책이나 긴 논문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 독자는 저자의 문제 제기를 따라가고, 여러 개념의 관계를 파악하며, 뒤늦게 드러나는 반론과 예외를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에 세운 해석이 뒤에서 무너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불편함을 경험한다. 바로 이해되지 않고, 읽었지만 설명하기 어렵고, 한 문단을 여러 번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대학이 길러야 할 사고는 대체로 이런 불편함 속에서 형성된다.

새럿 교수는 긴 글 읽기를 신체 운동에 비유한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수록 인내와 주의력, 논증이나 서사를 따라가는 능력이 훈련된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교수자들이 왜 책 전체를 읽는 일이 중요한지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완독이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다. 한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제를 오랫동안 붙들고 생각하는 경험이다.

학생들이 읽지 않는다는 교수자들의 불만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읽기 부진을 학생 개인의 성실성 문제로만 돌리는 순간 대학의 책임은 사라진다. 대학은 흔히 수업계획서에 책과 논문을 제시한 뒤 학생들이 알아서 읽어올 것이라고 가정한다. 읽기의 목적과 방법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다음 수업에서 내용을 이해했는지만 확인한다. 학생이 읽지 않으면 분량을 줄이거나, 시험에 나올 부분을 지정하거나, 강의에서 다시 요약해준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면 학생은 원문을 읽지 않아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한다. 교수자의 강의자료와 인터넷 요약, AI의 설명을 조합하면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르는 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읽기 능력은 대학 입학 전에 완성돼 있어야 하는 기본 조건이 아니다. 전공에 따라 읽어야 할 문헌의 구조와 언어가 다르며, 학술적 읽기는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철학 텍스트를 읽는 방식과 실험 논문을 읽는 방식이 같을 수 없고, 법학 판례와 역사 사료,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기준도 다르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생에게 읽을 자료만 지정할 것이 아니라, 해당 학문이 글을 읽고 증거를 판단하는 방식까지 가르쳐야 한다.

AI 시대의 읽기 교육은 학생이 AI를 사용했는지를 적발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서는 안 된다. AI를 사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원문의 논리와 근거를 확인하도록 만드는 수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먼저 AI로 책의 내용을 요약하게 한 뒤, 실제 원문을 읽으며 요약에서 빠진 논거와 왜곡된 부분을 찾도록 할 수 있다. 같은 책에 대해 서로 다른 AI가 내놓은 설명을 비교하고, 어느 해석이 원문에 더 충실한지 근거를 들어 판단하게 할 수도 있다.

한 권 전체를 읽히는 수업이라면 매주 독서 분량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저자의 질문과 핵심 개념, 논증의 전환 지점을 안내해야 한다. 읽은 뒤에는 줄거리나 내용을 재현하는 과제보다 특정 주장에 대한 근거를 원문에서 찾아 설명하게 하는 편이 낫다. AI가 대신 작성한 감상문은 평가하기 어렵지만, 학생이 특정 문장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고, 앞뒤 문맥과 연결해 해석하며, 반론에 답하도록 하면 실제 읽기 여부와 사고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AI의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문과 대조하며 그 답변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은 다시 ‘왜 읽는가’에 답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서가 좋은 습관이고 교양 있는 사람의 조건이라는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의 독서와 AI가 필요한 내용을 즉시 정리해주는 시대의 독서는 다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AI 시대에 대학이 가르쳐야 할 읽기는 정보를 획득하는 기술에 머물 수 없다. 긴 논증을 따라가는 능력, 여러 근거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성급히 지워버리지 않는 태도, 요약된 답변을 의심하고 원문으로 돌아가는 습관을 포함해야 한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 읽기 분량을 계속 줄인다면 대학은 스스로 교육의 기반을 약화시키게 된다. 반대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책을 지정하기만 한다면 변화한 학습 환경을 외면하는 일이 된다. 필요한 것은 완독을 강요하는 대학도, 읽기를 포기하는 대학도 아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직접 읽어야 하고, 어디에서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마지막 판단은 왜 스스로 내려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대학이다.

AI가 책을 대신 읽어줄 수 있는 시대일수록 대학은 더욱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우리는 왜 여전히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읽은 뒤 무엇을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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