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 그들이 넘어온 자리, 설명되지 않은 공포

일상을 침범하는 악령과 모녀의 상처, 세계관 확장에 남은 의문

악령이 다른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온다.「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의 제목은 영화가 선사할 공포를 단도직입적으로 예고한다. 익숙한 빨간문 너머의 존재들이 이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 속 ‘그들’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넘어오는 존재의 기괴한 모습은 선명하지만, 그들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통해 현실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지는 그만큼 또렷하지 않다.

제이콥 체이스 감독이 연출한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은 새로운 가족을 앞세운다. 홀로 딸 마야를 키우는 치위생사 젬마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관련된 충격적인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일상을 흔드는 존재들과 마주한 그는 자신에게 ‘더 먼 곳’을 오가는 능력뿐 아니라 그곳의 존재를 현실로 데려오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령들이 젬마를 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의 강점은 거창한 사후 세계보다 익숙한 생활공간에서 먼저 드러난다. 젬마가 일하는 치과는 그 자체로 감각적인 불안을 불러오는 장소다. 입을 벌린 채 누워 있어야 하는 자세와 기구가 내는 소리는 몸을 타인에게 맡길 때의 무방비한 감각을 환기한다. 영화는 여기에 기괴한 존재를 끌어들여, 일상적인 불편과 초자연적 위협이 맞닿는 지점을 만든다. 집 안의 쿠션 요새가 끝을 알 수 없는 미로로 변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아이의 놀이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방향을 잃게 하는 통로로 바뀐다. 안락함을 상징하던 쿠션은 오히려 시야와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관객을 긴장시키는 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악령만이 아니다. 방금까지 알고 있던 공간의 구조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이런 장면에서 영화는 시리즈의 새 출발이 가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편의 존재를 현실로 데려오는 설정은 공포가 벌어질 장소를 넓힌다. 젬마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악령의 출몰은 그가 딸을 돌보고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 자체를 흔든다. 다만 개별 장면이 만들어내는 충격이 곧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등장할 때마다 관객을 놀라게 하는 존재가 다음 장면에서도 계속 두려운 존재로 남으려면, 그 위협을 연결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귀환을 약속하는 교주, 그 약속의 근거는 무엇인가

새로운 악역 사이러스는 ‘더 먼 곳’의 원혼들에게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약속하며 세력을 모은 존재다. 젬마의 능력은 그 약속을 실현할 수단이 된다. 이 정도의 목표는 제시된다. 문제는 귀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넘어, 사이러스라는 존재와 그 계획이 충분한 무게를 얻었느냐는 데 있다. 교주라는 위치는 추종자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명칭만으로 권위와 능력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그를 다른 원혼들과 구별하는가. 그의 약속을 믿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는 사이러스의 외형과 그를 따르는 존재들을 통해 위압감을 만들지만, 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움직이는 이유와 힘의 근거를 납득시키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기울인다. 현실로 돌아오려는 욕망 역시 그를 다른 악령들과 구별하는 개성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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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마의 능력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영화를 ‘설명이 없는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운반 능력이 소개되고, 조력자가 대응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규칙을 말로 전달하는 것과 그 규칙이 사건 속에서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악령들이 이미 젬마의 일상을 흔들고 그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현실 귀환이 무엇을 달라지게 하는지는 중요하다. 꿈과 환영 속의 출몰, 인간의 몸을 통한 개입, 저편의 존재가 현실로 넘어오는 사건은 서로 다른 위험이어야 한다. 관객이 그 차이를 분명하게 체감할수록 젬마의 능력이 왜 결정적인지, 무엇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지도 선명해진다. 이 경계가 흐릿하면 귀환은 위험의 질적인 변화보다 더 많은 악령이 등장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콘스탄틴》에서 마몬의 인간계 진입은 특별한 인간과 성물 등 일정한 조건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구성된다. 두 영화의 종교적 설정은 다르지만, 비교할 지점은 있다. 초월적 존재의 진입에 조건이 붙으면, 그 조건을 충족하려는 세력과 저지하려는 인물 사이에서 긴장이 발생한다.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 역시 특별한 인간을 통로로 삼는다. 다만 그 통로가 작동하는 방식과 넘어오는 존재의 위협을 하나의 인과로 묶는 힘은 충분하지 않다.

공포영화가 사후 세계의 모든 원리를 해설할 필요는 없다. 알 수 없는 영역은 오히려 두려움을 키운다. 그러나 인물의 선택과 사건의 해결에 직접 영향을 주는 능력이라면, 관객이 그 선택의 위험을 가늠할 단서는 필요하다. 이번 작품의 아쉬움은 미지의 영역을 남겼다는 사실보다, 설명이 필요한 지점과 미지로 남겨도 되는 지점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데 있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이야기와 악령을 막는 이야기

젬마의 이야기를 공포의 연속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어머니에게서 경험한 두려움이 자신의 딸에게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은 영화의 감정적 중심이다. 젬마에게 악령과 맞서는 일은 딸을 지키는 일이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 목격한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연결은 의미가 있다. 어린 자녀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행동에는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사정이 존재할 수 있다. 영화는 초자연적 사건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다시 읽을 가능성을 연다. 딸이었던 젬마와 어머니가 된 젬마가 같은 인물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동시에 이 장치는 어려운 과제를 남긴다. 어머니의 고통을 악령의 개입으로 설명하는 순간, 관계의 상처가 외부의 원인 하나로 정리될 위험도 생긴다.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되는 일과 그 기억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 달라지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영화가 그 거리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 모녀의 상처는 공포를 깊게 만드는 서사이면서도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한 감정적 해답으로 서둘러 사용된다.

엘리스의 귀환은 새 인물들이 맞닥뜨린 혼란에 익숙한 안내자를 제공한다. 그러나 관객이 잘 아는 조력자의 설명과 존재감만으로 젬마의 변화가 완성될 수는 없다. 새 가족을 중심에 세운 만큼,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도 독립적인 설득력이 요구된다.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는 일상적인 공간을 낯설게 만드는 순간들에서 장르적 성취를 보여준다. 모녀의 기억과 두려움을 연결하는 시도 역시 이야기에 감정의 깊이를 더할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악령의 귀환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떠받치는 존재의 성격과 규칙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 빨간문을 넘어온 형상은 눈앞에 남는다. 그들이 왜 두려운 존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문이 열린 뒤에도 여전히 설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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