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포용에서 AI 포용으로, 대학은 어떻게 전환하고 있는가

애리조나주립대 사례를 통해 본 고등교육의 AI 전략, 실행 중심 모델과 노동시장 재편의 함의

AI 도입 논쟁을 넘어 ‘접근권’의 문제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고등교육 현장에 본격적으로 스며든 지 3년이 지났다. 교실에서는 과제 부정행위 우려가 제기되고, 연구실에서는 데이터 신뢰성 문제가 논쟁이 된다. 일부 대학은 전면 금지를 검토했고, 일부는 가이드라인 정비에 수개월을 보냈다. 그러나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운영하는 ‘TechTank’ 팟캐스트는 최근 다른 질문을 던졌다. “AI를 막을 것인가, 설계할 것인가.” 니콜 터너 리와 레브 고닉가 진행한 대담에서 제시된 핵심 메시지는 단순했다. AI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접근권(access)의 문제이며, 접근권은 곧 노동시장 참여권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학사·석사·박사 과정 학생의 80~90%가 학업 목적의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구체적으로는 리서치 보조, 통계 분석, 개요 작성, 숙제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다수 학생이 AI 문해력(AI literacy)이 낮다고 응답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사용은 빠르게 확산됐지만, 이해와 숙련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간극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대학의 전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디지털 포용의 연장선에서 본 AI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ASU)의 접근은 과거 디지털 격차 대응 경험에서 출발한다. ASU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농촌 지역과 부족 공동체 출신 학생들에게 기기와 인터넷 접속을 지원하며 ‘접근성’을 교육권의 핵심 조건으로 규정했다. 이 경험은 AI 전략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레브 고닉 CIO는 AI를 “지난 50년간 가장 큰 디지털 포용 과제”라고 규정하며, 대학이 기술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학생과 교직원, 지역사회 구성원이 모두 접근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형태로 AI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ASU는 생성형 AI 공개 직후부터 OpenAI와 협력해 교육용 라이선스 모델을 설계했고, 현재 약 20만 명 규모의 학생과 교직원이 보안과 프라이버시가 강화된 환경에서 AI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단순한 도입이 아니라 ‘제도권 내 흡수’ 전략에 가깝다. 금지 대신 통합, 외부 의존 대신 내부 설계를 선택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ASU가 별도의 대규모 AI 정책 문서를 먼저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학은 기존의 학문 윤리, 학사 규정, 학문적 정직성 원칙을 ‘북극성’으로 삼고 AI를 적용했다. 대신 교수 윤리위원회와 AI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가드레일을 설정했고, 광범위한 교수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3,000명 이상 교원이 자발적으로 AI 전문성 개발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은 조직 내부의 실행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내부 공모 방식의 소규모 연구·교육 혁신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재 600개 이상의 AI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의료 교육, 철학 수업, 법학 실습, STEM 교육 혁신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중앙 IT 조직이 모든 것을 설계하는 대신, 학문 공동체가 직접 실험하고 공유하는 구조를 택했다는 점에서 ‘참여형 확산 모델’로 볼 수 있다.

보안과 프라이버시: 금지의 논리 대신 설계의 논리

AI 도입 논쟁에서 가장 큰 장벽은 보안과 데이터 유출 우려다. ASU는 ‘Privacy by Design’과 ‘Security by Design’을 원칙으로 삼아 자체 플랫폼을 구축했다. 플랫폼 내부에는 실시간 보안 점검 체계와 편향(bias) 점검 엔진이 포함돼 있으며, 연구 데이터나 학생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격리 환경이 설계돼 있다. 이는 “안전하지 않으니 금지한다”는 접근 대신 “안전하도록 설계한다”는 전략이다. CIO 조직이 ‘막는 부서’가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부서’로 기능하도록 역할을 재정의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많은 대학이 겪는 제도적 지연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AI 확산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소비 증가라는 환경 문제를 동반한다. 애리조나 피닉스 지역에만 수십 개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이라는 점은 학생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ASU는 이에 대해 ‘선택 가능한 모델’ 전략을 도입했다. 비교적 소형 언어모델이나 오프라인 구동 모델을 선택할 경우 친환경 지표를 표시해 이용자가 직접 판단하도록 했다. 또한 소형 장치 기반의 Edge AI, 오프라인 AI, 저전력 모델을 활용하는 실험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AI 인프라가 반드시 거대 데이터센터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엔비디아(NVIDIA)의 소형 슈퍼컴퓨팅 장치 실험이나, 물리적 AI 기반 자율주행 사례인 웨이모(Waymo)와 같은 기술 발전 흐름은 향후 AI 인프라가 분산형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노동시장이다. 레브 고닉은 AI 격차가 과거 디지털 격차보다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단순히 인터넷 접속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경제적 기회 접근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년생뿐 아니라 재교육과 재훈련이 필요한 중장년층, 군 전역자, 난민 등 다양한 집단에게 AI 문해력은 새로운 기본 역량이 되고 있다. 대학이 AI를 ‘교육용 도구’가 아닌 ‘사회 참여 인프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기술 도입을 미루는 전략은 일시적 안정감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 진입 격차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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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한국 대학 역시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속속 발표하고 있으나, 실행 인프라 구축과 교수·학생 참여형 실험 생태계 조성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ASU 사례는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기존 학문 윤리 체계를 활용해 정책 논쟁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둘째, 중앙 통제 대신 참여형 실험 모델을 통해 확산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보안과 환경 문제는 금지의 근거가 아니라 설계의 조건으로 접근해야 한다. 넷째, AI 전략은 결국 노동시장 전략과 연결돼야 한다. AI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기술 확산 속도를 감안할 때, 대학이 선택해야 할 질문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AI를 외부의 위험 요소로 볼 것인가, 내부에서 설계할 것인가. 디지털 포용이 과거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AI 포용이 대학의 새로운 책무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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