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의 인재상과 대학 교육의 조건을 묻다
대학이 학생에게 도전을 권할 때, 학생은 무엇을 생각할까. 새로운 문제를 찾아 나서는 설렘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주제를 골라 성적을 잃을 가능성일 수도 있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도 결과를 내지 못할 위험, 다른 학생보다 취업 준비가 늦어질 부담도 계산에 들어간다. 도전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도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대학이 창의성과 주도성을 교육의 목표로 내세운다면, 학생의 의지만큼이나 그 선택을 둘러싼 조건을 살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대학 교육을 둘러싼 논의에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대학이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지에 관한 선언은 교육과정과 평가, 지원 체계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어야 한다. 학생에게 새로운 시대의 역량을 요구하면서 그 역량을 연습할 기회와 시행착오를 감당할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인재상은 학생이 홀로 달성해야 할 과제가 된다.
애리조나주립대의 세투라만 판차나탄은 9월 30일 포브스 테크놀로지 카운슬에 기고한 「AI 시대를 위한 고등교육의 재창조」에서 특정 직무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집중해 온 대학 교육에 문제를 제기했다. AI가 그러한 업무를 수행하게 될수록 대학은 학생이 변화 속에서 탐구하고 협력하며 새로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 지속적인 현장 참여, 실패에서 배우는 기업가적 태도, 문화와 분야를 넘는 협업을 강조했다. 이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대학 자체를 향한 질문이 나온다. 학생이 그러한 태도를 갖추기 바라기 전에, 대학은 그것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을 설계하고 있는가.
도전은 권유만으로 선택되지 않는다
가령 두 가지 과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수업을 생각해보자. 하나는 선행 사례가 충분하고 예상되는 결론도 비교적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학생이 직접 발견한 문제지만, 자료를 구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두 과제가 같은 기한과 동일한 결과물 기준으로 평가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후자를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학생에게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확실한 시도의 부담은 학생이 떠안고, 평가는 완성된 결과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익숙한 과제를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 대학이 말로 권하는 행동과 제도가 보상하는 행동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탐구에는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포함된다. 자료를 모은 뒤 처음의 질문이 부정확했음을 알 수도 있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가설을 포기할 수도 있다. 현장 관계자를 만나고 나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수정은 탐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최초 계획의 이행 여부와 최종 산출물만으로 성과를 판단하면, 학생은 질문을 고치기보다 계획을 유지하는 편을 택하게 된다.
도전을 교육하려면 학생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 방향을 바꿀 수 있으며, 그 과정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미리 알려줘야 한다. 학생에게 주도권을 준다는 것은 과제의 제목을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학습 경로를 수정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설명할 기회까지 포함한다.
실패를 허용한다는 말의 무게
실패할 수 있는 교육은 기준이 느슨한 교육과 다르다.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근거를 무시한 시도까지 모두 도전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안전과 권리를 침해하는 시행착오에는 분명한 한계도 필요하다. 대학이 마련해야 할 것은 책임 있는 시도가 예상한 결과에 이르지 못했을 때에도 배움을 확인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위해서는 결과의 성공 여부와 학습의 성취를 나누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시제품이 작동하지 않았더라도 학생이 실패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다음 실험을 타당하게 설계했다면, 그 과정에서 확인되는 학습이 있다. 반대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제출했어도 핵심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고 자신의 선택을 검토하지 못한다면, 결과물만으로 충분한 이해를 인정하기 어렵다.
평가는 이런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어떤 자료를 근거로 판단했는지, 예상과 다른 결과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피드백을 받은 뒤 무엇을 수정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최종 발표 한 번으로 끝내기보다 중간 점검과 수정 제출을 연결하고, 최초 시도에서 드러난 한계를 다음 과제에서 보완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학생에게도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과정을 평가한다’는 추상적인 설명만으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검토한 대안의 타당성, 자료의 신뢰성, 수정의 근거, 협업에 대한 기여처럼 확인 가능한 항목을 제시해야 한다. 평가가 예측 가능해야 학생은 결과의 불확실성을 감수할 수 있다.
실패를 배움으로 바꾸는 데에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 채 받은 낮은 점수는 다음 시도를 안내하지 못한다. 학기가 끝난 뒤 도착한 평가 역시 이미 지나간 과제를 고칠 기회를 주지 못한다. 대학이 실패의 교육적 가치를 말하려면, 실패 이후에 개입할 시간과 사람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AI를 쓰는 수업에서 무엇을 확인할 것인가
AI 활용 과제에서도 평가의 초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학생이 AI의 도움을 받아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교수자는 그 결과와 함께 학생이 내린 판단을 확인해야 한다. 어떤 질문을 던졌고, 제시된 답변 중 무엇을 받아들였으며, 무엇을 의심하고 검증했는지가 학습을 판단할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대화 기록을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기록의 양이 이해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핵심적인 선택 몇 가지를 설명하게 하거나, 조건이 달라졌을 때 기존 답을 어떻게 수정할지 물을 수 있다. 자신이 제출한 결과물의 한계를 짚고 대안을 제안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평가가 확인해야 할 것은 도구 사용의 흔적을 얼마나 많이 남겼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학생이 무엇을 이해하고 판단했는지다.
이때 전공지식의 중요성을 낮춰서는 안 된다. 어떤 설명이 그럴듯하지만 틀렸는지, 어떤 조건에서 결론이 성립하지 않는지 판단하려면 해당 분야의 개념과 방법을 알아야 한다. 탐구하는 태도와 지식은 함께 자란다. 기초를 익히는 수업과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경험을 연결할 때, 학생은 배운 지식을 사용하면서 그 한계까지 살펴볼 수 있다. 교육과정 안에는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기초 역량을 확인하는 평가와 AI를 활용해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평가가 함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직접 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단계에서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교육목표에 따라 설명돼야 한다. 그 구분을 명확히 하는 일 역시 교수자의 교육적 판단이다.
도전할 기회는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
연구와 현장 프로젝트를 확대할 때에는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의 범위도 살펴야 한다. 학기 중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 통학에 긴 시간이 드는 학생, 가족을 돌보는 학생에게 수업 밖에서 장시간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도전이 개인의 열정과 여유 시간에 의존한다면, 교육 경험의 차이가 학생의 태도 차이로 해석될 수 있다.
모든 학생에게 탐구와 협업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이를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어떻게 보장할지 검토해야 한다. 참여 시간을 학점과 연결하고, 재료비와 이동비를 지원하며, 학기 시간표 안에서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정이 필요하다. 큰 사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기존 수업에서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수자의 여건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학생마다 다른 문제를 다루는 수업에는 개별적인 피드백과 현장 조정이 요구된다. 이를 확대하면서 교수자의 시간과 조교 지원, 수업 규모를 함께 검토하지 않으면 새로운 교육은 담당자의 추가 노동에 의존하게 된다. 학생의 자율성을 지원하는 교육에는 오히려 더 세심한 설계와 개입이 필요하다.
대학이 학생의 도전을 강조할수록, 그 도전을 뒷받침하는 일을 누가 어떤 조건에서 맡을지도 분명해져야 한다. 담당자의 헌신으로 유지되는 몇 개의 사례를 넘어 일상적인 교육으로 자리 잡으려면, 교육 운영 자체에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인재상의 다음 페이지를 써야 한다
대학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창한 선언만이 아니다. 한 번 제출하면 끝나는 과제에 수정 기회ㅇ를 넣는 일, 최종 성과와 함께 판단의 근거를 평가하는 일,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정하는 시간을 수업에 확보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어떤 시도에서 학생이 막히는지 살펴보고 그 경험을 다음 학기의 수업 설계에 반영하는 것도 변화다.
대학의 성과를 확인하는 방식 역시 함께 조정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이 몇 개 열렸고 학생이 몇 명 참여했는지에 더해, 학생이 어떤 판단을 새로 할 수 있게 됐는지 살펴야 한다. 처음에는 설명하지 못했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지, 반대 근거를 검토하고 자신의 결론을 수정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역할을 조정하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지가 교육의 성취를 보여준다. AI 시대의 인재상을 이야기하는 일은 결국 대학이 제공하는 경험을 점검하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학생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수업에서 연습되고, 평가에서 인정되며, 지원 체계 안에서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연결이 없으면 도전은 권장되지만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 된다.
도전하라는 말의 신뢰는 첫 번째 시도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확인된다. 그때 학생에게 남는 것이 낮은 점수뿐인지, 자신의 판단을 돌아볼 피드백과 다시 시도할 기회도 있는지에 따라 대학이 가르치는 내용은 달라진다. 대학이 학생에게 기대하는 도전은, 대학이 책임질 준비가 된 교육의 조건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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