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율은 OECD 상위권 개선, 그러나 불안·스트레스·디지털 과의존은 심화됐다
통계가 묻는 질문 – ‘우리 아이들의 삶은 좋아졌는가’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연구원이 2025년 10월 1일 발표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는, 숫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 세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2022년 첫 보고서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로 발간된 이번 자료는 아동·청소년의 삶을 8개 영역, 62개 지표로 구성해 종합적으로 진단했다. 보고서는 단순한 통계집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 보장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국가 단위의 건강검진표’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아동·청소년은 물질적 환경에서의 개선이 두드러진 반면, 정신건강과 관계, 여가의 영역에서는 악화 혹은 정체가 뚜렷했다. 빈곤율은 낮아졌지만 불안은 높아지고, 학교 밖의 시간은 늘었지만 행복감은 여전히 OECD 하위권이다. 보고서는 “증거 기반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현재 한국 청소년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2025년 기준 한국의 아동·청소년(0~18세) 인구는 708만 2천 명, 전체 인구의 13.7%다. 2000년 24%에 달했던 비율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2040년에는 9%대에 머물 전망이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비율은 6.3%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이주 배경 학생이 초등학교의 한 학급을 채우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이는 인구감소의 공백을 메우는 사회적 구조 변화이자, 향후 ‘포용적 교육정책’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시사한다. 가구 구조도 달라졌다. 한부모 가구 비율은 7.7%로 2016년 이후 큰 변동이 없지만, 그중 69%는 어머니가 양육을 맡고 있다. 맞벌이 가구는 2016년 48.5%에서 2024년 58.5%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부모의 부재 속 성장하는 세대’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막내자녀가 어릴수록 맞벌이율이 낮고, 학령기에 접어들수록 증가한다는 점은 돌봄 인프라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빈곤은 줄었지만, 지역 격차는 남았다
아동·청소년의 상대적 빈곤율은 8.6%로, 2011년 16.4%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OECD 37개국 중 12위로, 영국(12.6%), 프랑스(11.8%)보다 낮고, 핀란드(3.8%)보다는 여전히 높다. 전체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14.9%)보다 6.3%포인트 낮다는 점은, 복지정책이 아동세대에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간의 격차는 여전하다. 아동이 있는 가구의 최저주거기준 미달률은 2.2%로 개선됐지만, 대도시와 농어촌 간 생활 편의시설 접근성은 최대 17%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의료·문화·체육시설 접근성의 차이는 단순한 생활의 불편을 넘어, 경험과 역량의 격차로 이어진다. 아동의 삶의 질이 거주지의 우편번호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청소년의 정신건강 지표 악화다.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답한 중·고등학생 비율은 2023년 37.3%에서 2024년 42.3%로 상승했다. 여학생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49.9%로 남학생(35.2%)보다 15%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범불안장애 경험률은 14.1%로 1년 새 1.5%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통계 상승이 아니라, 팬데믹 이후 지속된 심리 불안의 사회화를 보여준다. 비대면 학습, 경쟁적 학업환경, SNS를 통한 비교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학생에게서 스트레스와 불안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외모·관계 중심의 디지털 환경과 맞물려 있다.
반면 신체 건강 지표는 개선되고 있다. 비만율은 2021년 19.0%에서 2024년 18.3%로 감소했다. 코로나19 시기의 급격한 체중 증가가 다소 진정된 모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10~18세의 영양결핍률은 22.8%로, 2022년(17.8%) 대비 크게 늘었다. ‘양극화된 건강’—과잉섭취와 결핍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대의 초상이다.
학습의 과부하 – 사교육 증가, 학교 만족도 감소
학습 영역은 ‘과잉과 불만족’이 공존했다.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은 5시간 5분, 중학생은 5시간 45분, 고등학생은 6시간 37분으로 모두 감소세지만, 학교 밖 학습시간은 늘었다. 공교육의 수업 시간이 줄어든 자리를 사교육이 채웠다. 2024년 기준 사교육 참여율은 80.0%. 코로나19 이전보다 높다.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7.7%, 중학생 78%, 고등학생 67.3%로 나타났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조기 사교육화’가 뚜렷하다.
주관적 학업성취도는 3.32점(5점 만점)으로 꾸준히 상승했지만, 학교생활 만족도는 2.84점으로 10년 새 0.3점 하락했다. 이는 성취감이 높아도 행복감이 높지 않다는 의미다. 대도시 학생의 만족도가 가장 높고, 농어촌은 최하위로 나타났다. 학업의 질이 아니라, 교육 환경의 격차가 청소년의 심리적 만족도를 좌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가·활동 영역은 팬데믹 이후 점진적 회복세를 보였다. 여가생활 만족도는 2017년 43.7%에서 2023년 50.3%로 상승했지만, 동아리 참여율은 17.2%에서 6.9%로 급감했다. 인터넷 기반 동아리는 10.4%에서 2.0%로 줄었다. 즉, 즐거움은 개인화됐고, 소속감은 약화됐다. ‘함께 노는 문화’의 붕괴는 관계의 취약화로 이어진다. 아동학대 피해 경험률이 감소한 반면, 또래폭력 피해 경험률은 22.6%로 급등했다. 초등학생의 31%가 학교 내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그중 언어폭력이 가장 많았고, 온라인 언어폭력(9.1%)도 높았다. 이는 물리적 폭력보다 심리적·디지털 폭력이 새로운 위험의 형태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교라는 공간이 더 이상 전통적 공동체로 작동하지 못하고, 디지털 공간에서의 관계가 실질적 상호작용을 대체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역설 – 과의존 위험률 37.3%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률은 37.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치원생은 감소했지만, 초등생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과 디지털 학습 플랫폼이 보편화되면서, 스크린이 곧 ‘학교’가 된 결과다. 문제는 의존이 습관으로, 습관이 정체성으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즉각적 보상 구조는 집중력 저하와 불안정한 수면 패턴을 유발하며, 청소년기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수치는 단순한 기술 사용 통계가 아니라, ‘디지털 세대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다.
부모와의 관계 지표는 다층적이다. 0~5세 아동이 평일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은 7.1시간으로 줄었지만, 아버지와의 시간은 3.7시간으로 늘었다. 주말에는 어머니와 12.7시간, 아버지와 10.9시간을 함께 보내며, 10년 전보다 두 시간 이상 늘었다. 그러나 대화의 질은 다르다. 청소년의 83.7%가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고 답했지만, 2019년 90.1%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높았으나, 전체적으로 ‘정서적 고립감’이 확산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빈도는 주 4회 이상 68.3%로, 코로나19 이후 감소세다. 대화보다 ‘공존’, 소통보다 ‘동시간대 존재’가 관계의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행복의 역설 – 삶의 만족도는 소폭 개선, 그러나 OECD 하위권
아동·청소년의 전반적 삶의 만족도는 6.91점(10점 만점), 긍정정서(행복감)는 7.23점으로 2020년 대비 상승했다. 그러나 부정정서(우울·걱정)는 2.99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즉, “조금 더 행복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는 이중적 상태다. OECD 기준으로 보면 한국 15세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65%로 하위권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80% 이상을 기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경제적 지표가 개선돼도 주관적 행복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신뢰’와 ‘미래 기대감’ 부족을 지적한다. 한국 청소년의 사회신뢰도는 13~18세 기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 이는 성적과 입시 경쟁, 미래 불확실성이 결합된 사회 구조적 문제로 해석된다.
이 보고서의 전체 데이터를 종합하면, 한국의 아동·청소년은 물질적으로는 개선되고, 심리적으로는 불안한 세대다.
빈곤율은 줄었지만, 정서적 빈곤이 늘었다. 학업 성취는 높아졌지만, 학교 만족도는 낮아졌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늘었지만, 이야기 상대는 줄었다. 이 세대는 풍요 속의 피로, 기술 속의 고립, 관계 속의 단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62개 지표는 그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균열들을 수치로 보여준다.

이 지표들은 또한 정책의 방향성을 요구한다. 단순 복지 확대가 아닌, 삶의 질을 중심에 둔 교육·복지·심리·문화 정책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정신건강·디지털 웰빙·관계 회복은 향후 국가 아동정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증거 기반 정책을 위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수치는 변화의 계기가 될 뿐, 변화 자체는 아니다.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는 ▲지역별 격차 완화 ▲정신건강 조기 개입 ▲공교육과 사교육의 균형 ▲디지털 사용 교육 ▲가족·학교·지역사회 연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김진 국가통계연구원장은 “삶의 질 측정 결과가 정책 수립에 활용되어 아이들의 실질적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숫자는 시작일 뿐이다. 문제는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에 쓰느냐다.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는 불균형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초상이다. 줄어드는 인구, 개선된 물질환경, 심화되는 정신적 불안, 그리고 관계의 재편이 한 장의 그래프 안에서 교차한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삶의 질은 경제지표가 아니라, 일상의 총합이다.” 아동의 삶은 한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척도다.
그들의 행복이 하락하고 있다면, 그 사회 전체가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다. 2025년의 한국은 여전히 부유하지만, 아직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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