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신의 기준은 기술의 숫자가 아니라 학생의 배움이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있다
대학에서 인공지능은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니다. 생성형 AI 활용 교육이 열리고, 학생 상담과 학사 안내에 챗봇이 등장한다. 교수자는 강의자료와 문제를 만드는 데 AI를 활용하고, 대학 행정에서도 문서 작성과 데이터 분석, 반복 업무 자동화를 위한 AI 도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 시스템 구축에는 상당한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범용 생성형 AI를 활용하거나 기존 모델을 대학의 데이터와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기술적 장벽이 낮아진 만큼 대학 사이의 AI 도입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AI를 많이 도입한 대학은 과연 AI로 교육을 혁신한 대학일까. 두 대학은 반드시 같지 않다.
AI 도입 자체가 혁신의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최근 국제교육 전문매체 The Koala에 게재된 Michael Baron의 칼럼 「AI’s Higher Education Challenge Isn’t Speed. It’s Purpose」는 대학이 직면한 AI의 핵심 과제가 속도가 아니라 목적이라고 지적한다. AI를 구축하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학들은 뒤처질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빠르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AI가 잘못된 정보를 확신에 차서 제시하거나 문화적 편향과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도입과 함께 거버넌스와 윤리, 품질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는 한국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 챗봇을 만들고, 생성형 AI 플랫폼을 제공하고, AI 활용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학 교육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 대학의 정보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종이 신청서가 온라인 신청으로 바뀌었고, 강의자료가 LMS에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행정 시스템이 구축됐다. 대학의 업무 방식은 크게 효율화됐지만 교육의 기본 구조까지 반드시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AI 역시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조금 더 빨리 처리하고, 교수자가 만들던 강의자료를 AI가 대신 만들고, 학생이 검색하던 정보를 챗봇이 대신 알려주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매우 유용한 효율화일 수는 있어도 교육 혁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중요한 질문은 ‘학생의 배움이 달라졌는가’다
대학의 AI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AI가 들어오기 전과 비교해 학생의 배움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학생이 이해하지 못한 개념을 자신의 수준에 맞게 다시 설명받을 수 있게 됐는가. 학습이 느린 학생에게 필요한 보충학습을 적절한 시점에 제공할 수 있게 됐는가. 반대로 빠르게 이해하는 학생에게 더 높은 수준의 과제를 제시할 수 있게 됐는가. 교수자는 반복적인 설명과 단순 채점에서 벗어나 학생의 사고 과정과 학습 문제를 살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는가.
이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비로소 AI는 대학 교육의 구조를 건드린다. 특히 생성형 AI가 가진 가장 중요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는 대학이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도 충분히 실현하지 못했던 ‘개인화 교육’이다. 대학의 수업은 기본적으로 대량교육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십 명의 학생이 같은 시간에 같은 설명을 듣고, 같은 강의자료를 보고, 같은 속도로 진도를 나간다. 학생들의 선행지식과 이해 수준, 학습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교수자 한 사람이 모든 학생에게 다른 설명과 다른 학습경로를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AI는 이 제약을 상당 부분 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내용을 학생의 이해 수준에 따라 다르게 설명하고, 부족한 개념을 찾아 보충하며, 학습 속도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Baron 역시 AI의 중요한 가능성을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난 개인화 학습에서 찾는다. 추가적인 학업 지원이 필요한 학생뿐 아니라 높은 성취 수준의 학생에게도 학습 내용의 속도와 복잡성, 방식 등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근본적인 곳으로 이동한다. AI 시대에도 대학은 모든 학생에게 같은 설명을 하고 같은 속도로 가르치는 교육방식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AI가 교수자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자의 역할을 바꾸는 것
물론 개인화 교육을 AI에게 맡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AI는 틀릴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사실처럼 제시할 수도 있고, 학습 데이터 속에 존재하는 문화적 편향을 그대로 재생산할 수도 있다. 교육에서는 일반적인 정보 검색보다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학생에게 제공되는 잘못된 설명은 그대로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I가 확대될수록 오히려 교수자의 역할은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역할의 성격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지식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지식을 배워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사람, AI가 제공하는 설명이 적절한지 검증하는 사람, 학생의 질문을 더 깊은 사고로 연결시키는 사람, 그리고 학생이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도록 가르치는 역할이다. AI가 교육에서 사람을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할 교육적 판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기술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학의 AI 전략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 ‘올해 몇 개의 AI 서비스를 구축할 것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도입하는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의 학습 이탈을 줄이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다. 대규모 교양수업에서도 학생 개개인에게 충분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다. 장애학생이나 다양한 언어·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의 학습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교육과정과 학습자료 속 편향이나 부적절한 표현을 점검하는 데 AI를 활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부터 선택한 뒤 사용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교육의 문제를 먼저 정하고 그 문제에 AI를 연결하는 것이다.

앞으로 거의 모든 대학이 AI를 사용할 것이다. AI 챗봇이 있는 대학과 없는 대학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시기도 머지않았다. 생성형 AI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 대학의 혁신성을 설명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결국 AI를 이용해 무엇을 바꾸었느냐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학생의 학습격차가 줄었는가. 교수자의 피드백이 더 촘촘해졌는가. 학생에게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습경로를 제공할 수 있게 됐는가. 교수자가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학생과 더 깊이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됐는가. 교육과정의 질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게 됐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AI 시대의 선도대학은 가장 먼저 AI를 도입한 대학이 아닐 것이다. 가장 많은 AI 서비스를 보유한 대학도 아닐 것이다. AI를 이용해 대학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교육의 문제 하나를 실제로 해결한 대학.
그 대학이 AI 시대의 선도대학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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