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제도권으로 들어오다

미국 「지니어스 법」 통과 이후, 국제금융질서의 ‘디지털 달러’ 재편 시나리오

미국이 2025년 7월 「지니어스 법(GENIUS Act)」을 제정했다. 스테이블코인을 미국 연방 차원에서 처음으로 포괄 규율하는 법이 탄생했고, 이는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규범 경쟁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다. 법은 발행량의 100% 이상을 달러·단기국채 등 고품질 유동자산으로 준비하도록 요구하고, 투자자 보호와 AML/CFT(자금세탁·테러자금 방지) 의무를 명문화했다. 미국이 ‘디지털 달러’의 제도적 인프라를 깔면서, 글로벌 자본의 흐름과 국제통화체제의 힘의 균형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2025년 8월 말 기준 USD 표시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2,660억 달러. USDT(테더)가 63%, USDC(서클)가 25%로 두 종목이 약 88%를 점한다. 이 수치는 트래픽의 무게중심이 이미 ‘가치 안정성’을 전제로 한 디지털 달러 네트워크로 이동했음을 웅변한다.

아래 기사는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제도·시장 구조를 촘촘히 해부하고, 「지니어스 법」 이후 국제결제·채권·외환·국제통화체제·금융안정성에 걸친 파급효과를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제도·시장 인프라 과제를 제안한다.

스테이블코인 A to Z –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같은 법정통화나 금·국채 등 안전자산을 담보로 가치가 1에 수렴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토큰이다. 비트코인·이더리움의 높은 변동성을 보정해 교환·결제에 쓰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고, 블록체인 위에서 국경을 넘어 빠르게 전송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효용이다.

담보 구조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뉜다. 법정화폐 담보형은 발행액과 동일한 현금·예치금·단기국채 등으로 준비금을 1:1로 쌓아 두고 필요 시 상환한다(USDT, USDC). 암호화폐 담보형은 초과담보(예: 150%)를 걸고 온체인 스마트컨트랙트로 발행·상환을 자동화한다(DAI). 알고리즘형은 담보 없이 공급 조절 메커니즘에 의존하는데, 2022년 테라USD(UST) 붕괴가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은 크게 네 층에서 관리된다. 첫째, 준비자산의 구성과 보관(현금·예치금·만기 짧은 미 국채 등). 둘째, 상환(mint/redeem) 절차의 신뢰성과 유동성. 셋째, 외부 감사·공시 체계(정기적 잔액 증빙, 구성 내역의 투명화). 넷째, 규제의 테두리(인가, AML/CFT, 소비자 보호).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1달러 페그의 신뢰가 균열되고, 상환 요구 급증→준비자산 매각→가격·유동성 충격으로 이어지는 ‘코인런’이 발생할 수 있다. 보고서는 내재 취약성 또는 규율 미비가 연쇄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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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 법정화폐 담보형인 USDT가 등장한 후 준비금 투명성 논란이 이어졌고, 2018년에는 규제준수와 투명 공시를 내세운 USDC가 등장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스테이블코인은 암호자산 생태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니어스 법」 – 디지털 달러의 법적 골격

이 법은 결제형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전용 규제체계를 처음으로 연방 법률에 담았다. 발행자는 인가를 받아야 하고, 연방(OCC 등)·주(총발행액 100억 달러 이하)의 이원 감독을 받는다. 준비금은 발행액의 100% 이상을 달러·만기 93일 이하 미 국채·특정 RP·MMF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유지하고, 재담보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상환정책·수수료·준비금 구성과 발행량을 주기적으로 공시하며, 대형 발행자는 등록회계법인 감사를 받는다. 보유자에게 이자 지급은 금지된다. 유럽의 MiCA, 영국의 FSMA 개정, 일본의 자금결제법,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조례도 공통적으로 1:1 상환·준비금 요건·이자 금지·AML/CFT·투명공시를 요구한다. 규제철학은 ‘결제수단으로서의 안전성 확보’에 모아진다. USD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19년 말 약 49억 달러에서 2025년 8월 약 2,660억 달러로 급증했다. USDT 약 1,670억 달러(63%), USDC 약 671억 달러(25%)가 차지한다. 5년 내 2~3조 달러로의 성장이 전망된다. 국경 간 이동을 보면, 2023년 3분기~2024년 2분기 사이 USDT 유출입이 가장 큰 국가는 미국·튀르키예·러시아·베트남·영국이고, 선진국에서는 순유출, 통화불안국에서는 순유입 경향이 관찰됐다. 국내에서도 2024년 3분기 17조 원이던 USD 스테이블코인 거래대금이 2025년 1분기 57조 원으로 3.3배 증가했다. USDT가 83.1%, USDC가 16.9%를 차지했다.

기존 국제송금(200달러)의 평균 수수료는 12.52달러 수준이다. 스테이블코인 송금은 네트워크에 따라 0.2~0.3달러(USDC), 0.3~2.5달러(USDT)로 크게 낮고, 처리 시간도 대개 1~5분 이내다. SWIFT가 1시간~최대 2일 이상 지연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24시간 365일 결제가 기본값이므로 시차·영업일 제약도 없다. BIS 연구에 따르면 국가 간 송금비용이 높을수록 스테이블코인 사용 비중이 유의하게 증가하고, 기존 송금수단의 이용은 감소한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투기자산이 아니라 실질적 ‘코스트 절감형 결제 레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채권·금리 – 단기국채로 흘러드는 ‘디지털 페트로달러’

발행량만큼 준비금을 쌓아야 하기에, 시장이 커질수록 발행사들의 미 단기국채(T-bill) 수요는 커진다. 결과적으로 단기채 가격이 오르고 단기금리는 하락하는 압력이 형성된다. 재무부 차입자문위(TBAC)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28년 최대 2조 달러로 확대될 경우, T-bill 보유액이 약 9,000억 달러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한다. BIS 분석은 스테이블코인 35억 달러 유입 시 3개월 T-bill 금리가 약 3bp 하락, 같은 규모 유출 시 6~8bp 상승하는 비대칭 효과를 확인한다. 단기 자금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흐름이 ‘안전자산 가격’에 미치는 파급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2016년 MMF 개혁 때 프라임→정부형 MMF로 자금이 이동하며 단기국채 수요가 급증, 금리가 큰 폭 하락했던 사례는 ‘제도 변화→T-bill 수요 급증→단기금리 하락’ 경로의 선례로 자주 소환된다.

단기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급증은 T-bill 금리 하락을 통해 달러 약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는 국면에서는 오히려 달러 강세가 나타날 수 있다. 핵심은 ‘무엇이 변화를 추동했는가’다. 반대로 중장기적으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확장이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달러 수요를 구조적으로 키우며,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 단기국채에 대한 비탄력적 수요가 누적되면 미국의 조달비용이 낮아지는 ‘과도특권(exorbitant privilege)’이 공고해지고, 달러 기대가치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는 달러 위상 강화로 환류하는 자기강화적 순환을 만든다. 다만 발행사의 유동성 위기 등으로 신뢰가 붕괴되면, 달러 가치에 역풍이 될 수 있다는 경계도 병존한다. 달러 외 통화의 국제적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여지가 크다. 단기에는 큰 변화가 없더라도, 디지털 달러 생태계의 속도·규모에 따라 유로·위안·엔의 점유율이 깎일 수 있고, 통화불안 신흥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대체가 자국 통화 약세를 가속할 수 있다.

금융안정성 – 코인런, 은행예금 대체, AML/CFT

스테이블코인은 ‘완벽히’ 안정적이지 않다. 준비자산 부실·공시 미흡·규율 허점이 겹치면 코인런의 개연성은 상존한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신뢰 붕괴가 국제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다고 짚는다. 은행예금을 부분적으로 대체한다면, 전통적 신용창출과 통화정책의 전달경로가 약화될 수 있다. 일부 관찰자는 「지니어스 법」이 발행자에게 이자를 금지하지만, 거래소나 디파이 서비스를 통해 사실상의 수익 제공이 가능해 ‘예금 대체’ 유인이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예금 유출→대출 여력 축소→금리정책 효과 저하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 익명성·국경 간 이전 용이성은 AML/CFT 과제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각국 규제는 트래블룰, 고객자산 분리, 상환청구권 보장, 부적절한 마케팅 금지 등으로 ‘결제수단으로서의 무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렴 중이다.

브레튼우즈 이후 달러는 오일머니 재활용(페트로달러), 유로달러 시장, 위기시 스왑라인·최종 안전자산 수요를 통해 패권을 유지해 왔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은 디지털 경제에서 달러 지위를 ‘코드’와 ‘네트워크’로 재현하는 시도다. 보고서는 달러 중심 일극체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달러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을 위한 체크리스트 – 법·시장·인프라

국내에서도 2024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기본 틀은 마련됐지만, 스테이블코인·암호자산을 직접 규율하는 본격 법체계는 아직 초입이다. 보고서는 ‘안정적 신뢰 유지’가 전제될 때만 국제금융시장에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며, 사전적 투명성·거시건전성 감독과 사후적 안전장치를 병행할 것을 제안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여부를 논의한다면, 외환시장 구조·채권시장 인프라를 함께 손봐야 한다. 단기시장성 국채의 공급·운용 시스템, 역외 원화거래의 단계적 허용 등은 ‘원화 표시 디지털 머니’의 기초체력을 좌우할 인프라다. 보고서는 한국 금융시장의 근본 경쟁력 강화를 병행 과제로 꼽는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페그 유지’다. 발행사는 상환요청이 들어오면 1코인=1달러로 돌려줄 수 있어야 하고, 그 달러를 즉시 마련할 유동성 풀을 준비자산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준비자산은 보통 현금·예치금·만기 짧은 미 국채에 집중된다. 상환 창구가 막히거나 준비자산이 장기·저유동성으로 치우치면 ‘탈페그’가 발생한다. 이때 시장은 페그 회복을 신뢰하지 못하고 추가 상환을 시도하면서 코인런이 가속된다(‘유동성 스파이럴’).

법정화폐 담보형과 달리, 암호화폐 담보형은 담보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급락장에서는 담보가치가 부채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추가담보를 요구하고, 부족하면 자동청산을 통해 페그를 방어한다. 디파이 기반 통화정책에 가깝지만, 온체인 유동성·가격충격에 노출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알고리즘형은 담보 없이 ‘발행·소각’ 인센티브로 가격을 1로 유인하는데, 수요 급감·신뢰 붕괴 시 메커니즘이 제 기능을 잃는다. 테라-루나는 바로 이 ‘수요 인위 창출(고정금리 예치 보상)–가격 방어–신뢰 붕괴’가 한 번에 터진 사례였다. 보고서 역시 알고리즘형의 구조적 취약과 시스템 전염 가능성을 짚는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자’다. 법은 발행자의 이자 지급을 금지한다. 하지만 코인이 디파이에 예치될 경우 스마트컨트랙트 규칙에 따라 보상이 붙을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발행자 이자가 아니므로 규제 회피의 통로가 되고, 결과적으로 은행예금 대비 상대수익이 높아지면 예금 유출 압력이 커진다. 보고서는 이런 우려가 미국 은행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규제 비교를 보자. EU MiCA는 단일 여권(passporting)으로 회원국 간 통일 규칙을 적용해 사업자의 진입·확장을 쉽게 하면서도 상환권·광고규제·시장남용 금지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 영국은 단계적 규제(우선 결제형)로 출발해 알고리즘형·기타 암호자산으로 확대한다. 일본은 은행·신탁·자금이체업자만 발행을 허용하고, 홍콩은 HKMA 면허제와 1:1 준비금을 명시했다. 공통 분모는 ‘결제 무결성’이다.

전망 – 기회와 경계의 이중주

지급결제 인프라 측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비용·시간·접근성의 삼박자를 충족한다. 국제송금·B2B 정산·크로스보더 커머스에서 ‘기초 레일’로 확장될수록, 미 단기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와 달러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효과는 강화될 것이다. 반대로 신뢰·투명성·감독이 흔들리는 순간, 상환가능성에 대한 의심은 곧장 유동성 위기로 번진다. ‘디지털 달러’의 성장과 ‘디지털 런’의 위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래서 투명 공시, 정례 감사, 스트레스 테스트, 공적 안전장치(예금자보호 유사 스킴·최종대부자 역할), 국제공조 표준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한국은 제도 정비와 함께 시장 인프라를 병행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패는 원화의 ‘국제 사용성’과 단기국채 등 준비자산 인프라의 탄탄함에 달려 있다. 외환시장 구조개선, 역외 원화거래의 단계적 허용, 단기국고채의 도입·운용 체계는 금융안정과 혁신을 동시에 겨냥하는 핵심 기반이다.

「지니어스 법」은 새로운 코인붐을 위한 윤활유가 아니다. 결제수단으로서의 스테이블코인을 ‘은행과 국채’의 질서 속으로 불러들여, 디지털 경제에서 달러의 제도적·시장적 기반을 다지려는 시도다. 스테이블코인이 국제금융시장에 남길 최종적 궤적은 ‘신뢰’의 곡선에 달려 있다. 신뢰를 제도와 투명성으로 뒷받침하는 자만이, 디지털 달러 시대의 과실을 나눠 가질 것이다.

출처·근거
본 기사는 KIEP 「오늘의 세계경제」 Vol.25 No.17(2025.9.12) 박지원·최홍석·조영두, 「지니어스 법(GENIUS Act) 통과와 스테이블코인: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핵심 근거로 재구성했습니다. 주요 수치·정책 비교·사례 분석은 해당 보고서의 서술과 표·그림을 토대로 인용·요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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