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익숙하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 관련 사업을 기획하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분야가 등장하면 학과나 전공을 만든다. 학생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운영할 센터와 위원회도 설치한다. 기존 조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전담부서와 담당자가 추가된다. 새로 만들어진 조직과 사업에는 대부분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학생에게 필요한 지원이고, 대학이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이며,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문제는 새로운 사업이 시작될 때마다 그것이 기존의 무엇을 대신하는지, 그만큼 중요성이 낮아진 일은 없는지를 좀처럼 묻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국 사업은 끝나도 업무는 남고, 계획은 바뀌어도 조직은 유지된다. 대학의 혁신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방식으로 반복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줄이고 멈출 것인가는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다.
혁신이 ‘덧셈’으로만 이루어질 때
이 문제는 국내 대학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 대학에서도 학위과정과 연구센터, 행정조직, 시설과 각종 전략사업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가운데 대학의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로소스키 애리조나주립대 총장 선임고문은 9월 7일 포브스에 기고한 「고등교육의 가장 어려운 문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Higher Education’s Hardest Problem: Knowing What Not To Do)」에서 대학이 “덧셈에는 매우 능하지만 뺄셈에는 능숙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학위과정, 연구센터, 융합사업, 행정부서, 산학협력, 건물과 전략과제가 계속 추가되는 동안, 대학은 이미 수행하고 있는 일 가운데 무엇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지를 묻는 습관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소스키는 이를 단순한 재정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전략과 조직문화에 관한 문제로 본다. 대학이 모든 사람의 모든 요구에 대응하려 할수록 고유한 목적과 강점이 흐려지고, 정작 중요한 영역에 집중할 역량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대학은 가장 많은 일을 수행하는 대학이 아니라,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지 이해하고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투입할지, 그리고 어디에는 투입하지 않을지를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개별 사업만 놓고 보면 대부분 필요성이 인정된다. 새로운 전공은 산업 수요에 대응해야 하고, 학생지원 프로그램은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 연구센터는 유망한 연구 분야를 육성하고, 행정부서는 평가와 인증, 법적 의무에 대응한다. 그러나 모든 사업을 개별적으로만 판단하면 대학 전체가 감당해야 할 업무와 비용의 총량은 보이지 않는다.
사업 하나를 추가한다고 해서 예산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회의와 보고서, 성과지표와 실적 관리, 공간과 인력, 교원의 참여와 직원의 행정업무도 함께 늘어난다. 사업 간 연계와 중복을 조정하기 위한 또 다른 회의와 관리 절차까지 생긴다. 대학의 한정된 역량이 여러 사업에 조금씩 나뉘면서 정작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결정은 비교적 쉽다. 새로운 조직과 프로그램은 변화와 성과의 증거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존 사업을 종료하거나 조직을 통합하는 결정은 누군가의 업무와 권한,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 시작을 환영하는 사람은 많지만 종료를 지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학이 혁신을 말하면서도 계속 덧셈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다.
사업은 끝났지만 업무는 끝나지 않는다
한국 대학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맞물려 더욱 복잡하게 나타난다. 정부 정책과 평가체계가 바뀔 때마다 대학은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단과 센터를 설치하며, 프로그램과 성과관리 체계를 만든다. 한 사업이 종료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직과 업무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업은 다른 재정지원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이어지고, 일부 프로그램은 별도의 검토 없이 대학의 상시 업무로 편입된다. 과거의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료와 절차도 현재의 필요성과 무관하게 반복된다.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기존의 문서와 수기 절차가 함께 유지되기도 한다.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한 혁신이 오히려 업무를 한 겹 더 쌓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대학 내부의 센터와 위원회도 비슷하다. 설치할 때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이 겹치거나 실질적인 활동이 줄어든 조직이 생긴다. 그러나 존속 필요성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통합이나 종료를 결정하는 절차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조직을 없애는 것보다 명칭과 역할을 조금씩 바꾸면서 유지하는 편이 갈등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겨진 일들은 새로운 정책이 등장할 때도 사라지지 않는다. 기존 사업을 수행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이 추가되고, 대학 구성원은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더 많은 계획서와 회의, 프로그램, 평가에 대응하게 된다. 혁신의 수는 늘어나지만 혁신을 수행할 조직의 여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한다.
전략적 감산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다
로소스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 감산(strategic subtraction)’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단순한 예산 삭감이나 조직 축소와 구분하는 일이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과와 인력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은 전략적 감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감산의 목적은 대학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요성이 낮아진 곳에 묶인 자원을 더 중요한 영역으로 옮겨 대학의 역량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은 학과와 전공, 연구소와 센터, 행정부서, 학생지원 프로그램, 시설과 산학협력사업을 정기적으로 살펴야 한다. 처음 설정한 목적을 지금도 달성하고 있는지, 실제 이용자는 얼마나 되는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조직이나 사업은 없는지, 투입되는 자원에 상응하는 교육적·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과를 학생 수나 수익성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기초학문과 소수학문, 장기간의 축적이 필요한 연구, 대학의 공공성과 지역사회 기여처럼 단기간에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도 있다. 당장 이용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교육과 지원을 없앤다면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편의적인 구조조정에 머물 수 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중단을 결정하는지도 중요하다. 학과나 사업의 폐지는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전공, 직원의 업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평가기준과 자료를 공개하고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 종료를 결정했다면 절감된 예산과 인력, 공간이 어디에 다시 투입되는지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무엇을 없앴는지만 발표하고 자원의 이동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구성원에게는 감산이 혁신이 아니라 손실로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보다 어려운 질문
대학의 발전계획에는 대개 앞으로 시작할 일들이 담긴다. 새로운 전공, 첨단 교육시설, 학생지원 확대, 산학협력 강화, 국제화와 디지털 전환이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반면 앞으로 하지 않을 일이나 중단할 사업을 명시한 발전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의 자원과 구성원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일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는 선택이다. 무엇을 추가할 것인지 결정하면서 무엇을 줄일 것인지를 함께 묻지 않는다면 전략은 사업 목록의 확장에 그치게 된다.
대학 혁신의 성과도 새로 만든 학과와 센터, 프로그램의 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복된 사업을 얼마나 통합했는지, 불필요한 절차와 보고를 얼마나 줄였는지, 종료한 사업의 자원을 더 필요한 곳으로 어떻게 옮겼는지도 혁신의 성과가 돼야 한다. 강한 대학은 가장 많은 일을 하는 대학이 아니다. 자신이 왜 존재하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알고, 한정된 자원을 그 목적에 집중할 수 있는 대학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용기뿐 아니라,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일을 인정하고 멈출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대학에는 왜 사라지는 사업이 없는가. 이제 대학의 혁신은 이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학혁신 #전략적감산 #대학행정 #재정지원사업 #대학조직 #고등교육 #대학구조개혁 #스포트라이트유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