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평가할수록 연구는 안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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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연구비·동료평가가 만든 대학 연구의 역설

“내일 학계의 95%를 없애도 세상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과학자가 학계를 향해 던지기에는 꽤 과격한 말이다. 더구나 말한 사람이 학계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도 아니다. 201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에릭 베치그(Eric Betzig)다.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 개발로 기존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넘어선 그는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베치그의 문제제기를 소개한 중국 매체 후시우(虎嗅)의 글을 따라가면 그의 비판은 단순히 “쓸모없는 연구가 너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논문을 출판하고, 연구비를 따내고, 동료들의 평가를 통과하고, 다시 다음 연구비를 신청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연구자들이 정작 위험한 질문에 도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95%’라는 숫자를 사실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학계의 95%가 실제로 불필요하다는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는 연구가 수십 년 뒤 어떤 발견의 토대가 될지도 알 수 없다. 기초연구의 가치를 당장의 효용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학문의 존재 이유를 훼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목해야 할 것은 95%라는 숫자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만들어낸 과학자는 왜 자신이 몸담았던 연구 시스템을 이토록 거칠게 비판하게 되었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면 현대 대학과 연구지원기관이 좋은 연구를 골라내기 위해 구축한 정교한 평가 시스템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불편한 역설 하나가 나타난다. 좋은 연구를 골라내기 위해 연구를 더 정교하게 평가할수록, 연구자는 ‘좋은 연구’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연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직 모르는 것을 연구하면서 결과를 미리 설명해야 한다

연구는 본질적으로 아직 답을 모르는 문제를 탐구하는 일이다. 답을 이미 알고 있다면 연구할 이유가 없다. 기존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거나 누구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문제이기 때문에 연구자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탐색한다.그런데 연구비를 받으려면 연구자는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설명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제시하며,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도 밝혀야 한다. 몇 년 동안 어떤 단계로 연구를 수행하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 것인지 계획해야 한다. 당연히 필요한 절차다. 특히 공공재정을 사용하는 연구라면 누구에게 얼마의 연구비를 줄 것인지 판단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타당한지, 방법은 적절한지, 연구자가 실제로 수행할 능력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것은 연구비를 배분하는 기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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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이다. 연구자는 아직 모르는 것을 연구하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상당한 수준까지 설명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을 설득해야 하고 위험요인을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심사위원이 납득할 수 있는 선행연구와 방법론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연구자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연구는 무엇인가’보다 ‘어떤 연구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가.’ 이것은 연구자의 용기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연구비로 연구실을 운영하고 학생과 연구원을 고용하며 다음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면 선정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가 시스템은 좋은 연구를 골라내는 장치를 넘어선다. 연구가 끝난 뒤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가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연구가 가장 좋은 연구일까

이런 우려는 추측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5년 피에르 아줄레이와 웨슬리 그린블랫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R01 연구과제 10만 건 이상을 분석했다. 연구자가 기존 연구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등 여러 방식으로 연구의 위험성을 측정한 결과, 위험성이 높은 연구는 그렇지 않은 연구보다 후속 연구비를 확보할 가능성이 낮았다. 특히 새로운 연구영역과 경력이 짧은 연구자에게 이른바 ‘위험 페널티’가 더 크게 나타났다. (nber.org)

연구비 심사방식 자체를 들여다본 연구도 있다. 2023년 NBER 연구진은 여러 평가자의 점수를 평균해 연구비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일수록 평가자 모두에게 일관되게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런데 실제 과학자들에게 어떤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겠느냐고 선택하게 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과학자 개인은 오히려 평가자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 연구를 체계적으로 선호했다. (nber.org)

단순하게 바꿔보자. 다섯 명의 심사위원 모두에게 80점을 받은 연구와 누군가에게 100점, 다른 누군가에게 50점을 받은 연구가 있다. 평균점수로 결정하면 전자가 유리하다. 하지만 혁신은 때때로 후자에서 나올 수 있다. 누군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금까지 없었던 아이디어라고 판단하는 연구 말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연구가 반드시 가장 혁신적인 연구는 아니다. 그렇다고 동료평가(peer review)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 학문에서 동료평가는 없어서는 안 될 품질관리 장치다. 해당 분야 전문가가 연구방법과 논리를 검토하고 연구의 허점을 발견한다. 제한된 연구비를 아무런 검증 없이 배분할 수도 없다. 다만 잘못 설계된 연구를 걸러내는 일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 같은 능력인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지식과 방법론을 충분히 알고 있는 전문가는 연구 설계의 허점과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는 데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학문의 경계를 벗어난 아이디어가 앞으로 얼마나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질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문제는 평가 자체가 아니다. 평가를 없앨 수도, 없애서도 안 된다. 문제는 연구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장치에 연구의 미래를 선택하는 역할까지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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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언제부터 연구의 목표가 되었나

같은 문제는 대학의 교수업적평가에서도 발견된다. 논문은 원래 연구 결과를 동료 연구자와 공유하는 수단이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이론을 제시하면 논문으로 정리하고, 다른 연구자가 이를 검증하거나 반박하면서 지식이 축적된다. 연구가 먼저이고 논문은 결과였다. 하지만 논문이 교수 채용과 재임용, 승진, 업적평가의 지표가 되면서 둘의 관계는 복잡해졌다.

몇 편을 썼는가. 어느 학술지에 게재했는가. 연구비를 얼마나 수주했는가. 이런 숫자가 등장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수백 명의 교수와 수천 편의 연구성과를 평가하면서 모든 논문을 일일이 읽고 학문적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평가자의 주관을 줄이고 서로 다른 연구자를 비교하려면 일정한 정량지표가 필요하다.

국내 대학의 교원업적평가 규정을 살펴봐도 교육·연구·산학협력·봉사 등의 영역을 나누고 연구논문과 저술, 학술활동 등을 점수화하는 방식이 확인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 결과를 승진·재임용·정년보장이나 성과연봉 등에 활용한다. 동시에 정량평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전공 특성과 정성평가를 반영하는 장치도 두고 있다. (chungbuk.ac.kr)

따라서 “대학은 논문 숫자만 센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문제는 더 미묘하다. 측정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측정되는 것에 반응한다. 논문 편수가 평가된다면 논문을 생산하는 것은 합리적인 전략이다. 특정 학술지의 논문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 학술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주제와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외부 연구비 수주가 중요한 실적으로 인정된다면 연구자는 연구뿐 아니라 다음 연구비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누구도 교수에게 “논문을 위해 연구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 평가구조를 만들었을 뿐이다. 바로 이때 논문은 연구의 결과인 동시에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정량평가가 옳은가, 그른가’가 아니다.

연구업적평가가 연구가 끝난 뒤 성과를 측정하는 데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연구자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연구할지를 결정하고 있는가.

한국의 연구정책이 평가를 덜어내기 시작한 이유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연구지원 정책 역시 이 문제를 이미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연구재단이 밝힌 2026년 기초연구사업의 방향에는 ‘장기·안정적 지원, 다양성 추구, 자율성 보장’이 포함돼 있다. 개인연구 신규과제의 단계평가 주기를 늘리거나 상당수 과제에서 단계평가를 없애고, 선정평가 절차와 연구개발계획서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 재단이 설명한 이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연구자가 ‘단기성과에 쫓기지 않고 긴 호흡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 한국연구재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창의·도전적 연구를 전폭 지원’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선도적 연구일수록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점도 인정하고 연구자의 행정부담을 줄이고 자율성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한국의 연구지원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증거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좋은 연구를 찾아내기 위해 평가제도를 발전시켜 온 연구지원기관이 이제는 평가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뿐 아니라 평가가 많아서 생길 수 있는 문제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연구재단이 창의·도전적 연구와 한계도전 R&D 같은 별도의 지원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접근, 성공 가능성은 낮더라도 성공할 경우 파급효과가 큰 연구를 의도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다.

미국도 비슷하다. NIH에는 아예 ‘High-Risk, High-Reward Research’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다. 혁신성과 파급력이 크지만 위험성 때문에 전통적인 동료평가에서는 충분한 지원을 받기 어려울 수 있는 연구를 위한 통로다. 일부 프로그램은 예비 데이터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commonfund.nih.gov)

여기서 재미있는 역설이 생긴다. 대부분의 연구지원기관은 이미 ‘혁신’을 원한다. 그런데 혁신을 원하기 때문에 혁신을 위한 별도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 시스템이 나빠서라기보다 공정성·검증 가능성·성공 가능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평가와 불확실성·모험·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혁신 사이에 근본적인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하나의 완벽한 평가제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안전하고 축적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길과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연구를 지원하는 길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한다

베치그가 연구했던 HHMI의 재넬리아 연구캠퍼스(Janelia Research Campus)는 이 문제에 조금 다른 답을 내놓는다. 재넬리아의 연구철학을 상징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People, not projects’,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이다. 연구자가 반복적으로 외부 연구비를 신청하는 대신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제공하고, 연구 결과가 즉각적인 의료적·상업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도 줄인다. 소규모 연구그룹과 학제 간 협업을 장려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문화를 명시적으로 추구한다. (janelia.org)

여기에 깔린 전제는 단순하다. 연구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험했는데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처음 세운 가설이 틀렸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연구 도중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를 만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연구다. 그런데 처음 제출한 계획대로 연구가 진행되는지를 계속 확인한다면 연구자는 뜻밖의 발견을 하고도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저할 수 있다. 재넬리아가 모든 대학과 국가 연구지원기관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제한된 수의 연구자를 선발해 막대한 자원을 장기간 지원할 수 있는 기관과 수많은 연구자에게 공공재정을 배분해야 하는 정부기관은 조건부터 다르다.

그래서 재넬리아가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모델이 의도적으로 무엇을 줄였는지가 중요하다. 반복적인 연구비 경쟁, 연구계획서 작성, 단기성과에 대한 압박.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을 놓았는가. 연구자의 판단과 장기적인 탐색에 대한 신뢰다.

대학에는 실패할 자유가 있는가

이제 다시 베치그의 과격한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학계의 95%가 정말 없어져도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런 방식으로 학문의 가치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오늘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이는 연구가 10년, 20년 뒤 인류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이 될 수 있다. 당장의 경제적 성과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면 기초학문은 존재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대학과 학문에는 다른 조직보다 더 많은 실패가 허용되어야 한다.

기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무한정 투자하기 어렵다. 정부 역시 세금을 사용하는 만큼 국민에게 성과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마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만 선택한다면 누가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질문에 시간과 돈을 쓸 것인가. 물론 모든 실패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연구의 실패와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에 도전한 끝에 얻은 실패는 같지 않다. 그래서 좋은 연구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은 실패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구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구를 더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수많은 기준을 만들었다. 논문을 세고, 인용을 측정하고, 학술지를 구분하고, 연구비 수주실적을 기록한다. 연구계획서를 심사하고 중간성과를 확인하며 최종 결과를 평가한다. 그 과정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공정해야 했고, 책임져야 했으며, 한정된 자원을 좋은 연구에 배분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반대편의 질문도 필요하다. 평가를 정교하게 만들수록 연구도 더 좋아지는가. 누구도 연구자에게 안전한 연구를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가받는 방법이 명확해질수록 합리적인 연구자는 그 기준에 적응한다. 설명 가능한 결과를 약속하고, 검증된 방법을 선택하고, 다음 논문과 다음 연구비를 준비한다. 시스템이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치그의 도발에서 우리가 가져와야 할 질문은 ‘학계의 몇 퍼센트가 쓸모없는가’가 아니다. 연구란 아직 답을 모르는 질문에 돈과 시간을 쓰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연구를 골라내겠다는 이유로 연구가 시작되기도 전에 성공 가능성을 설명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실패하지 않을 연구만 선택하는 시스템에서 실패는 줄어들 수 있다. 동시에 발견도 줄어들 수 있다. 한국의 연구지원 정책이 이제 ‘단기성과에 쫓기지 않는 긴 호흡의 연구’를 말하고 창의·도전적 연구를 위한 별도의 길을 만드는 이유 역시 이 질문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좋은 연구 시스템이 마지막에 물어야 할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실패를 없앨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의미 있는 실패를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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