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문학까지 없애면 우리는 무엇으로 생각하나?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후회할 선택 – ANU가 인문학을 버린 날

2025년 7월, 호주국립대학교(ANU)는 인문학 중심의 핵심 연구소들을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Humanities Research Centre, Centre for European Studies, National Dictionary Centre 등, 반세기 이상 정부 지원 아래 국가의 지식 인프라를 담당해온 기관들이 대상이었다. 그 배경엔 학생 수 감소, 수익성 저하, 정부의 STEM 중심 교육정책 변화 등이 있다. 인문학이 더 이상 대학 재정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ANU는 호주 유일의 국립대학이자, 해마다 약 2억 호주달러의 National Institutes Grant라는 특별 보조금을 받는 기관이다. 그 보조금의 존재 이유는 분명했다. ‘수익과 무관하더라도 국가적으로 꼭 유지해야 하는 학문과 연구’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바로 그 돈을 받는 대학이, 인문학을 가장 먼저 포기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AI가 글을 쓰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인간의 선택을 대신하는 시대. 우리는 점점 더 기계적으로 사고하고, 기술에 의존하며, 신속한 결론에만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앞으로 무엇으로 생각할까?

인문학은 왜 항상 ‘위기’인가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실은 근대 대학이 형성된 이래로, 인문학은 거의 항상 ‘낡았다’, ‘쓸모없다’, ‘실용적이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존재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중세의 스콜라철학,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계몽주의 시대의 사변철학, 그리고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인문학은 시대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시대를 질문했지만, 동시에 ‘이건 현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반론과 함께 살아왔다.

21세기 들어 이 위기는 더욱 뚜렷해졌다. ‘학문은 투자 대비 효율로 판단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영논리가 대학을 장악했고, 학생들은 ‘취업에 유리한 전공’으로 몰려들었으며, 정책은 ‘기술과 산업에 기여하는 분야’를 우선 지원했다. 그 속에서 인문학은 종종 ‘사치’, 혹은 ‘취미’로 전락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기후위기는 단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윤리의 문제이고, AI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질문을 던지며,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과 책임, 공존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인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문학은 시대에 뒤처진 게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감당하지 못하는 깊이를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깊이를 잃고 있다.

광고
대학

기술 중심 사회,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때 인간의 고유 능력으로 여겨졌던 ‘생각’과 ‘판단’이, 이제는 점점 더 기술에 위임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인공지능이 만든 뉴스 헤드라인을 읽고,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화를 보고, 자동 번역기의 문장을 그대로 이해하며 살아간다. 더 이상 정보 해석이나 선택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창의성’과 ‘사유’까지도 기술이 흉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는 이미 인간의 글쓰기 스타일을 모방해 시를 쓰고, 대입 에세이를 작성하며, 학술 논문 초안을 만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사유의 과정 자체’가 인간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근본적인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 판단을 대신해주는 기계를 신뢰하고, 의미를 해석할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존재. 가짜 정보와 조작된 이미지, 극단적 이념이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이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을 ‘의심’할 줄 모른다면, 그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는 기계’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점점 더 교육과 연구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기술의 정밀함과 효율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기준과 책임’을 말해줄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를 어디에,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묻는 일이야말로 인문학이 해온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은 발전하는데 인간은 퇴행하는 시대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속에 빠질지는, 우리가 다시 ‘인문학적 사유’를 붙잡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AI 시대, 인문학 없는 사회는 무엇을 잃는가

기술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한다. 하지만 인간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존재다. 인문학은 이 느린 이해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사유는 언제나 복잡하고, 느리며, 때로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사회는 스스로를 점검하고,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왔다.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과정은 단축되거나 삭제되고 있다. 기계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는 정해진 명령에 따라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결과를 정렬하며, 확률과 통계에 기반해 다음 선택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이로운가’, ‘무엇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은 점점 자리를 잃는다. 이것이 인문학이 사라질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합리성과 비판 정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같은 인간 내면의 작동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런 내면이 기술에 의해 외주화되고, 판단의 기초가 사유가 아닌 데이터로 대체된다면, 정치는 여론의 속도에 휘둘리고, 사회는 극단적 확신들만 남게 된다. 정보는 많지만 진실은 없고, 표현은 넘치지만 이해는 부족한 시대. 그 중심에서 인문학 없는 사회는 도구는 남기고 방향을 잃는다.

또한 문화적 기억과 윤리적 토대 역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만들고, 역사학은 반복을 막기 위해 기억을 보존한다. 철학은 단정하지 않고 계속 묻는 법을 가르친다. 이 모든 기능이 사회 전체에 분산된 사고 능력의 일부다. 그런데 그 능력을 키우는 기관이 바로 대학이고, 그 속의 인문학이다. 그리고 지금, 대학은 그 기관을 스스로 포기하려 하고 있다.

ANU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 국가의 배신인가, 대학의 한계인가

호주국립대학교(ANU)는 단순한 ‘좋은 대학’이 아니다. 그곳은 호주 정부가 직접 설립한, 국가의 지식 인프라를 담당하는 유일한 National University다. 그렇기에 정부는 매년 ANU에 약 2억 호주달러에 이르는 특별 보조금(National Institutes Grant)을 지급해왔다. 이 예산은 시장 논리로는 유지될 수 없는 분야, 즉 국가가 책임져야 할 학문적 기반을 유지하는 데 쓰라고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예산을 받는 대학이 먼저 인문학을 포기하겠다고 나섰다. Humanities Research Centre(HRC)를 포함한 인문학 및 사회과학 연구소들을 없애겠다는 계획은 단지 내부 행정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스스로 설정한 책무’를 파기하는 조치다.

더 문제는, 이 결정이 정부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대학 내부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수익성과 효율성이라는 논리가 대학의 깊은 곳까지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ANU는 인문학이 학생 유입에 도움이 되지 않고, 취업률도 낮으며, 국제 경쟁력 확보에도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제한된 재원을 보다 ‘생산성 높은 분야’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느 정도 냉정한 경영적 판단이다. 하지만 그 결정의 정당성은 ‘ANU가 어떤 대학이냐’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국가의 돈을 받고, 국가의 책무를 위임받았던 기관이 수익 논리를 들어 가장 기본적인 공공 기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단지 대학의 후퇴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성 포기의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결정은 더 넓은 학계에도 충격을 던졌다. 다른 지방 대학, 연구기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ANU는 ‘그래도 거기는 지켜줄 거야’라는 최후의 신호등과도 같았다. 그곳이 무너진다는 건 곧, 이제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ANU 사태는 단지 한 대학의 경영 결정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지식 질서를 상상하고, 어떤 학문을 책임지려 하는가에 대한 중대한 정치적 단서다.

인문학은 효용이 아니라 토대다

인문학은 수익을 낼 수 없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학생 모집에도, 기술 특허에도, 산업적 성과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대학이 위기 때 가장 먼저 손을 대는 분야가 인문학이다. 그리고 이 결정을 뒷받침하는 말은 언제나 같다. “지금은 여유가 없다. 나중에 다시 투자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문학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사치가 아니라, 여유가 없을 때 더 필요한 토대다.질문할 힘, 해석할 감각, 타인을 상상할 능력,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언어는 결코 기술만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AI의 시대를 맞이했다. 기계는 사고하고, 계산하며,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계는 목적이 없다.
‘왜’라는 질문을 묻지 않고, ‘의미’를 묻지 않는다. 그 질문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 질문을 배울 것인가? 바로 그 지점을 인문학이 담당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ANU가 인문학을 버렸다는 것은 단지 학문 하나가 폐지된 것이 아니다. 공공 지식의 토대를 이루는 사회적 상상력이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국립대조차 지키지 못한 인문학을, 앞으로 누가 지킬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의 대학은 구조조정과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수많은 인문학자들이 강의실을 떠나고, 수업은 축소되며, 학생들은 ‘효율적인 진로’를 찾아 이동한다. 하지만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이렇게 되물을 날이 올 것이다.

“AI 시대, 인문학까지 없앤 우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생각하려 했던 걸까?”

#인문학위기 #AI시대 #인문학의역할 #ANU사태 #호주국립대학 #대학구조조정 #공공지식 #기술과인간 #비판적사고 #국가책무 #수익성논리 #인문학의가치 #철학이필요한시대 #AI와인간 #인문학살리기

Social Share

함께 읽어보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