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교육개혁이 아니라 국가 인재 전략에서 갈린다

1983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문서 하나가 있었다. 제목은 「A Nation at Risk」. 당시 미국은 이 문서를 통해 자국의 교육 시스템이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경고를 들었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교육 담론은 학교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대학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학생들의 성취도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 안에서 다시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같은 듯 보이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제 질문은 교육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가 사람의 능력을 어떻게 발굴하고 연결하고 성장시킬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미국 초당파 정책기구 바이파티전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 산하 ‘미국 노동력 위원회(Commission on the American Workforce)’가 제시한 화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서의 제목은 「A Nation at Risk to A Nation at Work」. 과거의 위기 진단을 넘어, 이제는 실제로 작동하는 국가 인재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선언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포브스(Forbes)에 실린 해설 글 「What A New National Talent Strategy Means For Higher Education」는 이 변화가 단순한 노동시장 논의가 아니라 고등교육의 존재 방식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드는 흐름임을 짚는다.

이 문제의식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대학 사회와 정책 환경을 들여다볼수록, 이 논의는 남의 나라 사례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경고처럼 읽힌다. 학령인구 감소, 산업구조 전환, AI의 급속한 확산, 청년층의 진로 불안, 성인학습 수요 확대, 대학의 취업성과 압박,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이 한꺼번에 닥친 한국에서 여전히 대학 정책을 입학정원과 재정지원, 학과 개편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우리는 이미 시작된 시대 변화에 한 박자 늦게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어떤 인재를, 어떤 경로로, 누구를 위해, 어떤 데이터와 책임 체계 아래 길러낼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학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대학은 더 이상 단순한 교육기관으로 머물 수 없다. 대학은 국가 인재 전략의 핵심 인프라이자, 기술과 산업과 지역과 노동을 잇는 플랫폼으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

교육개혁의 시대를 지나, 인재 전략의 시대로

오랫동안 교육정책은 학교 안의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설계돼 왔다. 더 좋은 교육과정, 더 높은 학업성취, 더 많은 대학 진학, 더 높은 학위 취득률이 핵심 지표였다. 이런 접근은 한때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산업화와 정보화 시기를 지나며 더 많은 사람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더 높은 수준의 학력을 보편화하는 일은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의 확대는 곧 개인의 사회이동 기회 확대와 연결되었고, 국가적으로도 고급 인력 확보의 중요한 통로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학위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반대로 산업 현장에서는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력을 찾지 못한다는 말이 반복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학생과 청년은 길을 잃고, 기업은 사람을 못 구하고,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체계 전체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미국의 새 제안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문제를 더 이상 “학교가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수준에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 직업훈련, 복지, 보육, 고용, 이민, 산업정책이 서로 단절된 상태로 작동하면서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길러내지도, 필요한 곳에 연결하지도 못하는 ‘시스템의 실패’에 더 주목한다. 다시 말해 인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재가 자라고 이동하고 재도약할 수 있게 만드는 국가 시스템이 낡고 흩어져 있다는 진단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사람의 능력 부족 그 자체가 아니라, 능력을 기회로 연결하는 구조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좋은 성적을 낸 학생이 꼭 적절한 진로를 찾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전공과 무관한 불안정 일자리로 밀려나는 것도 같은 구조의 문제다. 경력 전환이 필요한 성인 노동자가 다시 배우고 이동할 수 있는 유연한 경로가 부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오늘의 국가 경쟁력은 몇 개의 명문대가 있는가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다시 연결하는가에서 결정된다.

왜 지금 ‘국가 인재 전략’인가

지금 세계 경제와 고등교육이 동시에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기술 변화의 속도다. 디지털 전환만으로도 버거웠던 사회는 이제 생성형 AI를 포함한 새로운 자동화 물결 앞에 서 있다. 과거의 자동화가 반복적 육체노동이나 일부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는 데 머물렀다면, 지금의 AI는 지식노동의 일부까지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특히 문서 작성, 정보 정리, 분석 보조, 기본 코딩, 고객응대, 행정 처리처럼 한때 ‘대졸 초급 인력’의 전형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업무들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이는 대학에 치명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학이 제공해 온 지식과 학위의 가치가 어디에서 어떻게 재설정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예전에는 학위를 취득하면 일정한 고용 안정성과 사회적 보상이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위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새로운 기술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가, 협업과 판단과 문제 해결 같은 비정형 역량을 얼마나 갖추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정책과도 직결된다.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청정에너지, 첨단 제조업 투자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는 이유는 단지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급망과 기술주권을 확보하고, 전략산업의 미래를 자국 안에서 통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공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곧바로 산업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자리를 채울 기술인력, 중간숙련 인력, 현장 관리자, 연구개발 인력, 재교육 시스템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기술투자와 인재투자가 분리되면 산업정책은 반쪽짜리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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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한국도 마찬가지다. 반도체와 바이오, AI, 모빌리티, 방산, 그린에너지 같은 전략산업을 말하면서 정작 그 산업을 움직일 인재의 양성과 이동, 재교육 체계를 종합적으로 설계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쟁력 논의는 선언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산업정책과 대학정책이 따로 가고, 고용정책과 평생교육정책이 따로 움직이며, 지역대학과 지역산업이 실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투자 규모가 아무리 커도 지속가능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국가 인재 전략’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교육부의 정책목표 하나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가 사람의 성장 경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유아기부터 학교교육, 직업훈련, 대학, 취업, 경력전환, 재교육, 돌봄과 복지 지원까지 이어지는 생애 전 과정을 하나의 인재 생태계로 본다는 뜻이다. 인재는 한 번 길러 끝나는 자원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축적되고 전환되고 재구성되는 역량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던진 핵심 진단,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미국의 새 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재 문제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이 말은 단순하지만 매우 급진적이다. 흔히 사회는 청년에게 더 노력하라고 말하고, 대학에는 더 실용적인 교육을 하라고 요구하며, 기업에는 더 적극적으로 채용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그렇게 각각에게 책임을 나누어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구조적 실패를 설명할 수 없다. 미국 자료는 현재 연방 차원에서 교육, 직업훈련, 보육 관련 프로그램에 매년 2,5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지만, 이 예산이 150개가 넘는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여러 부처와 기관에 흩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각기 다른 규정, 다른 지표, 다른 집행 구조를 가진 제도들이 병렬적으로 존재하지만, 이 전체가 하나의 전략으로 묶여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학에 들어가고, 누군가는 직업훈련을 받고, 누군가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경력 단절 뒤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하지만, 그 모든 경로를 하나의 관점으로 연결해 주는 국가적 안내판이 부재하다.

이 진단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 역시 교육, 고용, 복지, 지역정책, 산업정책이 서로 다른 언어와 성과지표로 움직인다. 대학 재정지원사업은 대학대로, 고용부 직업훈련은 또 그 나름대로, 산업부의 인력양성 프로그램은 별도 체계로 운용된다. 각 정책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삶에서는 이 제도들이 하나의 길로 경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한 청년이 다시 기술을 익히고 진로를 바꾸려 할 때, 육아 때문에 경력이 끊긴 여성이 재진입을 시도할 때, 지역 제조업 현장이 필요한 사람을 구하지 못할 때, 현재의 시스템은 놀라울 만큼 복잡하고 파편화돼 있다. 국가 인재 전략이라는 구상은 바로 이 파편화를 문제 삼는다. 정책이 많다고 해서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크다고 해서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개별 사업의 숫자가 아니라, 그것들이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이어지고 있는가에 있다. 아무리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도 학습자가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은 취업지원사업이 있어도 기업의 실제 역량 수요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대학의 교육혁신을 외쳐도 졸업 후 데이터와 경력 경로를 추적해 개선하지 못한다면, 시스템 전체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대학의 역할은 왜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고등교육은 가장 민감한 자리에 놓인다. 대학은 오랫동안 지식의 전수와 연구, 교양과 전문성 양성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었다. 지금도 그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가 대학에 기대하는 기능은 이미 크게 달라지고 있다. 대학은 더 이상 18세 청년을 받아 4년간 교육한 뒤 학위를 수여하는 ‘일회성 통과기관’으로 머물 수 없다. 앞으로의 대학은 훨씬 더 복합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첫째, 대학은 산업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 설계 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취업률을 높이라는 주문과는 다르다. 특정 산업이 요구하는 역량이 바뀌고 있다면, 대학은 그 변화가 교과과정, 실험실, 프로젝트, 현장실습, 마이크로크레덴셜, 융합전공과 어떻게 만나는지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역량 단위를 어떻게 쪼개고 조합해 학생이 생애 주기마다 다시 돌아와 학습할 수 있게 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둘째, 대학은 청년만의 공간이 아니라 성인학습과 재교육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직장인, 경력단절자, 중장년 전환학습자, 지역 산업 현장의 재직자, 군 전역자, 이주민까지 포괄하는 열린 학습 플랫폼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대학의 사회적 기능은 급속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위기는 학생 수 감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수요의 구조가 바뀌었는데도 대학이 여전히 과거의 시간표와 학사 구조 안에 머물러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셋째, 대학은 데이터 기반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학생이 입학해 어떤 학습 경험을 하고, 졸업 후 어떤 경로를 밟으며, 어느 시점에 이탈하고, 어떤 지원이 실제 성과를 냈는지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대학은 변화하는 사회와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지금까지 고등교육 평가는 종종 서류와 제도 중심으로 이뤄져 왔지만, 앞으로는 학습자와 노동자 중심의 추적 가능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넷째, 대학은 지역과 산업과의 관계를 다시 짜야 한다. 지역대학이 살아남는 길은 단순히 정원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 해당 지역의 산업 구조, 인구 구성, 평생교육 수요, 기술전환 필요성과 엮이지 않으면 지역대학은 행정적으로만 존재하는 기관이 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지역대학이 지역 혁신과 재교육, 기술 실증, 청년 정착, 중소기업 인력 공급의 실질적 허브가 된다면 대학의 가치는 훨씬 더 분명해진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대학은 더 이상 학위를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인재의 성장과 이동을 설계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위의 가치가 흔들릴 때, 대학이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등교육의 위기는 흔히 “대학의 위기”로 불린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학위 중심 사회계약의 위기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대학 진학을 통해 더 나은 소득, 더 안정된 직업,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기대해 왔다. 이 약속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지만 예전만큼 명확하지도 않다. 전공과 무관한 취업, 과잉학력, 청년층의 불안정 고용, 수도권 집중, 취업을 위한 사교육과 자격증 과잉이 그 균열을 보여준다. 미국 자료에서도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이전만큼 자명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반복된다. 이는 반(反)대학 정서라기보다, 대학이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 다시 묻는 질문이다. 학위가 여전히 중요한 신호라면, 그 학위 안에 어떤 실제 역량과 경험이 담겨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학위가 더 이상 충분한 신호가 아니라면, 대학은 학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량 인증과 학습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학을 둘러싼 사회적 불만은 등록금이나 취업률 같은 지표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어디를 나왔는지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구조”에 피로를 느끼고, 기업은 “학위는 있어도 현장에서 바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며, 대학은 “교육의 본질을 지키려면 즉각적인 노동시장 요구에만 끌려갈 수 없다”고 반박한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이 대립을 방치한 채로는 해결이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대학이 붙들어야 할 것은 학위의 형식이 아니라 학습의 실질이다. 학생이 어떤 문제를 다뤄 보았는가, 어떤 맥락에서 협업했는가, 어떤 디지털 도구를 익혔는가, 어떤 실패를 경험하고 수정해 보았는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가, 자신의 역량을 설명하고 다시 확장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결국 대학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전달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에 적응 가능한 인재’로 길러냈는가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이때 대학의 본질은 오히려 더 선명해질 수 있다. 대학은 단순한 직업훈련기관이 아니며, 당장의 산업 수요만 쫓아가는 조직이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분리된 추상적 학문 공간으로만 남을 수도 없다.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깊이 있는 탐구와 같은 고등교육의 본령이되, 그것이 실제 사회 문제와 산업 변화, 지역 과제와 단절되지 않도록 연결하는 역량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대학은 ‘교육기관’과 ‘인재 인프라’라는 두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고등교육과 노동정책을 따로 다루는 순간, 국가는 이미 늦어진다

오늘날 많은 나라가 산업정책의 귀환을 이야기한다. 공급망 위기와 미중 경쟁, 첨단기술 패권, 탄소중립 전환이 겹치면서 정부는 다시 산업의 방향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업정책은 사람 없는 공장, 사람 없는 연구개발, 사람 없는 혁신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첨단 산업을 국가전략이라 부르면서 그 산업에 필요한 사람의 양성과 배치를 ‘각자도생’에 맡긴다면, 국가는 결국 병목을 맞이하게 된다.이 점에서 미국의 ‘국가 인재 전략’ 제안은 고등교육만이 아니라 정부 구조 전체를 향한다. 교육 정책, 노동 정책, 보육과 복지 지원, 데이터 체계, 연구와 평가 구조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발상은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자”는 뜻이다. 특히 학습자와 노동자의 이동 경로를 데이터로 추적하고, 어떤 훈련이 실제로 어떤 일자리와 연결되는지, 어떤 지원이 이탈을 막는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역량 수요가 발생하는지 파악하자는 제안은 인상적이다. 여기서 인재 전략은 선언이 아니라 측정과 조정의 체계가 된다.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러한 접근은 더욱 절실하다. 대학은 교육부의 관리 대상이고, 직업훈련은 고용노동부의 영역이며, 전략산업 인력양성은 산업통상자원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의제이고, 지역 정착과 인구 문제는 또 다른 행정 체계에서 다뤄진다. 물론 부처 간 협업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책의 설계 언어와 성과 측정 방식이 다르고, 데이터가 충분히 연결되지 않으며, 학습자와 노동자의 실제 경험은 여전히 제도 사이의 틈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청년 한 사람의 경로를 떠올려 보면 이 문제는 더 분명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들어가고, 중간에 전공을 바꾸고 싶어 하거나 휴학을 하며, 졸업 후 취업이 지연되고, 다시 단기교육 프로그램을 찾고, 몇 년 뒤 경력전환을 고민하는 과정은 하나의 삶 안에서 이어지는 문제다. 그러나 제도는 이를 종종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로 나누어 다룬다. 대학 재학생일 때는 대학정책의 대상이고, 졸업 후 미취업 상태가 되면 취업지원의 대상이 되며, 직업훈련을 받으면 또 다른 제도에 편입된다. 그 사이의 연속성을 설계하지 않으면, 국가가 제공하는 지원은 개인에게 조각난 서비스로만 다가온다.

결국 고등교육과 노동정책을 따로 다룬다는 것은, 국가가 사람의 성장 경로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 결과 대학개혁도 취업정책도 평생교육도 각자 열심히 움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손에 잡히는 변화가 적은 상태가 반복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대학을 노동정책의 하위기관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국가 인재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대학정책이 놓치고 있는 질문들

한국에서 대학정책 논의는 오랫동안 구조조정과 재정지원, 평가와 정원조정의 틀 안에 머물러 왔다. 물론 학령인구 감소 국면에서 이러한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대학의 공급 구조를 재편하고, 부실을 막고, 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는 그것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첫째, 우리는 여전히 ‘몇 명을 뽑고 몇 명이 취업했는가’에 비해 ‘어떤 역량을 어떤 경로로 길러냈는가’에 대한 질문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률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학 교육의 가치와 국가 인재 시스템의 효율성을 설명할 수 없다. 전공과 직무의 연결성, 첫 일자리의 질, 경력 지속 가능성, 이직과 재학습의 경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둘째, 대학을 청년층 중심 제도로 고정해서 보는 시선이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인구 감소가 계속되고 직업 수명이 길어질수록 대학은 청년만의 공간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성인학습자, 재직자, 퇴직 전환자, 경력단절자, 지역 주민의 재교육 수요가 이미 커지고 있음에도, 많은 대학은 학사제도와 수업 운영, 등록 제도, 인증 방식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정규학위 중심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지역대학을 살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지역산업과의 실질적 연결 고리를 얼마나 만들고 있는지도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처럼 지역 연계형 재편이 논의되고 있지만, 단순히 재정 배분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대학이 해당 지역의 기업, 공공기관, 평생교육 수요, 정주 여건, 산업전환 전략과 얼마나 깊게 결합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대학은 여전히 ‘지원 대상’으로만 남고, 지역사회 안에서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지 못한다.

넷째, 대학 내부의 교육 혁신도 아직은 제도 대응형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로디그리, 융합전공, 비교과 프로그램, 산학 프로젝트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것이 학생의 생애경로 데이터와 실제 노동시장 성과, 지역사회 수요와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보여주기식 혁신은 많지만, 인재 전략 차원의 설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때문에 한국 대학정책이 앞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훨씬 더 근본적이어야 한다. 대학을 몇 개 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어떤 인재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게 할 것인가. 대학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가 대학을 통해 어떤 역량 생태계를 구축할 것인가. 취업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아니라, 청년과 성인이 생애 전반에 걸쳐 다시 배우고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질문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도 바뀌기 어렵다.

AI 시대에 대학이 정말 길러야 할 역량

AI 시대가 고등교육에 던지는 도전은 단지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라는 요구가 아니다. 코딩 교육을 확대하고 AI 활용 수업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의 저장과 전달은 더 이상 대학만의 독점 영역이 아니다. 정보 접근성은 이미 폭발적으로 확대됐고, 기초적 정리와 요약, 반복적 문서 작업, 표준화된 초안 작성은 AI가 상당 부분 대체하거나 보조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대학이 길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맥락을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동일한 정보가 주어져도 상황을 해석하고, 가치 충돌을 조정하고, 장기적 결과를 고려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둘째는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이다.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묻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셋째는 협업과 소통 역량이다. 복잡한 문제는 단일 전공이나 단일 직군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전문성을 연결하는 사람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넷째는 학습의 지속 가능성이다. 특정 기술 하나를 오래 붙드는 시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배우고 재구성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여기서 대학 교육의 형식도 바뀌어야 한다. 강의실에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만으로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실제 문제 해결형 수업, 데이터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분석 경험, 현장과 연결된 캡스톤, 전공 간 협업, 지역사회와 산업현장의 과제를 다루는 교육이 훨씬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일부 우수 학생에게만 제공되는 특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중심부로 들어와야 한다.

동시에 대학은 인간 고유의 영역을 더 깊게 다뤄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윤리, 공공성, 민주주의, 책임, 인간 이해의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AI 시대의 대학이 단순한 기술 공급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어떤 삶을 더 좋은 삶으로 여길 것인지, 기술 격차와 교육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공적 토론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국가 인재 전략 속에서도 대학이 유독 중요한 이유는, 대학만이 직무 훈련 이상의 넓은 질문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AI 시대의 대학은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변화하는 산업과 노동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 역량을 길러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성찰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이 둘 중 하나만 붙들면 대학은 편향된다. 실용만 강조하면 대학은 얕아지고, 성찰만 강조하면 현실과 멀어진다. 국가 인재 전략이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이 두 축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대학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국가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한국 사회는 대학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 왔다. 취업도 해결하라, 지역도 살려라, 산업인력도 길러라, 평생교육도 하라, 국제경쟁력도 높여라, 연구도 잘하라, 등록금 부담도 줄여라, 공공성도 지켜라. 이 요구들 하나하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 국가 차원의 설계는 충분히 따라오지 못했다. 대학에 역할만 늘리고 구조와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학은 과잉책임의 공간이 되고 만다.

국가 인재 전략이라는 관점은 이 문제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대학이 모든 것을 단독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교육과 고용과 산업과 복지의 연결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그 안에서 핵심 축이 될 수 있지만, 유일한 주체는 아니다. 산업계는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더 투명하게 제시해야 하고, 정부는 데이터와 제도를 연결해야 하며, 지역은 대학을 실제 성장 거점으로 활용해야 하고, 기업은 신입사원에게 완성된 인력만 요구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학습과 성장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몇 가지 분명한 원칙이다. 첫째, 인재 정책은 부처별 사업이 아니라 생애경로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둘째, 고등교육의 성과는 입학과 졸업만이 아니라 이후의 이동과 재학습까지 포함해 평가돼야 한다. 셋째, 지역대학은 중앙의 하청 수행기관이 아니라 지역 인재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넷째, 성인학습과 재교육은 부수적 사업이 아니라 대학의 핵심 기능으로 편입돼야 한다. 다섯째, 데이터는 사업 보고용이 아니라 실제 정책 조정과 선택 지원을 위해 활용돼야 한다.

국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대학도 본질적으로 바뀌기 어렵다. 대학개혁이라는 말은 많았지만, 정작 대학이 어떤 사회계약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부족했다. 이제 그 합의를 다시 써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입학과 졸업’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이 교육과 일과 삶 속에서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공공 인프라여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를 위해 대학을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다뤄야 한다.

대학의 미래를 묻는 일은 곧 국가의 미래를 묻는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미래를 말할 때 흔히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입시 경쟁의 변화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것들은 현실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대학을 어떤 국가 비전 속에 놓고 있는가에 있다. 대학이 단지 줄어드는 청년 인구를 두고 경쟁하는 기관으로만 남는다면, 대학의 미래는 축소의 언어로만 설명될 것이다. 반대로 대학을 국가 인재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본다면, 대학의 미래는 다시 확장의 언어로 쓰일 수 있다. 다만 그 확장은 캠퍼스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역할의 확장이고, 학위 수의 확장이 아니라 경로와 기능의 확장이다. 미국에서 다시 제기되는 ‘국가 인재 전략’은 한국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교육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대학개혁만으로는 더더욱 부족하다는 것, 이제는 사람의 성장과 이동과 재도약을 하나의 국가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경쟁력도, 지역 균형도, 청년의 미래도, 중장년의 재도전도, 기술 전환도 결국 사람을 통해 실현된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길러내고 연결하는 데서 대학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대학을 과거의 방식으로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을 미래의 방식으로 다시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학생 수 감소를 견디는 대학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습과 역량의 중심지가 되는 대학. 졸업장을 주는 대학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대학. 지역에서 사라지는 대학이 아니라, 지역의 산업과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대학. 바로 그런 전환이 가능할 때, 대학은 비로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필요해질 수 있다.

결국 오늘의 질문은 이것이다. 대학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러나 그 질문 앞에는 더 큰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어떤 국가가 되고 싶은가. 국가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어떤 기회를 설계하며, 실패 이후의 재도전까지 어떻게 품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 없이 대학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정책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둔 국가 전략의 재설계다. 대학은 그 전략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 있어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학교’만이 아니다. 이제 대학은 국가의 미래를 움직이는 인재 시스템의 심장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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