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접근의 평등에서 AI 접근의 평등으로
대학은 언제나 지식의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공간이었다. 근대 대학이 처음 자리 잡았을 때 학생들이 동일한 학문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세워졌고, 정보화 시대에는 컴퓨터실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누구나 도서관에 들어가면 같은 책을 볼 수 있었고, 컴퓨터실에 앉으면 똑같은 사양의 컴퓨터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는 대학이 학문과 학습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당했던 사회적 책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학습과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챗GPT, Claude, Copilot과 같은 시스템은 단순한 참고 도구를 넘어, 과제 작성, 논문 초안 준비, 취업 자기소개서 작성, 연구 설계까지 포괄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학업 성취와 진로 준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은 유료 AI 구독을 결제해 최신 모델의 기능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어떤 학생은 무료 버전에 머물러 제한된 기능만 체험한다. 이 차이가 학습 과정과 사고 체계, 결과물의 품질까지 갈라놓는다. 결국 AI 접근권의 문제는 단순한 편의성의 차원이 아니라 학습권과 평등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늘날 대학은 다시금 질문을 받아야 한다. “AI 시대에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가?” 과거에는 도서관과 컴퓨터실이었다면, 이제는 생성형 AI에 대한 평등한 접근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AI 불평등 – 접근성에서 시작되는 격차
AI 불평등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는 접근성의 차이, 둘째는 활용 능력의 차이, 셋째는 결과의 차이다. 접근성의 차이는 주로 비용에서 비롯된다. 챗GPT의 최신 모델을 쓰려면 매월 구독료를 내야 한다. Copilot, Claude Pro, Perplexity Pro 등 주요 AI 서비스는 모두 유료 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개인이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면 무료 버전에 의존해야 하고, 그 경우 속도, 성능, 기능에서 큰 제약을 받는다. 활용 능력의 차이는 디지털 리터러시에서 발생한다.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누군가는 레포트 전반을 설계하고, 프로그래밍 코드나 데이터 분석까지 끌어내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단순 요약이나 번역 수준에 머문다. 마지막으로 결과의 차이는 학업 성취도, 과제 완성도, 취업 준비 경쟁력, 연구 성과 등에서 나타난다. AI 불평등은 곧 사회적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불평등의 출발점이 교육 이전에 놓인 접근성 격차라는 사실이다. 교육이나 훈련이 아무리 충실하더라도, 같은 도구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AI 불평등을 단순히 리터러시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현실을 오도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조건의 도구 접근이 전제되어야 한다. 마치 인터넷 초창기 시절을 떠올리면 된다. 어떤 가정은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받아 온라인 학습에 뛰어들었지만, 또 다른 가정은 느린 모뎀이나 아예 인터넷이 없는 상황에 머물렀다. 그 차이가 학생들의 정보 습득 능력, 학업 성과, 나아가 사회 진출까지 연결되었다. 오늘날 AI도 같은 상황이다. 유료 AI 구독료와 고성능 GPU 인프라가 새로운 ‘인터넷 회선’의 역할을 한다. 이를 확보하지 못한 개인이나 기관은 출발선에서 이미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학이 학생들에게 AI 리터러시 교육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대책이 될 수밖에 없다. 동일한 접근권 보장이 선행되어야, 그 위에서 리터러시 교육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등장했다. 정치권에서는 ‘AI 기본사회’를 제시하며 전 국민이 A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국형 챗GPT를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고성능 GPU 5만 장 확보, 국가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예고했다. 이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공공 차원에서 AI 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한국지능정보원(NIA)은 OECD 사례를 분석하며 “AI 역량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적 개입”을 강조했다. 단순히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실제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아직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두의 AI’라는 비전이 실제로 구현되려면, 이를 학생과 시민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할 매개 기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대학이다.
대학 현장의 현실 – 불평등의 교차점
대학 현장에서는 이미 AI 불평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경제적 격차다. 일부 학생들은 챗GPT Plus, Claude Pro 등을 구독해 학습과 과제에 활용한다. 과제의 완성도나 취업 준비 과정에서 이들은 분명한 우위를 확보한다. 반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무료 버전에 의존한다. 기능의 제한 때문에 작업 속도와 품질에서 차이가 생긴다. 다음으로 전공별 격차다. 컴퓨터공학, 경영학 등 일부 학과는 AI 활용을 수업에 자연스럽게 통합한다. 반면 인문학이나 예술 계열은 도구 활용 자체가 생소하거나 제한적이다. 이는 학생들의 AI 친화적 사고 형성 기회를 크게 달리한다. 그리고 교수별 격차다. 어떤 교수는 AI를 적극적으로 수업에 도입하지만, 또 다른 교수는 아예 금지한다. 그 결과 같은 대학 안에서도 학생들의 경험은 천차만별이다. 이런 불평등은 단순히 대학 시절의 경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 AI 활용 역량은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격차는 곧 사회 진출에서의 불평등으로 연결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학이 앞장서 학생들에게 AI 접근을 보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일대학교와 일부 주립대학들은 Microsoft Copilot이나 ChatGPT Enterprise를 캠퍼스 전체에 도입했다. 모든 학생과 교수진이 동일한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편의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 대학이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생들 간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과거 학술 DB를 도서관에서 구독해 전교생에게 제공했던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 대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이 집단적으로 AI 라이선스를 구입해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모델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투자라기보다, 대학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책무의 연장선이다.

한국 사례와 가능성 – 교육 실험에서 대학 정책으로
한국에서도 AI 접근 보장을 실험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있다.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AI 기반 에듀테크를 활용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AI 첨삭을 통해 글쓰기 능력을 높였고, 수학 학습에서는 적응형 시스템 덕분에 성취도가 향상되었다. 무엇보다 학습 태도나 자신감 같은 정의적 영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되었다. 이 결과는 AI가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학 차원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시도가 제한적이다. 일부 교수 개인이나 연구실 단위에서 활용이 이루어질 뿐, 제도적·전학적 차원에서 AI 접근을 보장하는 사례는 드물다. 대학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습관리시스템(LMS)과 AI를 연동하고, 교내 AI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모든 학생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AI 계정을 제공하는 방식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AI 리터러시는 이제 대학 교육의 필수 과제가 되었다. 학생들이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며, 학문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언제나 동일하다. 모든 학생이 동일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일한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리터러시 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유료 서비스를 자유롭게 쓰는 학생들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더 빠르게 습득하고 확장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이론적 설명에만 머무른다. 따라서 대학은 ‘AI 리터러시 교육’과 ‘AI 접근권 보장’을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는 한 쌍의 과제다.
그러면 모두에게 공짜 AI가 가능한가
물론 대학이 모든 학생에게 AI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재정적 부담이 크다. 이미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이 수억 원 규모의 AI 라이선스를 매년 갱신할 수 있을까? 다음은 민간 기업 종속 문제가 있다. 특정 기업의 AI를 전교생에게 제공하면 또 다른 형태의 기술 종속이 발생할 수 있다. 품질 문제도 존재한다. 공용으로 제공되는 AI가 상용 최신 모델과 동일한 성능을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과거에도 반복되었다. 도서관 구독료는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었고, 컴퓨터실 운영에는 막대한 유지비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학습권 보장을 위해 투자를 감행했다. AI도 마찬가지다.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결국 감수해야 한다.
AI 시대의 불평등은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교육권과 평등권의 문제다. 대학은 사회적 책무를 지닌 기관으로서, 학생들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과거에는 도서관이 책을, 컴퓨터실이 PC를 보장했다. 이제는 AI 접근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대학이 평등한 출발선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학생 간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반대로 대학이 책임을 다한다면, AI 시대는 기회의 확장과 사회적 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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