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학 교육의 새로운 시험대 – 위협인가, 생존 기술인가

학습을 잠식한다는 비판과 삶의 기술이라는 낙관 사이, 인공지능 시대에 대학 교육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책무

대학 교정에 인공지능이 들어온 지 불과 몇 년, 그러나 그 파장은 이미 거세다. 강의실 안팎에서 학생들은 손쉽게 챗봇을 불러내 과제를 작성하고, 요약문을 만들며, 시험 대비 자료를 꾸민다. 어떤 교수들은 이를 두고 “학습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또 다른 교수들은 “이제는 글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당연히 배워야 할 기술”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이 대학 교육을 잠식하는가, 아니면 더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이 최근 연달아 보도한 두 개의 글은 이 논쟁의 양 극단을 보여준다. 요크대학의 레오 맥칸과 사이먼 스위니 교수는 “AI 남용은 학습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며, 대학의 교육 기능을 저해한다”고 단언했다. 반면 또 다른 기사는 교육자와 산업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AI 활용 능력은 곧 생존 기술이자 미래 직업 시장에서의 필수 문해력”이라고 강조했다. 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는 만큼, 문제는 ‘찬반’이 아니라 대학이 어떻게 균형을 잡고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학습을 잠식하는 ‘편리함’의 그림자

레오 맥칸과 사이먼 스위니 요크대 교수는 최근 《가디언》 기고문에서 대학 현장의 분위기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들은 “AI는 학습을 약화시키는 도구이며, 학생들이 반성적 사고와 비판적 분석을 거치지 않고 결과물만 얻으려는 경향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실제 수업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한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1922년 헨리 포드의 글을 해석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상당수 학생들이 챗봇을 이용해 답을 도출했다. 그 결과 포드는 ‘정교한 인사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경영자’ 혹은 ‘변혁적 리더’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는 포드가 보여준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이며, 때로는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해석이었다. 학생들은 텍스트를 직접 읽고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챗봇의 피상적이고 다듬어진 언어에 의존한 것이다.

이처럼 AI가 내놓는 답변은 종종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깊이와 정확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대체로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을 반복하거나,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을 ‘자신만만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학생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학습을 대체한다는 점이다. 맥칸과 스위니는 “AI 활용은 연구나 준비 과정에 도움을 준다”는 학생들의 주장이 사실상 학습을 건너뛰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이 강조해온 비판적 사고, 창의적 글쓰기, 자료 해석 능력은 점차 퇴화하고, 학습은 피상적인 정보 소비로 전락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학 차원의 대응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이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례가 다반사다. AI의 남용을 감시하고 통제할 뚜렷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학생들은 사실상 제재의 두려움 없이 챗봇에 의존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학이 학문적 성실성과 교육의 본질을 스스로 훼손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맥칸과 스위니는 “AI가 가져오는 편리함에 환호하기보다, 그 부작용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은 단순히 효율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와 성찰, 창조적 탐구를 통해 완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회피가 아닌 적응 – ‘삶의 기술’로서의 AI

AI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정반대다. 《가디언》의 또 다른 기사에서는 여러 교육자와 전문가들이 “AI 활용 능력은 이제 새로운 문해력이며, 대학은 이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만약 지금 내가 대학을 졸업한다면 역사상 가장 운 좋은 세대라 느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AI는 일자리를 일부 대체하겠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만들어낼 것이며, 젊은 세대는 그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AI는 회피나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기술(life skill)’로서 습득해야 할 역량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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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앤드루 로고이스키(서리대 인공지능연구소)는 이 점을 구체적으로 짚는다. 그는 “챗GPT가 등장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대학은 ‘금지해야 한다’는 논의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합의로 급속히 이동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고, 기업 현장 역시 AI 활용 능력을 기본 자질로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대학이 AI를 회피한다면, 학생들은 졸업 후 곧장 현실의 요구와 괴리를 경험하게 된다. 로고이스키는 “AI를 쓸 줄 아는 능력은 이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과 동등한 기본기”라며, 모든 학생이 자기 전공과 무관하게 AI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용 시장 전망에서도 비슷한 낙관이 제시된다. 영국의 한 채용 컨설턴트는 “AI 때문에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AI에 익숙한 인재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수학이나 데이터 기반 학문처럼 전통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전공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할 것이며, AI는 오히려 이런 지식을 확장하고 적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새로운 세대의 졸업생들은 AI 친화적 사고방식과 적응력을 무기로, 기업이 요구하는 ‘새로운 재능 풀(new breed of talent)’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레나 심펄(킹스칼리지 런던 교수)은 대학이 단순히 컴퓨터공학과 같은 특정 학과에만 AI 교육을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AI는 이메일 작성 방식이나 정보 검색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문 전반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 역시 AI를 통해 연구와 창작을 보조받고,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공의 선택이 아니라, 대학이 얼마나 폭넓고 균형 있게 AI 교육을 내재화할 수 있는가이다.

긍정론자들의 결론은 명료하다. AI는 피할 수 없는 변화이며, 대학이 이를 금지하거나 무시할수록 학생들은 더 큰 손해를 본다. 따라서 과제는 AI를 교육과정 속으로 어떻게 지혜롭게 끌어들이고, 학문적 깊이와 창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 역량을 길러낼 것인가에 있다. 금지가 아니라 ‘길들이기’, 회피가 아니라 ‘적응’이야말로 새로운 대학 교육의 과제라는 것이다.

충돌하는 두 시각, 그러나 공통의 질문

AI를 둘러싼 비관론과 낙관론은 전혀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AI는 대학 교육의 본질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맥칸과 스위니가 경고하듯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을 훼손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로고이스키와 심펄이 말하듯 새로운 문해력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학과 사회의 태도에 달려 있다. AI가 학습을 ‘우회’하는 지름길이 될지, 아니면 학습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지는 교육현장의 선택이 결정한다.

지금까지의 논쟁은 종종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지도, 무조건적 허용도 현실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금지는 학생들의 비밀스러운 남용을 오히려 부추기고, 무조건적 허용은 학문적 성실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이 감당해야 할 책무는 명확하다. AI를 어떻게 길들이고 가르칠 것인가다. AI를 활용하되, 동시에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방법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즉 “AI가 낸 답을 그대로 믿지 말고, 그것을 검증하고 확장하는 사고를 훈련하라”는 지침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교수는 단순히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묵인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AI를 활용한 결과물 속에서 창의적 기여를 어떻게 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학생들 역시 AI를 단순히 ‘편한 답변 제조기’가 아니라, 사고와 탐구를 보완하는 도구로 삼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이는 결국 대학이 시험과 과제를 설계하는 방식, 학문적 성실성을 정의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도록 요구한다.

AI는 대학 교육을 위협하기도 하고,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도, 공포도 아닌 성찰이다. 대학은 AI를 부정하거나 무작정 떠밀리듯 받아들이는 대신, 교육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결국 문제는 AI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지혜다. AI는 대학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교육은 이제 금지냐 수용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길들이고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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