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경쟁의 조건 ③ ]한국의 AI 전략에는 대학이 있는가 : 인재·대학·국가 전략이 엇갈리는 지점

This post is also available in: English (영어)

AI 전략은 있는데, 대학은 보이지 않는다

각국이 AI를 국가 전략의 핵심 의제로 채택하면서, ‘AI 국가 전략’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정부 문서와 정책 담론에는 AI 산업 육성, AI 인재 양성, 디지털 전환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월드뱅크 『Digital Progress and Trends Report 2025』의 문제의식을 한국의 맥락에 대입해 보면, 하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국의 AI 전략 속에 대학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대학은 분명 인재 양성의 핵심 주체로 언급되지만, 전략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고서는 AI 경쟁을 ‘기초체력’의 문제로 정의하면서, 그 체력이 어디에서 축적되는지를 묻는다. 연결성이나 연산능력은 국가 투자와 산업 정책의 영역으로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지만, 역량과 인재는 대학과 고등교육 체계를 거치지 않고는 축적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에서 AI 전략은 산업 육성과 기술 도입 중심으로 설계되고, 대학은 그 전략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가 지속될 경우, AI 전략은 단기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 역량 축적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월드뱅크는 보고서에서 ‘AI 준비도(AI readiness)’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별 전략의 방향을 비교한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도입했는가를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라, AI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적 기반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AI 준비도가 높은 국가는 산업과 교육, 연구와 정책이 비교적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대학은 그 연결의 핵심 고리로 기능한다. 반면 준비도가 낮은 국가는 기술 도입과 인재 양성이 분절된 채 병렬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 전략에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는지는 국가의 우선순위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다. 대학이 단순히 인력 공급 기관으로만 인식될 경우, 교육과 연구는 산업 변화에 종속되고 장기적 축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반대로 대학이 AI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될 경우, 컴퓨트 접근성, 연구 환경, 교육과정 혁신은 정책의 중심 의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월드뱅크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AI 시대에 국가는 무엇을 투자 대상으로 삼고, 무엇을 구조적으로 설계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인재는 키워도 남지 않는다, 준비도의 다른 얼굴

월드뱅크 보고서가 지적하는 AI 준비도의 또 다른 핵심은, 인재를 얼마나 많이 길러내는가보다 그 인재가 어떤 구조 안에 머무는가에 있다. 많은 국가가 AI 인재 양성을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인재가 연구와 교육, 산업을 오가며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생태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AI 인재 양성은 성과 지표로는 존재하지만, 국가의 장기적 역량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이를 AI 시대의 ‘보이지 않는 병목’으로 묘사하며, 인재 유출과 역량 단절이 반복되는 구조를 경고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상황은 월드뱅크의 문제의식을 적용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다. 최근 교육부는 인공지능(AI) 인재양성을 위한 전담 추진단을 출범시키고, AI 윤리와 거점대학 육성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AI 인재 문제를 개별 사업이 아니라 정책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논의는 아직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양성된 인재가 대학과 연구 현장에 축적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구조까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월드뱅크가 말하는 AI 준비도는 바로 이 지점, 즉 인재가 순환하고 축적되는 제도적 설계까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질문을 던진다.

광고
대학

정책은 있지만, 대학은 전략의 중심에 있는가

한국의 AI 인재 정책을 보다 넓게 보면, AI는 교육 정책 전반에서 중요한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2026년 교육부 업무계획에서도 AI 보편교육, 미래 AI 인재 양성, 대학원 혁신과 융합 연구 지원, 지방대학 육성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돼 있다. 이는 AI가 더 이상 특정 전공이나 소수 인재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체계 전반의 의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조는 AI가 ‘여러 중점 과제 중 하나’로 배치돼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월드뱅크 보고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점이 바로 질문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AI 준비도가 높은 국가는 AI를 교육 정책의 한 영역으로 다루지 않고, 교육과 연구, 인재 정책을 관통하는 중심 축으로 재배치한다. 대학은 이때 인재 공급 기관이 아니라 AI 역량이 축적되는 핵심 인프라로 설계된다. 반면 AI가 여러 정책 목표 중 하나로 병렬 배치될 경우, 대학은 전략의 중심이 아니라 정책 대상 중 하나로 남게 된다. 한국의 교육부 업무계획은 AI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대학이 AI 국가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재정의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 간극이 바로 월드뱅크가 말하는 ‘준비도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대학을 전략의 중심에 둔다는 것의 의미

월드뱅크 보고서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선언이나 개별 사업이 아니라, 어떤 제도를 중심에 두고 설계하느냐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대학을 AI 전략의 중심에 둔다는 말은, 몇 개의 AI 학과를 신설하거나 특정 사업을 확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대학이 AI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인재가 연구와 교육을 통해 순환하며, 다음 세대의 역량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국가가 책임지고 설계한다는 뜻에 가깝다. 컴퓨트 접근성, 연구 환경, 교육과정 혁신, 인재의 장기적 경로가 하나의 전략으로 묶이지 않는다면, 대학은 여전히 중요한 제도일 수는 있어도 전략의 중심이 되기는 어렵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AI 인재 정책은 아직 과도기적 성격을 띤다. 인재 양성의 필요성은 분명히 인식되고 있고, 제도적 논의도 시작됐지만, 대학이 AI 국가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재배치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학은 여전히 여러 정책 수단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으며, AI 전략은 산업·기술 정책의 언어로 더 강하게 설명된다. 월드뱅크가 말하는 AI 준비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전략의 부재라기보다 전략의 무게중심이 아직 어디에 있는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신호에 가깝다.

한국의 AI 전략에는 어떤 대학이 필요한가

이 시리즈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한국의 AI 전략은 어떤 대학을 전제로 설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가는 대학인가, 아니면 변화 속에서도 장기적 역량을 축적하는 대학인가. 인재를 배출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인재가 머물며 다시 길러지는 공간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질 때, AI 인재 양성은 비로소 숫자와 사업을 넘어 국가의 기초체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월드뱅크 보고서는 AI 경쟁을 ‘이미 시작된 미래’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진행 중인 구조적 경쟁이며, 결과는 지금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고에 가깝다. 대학은 이 경쟁의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중심에 서는 존재도 아니다. 한국의 AI 전략이 대학을 어떤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AI 시대의 준비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 시리즈가 던진 질문은 여기서 멈춘다.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더 빠르게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한국AI전략 #AI인재양성 #대학과국가전략 #AI준비도 #고등교육정책 #대학의역할 #AI국가경쟁력 #월드뱅크보고서 #AI인재 #스포트라이트유

편집자 코멘트

이번 연재는 월드뱅크 『Digital Progress and Trends Report 2025』를 출발점으로 삼아, 인공지능(AI) 경쟁을 기술 성능이나 산업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체력’의 문제로 재해석했다. AI 확산을 떠받치는 연결성, 연산능력, 맥락, 역량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특히 인재와 교육의 영역은 오랜 제도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을 보고서는 분명히 하고 있다. 연재는 이 문제의식을 대학으로 확장해, AI 시대에도 대학이 자동적으로 중심에 서지 않는 현실과 그 구조적 이유를 짚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AI 인재 정책과 교육 전략을 이 틀에 대입해, 대학이 AI 국가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설계되고 있는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AI 시대의 경쟁은 무엇을 더 빠르게 도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고 축적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교육, 그리고 대학을 바라보는 선택에서 갈릴 것이다.

Social Share

함께 읽어보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