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아시아의 격차를 다시 벌릴까… IMF 워킹페이퍼가 그린 ‘두 개의 AI 격차’

한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선진국, AI 조기 도입으로 성장 수혜 가능성

후발국은 자본비용 상승으로 투자·성장 둔화… AI 도입까지 더 늦어질 수도

국가 내부에서도 고숙련·자산보유층에 혜택 집중 가능성

AI 경쟁력, 기술 확보 넘어 인적자본·생산성·교육 역량이 좌우

인공지능(AI)은 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에 직면한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간한 워킹페이퍼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AI의 확산 과정이 아시아 국가 간 경제 격차를 오히려 확대하고, 각 국가 안에서도 숙련 수준과 세대에 따른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한국은 싱가포르, 일본 등과 함께 AI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아시아의 선도 국가군으로 분류됐다. 높은 자본집약도와 디지털 인프라, 숙련 인력, 생산성 등이 AI 도입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제시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AI 시대의 경쟁은 기술을 먼저 사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단순한 시간 차이가 아니라, 선발국의 우위가 후발국의 추격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IMF 아시아태평양국의 Natasha Che와 Weining Xin, 영국 에식스대 Taichi Yoshida가 작성한 ‘AI and Economic Divergence in Asia’로, 2026년 8월 IMF Working Paper(WP/26/166)로 발표됐다. 연구진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자본, 노동력, 숙련도, 생산성, 인구구조 등을 반영한 모형을 통해 AI 도입 시점과 성장, 소득분배 변화를 시뮬레이션했다. 다만 IMF 워킹페이퍼는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로, IMF 집행이사회나 경영진의 공식 견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AI를 먼저 도입한 국가가 성장도 먼저 얻는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에서 AI를 단순히 기업이나 개인이 생성형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준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와 특화 반도체, 클라우드 플랫폼, 모델 개발과 같은 기반시설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AI가 경제 전반의 생산방식을 변화시키는 ‘경제 전체 수준의 AI 도입(economy-wide AI adoption at scale)’에 초점을 맞췄다.이 기준에서 AI를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국가는 이미 자본이 충분하고 숙련 노동력과 생산성이 높은 국가다. 본집약적인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도 국가별 준비 수준은 크게 달랐다. 연구진은 싱가포르와 한국 등을 강한 디지털 인프라와 높은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이미 선도권에 근접한 국가로 평가했다. 일본과 한국처럼 노동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에서는 오히려 노동력 부족이 자본과 AI 기술을 활용할 유인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처럼 상대적으로 젊고 노동력이 증가하는 국가에서는 자본 대비 노동 공급이 많아 경제 전체가 자본집약적 AI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는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진국들은 AI 발전 속도를 달리 설정한 시나리오에서도 초기 도입국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AI 도입 이후 투자 증가와 자본심화를 통해 기준 시나리오보다 성장률이 빠르게 상승하는 사례로 제시됐다.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지만, AI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노동력 부족이 오히려 자동화와 자본집약적 생산방식의 경제성을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문제는 ‘늦게 도입하면 늦게 혜택을 받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AI 후발국이 단순히 AI의 성장 효과를 늦게 받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AI를 먼저 도입한 국가들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시스템 등 새로운 자본을 대규모로 필요로 한다. 여러 선도국에서 동시에 투자가 확대되면 세계적으로 자본 수요가 증가하고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 이때 아직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못한 국가들도 높아진 자본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자본조달 비용이 높아지면서 투자가 줄고 자본 축적 속도가 늦어지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결국 AI 생산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시점도 다시 뒤로 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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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선도국의 AI 투자 확대 → 세계 자본 수요 증가 → 자본비용 상승 → 후발국 투자 위축 → AI 도입 지연’이라는 자기강화적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것이 기존의 기술 격차와 다른 AI 시대의 새로운 국가 간 경제적 분화 메커니즘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실제 시뮬레이션에서는 아시아 선진국이 즉각적인 AI 도입과 성장 효과를 얻는 반면, 상당수 신흥국은 약 10~20년의 시차를 두고 AI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국의 도입은 이보다 훨씬 늦어질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AI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모든 국가가 더 빨리 AI 시대에 진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모형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선발국의 자본 수요가 더욱 커지고 국제 금리가 상승하면서 일부 신흥국의 도입이 2040년대로, 저소득국은 2050~2060년대까지 늦춰지는 결과도 나타났다. 기술이 빨리 발전할수록 준비된 국가에는 더 큰 기회가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국가에는 오히려 추격해야 할 거리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AI 선도국이 된다고 모든 국민이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간 격차보다 한국에 더 직접적인 질문도 남는다. 한국이 AI 전환의 초기 수혜국이 된다면 그 성장의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연구 모형에서는 AI가 확산될수록 고숙련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자본과 숙련 노동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할 경우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은 저숙련·중숙련 노동자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숙련 집단의 임금이 AI가 없는 경우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증가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임금 격차는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세대 간 격차도 나타났다. 젊은층과 중년층이 AI로 얻는 추가 소득은 주로 임금 상승에서 발생한다. 반면 오랜 기간 자산을 축적한 고령층은 임금뿐 아니라 AI 투자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자본수익의 혜택을 함께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연구모형에서는 자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고령층의 소득 증가가 노동소득 의존도가 높은 젊은층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더라도 그 추가적인 파이가 노동과 자본, 숙련 집단과 세대 사이에 동일하게 배분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한국의 구체적인 임금이나 세대별 소득 전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연구의 숙련·세대별 세부 시뮬레이션은 일본과 싱가포르 등을 대표 사례로 제시하고 있으며, 직업별 실제 AI 노출도나 기업별 도입 속도까지 반영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 역시 실제 AI는 고숙련 노동자를 항상 보완하고 저숙련 노동자를 대체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생성형 AI가 숙련도가 낮거나 경험이 적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더 크게 높여 조직 내부 격차를 줄였다는 기존 연구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누가 반드시 AI의 승자이고 패자인가’를 예측한 결과라기보다 AI가 자본집약적·숙련편향적 기술로 발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분배 문제를 보여주는 시나리오로 읽어야 한다.

결국 AI 경쟁력의 기반은 ‘인적자본’

그렇다면 AI 후발국은 이미 벌어진 격차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연구진의 답은 그렇지 않다. 시뮬레이션에서는 고숙련 인력의 비중을 높이고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을 동시에 개선하는 구조개혁을 장기간 추진할 경우 AI 도입 시점을 상당폭 앞당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구진이 설정한 적극적인 구조개혁 시나리오에서는 당초 2050~2060년대에 AI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난 일부 후발국의 도입 시점이 10~20년가량 앞당겨졌다. 구조개혁 자체가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AI를 보다 일찍 활용할 수 있게 해 추가적인 성장 효과까지 얻는 ‘이중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이 AI 준비도를 높이기 위해 제시한 구조적 조건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인적자본이다. 고등교육 확대와 직업교육·훈련을 통한 숙련 인력 확보, 노동생산성 향상, 효율적인 자본 배분과 인프라 확충 등이 AI 도입의 기반으로 제시됐다. 이는 AI 경쟁을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거대언어모델을 둘러싼 기술 경쟁만으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I를 실제 산업과 사회의 생산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국가의 AI 전환 속도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미 AI 도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국가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고숙련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기존 노동자가 AI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며, 기술 변화에 따른 직무 전환을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선도국이라는 위치가 사회 전체의 AI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대학 역시 AI를 사용하는 학생을 늘리는 수준을 넘어 어떤 전공과 직무에서 AI와 인간의 역할이 재편되는지 살피고, 변화한 산업구조에 맞춰 인력을 교육하는 역할을 요구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는 이번 워킹페이퍼가 대학정책을 직접 분석해 제시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연구가 강조한 인적자본과 숙련 형성의 중요성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육적 시사점이다.

이번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구에서 제시된 국가별 AI 도입 시점은 실제 미래를 예측한 연도가 아니다. 연구진 역시 이를 국가의 구조적 준비 정도를 비교하기 위한 ‘순서와 방향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로 해석해야 하며, 정확한 달력상의 예측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연구에서 말하는 AI 도입도 현재 기업이나 대학에서 생성형 AI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AI가 경제 전반에 확산돼 자본과 노동의 구성 자체를 바꾸는 대규모 전환을 뜻한다.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미국의 과거 자본비중 증가 속도의 2배, 5배, 10배로 설정한 세 가지 시나리오 역시 미래 AI 발전 속도를 예측한 것이 아니다. 특히 10배 시나리오는 연구진이 가능한 효과의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설정한 극단적인 상한 시나리오에 가깝다.

또 국가 간 자본 이동이 자유롭다는 가정이나 경제 전체가 일정 시점에 AI 기술로 전환한다는 가정 등 실제 경제보다 단순화된 조건도 포함돼 있다. AI 종류와 산업별 차이, 무역과 해외직접투자를 통한 기술 확산, 기업 간 AI 도입 속도 차이 등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AI가 모든 국가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속도로 혜택을 가져오는 기술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아시아 경제를 이끌었던 국가 간 경제적 수렴의 흐름이 약화되는 시점에 AI라는 새로운 범용기술이 등장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누가 AI를 먼저 사용하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AI를 경제 전체의 생산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본·인프라·인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국이 AI 경쟁의 선두에 설 수 있다면 다음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한국이 AI의 승자가 될 것인가’를 넘어, ‘AI 성장의 혜택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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