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논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있다. 연구의 난이도가 낮아졌기 때문도, 연구 인력이 급증했기 때문도 아니다. 연구 현장 전반에 생성형 인공지능, 특히 대형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s)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과학적 글쓰기와 연구 생산의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문 초안 작성, 문장 구성, 표현 정제에 이르기까지 AI 도구가 개입하는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이 변화는 주요 프리프린트 서버의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arXiv, bioRxiv, medRxiv 등 세 개의 대형 플랫폼에 축적된 수백만 건의 원고를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의 확산 이후 논문 제출 속도와 전체 생산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들의 논문 참여 비중이 함께 늘어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언어적 장벽이 완화되면서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 연구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논문의 언어적 완성도와 문장 구조, 서술의 정교함은 오랫동안 연구의 질을 가늠하는 간접 지표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대형 언어모델이 연구 글쓰기 전반에 개입하기 시작한 지금, 이러한 신호들이 여전히 연구의 실질적 기여와 신뢰도를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과학 생산의 양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연구의 질을 판단해 온 기존 기준 역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드러낸 분석이 Science에 실린 「Scientific production in the era of large language models」다. 이 연구는 arXiv, bioRxiv, medRxiv에 공개된 수백만 건의 프리프린트 원고를 대상으로, 생성형 AI 도입 이후 과학 논문 생산의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추적했다. 단순히 특정 도구의 사용 여부를 묻는 방식이 아니라, 논문 제출 시점과 언어적 특성, 저자 구성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기존 논의와 구별된다. 분석 결과,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후 논문 생산량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원고 작성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논문 제출 주기가 짧아졌고, 특히 프리프린트 단계에서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졌다. 연구자들이 초기 결과를 공개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과학적 아이디어가 유통되는 전체 주기 역시 압축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들의 논문 비중이 함께 증가한 점은, 언어 보조 도구로서 대형 언어모델이 수행하는 역할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연구가 주목한 변화는 생산량 증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논문은 생성형 AI의 개입 이후, 언어적 복잡성이나 문장 수준과 같은 기존의 질적 지표들이 더 이상 연구의 실제 기여도를 안정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문장이 더 매끄럽고 구조가 정돈된 논문이 반드시 더 높은 학문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구의 질을 판단해 온 전통적인 신호들이, AI 보조 글쓰기 환경에서는 점점 불확실한 기준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의 질을 둘러싼 이러한 불확실성은 곧바로 연구 평가와 동료심사(peer review) 시스템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논문 심사는 오랫동안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이루어져 왔고, 그 과정에서 언어적 완성도와 서술의 일관성은 중요한 판단 보조 신호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대형 언어모델이 글쓰기 전반을 보조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신호들이 더 이상 연구의 독창성이나 실질적 기여를 안정적으로 대변하지 못한다. 심사자는 점점 더 ‘잘 쓰인 논문’과 ‘잘 연구된 논문’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일부 연구 분야나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리프린트 서버를 중심으로 연구 결과의 공개 속도가 빨라지면서, 심사 이전 단계에서부터 이미 상당한 양의 논문이 유통되고 있다. 이는 연구 아이디어의 확산을 촉진하는 동시에, 검증되지 않은 결과와 정제된 언어가 결합된 원고가 빠르게 소비되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생성형 AI가 연구의 ‘내용’이 아니라 ‘표현’을 개선하는 도구로 활용될수록, 평가자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Scientific production in the era of large language models」가 던지는 질문은 기술 활용의 윤리성 여부에 머물지 않는다. 연구 생산의 속도와 외형이 바뀌는 조건에서, 기존의 평가 체계가 여전히 연구의 질을 선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한다. 논문 수, 인용 가능성, 문장의 정교함과 같은 지표들이 AI 보조 환경에서도 유효한 기준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의 자동화가 던진 저자성의 문제
생성형 AI의 확산은 연구 윤리 논의의 초점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윤리는 주로 표절, 데이터 조작, 부적절한 저자 등재와 같은 행위를 중심으로 정립돼 왔다. 그러나 대형 언어모델이 연구 글쓰기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누가 무엇을 기여했는가’라는 저자성(authorship)의 기준 자체가 다시 질문받고 있다. 연구 아이디어와 실험 설계, 데이터 해석은 연구자가 수행했지만, 논문의 상당 부분이 AI의 도움으로 작성된 경우 그 기여는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기존의 연구 윤리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간주할 경우, 계산기나 통계 소프트웨어처럼 별도의 기여 주체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반면, 연구 결과의 표현과 논증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도구를 기존의 보조 수단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문장이 연구의 해석과 결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그 책임과 검증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히 AI를 저자로 표기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기 어렵다. 핵심은 연구 결과에 대한 책임성과 재현 가능성이다. 연구자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문장과 논증을 충분히 검토하고 검증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는지가 중요해진다. 생성형 AI가 연구 과정의 보이지 않는 일부가 될수록, 연구 윤리는 기술 사용의 허용 여부를 넘어서 연구자의 책임 범위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지라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연구 글쓰기 환경의 변화는 곧바로 연구 평가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논문 수, 인용 지표, 저널의 위계와 같은 양적 지표는 오랫동안 연구자의 성과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으로 작동해 왔다. 여기에 논문의 언어적 완성도와 논증의 정교함이 암묵적인 품질 신호로 결합되면서, 평가 과정은 일정한 효율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이러한 요소들을 빠르게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지표들이 연구의 실질적 기여를 선별하는 기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Scientific production in the era of large language models」가 보여주는 변화는, 평가 체계가 전제해 온 조건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논문 생산 속도가 빨라지고 언어적 장벽이 낮아진 환경에서는, 더 많은 논문이 더 짧은 시간 안에 제출된다. 이는 연구의 다양성과 접근성을 확대하는 효과를 낳는 동시에, 평가자가 검토해야 할 대상의 양을 급격히 늘린다. 결과적으로 동료심사는 더 제한된 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기존에 활용해 온 간접 지표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역설적으로, AI가 평가 기준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그 기준에 대한 의존을 더 심화시키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연구 평가의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단순한 산출물의 수나 외형적 완성도를 넘어, 연구 질문의 독창성, 데이터와 방법론의 타당성, 재현 가능성 등 보다 본질적인 요소를 중심에 두는 평가 방식으로의 이동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개별 심사자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대학과 연구기관 차원에서 성과 평가 체계, 승진과 재임용 기준, 연구비 배분 방식까지 함께 재설계되지 않는다면, 생성형 AI 환경에서의 연구 평가는 점점 더 형식화될 위험을 안고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생성형 AI가 연구 생산의 일부가 된 환경에서, 대학과 연구기관이 마주한 과제는 단순히 ‘허용 여부’를 정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AI 도구를 활용하고 있으며, 문제는 그 사용을 어떻게 관리하고 평가 체계 안에 통합할 것인가에 있다. 연구윤리 지침, 성과 평가 기준, 연구비 심사 방식이 서로 분절된 채로 유지되는 한, 생성형 AI는 각 제도의 빈틈을 따라 비공식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구 성과가 승진과 재임용, 연구비 확보와 직결되는 대학 환경에서는 변화의 압력이 더욱 크다. 논문 생산 속도가 빨라지고 외형적 완성도가 쉽게 확보되는 조건에서, 기존의 양적 지표 중심 평가가 유지될 경우 연구자들은 점점 더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다. 이는 연구의 깊이와 검증 과정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하는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을 통제하는 규범이 아니라, 기술을 전제로 한 제도의 재설계다. 연구 질문의 독창성과 방법론의 타당성, 데이터의 투명성과 재현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보다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동시에 연구자가 AI를 어떤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 투명성 장치 역시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연구자의 창의성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가깝다.
Science에 실린 「Scientific production in the era of large language models」는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논문이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되는 시대에 연구의 질은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기준으로 연구를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전보다 더 복잡해졌다. 생성형 AI는 연구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체라기보다, 우리가 연구를 바라보는 기준과 제도를 다시 묻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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