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위 이후의 대학] ② AI가 바꾼 첫 일자리

대졸 신입에게도 ‘경험’을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역설

대학 졸업 후 처음 맡는 일은 대개 단순했다. 자료를 찾고, 회의록을 정리하고, 보고서 초안을 만들고, 엑셀 데이터를 다듬고, 고객 응대 문안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 업무들은 조직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핵심 업무는 아니었지만, 신입사원이 일을 배우는 첫 계단이었다. 대졸 신입은 그 계단을 밟으며 조직의 언어와 산업의 흐름, 보고의 방식, 협업의 감각을 익혔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 오래된 경로를 흔들고 있다. AI가 고위 관리자의 전략적 판단을 한 번에 대체하고 있다기보다, 대졸 신입이 맡아왔던 기초적이고 반복적인 인지 노동을 먼저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업무들이 단순한 ‘잡무’가 아니라 청년들이 일을 배우는 훈련 과정이었다는 데 있다.

1회에서 살펴본 중국의 대졸자 재교육 정책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대학 졸업생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대졸자와 재학생을 직업기술교육, 기술사 클래스, 마이크로 크레덴셜로 다시 연결하고 있다. University World News는 중국 지방정부가 반도체, 인공지능, 첨단제조, 항공우주 등 전략산업 분야로 졸업생을 연결하기 위해 직업교육과 인턴십, 일자리 매칭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만의 청년실업 대책이 아니라, 학위와 일자리 사이의 연결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재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AI가 가장 먼저 바꾸는 곳, 엔트리 레벨

세계경제포럼(WEF)은 2026년 보고서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 of Entry-Level Work’에서 AI가 조직의 채용, 인재 개발, 승진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그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엔트리 레벨이라고 분석했다. WEF는 전 세계 젊은 노동자 3명 중 1명 이상이 AI에 따른 직무 변화에 중간 이상 노출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AI가 대졸 신입을 일괄적으로 대체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변화는 신입 일자리의 내용이다. AI가 자료 정리, 요약, 번역, 문서 초안, 기초 분석, 반복적 고객 응대 등 일부 업무를 대신하면서, 신입에게 남는 일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입사 후 배우며 수행하던 일이 이제는 입사 전부터 어느 정도 증명해야 하는 역량이 되고 있다.

미국 시사매체 Washington Monthly는 ‘How AI Broke the Entry-Level Job’ 기사에서 이 문제를 “대학이 무의미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4년제 학위가 여전히 가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 기사는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단정에는 선을 그었다. 다만 AI가 신입 일자리의 낮은 계단을 줄이고, 기업이 신입에게 더 많은 경험과 더 어려운 업무 수행 능력을 요구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 인용된 ‘경험 크립’이라는 표현은 현재 노동시장의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어다. 경험 크립은 원래 신입에게 열려 있던 직무에서도 점점 더 많은 경험을 요구하는 현상을 뜻한다. 대졸 신입은 일을 통해 경험을 쌓아야 하지만, 이제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먼저 경험을 증명해야 하는 역설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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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은 일자리인가, 쉬운 업무인가

AI와 신입 채용을 둘러싼 자료들은 서로 다른 결론을 보여준다. 일부 자료는 AI가 신입 채용을 줄이고 있다고 경고하고, 다른 자료는 AI가 오히려 새로운 신입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AI 시대의 대졸 취업난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AI가 신입 일자리를 모두 없앤다”는 결론보다 “AI가 신입 일자리의 구조를 바꾼다”는 분석이 더 정확하다.

ResumeTemplates.com이 2026년 6월 PRNewswire를 통해 발표한 미국 고용관리자 1,000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는 대졸 신입을 채용하고 훈련하기보다 AI 도구에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55%는 이미 신입 채용 예산의 일부를 AI 도구로 전환했다고 밝혔고, 45%는 시니어 직원 1명이 AI를 활용해 여러 명의 신입이 하던 일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편했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 결과만 보면 AI가 신입 일자리를 직접 대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기술과 금융처럼 문서, 데이터, 코드, 분석 업무가 많은 산업에서는 AI에 대한 투자 선호가 더 높게 나타났다. 기업 입장에서는 AI가 빠르게 도입되고, 반복 업무 처리 속도가 높아지고, 인건비와 교육비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자료도 있다. Strada Institute for the Future of Work는 2026년 보고서에서 AI 도구가 엔트리 레벨 채용을 줄이기보다 늘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응답한 기업도 많다고 밝혔다. Strada는 AI를 도입했거나 검토한 고용주 가운데 2026년 엔트리 레벨 채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는 응답이 감소할 것으로 보는 응답보다 2.7배 많다고 분석했다. Washington Monthly도 이 자료를 인용하며 “신입 노동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신입 노동자의 쉬운 업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쟁점은 숫자의 단순 증감이 아니다. 신입 일자리가 유지되더라도 그 내용이 달라진다면, 대학과 학생이 준비해야 할 역량도 달라진다. AI가 단순 업무를 가져가면 신입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판단, 검증, 소통, 협업, 문제 해결 능력이 요구된다. 과거의 엔트리 레벨이 중간 난이도의 업무로 올라가는 것이다.

스위스의 ‘주니어 직무’의 변화

이 변화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로이터는 2026년 6월 스위스 구인 플랫폼 jobs.ch의 연구를 인용해 스위스의 엔트리 레벨 채용 공고 비중이 2025년에 2019~2022년 평균보다 32%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는 730만 개 이상의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로, 마케팅, 행정, 금융, IT 분야가 특히 AI 도입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AI 노출도가 높은 분야에서 시니어 직무 공고는 늘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AI에 노출된 직무군에서 시니어 포지션은 2025년에 2023년 이전 4년 평균보다 26% 증가한 반면, 주니어 포지션은 같은 기간 16% 감소했다. 반대로 보건의료, 건설, 숙련 기능 분야 등은 여전히 주니어 인력 수요가 강했다.

이 결과는 AI가 모든 청년 일자리를 같은 방식으로 흔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서와 데이터 중심의 사무·지식서비스 분야에서는 신입이 맡던 업무 일부가 자동화될 수 있다. 반면 현장성과 대면성, 숙련 기능이 강한 분야에서는 여전히 인력 수요가 유지된다. 결국 AI 시대 대졸 취업난은 “청년 일자리 전체의 위기”라기보다 “대졸자가 주로 진입해왔던 화이트칼라 입문 경로의 변화”에 가깝다.

이 흐름은 채용 방식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대학고용협회(NACE)는 2026년 1월 발표에서 고용주의 기술 기반 채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대학생들은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ACE의 Job Outlook 2026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0%가 엔트리 레벨 채용에 기술 기반 채용 방식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65%보다 높아진 수치다.

기술 기반 채용은 학위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학위와 전공을 보되, 지원자가 실제로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 능력을 어떤 경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지를 더 강하게 확인하는 방식이다. NACE는 졸업예정자 다수가 진로 관련 역량 개발 활동에 참여했음에도, ‘기술 기반 채용’이라는 용어 자체를 알고 있는 비율은 40% 미만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노동시장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학의 역할이 달라진다. 학생에게 비교과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경험이 어떤 직무역량과 연결되는지, 학생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었는지,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자료와 결과를 어떻게 검증했는지까지 설명 가능한 체계가 필요하다. 대학 안에서의 활동이 노동시장 밖에서는 읽히지 않는다면, 학생의 경험은 취업 과정에서 충분한 신호가 되기 어렵다.

AI 교육의 이중 기준

AI는 대학 교육에도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AI 사용을 부정행위로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이 신입에게 AI 활용 능력을 요구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학교에서는 쓰면 안 되는 도구가 직장에서는 필수 역량이 되는 모순을 경험한다. MarketWatch는 최근 대학 졸업생들이 학교와 직장 사이에서 AI 사용을 둘러싼 이중 기준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대학에서는 과제의 진정성과 표절 문제 때문에 AI 사용을 제한하지만, 기업은 신입에게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일하고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간극은 대학이 AI를 단순히 허용할지 금지할지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지의 문제로 확장된다.

AI 활용 교육은 프롬프트 작성법만 가르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은 AI가 만든 결과물의 오류와 편향을 확인하고, 출처와 근거를 검토하고, 전공 지식에 비추어 결과를 수정하며, 윤리적 문제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AI를 잘 쓰는 능력은 단순한 기술 사용 능력이 아니라 문제 정의, 자료 검증,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된 역량이다.

기업이 대졸 신입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더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의 기본 역량이 문서 작성, 성실성, 전공 지식, 조직 적응력 중심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여기에 새로운 능력이 더해진다. AI 도구를 활용해 초안을 만들고, 그 결과를 검증하고, 데이터와 문서의 오류를 찾아내고,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며, 사람과 협업해 결과물을 완성하는 능력이다.

Washington Monthly는 Strada 조사 결과를 인용해 기업들이 신입에게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업, 직장 준비도, 자기관리 능력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기업들이 이러한 역량을 원하면서도, 성적표만으로는 이를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높은 학점과 학업 성취만으로 구성된 지원자보다 인턴십이나 산업 경험을 가진 지원자를 더 높게 평가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이는 한국 대학에도 익숙한 장면이다. 많은 대학이 전공교육, 비교과, 현장실습, 캡스톤디자인, 산학 프로젝트,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이 졸업할 때 그 경험을 하나의 직무역량 서사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학생은 활동을 많이 했지만, 기업은 그것이 어떤 역량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대학은 이제 경험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을 증명 가능한 형태로 구조화해야 한다.

첫 일자리를 대신할 경험 인프라

AI 시대 대학의 과제는 학생에게 첫 일자리를 대신할 경험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신입을 채용해 교육했다. 그러나 기업이 신입 교육 비용을 줄이고,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선호하고, 일부 기초 업무를 AI로 대체한다면 대학은 학생이 졸업 전에 일정 수준의 실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현장실습은 졸업 직전 취업 준비 프로그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산학 프로젝트는 일부 학생의 특별활동이 아니라 전공 수업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비교과 프로그램은 단순 참여 시간이 아니라 수행 과업과 결과물 중심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마이크로디그리와 나노디그리는 대학 내부 인증을 넘어 산업계가 이해할 수 있는 직무역량의 언어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AI 시대의 경험 인프라는 단순한 현장 노출을 넘어야 한다. 학생이 실제 문제를 정의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AI 도구를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고, 그 결과를 검증하고, 타인에게 설명하는 전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이 과정이 쌓이면 학생은 “AI 교육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봤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AI 시대의 노동시장은 자격증 보유 여부만 보지 않는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정의했는지, 어떤 자료를 활용했는지, AI 결과물을 어떻게 검토했는지, 최종 판단은 어떻게 내렸는지까지 확인하려 한다. 대학 교육도 이 흐름에 맞춰 과제와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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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첫 계단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AI가 대졸 신입의 일자리를 모두 없애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 조사에서는 AI가 엔트리 레벨 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AI가 새로운 신입 역할을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첫 일자리의 성격은 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신입 자체가 아니라, 신입이 일을 배우던 쉬운 업무일 수 있다. AI가 기초 업무를 처리하면 신입은 처음부터 더 높은 수준의 판단과 경험을 요구받는다. 과거에는 입사 후 배웠던 업무가 이제는 입사 전 포트폴리오와 프로젝트, 인턴십, 현장실습, AI 활용 경험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 변화는 대학에 부담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대학이 학생에게 전공 지식과 함께 실제 문제 해결 경험, AI 활용 능력, 협업과 소통 역량을 설계해줄 수 있다면, 학위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학위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에서 “대학에서 무엇을 해봤고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로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첫 일자리는 청년에게 단순한 취업 자리가 아니다. 일을 배우는 계단이고, 사회로 진입하는 통로이며,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험이다. AI가 그 계단의 일부를 없애고 있다면, 대학은 새로운 계단을 만들어야 한다. 강의실의 지식, 현장의 문제, AI 도구, 사람과의 협업, 검증 가능한 결과물을 연결하는 경험 인프라가 그것이다.

AI는 신입의 일자리를 단순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신입에게 요구되는 출발선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어떤 경험과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할까. 마지막 회에서는 마이크로 크레덴셜, 현장실습, AI 역량 인증을 중심으로 한국 대학의 과제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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