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줄이고, 미국은 새 수요를 찾고, 호주는 완충한다
학령인구 감소는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율 하락, 청년 인구 감소, 대학 진학에 대한 인식 변화, 공공재정의 제약, 국제학생 시장의 불확실성은 세계 고등교육이 동시에 마주한 조건이 됐다. 그러나 같은 인구절벽 앞에서도 각국 대학과 정부의 대응은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나라는 대학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어떤 나라는 전통적인 청년 신입생이 아닌 성인학습자와 직업교육 시장을 새 수요로 본다. 또 어떤 나라는 정부가 대학 재정의 급격한 추락을 막기 위해 완충 장치를 두고, 다른 나라는 국제학생 유치와 실무형 교육을 통해 국내 인구 감소의 일부를 보완하려 한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 HEPI가 최근 보고서에서 제기한 문제는 ‘인구 감소’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HEPI는 잉글랜드 고등교육이 인구 감소, 재정 압박, 대학 간 모집 경쟁이 결합된 구조적 긴장 상태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특히 상위권 대학이 입학 문턱을 낮추고 더 넓은 성적대의 학생을 받아들이면서, 중하위권 대학의 학생 기반이 약화되는 현상을 ‘약탈적 모집’이라는 논쟁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영국 고등교육 내부의 특수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 각국이 겪는 고등교육 위기는 같은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일본의 문제는 공급 과잉과 대학 수 조정에 가깝고, 미국의 문제는 청년 신입생 감소와 고등교육 투자 가치에 대한 의심이 결합된 형태다. 호주는 국내 학령인구보다 국제학생 의존과 정부 재정 조정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고, 독일은 국제학생 유치와 실무형 교육 확장을 통해 다른 경로를 만들고 있다.
2회차의 질문은 단순하다. 같은 인구절벽 앞에서 세계 대학은 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은 이 가운데 무엇을 참고해야 하는가.
일본, 대학을 줄이는 나라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공급 과잉 문제를 경험한 나라다. 일본의 대학 구조조정 논의는 최근 들어 더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되고 있다. 일본 정책연구기관 IPP Japan은 2026년 5월 공개한 분석에서, 일본 재무성의 자문기구인 재정제도심의회 분과회가 2026년 4월 23일 자료를 통해 2040년까지 사립대학 수를 약 40%, 약 250개교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정리했다. 이는 확정된 정책이라기보다 재정 당국을 중심으로 제기된 고강도 구조조정 논의에 가깝지만, 일본 고등교육이 처한 압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다.
일본 언론 보도도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영문판은 2026년 2월, 일본 문부과학성 추계를 인용해 2040년 무렵 일본 사립대학의 약 30%가 높은 재정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2036~2040년 사이 학생 수가 약 10만 명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짚었다. 이는 일본 대학 구조조정 논의가 단순히 일부 대학의 경영 실패 문제가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린 장기적 위기라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 문부과학성 자료도 공급 구조의 문제를 보여준다. 2025년 문부과학성이 공개한 사립대학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본 대학 가운데 소규모 대학 비중이 매우 높고, 이 가운데 사립대학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대도시권 대형 대학과 달리 지방의 소규모 사립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을 더 직접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대학 수와 정원이 유지되면, 정원 미달과 재정 악화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일본식 대응의 장점은 분명하다. 대학 수가 학생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졌다면, 공급 조정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장기간 유지되면 교육의 질이 낮아지고, 학생 모집을 위해 입학 기준을 과도하게 낮추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학이 본래의 고등교육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정부 보조금과 등록금에 의존해 연명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비용이 커진다.
그러나 일본식 감축 모델에는 위험도 있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청년 유입, 지역 인력 양성, 지역 산업과의 연결, 문화적 기반을 담당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지방 대학이 사라지면 그 지역의 대학생 수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지역 기업과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인력 공급망도 약화될 수 있다. 특히 보건, 복지, 교육, 돌봄, 지역 행정 등 지역 필수 분야의 인재 양성 기능은 단기간에 다른 기관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본 사례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대학을 몇 개 줄일 것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줄어드는 과정에서 학생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다. 폐교와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면 재학생의 학습권, 졸업생의 학위 가치, 교직원의 전환, 지역 시설의 활용, 지역사회 공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질서 없는 퇴출은 대학 수를 줄일 수는 있어도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 청년 신입생 이후의 시장을 찾다
미국 고등교육이 마주한 인구절벽은 이미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 서부고등교육위원회 WICHE가 발표한 「Knocking at the College Door」 11판은 미국 고교 졸업생 수가 2025년 정점에 도달한 뒤 2041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WICHE는 정점 대비 2041년까지 전체 고교 졸업생 수가 약 13%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대학들이 말하는 ‘인구절벽’은 막연한 위기론이 아니라 고교 졸업생 규모의 장기 하락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의 특징은 감소가 전국적으로 균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WICHE는 지역별·주별 차이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본다. 일부 남부와 성장 주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거나 증가세를 보일 수 있지만, 북동부와 중서부의 많은 지역은 더 큰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학 밀집 지역에서 전통적인 18세 신입생 풀이 줄어들면, 소규모 사립대학과 지역 기반 대학은 특히 큰 부담을 안게 된다.
미국 대학들이 새 수요를 찾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통적인 청년 신입생만으로 대학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면, 대학은 다른 학습자를 찾아야 한다. 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 Research Center가 2025년 발표한 「Some College, No Credential」 보고서는 미국에서 대학 학점을 일부 이수했지만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사람이 전체 연령 기준 4,310만 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65세 미만 근로연령층만 보더라도 3,760만 명 규모다. 이는 미국 대학들이 성인학습자와 재입학자를 중요한 수요층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미국의 등록 추세에서도 단기·직업교육 수요는 확인된다. 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 Research Center의 2025년 봄학기 등록 추정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체 고등교육 등록은 전년 대비 3.2% 증가했고, 특히 커뮤니티칼리지 등 공립 2년제 부문은 5.4% 증가했다. 이는 고등교육 전체가 단순히 하락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위 유형과 기관 유형에 따라 수요가 재배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4년제 대학 신입생 시장이 줄어드는 가운데, 단기 자격, 직업교육, 재교육 수요는 일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접근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학령인구 감소가 피할 수 없다면 대학은 청년 신입생만 바라볼 수 없다. 대학은 성인학습자, 재직자, 경력 전환자, 지역 산업 종사자, 은퇴 전후 세대까지 교육수요를 넓혀야 한다. 이미 한국에서도 평생교육, 성인학습자 전형, 재직자 과정, 마이크로디그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미국의 성인학습자 시장은 노동시장 유연성, 온라인 학습 수용도, 커뮤니티칼리지 체계, 학점 누적과 재입학 경로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여전히 출신 대학과 학위의 상징성이 강하고, 비학위 자격이 채용과 임금, 승진에서 얼마나 인정받을지 불확실하다. 대학이 아무리 마이크로디그리나 단기 과정을 만들어도 기업과 공공부문이 이를 실질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성인학습자 시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성인학습자를 모집하라”는 구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등교육 수요를 청년 신입생 중심에서 생애주기 전체로 확장하는 제도 설계다. 대학의 학사 운영, 등록금 지원, 고용보험 훈련체계, 기업 채용 기준, 직무 자격 인정, 온라인 교육 품질 관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평생교육이 대학의 빈자리를 메우는 실제 수요가 될 수 있다.
호주, 시장 충격을 정부가 완충하다
호주 고등교육의 특수성은 국제학생 의존도에서 잘 드러난다. 호주 대학은 오랫동안 해외 유학생 등록금에 크게 의존해 왔다. 국제학생은 대학 재정뿐 아니라 호주 경제와 이민정책, 주거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다. 따라서 호주 고등교육의 위기는 단순히 국내 학령인구 감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제학생 규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대학 재정과 직결된다.
호주 정부는 2025년 8월 “지속 가능한 국제교육 체계 관리”를 내세우며 2026년 국제학생 국가계획수준, National Planning Level을 29만5천 명으로 발표했다. 호주 교육부는 이 수치가 2025년보다 2만5천 명 많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는 무제한 확대가 아니라 “관리된 성장”을 표방한 조치다. 국제학생을 계속 받되, 주거와 지역 협력, 교육 품질, 비자 처리와 같은 조건을 함께 관리하겠다는 방향이다.
호주의 또 다른 특징은 재정 완충 장치다. 호주 교육부는 대학협정 개혁과 관련한 Managed Growth Funding 설명에서, Table A 공립대학에 대해 2031년까지 전년도 Commonwealth Grant Scheme 재원의 97.5%를 보장하는 funding floor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학의 수입이 갑자기 급락하지 않도록 일정한 하한선을 두는 장치다. 학생 수와 정책 환경이 변하더라도 대학이 곧바로 재정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완충하는 방식이다.
이 대목은 한국에 중요하다. 정원 감축이 필요하다고 해서 재정을 동시에 급격히 줄이면 대학은 교육 여건을 유지하기 어렵다. 학생 수가 줄어든 대학은 곧바로 강의 축소, 교직원 감축, 학과 통폐합, 시설 투자 중단 압박을 받는다. 이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 재학생의 교육 경험이 나빠지고, 대학의 지역 기능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감축 정책에는 완충 정책이 함께 있어야 한다. 대학에 정원 감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한다면, 일정 기간 동안 재정 하한을 보장하고 그 대신 학과 재구조화, 학생 보호, 교직원 전환, 지역 연계 기능 유지, 교육 품질 개선을 조건으로 붙일 수 있다. 감축을 하되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줄이되 전환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호주식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호주는 연방정부의 재정 배분 구조와 국제학생 의존도가 한국과 다르다. 그러나 “시장 충격을 대학과 학생에게 한꺼번에 전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참고할 만하다. 대학 구조조정의 목적이 교육의 질과 공공 기능을 지키는 것이라면, 감축과 완충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독일, 국제학생으로 수요의 경계를 넓히다
독일은 영국, 미국, 호주와 다른 고등교육 구조를 갖고 있다. 공립대학 중심의 낮은 등록금 체제, 강한 직업교육 전통, 산업과 교육의 긴밀한 연결, 유럽 내 이동성은 독일 고등교육의 중요한 특징이다. 국내 청년 인구 감소와 고등교육 수요 변화가 독일에도 영향을 주지만, 그 충격은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나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독일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국제학생 유치다. 독일학술교류처 DAAD는 2025년 12월 발표에서 2025/26 겨울학기 독일 내 국제학생 수가 약 4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DAAD는 조사에 참여한 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입학하는 국제 신입생 수가 안정적이거나 증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독일이 비영어권 국가임에도 국제학생 유치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일의 국제학생 확대는 단순히 학생 수를 보충하는 전략으로만 보기 어렵다. 영어 학위과정 확대, 낮은 등록금, 연구 기회, 산업과의 연결은 독일을 유학 목적지로 만들고 있다. 특히 공학, 자연과학, 정보기술, 보건 등 인력 수요가 높은 분야에서 국제학생은 국내 학령인구 감소를 보완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유학생이 졸업 후 독일 노동시장에 남는다면, 고등교육 정책은 이민정책과 산업정책으로도 연결된다.
한국이 독일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국제학생 유치를 단순 충원 대책으로 보지 않는 관점이다. 한국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확대해 왔지만, 많은 경우 대학의 충원율 보완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숫자를 채우는 유학생 정책을 넘어, 지역 산업과 연결되는 전공, 졸업 후 취업과 정주 경로, 한국어·영어 병행 교육, 생활 지원, 비자 제도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다만 독일식 모델도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독일은 유럽 노동시장, 낮은 등록금, 공공재정, 직업교육 체계, 산업 기반이 결합된 구조다. 한국이 국제학생을 늘린다고 해서 자동으로 지역대학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유학생이 지역에 머물고, 취업하고,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학생 유치는 단기 충원 대책에 머물 수 있다.
일본, 미국, 호주, 독일의 사례는 각각 다른 해법을 보여준다. 일본은 공급 감축 모델이다. 학생 수에 비해 대학이 많아졌다면 대학 수와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접근이다. 미국은 수요 다변화 모델이다. 전통적인 청년 신입생이 줄어들면 성인학습자, 재직자, 온라인 학습자, 직업교육 수요를 찾아야 한다는 전략이다. 호주는 정부 완충 모델이다. 시장과 정책 변화가 대학 재정에 주는 충격을 정부가 일정 부분 흡수하고 속도를 조절한다. 독일은 국제화·실무형 전환 모델이다. 국내 청년 인구 감소를 국제학생과 산업 연계 교육, 유연한 학습 방식으로 보완한다.
그러나 네 모델 모두 한계를 갖고 있다. 일본식 감축은 빠른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지만 지역 고등교육 인프라를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식 수요 다변화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지만, 노동시장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한적이다. 호주식 완충은 급격한 붕괴를 막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을 미루는 장치가 될 위험도 있다. 독일식 국제화는 인구 감소를 보완할 수 있지만, 언어, 취업, 정주, 산업 수요와 연결되지 않으면 숫자 확대에 그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모델을 정답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고등교육 위기는 각국의 인구구조, 재정 구조, 대학 서열, 지역 균형, 노동시장, 이민정책, 직업교육 체계가 함께 만들어내는 문제다. 대응 역시 하나의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여러 모델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한국도 사실상 네 가지 모델을 모두 부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정원 감축과 대학 구조조정은 일본식 공급 감축과 닮아 있다. 평생교육, 성인학습자, 마이크로디그리 논의는 미국식 수요 다변화와 연결된다. 대학혁신지원사업, 글로컬대학, RISE, 지방대학 특성화 지원은 정부가 재정으로 대학 전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완충과 조정의 성격을 갖는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와 지역 정주형 유학생 정책은 독일식 국제화 모델의 일부를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이 정책들이 하나의 큰 설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가이다. 정원 감축은 필요한데, 감축된 뒤 지역의 고등교육 기능을 누가 맡을 것인지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성인학습자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성인학습자가 실제로 대학에 들어와 학습하고 노동시장에서 인정받는 구조는 약하다. 유학생은 늘리려 하지만, 졸업 후 취업과 정주, 지역 산업과의 연결은 아직 제한적이다. 재정지원사업은 대학 전환을 유도하지만, 선정된 대학과 선정되지 못한 대학 사이의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다시 HEPI 보고서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구 감소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감소의 부담이 어디에 집중되는가이다. 각 대학이 자기 생존을 위해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더 선호도 높은 선택지를 찾아 이동하면, 전체적으로는 특정 지역과 특정 대학군에 충격이 집중될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시장의 결과라고만 볼 것인지, 아니면 고등교육의 공적 기능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할 것인지가 정책의 핵심이다.

대학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재배치하는 문제
세계 주요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된 결론은 하나다. 앞으로의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을 몇 개 살릴 것인가”보다 “어떤 기능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모든 대학을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대학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는 기능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일본은 이 문제를 대학 수 감축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학습자 시장을 찾고 있다. 호주는 충격을 완충하며 시간을 벌고 있다. 독일은 국제학생과 실무형 교육으로 수요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네 나라의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존의 전통적 대학 모델만으로는 인구 감소 시대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도 같은 길목에 서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다. 수도권과 상위권 대학으로 향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의 목표는 학생의 선택을 억지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로 약화되는 지역 고등교육 기능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지에 맞춰져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은 폐교 숫자를 정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지역의 교육권, 산업 인력, 성인학습, 청년 정주, 필수 공공서비스 인력 양성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세계 고등교육의 다른 선택들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줄어드는 시대에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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