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한국연구재단, 2026년 신규 시범사업 17개 단위 선정…5단계 BK21 방향 가늠할 정책 실험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4단계 두뇌한국(BK)21 2026년 신규 시범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업에서는 인공지능 융복합(AI+X 융합형) 교육연구단 4개, 지역대학 연합형 교육연구단 3개, 이공 우수인재 성장경로 지원 대학 10개교가 선정됐다. 지원 규모는 총 156.8억 원이다.
이번 신규 시범사업은 2027년 8월 종료되는 4단계 BK21의 마지막 구간에서 추진되는 사업이다. 동시에 2027년 9월부터 시작될 5단계 BK21의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교육부는 이번 시범사업 유형을 5단계 BK21 사업에 일부 반영해 성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정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AI를 단일 전공이 아니라 여러 학문과 결합하는 융합교육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대학을 개별 경쟁 단위가 아니라 권역 단위의 공동 교육·연구 생태계로 묶겠다는 것이다. 셋째, 기존 대학원생 중심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부 단계부터 이공계 연구인재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AI+X 교육연구단 4개 선정…AI 융합교육 전면화
인공지능 융복합(AI+X 융합형) 교육연구단 유형에는 4개 교육연구단이 선정됐다. 이 유형은 AI 융합교육과 연구 확산을 위해 신설된 것으로, AI를 중심으로 3개 이상 분야가 결합한 교육연구단을 지원한다. 선정된 교육연구단에는 2027년 8월까지 총 42억 원이 지원된다.
선정 교육연구단은 서울시립대 데이터사이언스 융합전공의 ‘AIX 기반 환경보건 지능형 디지털 트윈 교육연구단’, 인천대 인공지능 융복합 바이오 제조 융합전공의 ‘바이오 공정 혁신 AX 융합 교육연구단’, 중앙대 인공지능 융합전공의 ‘첨단 산업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AX-Native R&D 교육 사업단’, 한양대 융합기계공학과의 ‘AI+X 첨단제조 사회-기술융합 교육연구단’이다.
교육부는 한양대 사례를 통해 AI+X 교육연구단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한양대는 컴퓨터학, 기계공학, 신문방송학, 교육학을 결합해 첨단제조 분야의 사회·기술융합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AI와 물리지식을 결합한 AX-PBL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AI 인재 양성이 컴퓨터공학 전공자 양성에 머물지 않고, 제조·바이오·환경보건·사회문제 해결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 역량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유형은 5단계 BK21에서 AI 융합인재 양성이 더욱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AI가 특정 산업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산업과 학문 분야의 기반 기술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대학원 교육도 전공별 칸막이를 넘어 문제 해결형 융합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지역대학 연합형 3개 교육연구단 선정…권역 단위 연구생태계 실험
지역대학 연합형 교육연구단에는 3개 교육연구단이 선정됐다. 이 유형은 지역대학 간 협력을 통해 권역 단위의 공동 교육·연구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신설됐다. 선정 교육연구단에는 2027년 8월까지 총 30억 원이 지원된다.
선정된 교육연구단은 경북대 융복합시스템공학과의 ‘글로벌 에너지신산업 전주기 지역혁신 인재양성 교육연구단’, 충북대 토목공학부의 ‘시민체감형 사회안전 스마트시티 교육연구단’, 전남대 약학부의 ‘호남권 미래신약 개발 융합 교육연구단’이다. 경북대는 국립금오공과대와, 충북대는 국립한밭대·대전대·청주대와, 전남대는 조선대·국립순천대·원광대와 각각 연합한다.
이번 유형은 보도자료에서 관련 국정과제로 제시된 ‘서울대 10개 만들기’와도 연결된다. 지역대학이 각자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대학원생 확보, 연구장비 공유, 공동 교육과정 운영, 산학협력 생태계 구축에 한계가 있다. 지역대학 연합형은 거점국립대가 중심이 되고 인근 대학이 참여해 권역 단위의 교육·연구 협력체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교육부가 예시로 제시한 경북대 교육연구단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다루는 미래 에너지 생태계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한다. 경북대와 국립금오공과대가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공동 실험실과 연구실을 구축해 인프라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지역대학 연합형은 단순한 컨소시엄이 아니라 학사관리, 연구장비, 교수·학생 협업까지 실제로 연결될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주관대학과 참여대학 사이의 역할 배분, 예산 집행, 학점 인정, 연구성과 공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연합형 사업은 서류상 협력에 그칠 수 있다. 5단계 BK21에서 지역대학 연합형이 확대된다면, 선정 이후의 운영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공 우수인재 성장경로 지원 10개교 선정…학부 단계부터 연구인재 발굴
이공 우수인재 성장경로 지원 사업에는 10개 대학이 선정됐다. 이 사업은 이공 분야 우수인재를 학부 단계부터 발굴해 지원하고, 학부-대학원-박사후연구원으로 이어지는 전 주기 성장경로를 만들기 위해 신설됐다. 선정 대학에는 2027년 2월까지 총 84.8억 원이 지원된다.
전국 단위에서는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포항공과대가 선정됐다. 지역 단위에서는 국립부경대, 부산대, 연세대 미래캠퍼스, 전남대, 충남대가 선정됐다. 지원 내용은 학부생 연구장학금, 핵심역량 강화비, 멘토 교수 인센티브 등이다.
이 사업은 기존 BK21이 주로 대학원 단계의 석·박사 인재를 지원해 온 것과 비교해 차별성이 크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부 단계부터 연구역량을 가진 학생을 발굴하고 대학원 진학과 연구경력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성균관대 사례에서 제시된 전략도 이 방향을 보여준다. 성균관대는 학부, 대학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이어지는 연구성과 연계를 위해 선발-성장-성과-진학을 통합 관리하는 전 주기 역량 체계를 마련하고, 학생별 사전 역량진단을 바탕으로 단계별 모듈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공 우수인재 성장경로 지원은 학령인구 감소와 이공계 연구인재 이탈이라는 문제에 대응하는 성격도 갖는다. 우수 학부생이 대학원 진학 대신 의학계열, 산업계, 해외 대학원 등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강해지면 국내 대학원의 연구 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학부 단계에서 연구경험을 제공하고 멘토링을 강화하는 것은 국내 연구인재 파이프라인을 유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볼 수 있다.
BK21, 1999년 시작된 장수 대학원 재정지원사업
이번 신규 시범사업의 의미는 BK21의 역사 속에서 더 분명해진다. BK21은 1999년 1단계 사업을 시작한 이후 2단계, 3단계, 4단계를 거치며 한국 대학원 재정지원사업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았다. 1단계는 1999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추진됐고, 2단계는 2006년 3월부터 2013년 2월까지, 3단계는 2013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진행됐다. 현재 운영 중인 4단계 BK21은 2020년 9월 시작돼 2027년 8월까지 이어진다.
4단계 BK21의 목적은 4차 산업혁명과 인구구조 변화 등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고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는 것이다. 4단계 사업은 63개 대학의 595개 교육연구단·팀과 대학원혁신 28개 대학을 지원하고 있다. 2026년 예산은 5,415억 원 규모다.
BK21이 다른 대학 재정지원사업과 구분되는 지점은 장기성과 연속성이다. 학부교육, 산학협력, 대학혁신,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들은 정책 환경에 따라 명칭과 구조가 바뀌거나 통합돼 왔다. 반면 BK21은 1999년 이후 단계별 개편을 거치면서도 대학원 연구인재 양성이라는 중심 목표를 유지해 왔다. 대학원생 연구장학금, 신진연구인력 인건비, 국제화 경비, 교육연구단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구조도 BK21의 핵심적 특징이다.
4단계 성과와 5단계 과제
교육부는 4단계 BK21의 성과로 연구논문, 국제화, 대학원 여건 개선, 세계대학 순위 상승 등을 제시했다. 2024년 국내 Scopus 등재 논문 수는 7만9,411건으로 2020년보다 25% 증가했고, 논문 질 지표인 FWCI는 2021년 1.26에서 2024년 1.40으로 개선됐다. BK21 수행 학과의 국제공동연구 논문은 2024년 2만7,055건으로 2020년보다 40% 증가했다. QS 순위 진입 학과 수는 2020년 387개에서 2025년 545개로 늘었다.
이 같은 성과는 BK21이 국내 대학원의 연구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연구지원 체계를 제공했다는 점은 BK21의 중요한 역할로 평가된다. 그러나 장기 사업의 한계도 함께 존재한다. 선정 대학과 비선정 대학, 선정 학과와 비선정 학과 사이의 격차가 누적될 수 있고, 연구 인프라가 강한 대학에 다시 성과와 재정이 집중되는 구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신규 시범사업은 이러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반영한다. AI+X 교육연구단은 첨단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융합 모델이고, 지역대학 연합형은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실험이다. 이공 우수인재 성장경로 지원은 대학원 진학 이전 단계부터 연구인재를 확보하려는 시도다.
5단계 BK21의 관건은 이번 시범사업이 실제 대학원 현장을 얼마나 바꾸느냐다. AI 융합이 단순히 유행어가 아니라 교육과 연구의 구조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지역대학 연합은 주관대학 중심의 형식적 협력이 아니라 참여대학의 역량을 함께 끌어올리는 구조가 돼야 한다. 학부생 연구인재 지원은 단기 장학금 지급을 넘어 대학원 진학, 연구 지속, 박사후연구원 경력까지 이어지는 안정적 경로로 설계돼야 한다.
이번 보도자료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BK21은 더 이상 대학원 연구비 지원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AI 대전환, 지역균형성장, 이공계 인재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를 대학원 재정지원사업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26년 신규 시범사업은 4단계 BK21의 마지막 보완사업이면서, 5단계 BK21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를 보여주는 첫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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