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는 생성형 AI를 매주 사용한다. 그러나 84%는 개념이 막히면 사람을 찾는다. 대학은 지금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최근 EDUCAUSE Review에 실린 한 칼럼은 고등교육이 직면한 인공지능 논쟁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AI and Course Design: Machines Can Help, but Only Humans Can Teach」라는 제목의 이 글은 기술 낙관론도, 기술 공포론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숫자를 제시한다.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42%가 생성형 AI를 최소 주 1회 이상 사용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84%의 학생은 수업 개념이 이해되지 않을 때 사람에게 도움을 구한다고 응답했다. 생성형 AI에 주로 의존한다고 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지금 대학이 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지점을 드러낸다. 학생들은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신뢰의 최종 대상은 여전히 교수라는 사실이다. AI는 도구로 활용되지만, 의미를 구성하고 이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균형은 불편하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와, AI가 교육을 혁신할 것이라는 기대를 동시에 흔든다. 기술은 이미 강의실 안에 들어와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대체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강화하느냐다.
AI가 더 이상 문 밖에 서 있는 기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실내에 들어와 가구를 재배치하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장치가 아니다. 실제로 교수 회의, 교육과정 위원회, 수업 설계 워크숍에서 AI는 회피할 수 없는 의제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대학에서 논의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규제 중심 접근이다. 표절 방지, 과제 통제, AI 사용 제한 규정 마련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른 하나는 생산성 중심 접근이다. 자동 채점, 피드백 생성, 강의자료 초안 작성과 같은 효율성 도구로 AI를 위치시킨다. 두 접근 모두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둘 다 충분하지 않다. AI는 통제 대상이기 이전에 설계 대상이며, 생산성 도구이기 이전에 교육 구조와 정렬되어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1993년 Alison King은 교수의 역할을 “Sage on the Stage”에서 “Guide on the Side”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의미 구성의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당시 이 주장은 이상적 선언에 가까웠다. 강의 중심 구조와 대규모 수업 체계 속에서 전환은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AI는 그 오래된 제안을 실현할 조건을 제공한다. 반복적 설명, 기본 개념 정리, 형식적 피드백을 기술이 일부 담당할 수 있다면, 교수는 토론 설계, 사고 확장, 개별 맞춤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 기술은 교수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설계자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이 이 전환을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있는가다. 단순히 “AI를 허용한다”거나 “AI를 금지한다”는 선언은 역할 전환과 무관하다. 중요한 것은 AI를 어떤 교육 목표와 정렬시키느냐다.
질문은 간단하다. AI를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AI 활용을 교육 목표 달성 지표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다. 학습성과, 평가 방식, 피드백 구조와 AI 도구가 정렬되지 않는다면 기술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고등교육 현장은 이미 번아웃 상태에 가깝다. Healthy Minds Study 2023–2024 보고서는 교수와 직원의 불안, 우울, 소진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AI를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하라’는 도구로 제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EDUCAUSE 칼럼은 AI가 시간을 되돌려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문제다.
한국 대학 역시 동일한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교수의 업무량을 줄이는가, 아니면 새로운 보고와 검증 의무를 추가하는가.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을 설계하는 구조가 방향을 결정한다. 지금 대학의 가장 큰 구조적 모순은 여기에 있다. 평가 방식은 여전히 결과 중심, 산출물 중심, 표준화된 시험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AI를 활용해 과제를 수행한다. AI를 금지한다고 해서 사용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비공식적 사용이 늘어난다. 문제는 AI 사용 자체가 아니라, 평가 방식이 사고 과정과 문제 해결 능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부정행위 탐지 기술이 아니라 평가 설계의 전환이다. 과정 중심 평가, 구술 시험, 프로젝트 기반 학습, 협력적 문제 해결 구조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AI 논쟁은 반복될 것이다.
많은 대학이 AI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거나 초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책은 종종 통제 문서에 가깝다. 무엇을 금지하는지가 중심이 된다. 학생들이 84%의 비율로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은 신뢰가 여전히 교육의 핵심 자원임을 보여준다. 정책은 신뢰를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정책은 현실과 괴리된다. 무제한 허용 정책은 교육 목적을 희석시킨다. 필요한 것은 명확성이다. 왜, 언제, 어떤 목적에서 AI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교육적 기준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가 그 기준을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을 때 정책은 기능한다.

AI를 둘러싼 논쟁은 기술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기술은 수단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을 주변화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중심에 두는가다. EDUCAUSE 칼럼은 분명히 말한다. AI의 약속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 지침이어야 한다.
대학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AI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다루며 방어적 태도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학생들은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교수의 판단, 설명, 대화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그러나 신뢰는 느리게 형성된다. 고등교육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어떤 교육 철학 위에 올려놓느냐다. AI는 강의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AI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강의는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대학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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