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최근 내놓은 ‘Being indispensable: Capabilities for a human-AI world, the FUTURES framework’는 생성형 AI가 대학에 던진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핵심은 단순하다. AI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일상이 된 뒤에도 대학이 끝까지 길러야 할 인간의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생성형 AI는 이미 학생과 교직원의 일상 업무에 들어와 아이디어 발상, 글쓰기, 피드백, 행정 효율을 바꾸고 있고, 그만큼 대학의 교육 원리도 다시 정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기술의 등장은 늘 교육을 흔들어왔다. 검색엔진이 등장했을 때 대학은 자료 접근의 방식이 바뀌는 경험을 했고, 스마트폰의 확산은 수업 집중과 정보 소비의 구조를 바꿨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불러온 변화는 그보다 더 깊다. 이제 학생들은 정보를 찾는 수준을 넘어 초안 작성, 요약, 질문 정리, 코드 보조, 이미지 생성, 발표 준비까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처리할 수 있다. 대학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의 도구가 바뀐 것이 아니라, 학습의 과정 자체가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고등교육 전반의 교수·학습과 운영 활동에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학생과 교직원은 제도적 가이드라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미 적응하고 있다는 진단도 같은 현실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이 변화를 무작정 환영할 수만은 없다. 생성형 AI는 학습 개인화와 빠른 피드백, 접근성 확대라는 장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편향된 결과물, 경제적 격차에 따른 도구 접근 불평등, 비판적 검토 없는 의존, 진정성 있는 학습의 약화, 환경 부담까지 함께 끌어온다. 특히 더 비싼 유료형 도구를 쓸 수 있는 학생이 더 정교한 결과물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교육의 공정성을 다시 묻게 한다. 대학이 이 기술을 교실 안으로 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보다, 어떤 원칙으로 다룰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 이유다.
대학의 질문은 왜 달라져야 하나
이 변화 앞에서 대학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태도는 AI를 단순한 금지 대상이나 편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선이다. 금지 중심 접근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편의 중심 접근은 교육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판단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고, 정보를 얼마나 빨리 정리하는가보다, 그 정보가 왜 타당한지 설명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대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제시된 FUTURES 프레임워크는 흥미롭다. 기존의 여러 AI 역량 체계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반대로 기술 기능에만 좁게 머무르면서 실제 수업과 평가에 녹아들기 어려웠다면, FUTURES는 고등교육 현장의 일상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내세운다. 기관 차원의 AI 준비도와 거버넌스를 다루는 도구와 달리, 이 틀은 개인의 역량, 즉 학생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기술 인프라가 잘 깔린 대학이 곧 교육적으로 준비된 대학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진짜 차이는 학생이 AI를 다루는 방식, 그 과정에서 발휘하는 판단과 성찰, 협업과 책임의 수준에서 벌어진다.
FUTURES는 일곱 개의 영역을 제시한다. AI와 디지털 시스템 활용 능력, 자기이해와 웰빙, 기술 윤리와 책임, 사회적 지능, 회복탄력성과 적응력, 신기술 인식, 사회·직업적 참여가 그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영역이 많아 보이지만, 대학 교육의 관점에서 다시 묶어보면 크게 세 갈래로 읽힌다. 하나는 AI를 이해하고 다루는 역량이고, 또 하나는 AI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역량이며, 마지막 하나는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이다.
첫 번째 갈래는 기술 활용 역량이다. 여기에는 데이터 리터러시, AI 협업, 새로운 AI 시스템 이해, 자동화 기반 워크플로 설계, 디지털 안전과 보안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이 영역이 단순 사용법 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프롬프트를 잘 넣는 학생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강점을 조합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쓰는 습관은 여기서 역량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과를 검증하고, 수정하고,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는 능력이 핵심으로 놓인다. 학생에게 요구되는 것은 숙련된 소비자의 능력이 아니라 책임 있는 협업자의 능력이다.
두 번째 갈래는 윤리와 책임의 역량이다. 데이터 윤리, AI 안전, 설명 가능성, 지속가능성, 포용성, 디지털 권리 같은 항목들이 여기에 모인다. 대학이 이 영역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생성형 AI는 겉으로는 중립적인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습 데이터의 편향과 설계자의 가치, 플랫폼 기업의 이해관계, 비용 구조와 접근 권한의 차이를 안고 있다. 기술을 사용하는 능력만 가르치고, 그 기술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묻지 않는 대학은 결국 기술 훈련 기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어떤 학생이 AI 결과물의 한계를 설명하고, 왜 그 판단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는지 말할 수 있다면, 그 순간 교육은 기능 습득을 넘어 비판적 시민성의 훈련이 된다. FUTURES가 환경 부담과 디지털 권리, 포용성과 공정한 접근까지 함께 묶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번째 갈래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다. 여기에는 자기이해와 웰빙, 공감과 문화적 감수성, 협업과 리더십, 비판적 사고, 창의성, 복잡한 문제 해결, 회복탄력성과 적응력이 포함된다. 생성형 AI의 확산 이후 오히려 더 중요해진 것이 바로 이 영역이다. AI는 빠르게 정리할 수 있지만, 관계를 책임지지는 못한다. AI는 초안을 만들 수 있지만, 왜 이 문장이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지 느끼지는 못한다. AI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지만,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감당해야 하는지는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대학이 인간을 길러내는 기관이라는 말이 진부한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바로 이 영역을 교육과정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와야 한다.
생각하는 힘은 이제 더 비싸진 역량이 된다
이제부터 대학에서 가장 귀해질 역량은 단순 암기나 정보 정리 능력이 아니라, 정보의 신뢰도를 판별하고 서로 충돌하는 근거를 비교하며 불완전한 상황에서 판단하는 힘일 가능성이 크다. FUTURES 안에서도 비판적 사고, 복합적 의사결정, 알고리즘 편향 인식, 정보 과부하 관리, 성찰적 실천이 중요한 축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는 단지 교양교육의 언어가 아니라, 전공교육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기준이 된다. 공학에서도, 경영에서도, 인문학에서도, 예술에서도 학생은 더 이상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보와 기술을 다루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류하고, 무엇을 검증하며, 무엇을 자기 책임 아래 결정할 것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대학은 하나의 불편한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생성형 AI는 학생의 작업 시간을 줄여줄 수 있지만, 그만큼 스스로 오래 붙들고 씨름하는 경험을 줄일 수도 있다.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망설이는 시간, 자료들 사이의 모순을 견디는 시간, 답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시간은 전통적인 대학 교육이 길러온 핵심 훈련이었다. 그런데 AI가 너무 빠르게 중간 결과물을 제공하면 학생은 종종 ‘생각 끝의 결과’를 얻은 듯한 착각을 먼저 경험한다. 이때 대학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AI를 쓰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왜 이 답을 믿었는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검토했는가”, “이 결과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설명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묻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를 훈련하는 교육은 이제 속도를 늦추는 질문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공감과 웰빙도 역량이 되는 시대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자기이해와 웰빙이 별도의 핵심 영역으로 제시된 점이다. 시간관리, 정보 과부하 관리, 디지털 경계 설정, 마음챙김, 성찰과 자기인식이 기술 시대의 필수 역량으로 제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성형 AI는 학생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연결과 비교, 더 빠른 결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수도 있다. 과제 수행이 쉬워지는 만큼, 오히려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에 대한 감각은 흐려질 수 있다. 대학 교육이 단지 산출물 경쟁으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학생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집중력을 관리하며, 디지털 환경과 건강한 거리를 조절하는 힘 역시 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지능을 강조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소통, 스토리텔링, 협업, 공감, 글로벌 디지털 시민성, 낯선 상황에서의 리더십은 AI가 발달할수록 더 값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역량들이다. 대학이 배출해야 할 인재는 혼자 정답을 빨리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문제를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다문화·다학제·원격 협업이 보편화되는 환경에서 사회적 지능은 단지 인성교육의 부수 항목이 아니라, 전공 역량을 실제 사회적 성과로 연결하는 핵심 매개가 된다.

AI 시대의 대학은 무엇을 남겨야 하나
결국 대학은 지금 하나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에서는 AI 리터러시를 단기 특강이나 비교과 프로그램 정도로 다루고, 다른 한쪽에서는 교육과정과 평가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다. 후자를 택하지 않는다면 대학은 겉으로는 최신 기술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낡은 학습관을 유지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학생이 매일 AI를 쓰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평가를 유지하는 순간, 교육은 형식과 현실 사이의 간극만 더 키우게 된다. 반대로 AI를 전면 수용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판단, 공감과 책임을 가르치는 일에 실패한다면, 대학은 기술을 다루는 요령만 남긴 채 교육의 이유를 잃게 된다.
그래서 이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AI 시대 대학이 정말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오래된 언어에 있다. 비판적으로 읽는 힘, 타인을 이해하는 힘,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는 힘, 복잡한 현실에서 결정을 내리는 힘,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되 그 도구의 방향을 스스로 묻는 힘이다. 생성형 AI는 대학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남겨야 할 것은 결국 인간의 이름으로만 책임질 수 있는 능력들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이 실제 수업과 평가를 어떻게 바꾸게 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를 가려내는 대학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했고 무엇을 인간의 판단으로 보완했는지를 묻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변화가 본격적으로 다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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