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의 시대가 끝나고 준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예측이 더 중요해졌지만, 그 예측을 다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국면에 가깝다. AGI를 둘러싼 논의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대체로 익숙하다. 시간표는 전반적으로 앞당겨졌고, 서로 다른 방법론은 각자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동시에 같은 단어 아래 서로 다른 목표와 단계가 섞여 있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가장 피해야 할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확한 날짜가 아직 없으니 조금 더 기다리자”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곧 닥칠 것이 분명하니 모든 것을 즉시 뒤엎자”는 태도다. 전자는 늦고, 후자는 거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둘 사이에 있는 더 어려운 길이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이유로 행동을 미루지 않으면서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고정하지 않는 준비 말이다. RAND의 이번 작업이 끝내 도달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핵심 질문은 “AGI는 언제 오는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AI 미래의 가능성 앞에서 어떤 구조로 대비할 것인가”라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환은 단순한 표현상의 변화가 아니다. 예측을 소비하는 문법 자체를 바꾸는 문제다. 지금까지 AGI 논의는 지나치게 자주 날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몇 년 안인가, 수십 년 뒤인가, 누구의 전망이 더 빠른가가 주된 관심사가 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 의사결정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안보, 산업, 연구개발, 노동, 교육, 규제는 모두 서로 다른 시간표와 비용 구조를 가진다. 어떤 영역은 능력의 출현만으로도 대응을 서둘러야 하고, 어떤 영역은 사회적 확산을 더 오래 지켜본 뒤 움직여도 된다. 같은 예측을 받아들여도 정부 관료와 벤처 투자자, 선도 실험실 책임자와 공공 연구지원기관은 전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이는 누가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감당하는 책임과 제약,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측은 결론의 기계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입력값일 뿐이며, 그것이 실제 전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치 판단, 선택지, 제도적 제약, 위험 감수 수준과 연결돼야 한다. 동일한 전망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전략이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무시한 채 하나의 숫자로 모두를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점추정” 중심 사고가 한계를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측을 하나의 중앙값, 하나의 확률, 하나의 도착 연도로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소비되는 예측은 실제로는 거의 쓸모가 없다. 예컨대 어떤 사건이 20퍼센트 확률로 일어난다는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 숫자는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의사결정자에게 당장 무엇을 바꾸라고 말해주지 못한다. 어떤 조치를 취하면 그 확률이 달라지는지, 특정 능력이 나타났을 때 어떤 준비를 앞당겨야 하는지, 어느 지점까지는 관찰로 충분하고 어느 지점부터는 제도적 개입이 필요한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이 바로 시나리오 중심 접근이다. 가능성과 결과의 조합을 여러 갈래로 열어두고, 그중 사회적으로 크고도 준비가 부족한 경우부터 대응 구조를 만들어두는 방식이다. RAND가 국가안보 분야의 전통적 시나리오 사고를 끌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보 기획은 특정 사태의 확률을 두고 끝없이 논쟁하는 대신, 그 사태가 충분히 가능하고 충분히 중대하며 준비가 부족하다면 선제적으로 대응 옵션을 만든다. AGI 예측도 그런 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준비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불확실성은 행동 유예의 근거가 아니라 행동 방식 조정의 근거가 된다. 미래가 흐릴수록 계획은 더 유연해야 하고, 충격에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하며, 예상치 못한 변화에 맞춰 빠르게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RAND가 제시하는 세 가지 원칙, 곧 유연성, 적응성, 강건성은 그래서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유연성은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전략을 열어두는 능력이고, 적응성은 예상 밖의 변화가 나타났을 때 계획을 재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며, 강건성은 충격이 오더라도 핵심 기능과 판단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능력이다. 앞당겨진 타임라인과 불안정한 신호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고정된 대규모 투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전 속도가 현재 기대를 넘어서 가속될 경우, 정적인 대비는 오히려 가장 먼저 낡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준비의 문제는 단순히 “더 많이 투자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빨리, 어떤 신호를 기준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과 정책의 트리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략은 여러 시나리오에 걸쳐 버틸 수 있는 방향을 세우는 일이고, 정책 트리거는 특정 신호가 나타났을 때 실제 행동을 전환하는 장치다. 다시 말해 전략은 비교적 안정적인 골격이어야 하지만, 정책은 관측 가능한 변화에 따라 계단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RAND가 강조하는 “명확한 재평가 트리거”는 바로 이 구조를 뜻한다. 어떤 기술적 진전, 어떤 능력 시연, 어떤 시장 효과가 나타나면 기존 가정을 수정해야 하는가. 그 기준이 없으면 사회는 늘 두 가지 실수를 반복한다. 너무 이른 공포로 비용을 과잉 지출하거나, 너무 늦은 안일함으로 충격을 키운다. 불확실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태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재평가 기준 없이 막연한 낙관과 막연한 비관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준비는 날짜를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문턱을 세우는 일에 가깝다. RAND는 구체적인 예시도 제시한다. 가령 AI 시스템이 다주 단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를 자율적으로 완수하기 시작한다면, 장기 타임라인을 전제로 한 많은 가정은 다시 검토돼야 한다. 혹은 AI 시스템이 AI 연구개발의 절반 이상을 실질적으로 자동화하기 시작한다면, 이후의 능력 향상 곡선은 지금까지의 점진적 예측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런 문턱은 하나의 숫자를 믿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찰 가능한 신호와 정책 전환을 직접 연결하기 때문이다. 안전과 안보는 위험 역량의 출현을 더 민감하게 볼 수 있고, 노동과 복지는 실제 시장 영향이 확인될 때 대응을 조정할 수 있다. 혁신 투자는 특정 타임라인 신념과 무관하게 꾸준히 이어가되, 그 투자 방식과 우선순위는 관측 신호에 따라 조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예측의 목표도 달라진다. 미래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호가 어떤 행동을 정당화하는지 미리 연결해두는 것이 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떠오른다. 비용의 비대칭성이다. AGI 대비에서 문제는 단순히 틀릴 위험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틀리느냐에 따라 비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너무 이르게 움직이면 과잉 대응이 될 수 있다. 예산 낭비, 규제 과잉, 제도 피로, 사회적 반발 같은 비용이 따라올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늦게 움직이면 경우에 따라 훨씬 더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안전·보안 체계가 위험 능력 출현보다 늦게 움직이거나, 핵심 연구 인프라와 측정 체계가 현실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이후에는 따라잡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노동시장과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 신호가 분명해진 뒤에야 대응을 시작하면, 필요한 재훈련과 제도 개편은 이미 사회적 충격을 흡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전략의 핵심은 항상 더 이른 행동이 아니라, 더 늦은 행동의 비용을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명시하는 데 있다. RAND가 “더 까다롭고 불편한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이 덜 극단적인 경우에도 도움이 되는 도구를 남긴다”고 보는 것도 이 맥락이다. 어려운 미래를 상정한 대비가 항상 낭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준비가 더 완만한 미래에서도 유용한 기반시설이 될 수 있다.
이런 사고를 실제로 움직이게 하려면, AGI 예측을 더 “결정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의 많은 예측은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정책과 전략을 움직이기에는 구조가 빈약했다. 예측이 실제 의사결정에 덜 활용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정 확률과 중앙값만 제시하는 예측은 행동 대안을 비추지 못한다. 반면 “어떤 투자 시나리오 아래에서는 능력 궤적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어떤 외교·안보 조건이 형성되면 위험이 더 커지는가”, “어떤 규제 설계가 확산 속도나 위험 프로파일을 바꿀 수 있는가”와 같이 조건부 질문으로 바뀐 예측은 훨씬 쓸모가 커진다. RAND가 예측과 시나리오 플래닝의 통합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숫자만 던져주는 예측은 수동적이지만, 전략 선택지와 결합된 예측은 능동적이다. 중요한 것은 확률의 정확성이 아니라, 선택이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다.
하지만 준비를 말하는 순간 곧바로 부딪히는 벽이 있다. 지금의 예측 인프라가 그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미 앞선 회차들에서 살펴봤듯, AGI 예측 생태계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해결된 예측 사례가 부족해 보정이 어렵고, 벤치마크는 포화와 오염에 취약하며, 영향력 있는 모델은 충분한 독립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측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을 더 잘 만들고 더 잘 검증하는 체계”를 키우는 일이다. RAND가 마지막 부분을 상당한 비중으로 예측 인프라 구축에 할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준비는 단지 기술 능력에 대한 대응만이 아니라, 기술을 읽는 능력 자체를 키우는 준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미래에 대비하는 사회는 AI 모델만 보는 사회가 아니라, AI를 측정하고 해석하는 제도까지 함께 갖춘 사회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과제는 방법론의 다양성이다. 지금의 AGI 예측은 비교적 좁은 지적 생태계 안에서 굴러가는 경향이 있다. 컴퓨트 중심 모델, 예측시장, 특정한 기술 낙관 또는 비관 프레임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 밖의 관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RAND는 이 생태계 안으로 계량경제학자, 인지과학자, 기술사 연구자, 복잡계 연구자 같은 더 넓은 분야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핵심은 합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화된 불일치를 늘리는 것이다. 무엇을 두고 전문가들이 갈리는지, 그것이 경험적 사실의 문제인지 이론 모델의 문제인지 가치 판단의 문제인지 분해해 보여주는 작업이 중요하다. AGI 논쟁은 합의 부족 때문에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불일치가 존재하는지조차 제대로 분류되지 않는 상태가 더 큰 문제다. 다양한 학문적 관점이 들어올수록 예측은 더 시끄러워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소음은 무질서한 혼란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생산적 마찰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영향력 있는 예측 모델에 대한 독립적 검증과 스트레스 테스트다. 지금 AGI 담론에서 막강한 힘을 갖는 것은 결국 몇몇 컴퓨트 중심 모델과 급격한 가속을 상정한 takeoff 분석들이다. 이들은 산업 투자와 정책 상상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기후 모델이나 거시경제 전망처럼 체계적인 적대적 검증을 받아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RAND는 이런 모델들에 대해 핵심 가정의 레드팀 검토, 투명한 민감도 분석, 시간이 지나며 쌓이는 증거와의 체계적 비교를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검증의 주체가 모델의 영향을 직접 받는 조직과 분리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예측하는 미래에 직접 이해관계를 가진 조직이 검증의 중심에 서면, 예측은 해석 이전에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학계, 시민사회, 정부, 국제 협력 등 여러 제도적 집에 걸쳐 검증 역량을 분산시키는 일이 필요해진다. AGI 예측의 신뢰도는 더 멋진 모델이 아니라, 더 끈질긴 검증에서 올라간다.
세 번째는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능력 평가 체계다. 지금의 벤치마크는 너무 빨리 낡는다. 공개된 지 2년 안에 포화되는 경우가 흔하고, 학습 데이터 오염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특정 벤치마크를 잘 통과한다고 해서 실제 세계의 일반적 능력까지 충분히 포착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는 “결정적 지표”를 찾으려는 욕심 자체가 잘못된 출발일 수 있다. RAND는 오히려 계속해서 새로운 평가를 만들어내고, 비공개 시험셋을 유지하며, 실제 과업 수행 능력을 시간에 따라 추적하는 상시적 평가 인프라를 주문한다. 매달 새로운 질문으로 갱신되는 벤치마크, 실행 시점에 동적으로 생성되는 테스트, 엄격한 접근 통제 아래 유지되는 홀드아웃 세트 같은 방식이 예로 제시된다. 핵심은 하나다. 측정은 한 번 만들어 끝나는 도구가 아니라, 프런티어 모델의 진화 속도에 맞춰 함께 진화하는 공공 기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기능이 프런티어 실험실 바깥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능력을 스스로 주장하는 조직과 그 능력을 독립적으로 점검하는 조직은 분리돼야 한다.
네 번째는 압축된 시간표에 맞는 모니터링 인프라다. 만약 변혁적 능력이 2020년대 후반에 등장할 수도 있다면, 연 1회 점검하는 체계로는 이미 늦다. RAND가 “전통적 기술 예측보다 정량금융에 가까운 빈도와 이질성을 가진 접근”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러 선행 지표를 실시간에 가깝게 추적하고, 증거가 들어올 때마다 빠르게 갱신하며, 단순한 외삽이 아니라 불연속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제시되는 지표들은 꽤 구체적이다.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작업 시간의 길이, 비공개 벤치마크에서의 성능 궤적, 연구자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AI 보조의 정도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단일 지표를 기다리지 않는 태도다. 여러 불완전한 신호를 서로 대조하며 읽는 삼각측량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지금처럼 프런티어 모델이 짧은 주기로 새로 등장하고, 외부 관측자는 내부 변화를 완전히 읽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니터링의 핵심은 하나의 확정적 수치가 아니라, 여러 조각난 신호를 이어붙여 변화의 방향을 빠르게 포착하는 데 있다.
다섯 번째는 AI가 AI 연구개발을 얼마나 자동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부 모니터링이다. RAND는 이것을 빠른 능력 향상과 잠재적 불연속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선행 지표 가운데 하나로 본다. 어떤 시스템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직 제한적이라 해도, 내부적으로 AI 연구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면 이후의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가팔라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보를 가장 잘 아는 주체가 선도 실험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가장 정밀한 관측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경쟁 압력과 규제 우려, 평판 리스크 때문에 이런 정보를 자발적으로 측정하거나 공유하는 데 소극적일 수 있다. 여기서 집단행동 문제가 발생한다. 한 실험실만 먼저 나서면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모두가 주저하면 외부 사회는 가장 중요한 신호를 놓친다. 그래서 RAND는 자발적 약속 체계나 정부가 매개하는 정보 공유 장치 같은 방식으로 최소한의 공통 측정 관행을 만들 필요성을 제기한다. 외부 관찰자가 우회적으로 추정하는 것보다 훨씬 신뢰도 높은 정보가 내부에 있는데, 이를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결국 가장 비싼 무지를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이 모든 제안은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준비는 기술에 대한 반응이면서 동시에 인식 체계에 대한 투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AGI를 둘러싼 논쟁은 종종 “위험을 과장하는 쪽”과 “기술 진보를 믿는 쪽”의 싸움처럼 그려지지만, 실제로 더 절실한 문제는 그보다 앞선 곳에 있다. 사회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나타날 때 기존 가정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적 언어를 아직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은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을 다루는 제도와 도구 자체에도 존재한다. 이 점에서 AGI 대응은 기술 정책인 동시에 행정 역량의 문제이고, 측정 체계의 문제이며, 더 넓게는 민주사회가 불완전한 신호 아래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측 인프라가 부실한 사회는 늘 뒤늦게 깨닫거나, 잘못된 확신에 과잉 반응한다. 둘 다 위험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하나 생긴다. 많은 사람들은 AGI 논의가 결국 미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행정과 제도 설계 능력을 시험하는 문제에 가깝다. 어떤 사회가 불확실한 기술 변화를 더 잘 다룰 수 있는지는 그 사회가 미래를 얼마나 정확히 맞히느냐보다, 불확실성을 안은 채 얼마나 질서 있게 움직일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그러니 이 연재의 마지막 회차에서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은 “AGI가 실제로 언제 오느냐”보다 “그 질문이 정답 없이도 행동을 조직할 수 있느냐”다. RAND가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여기에 있다. 완전한 합의가 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사회는 결국 항상 늦는다. 반대로 가장 극단적인 전망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사회는 쉽게 흔들린다. 필요한 것은 고정된 예언이 아니라, 업데이트 가능한 대비다. 준비는 확실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할수록 더 정교해져야 한다.
이 점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일부 신뢰할 만한 예측자들이 AGI 도달 가능성을 불과 1년에서 4년 사이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망이 맞는다면 지금까지 논의한 많은 준비조차 터무니없이 느릴 수 있다. 제도 구축, 측정 인프라, 검증 체계, 정부 역량 강화 같은 과제는 대부분 수년 단위의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준비의 무의미함을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시간이 더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준비를 미루지 말아야 할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니 포기하자”가 아니라 “늦었을 가능성까지 포함해 더 압축적으로 움직일 방법을 찾자”는 태도다. RAND가 이것을 “준비에 반대하는 논거가 아니라 긴급성을 강화하는 논거”로 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AGI가 정말 가깝다면 제도적 준비는 더욱 절실해지고, 아직 멀다면 그 준비는 장기적으로 더 견고한 기반이 된다. 어느 경우든 손해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마지막으로 남는 반론도 있다. 준비를 말하는 순간 결국 특정 국가, 특정 기관, 특정 기업 중심의 안보적 상상력에 갇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실제로 RAND의 제안은 미국 정부와 국가안보 공동체를 주요 수신자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조 자체는 훨씬 넓게 읽을 수 있다. 핵심은 특정 국가 전략이 아니라, 불확실한 기술 궤적 앞에서 어떤 제도 원칙이 필요한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찰 가능한 트리거를 세우고,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해 검증하며, 빠르게 낡는 평가를 갱신하고, 단일한 예언 대신 복수의 시나리오에 견디는 준비를 한다는 원칙은 어느 사회에서든 유효하다. 특히 지금처럼 기술 발전의 방향이 국가·산업·학문·노동을 동시에 흔드는 상황에서는, 한 부문만의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정책은 과학기술 정책이면서 노동 정책이어야 하고, 산업 전략이면서 안전 전략이어야 한다. AGI라는 질문 하나가 이렇게 많은 제도 영역을 동시에 호출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문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준비 능력 문제다.

이 연재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확인했던 것은 시계가 빨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 회차에서는 그 시계를 만든 예측 방법들의 구조를 들여다보았고, 세 번째 회차에서는 AGI가 하나의 문턱이 아니라는 점을 살폈다. 마지막 회차가 도달하는 결론은 그래서 단순하다. 이제 남은 질문은 “누가 맞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다. 정답 없는 미래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나은 구조다. 예측을 시나리오 조직 도구로 바꾸고, 재평가 문턱을 세우며, 측정과 검증 인프라를 키우고, 단일한 확신보다 다중 신호의 삼각측량을 중시하는 태도 말이다. AGI 논쟁은 종종 거대한 미래 서사처럼 들리지만, 실은 아주 현실적인 행정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을 언제 다시 보고,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이며, 누가 어떤 정보를 어떤 책임 아래 공유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 현실적 문제들을 외면한 채 날짜만 묻는 사회는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친다.
결국 AGI 대비의 핵심은 예언이 아니라 체력이다. 변화가 예상보다 느려도 버틸 수 있고, 예상보다 빨라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며, 중간에 방향이 바뀌어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체력 말이다. 유연성, 적응성, 강건성이라는 세 단어는 그래서 미래학의 장식이 아니라 행정의 언어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확실성의 환상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는 국가와 사회의 능력이다. AGI는 여전히 오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준비의 기준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날짜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구조였다. 그리고 구조를 늦게 세우는 사회는, 미래가 오기 전에 먼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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