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전환점에 선 세계 고등교육, 한국 대학의 길을 묻다 ] ① 유네스코 첫 글로벌 고등교육 트렌드 보고서로 본 팽창과 불평등의 동시대

유네스코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고등교육국제연구소가 공개한 「Higher education global trends report」는 세계 고등교육이 양적 성장의 정점에 도달하는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과 제도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6개국 고등교육정책관측소와 유네스코 통계연구소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 자료는 고등교육 참여율, 형평성, 거버넌스, 질 보증, 재정, 디지털 전환, 교원, 국제학생 이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스포트라이트유 특집 기획안은 이 자료를 단순한 해외 동향 소개가 아니라 한국 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비춰보는 거울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대학은 커졌지만 기회는 평등해지지 않았다

세계 고등교육은 지난 20여 년 동안 눈에 띄게 팽창했다. 2000년 약 1억 명 수준이던 전 세계 고등교육 등록자는 2024년 2억6,900만 명으로 늘었다. 국제학생 이동 역시 2000년 이후 세 배 이상 증가해 2023년에는 730만 명 규모에 이르렀다. 한때 일부 계층과 지역에 제한적으로 열려 있던 고등교육은 이제 더 많은 청년과 성인에게 삶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됐다. 그러나 이 성장은 곧바로 평등을 뜻하지 않는다. 고등교육의 문은 넓어졌지만, 그 문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가장 선명한 격차는 지역별 총등록률에서 드러난다. 세계 평균 고등교육 총등록률은 43%에 이르렀지만, 유럽·북미 지역은 80% 수준인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9%에 머물러 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떤 지역의 청년에게 대학은 보편적 선택지이고, 다른 지역의 청년에게 대학은 여전히 예외적 기회다. 고등교육이 개인의 사회적 이동과 국가의 혁신 역량을 좌우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격차는 교육 문제를 넘어 경제·사회·문화 전반의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교육권의 확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입학은 시작일 뿐이며, 실제로 중요한 것은 누가 학업을 지속하고, 누가 졸업하며, 누가 배움의 결과를 삶과 일의 기회로 연결할 수 있는가에 있다. 유네스코 자료는 많은 국가가 고등교육 접근성 확대를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졸업률과 중도탈락 문제는 충분히 모니터링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고등교육 정책이 ‘얼마나 많이 입학시켰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어떤 조건에서 끝까지 배울 수 있게 했는가’로 옮겨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한국 대학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은 이미 고등교육 진학률이 높은 국가로 분류되지만, 지역 대학의 충원난, 학생 유지율, 중도탈락, 전공 부적응, 경제적 부담, 심리·정서적 위기 등은 고등교육의 질적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대학 정원이 비는 시대에는 단순히 더 많은 학생을 모집하는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입학한 학생이 대학 안에서 배움을 지속하고, 자신에게 맞는 성장 경로를 발견하며, 졸업 이후 사회적 역할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체계가 필요하다.

형평성과 포용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유네스코 자료에 따르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실질적 확인조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가는 전체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난민의 고등교육 접근률은 2019년 1%에서 2025년 9%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대다수 난민 청년에게 대학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학생 할당제를 명시한 국가는 전체의 8%에 불과하며, 장학금 제도 역시 등록금 지원 중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생활비, 교통비, 주거비, 디지털 접근성 같은 비등록금 장벽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광고
대학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등교육 불평등이 단지 대학 문턱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록금이 면제되더라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으면 학업은 지속되기 어렵다. 입학 허가를 받더라도 이동 수단, 학습 보조기기, 온라인 접속 환경, 가족 돌봄 부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남아 있으면 대학 생활은 불안정해진다. 고등교육의 평등은 선발 제도의 공정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학생이 실제로 배우고 머물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촘촘히 마련하느냐가 핵심이다.

한국 대학 역시 이 문제를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 장학금 총액이나 등록금 감면 규모만으로 학생 지원의 충분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저소득층 학생, 장애학생, 이주배경 학생, 성인학습자, 지역 이동 학생,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대학 안에서 어떤 장벽을 경험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의 학생 지원은 ‘선발된 이후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입학 허가와 장학금 지급만으로 포용을 말하기 어렵다.

데이터가 없는 곳에서 정책은 늦어진다

유네스코 자료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데이터 공백이다. 많은 국가가 고등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접근성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학생의 중도탈락, 졸업, 이동, 취약계층별 학업 지속 여부를 일관되게 추적하는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 고등교육이 빠르게 팽창하는 상황에서 데이터가 부족하면 정책은 실제 문제보다 늦게 움직인다. 누가 입학했는지는 알지만 누가 떠났는지 모른다면, 대학은 위기를 관리할 수 없다. 누가 장학금을 받았는지는 알지만 누가 생활비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는지 모른다면, 지원 정책은 표면적인 성과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은 한국 대학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준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대학 위기는 이미 수치로 확인되고 있지만, 학생의 실제 학습 경험과 이탈 경로를 정교하게 읽는 데이터 체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충원율, 재학생 수, 취업률, 장학금 지급률 같은 지표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대학의 지속 가능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학생이 왜 전공을 바꾸는지, 왜 휴학하는지, 왜 자퇴하는지, 어떤 지원을 받을 때 학업을 지속하는지, 지역 대학 학생이 어떤 시점에서 수도권 이동을 고려하는지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고등교육의 다음 경쟁력은 학생을 얼마나 많이 모집하느냐보다 학생의 이동과 이탈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대학의 질문은 ‘성장’이 아니라 ‘전환’이다

세계 고등교육의 팽창은 한국 대학에 이중의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으로 고등교육 수요는 세계적으로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국제학생 이동도 확대되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과 AI는 대학 교육의 형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고등교육의 불평등, 재정 압박, 교원 부담, 학문의 자유 후퇴, 데이터 공백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적 과제다. 한국 대학이 직면한 문제도 고립된 국내 현상이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 지역 대학 위기, 외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 등록금 동결과 재정난, 교원 처우, AI 교육 전환은 모두 세계 고등교육 재편의 흐름 속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

이제 한국 대학의 질문은 단순히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높은 진학률을 경험한 한국 고등교육은 양적 확대의 시대를 지나 질적 전환의 시대로 들어섰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학은 더 많은 학생을 모으는 방식만으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대신 어떤 학생에게 어떤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 취약한 학생이 중도에 밀려나지 않도록 어떤 안전망을 설계할 것인지,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학습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AI와 디지털 전환 속에서 인간의 배움과 대학의 공공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물어야 한다.

고등교육은 더 이상 일부에게만 허용된 특권이 아니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보장된 권리라고 말하기에도 아직 이르다. 세계 고등교육은 팽창했지만, 그 안에서 기회는 여전히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있다. 한국 대학이 이 흐름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위기의 언어도 달라질 수 있다. 대학의 위기는 학생 수 감소만이 아니다. 진짜 위기는 대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어떤 학생을 끝까지 책임질 것인지,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설계할 것인지에 답하지 못하는 데 있다.

#유네스코 #고등교육 #한국대학 #대학위기 #고등교육정책

Social Share

함께 읽어보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