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대규모 삭감·대학 직접 제재·학문 자유 위축…연방정부-대학 동맹의 붕괴가 던지는 함의
정치권력의 직격탄을 맞은 고등교육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 이후, 미국 고등교육은 전례 없는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 중단과 특정 대학을 겨냥한 과징금 부과, 다양성·형평성·포용(DEI) 프로그램 해체 압박, 그리고 국제 연구 인력 유입을 가로막는 비자 정책 변화까지 이어지면서, 대학이 미국 민주주의의 한 축이자 과학기술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난 9개월 동안 미국의 주요 연구중심대학은 연방정부와 직접 대립하거나 불리한 협상에 내몰렸다. 하버드대와 UCLA 같은 상징적 기관이 주요 타깃이 되었고, 연방 과학기술 연구비 삭감은 전체 학문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조치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제도적 구조 변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연구비 지원의 대규모 중단이었다. 국립과학재단(NSF), 국립보건원(NIH), 에너지부 등 주요 연구 지원 기관의 계약이 ‘대통령 지침’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지되거나 취소됐다. 기후변화, 형평성, 인권과 같은 용어가 언급된 과제는 이유 없이 삭감 대상이 되었고, 피해액은 약 80억 달러에 달한다. 특정 대학을 겨냥한 압박도 이어졌다. UCLA는 2025 회계연도 보조금 5억5천만 달러를 돌려받기 위해 12억 달러의 벌금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버드대 역시 대규모 벌금과 조사 압박에 직면했고, 브라운대와 컬럼비아대는 일부 조건을 수용해 벌금을 줄이는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합의가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연방정부가 언제든지 새로운 기준을 내세워 다시 개입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대학들을 옥죄고 있다.
사법부 판결과 대통령 권한 강화
법적 대응은 쉽지 않다. 최근 대법원은 NIH 연구비 환수 소송에서 행정부의 권한을 인정하며 원고 측 손해를 사실상 방치했다. 보수 6대3 구도의 대법원은 대통령이 연방 예산 집행을 임의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계약적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하급심에서 잠시 승소한 사례도 있었지만, 항소와 대법원 재심 가능성을 고려하면 희망은 크지 않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대학들은 일부 연구비 복원 판결을 받아냈지만, 연방정부가 곧바로 상고 의사를 밝히며 효력은 미미했다. 이 같은 사법 환경은 대학들이 ‘계약을 맺어도 언제든지 무효화될 수 있다’는 불신 속에서 활동하도록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2026 회계연도 예산안은 연구개발(R&D) 분야 36% 삭감을 골자로 한다. NIH 예산은 40% 이상, NSF는 50% 삭감이 제안되었고,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는 사실상 지원 종료가 거론된다. 총 삭감 규모는 약 8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과학기술 역량 약화가 중국 등 경쟁국에 이익을 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행정부와 의회의 다수는 대통령의 의지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전후 미국의 기술 패권을 지탱해온 핵심은 대학 기반 기초연구 투자였다”며, 이번 삭감이 장기적 경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대학은 그간 세계 각국의 우수 연구자를 끌어들이며 글로벌 과학 네트워크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은 이 기반을 직접 겨냥한다. 신규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책정하겠다는 행정명령은 대학과 연구기관의 부담을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또한 대학 연구 성과에서 발생하는 지식재산권(IP) 수익에 대해 50% 과세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산학협력 모델의 근간을 흔든다. 민간 기업과의 공동 연구, 특허 라이선스, 창업 지원 등에서 대학의 역할이 축소되면 혁신 생태계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
학문 자유 위축과 대학 내부 변화
재정과 제도적 압박은 대학 내부의 문화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DEI 프로그램은 보수 진영에서 ‘역차별’의 상징으로 지목되며 해체 압박을 받고 있고, 일부 대학은 정부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관련 부서를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교수와 연구원들의 발언 역시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공지능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연구 제안서와 개인 발언에서 특정 키워드나 정부 비판을 추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따라 많은 대학이 ‘예방적 순응’ 전략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학문적 자유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직접적 타격을 입은 UCLA와 캘리포니아대학 시스템은 주 정부와 함께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UCLA에 부과된 12억 달러 벌금을 “공갈”이라고 규정하며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동시에 주 차원에서 연구 자금을 확보하거나 채권 발행을 통해 연방 지원 공백을 메우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는 2004년 캘리포니아가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30억 달러 채권을 발행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그러나 당시와 달리 연방 차원의 전방위 압박 속에서 독자적 연구 지원 체제를 구축하기에는 행정적·재정적 제약이 훨씬 크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사회복지 예산 삭감으로 주 정부가 의료·복지 지출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은 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1945년 이후 미국은 대학과 연방정부의 협력 관계를 통해 세계적 연구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연방정부가 기초연구를 지원하고 대학은 인재와 지식을 제공하는 구조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체제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법적 안정성이 붕괴되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지원과 제재가 오가는 상황에서 대학은 더 이상 예측 가능한 파트너십을 기대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연방정부와의 동맹을 상정한 전략을 버리고, 주 정부·민간·국제 파트너십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의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삭감을 일부 저지하고 연방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행정부가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불이행’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커 실효성은 낮다. 둘째, 주 정부와 대학이 자체 재원을 마련해 연방 지원을 보완하는 경우다. 하지만 규모와 제도적 정당성 확보가 쉽지 않다. 셋째, 대학이 ‘예방적 순응’을 심화시키며 생존을 모색하는 경우다. 이는 학문적 자유의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장기적으로는 대학의 신뢰와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 결국 어떤 시나리오든 미국 고등교육이 과거와 같은 연방 의존 모델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단순한 재정 축소를 넘어, 고등교육의 정치적 독립성과 학문적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연구비 삭감, 국제 인재 유입 제한, 대학 직접 제재는 모두 대학을 ‘정권의 적’으로 규정한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 고등교육이 직면할 과제는 단순히 연방정부와의 힘겨루기를 넘어서, 새로운 재정 모델과 가치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적 가치, 학문적 자유, 국제 협력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미국 고등교육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세계적 우위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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