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2026년 지방대학 특성화 선도대학 육성사업 시안 발표
정원 3% 감축·학과 재구조화 전제로 5년 지원
성패는 ‘무엇을 줄일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교육부가 지방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한 새 특성화 지원사업을 내놨다. 이름은 ‘2026년 지방대학 특성화 선도대학 육성사업’이다. 영문 약칭은 FIRST, Flagship Initiative for Regional Specialized University Transformation이다. 교육부는 이 사업을 통해 지방 사립대학 15교 안팎을 선정하고, 2026년 예산 850억 원을 투입해 학교당 약 50억 원씩 5년간 지원할 계획이다.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는 재정지원뿐 아니라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 지정을 통한 규제특례도 적용된다.
겉으로 보면 지방대학 지원사업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지원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참여 대학은 2030학년도까지 대학별 입학정원의 3% 이상을 감축해야 한다. 특성화 분야를 중심으로 학과·학부·단과대학 구조도 재편해야 한다. 사업 선정 평가는 특성화 계획 75%, 2026년 대학혁신지원사업 정성평가 결과 25%를 반영한다. 사업비 역시 정원 감축 계획 40%, 특성화 평가 결과 60%로 나눠 배분된다.
따라서 이번 사업의 핵심은 “지방대학을 얼마나 지원하느냐”가 아니다. 정부가 지방 사립대학에 어떤 방식의 생존 조건을 제시했는가다. 지원금은 5년간 제공되지만, 정원 감축과 학과 재구조화는 대학의 장기 구조를 바꾼다. 교육부는 이를 ‘특성화’라고 부르고, 대학 현장에서는 이를 ‘구조개편’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업은 지방대학을 살리는 정책인 동시에, 지방 사립대학을 다시 선별하는 정책이다.
지방대 위기,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사업의 배경에는 학령인구 감소가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세부터 21세까지의 학령인구는 2022년 750만 명에서 2052년 424만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30년 사이 326만 명이 감소하는 셈이다. 교육부 기본계획 시안은 이 감소 충격이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서 더 크고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기간 학령인구 감소 규모는 수도권 136만 명, 비수도권 190만 명으로 제시됐다.
학령인구 감소는 전국 대학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지방대학에는 더 복합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수도권 대학으로의 학생 집중, 지역 청년층 유출, 지역 산업 기반 약화, 대학 재정 압박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교육부 시안은 2024년 기준 1교당 평균 재정규모가 수도권 대학 3,867억 원, 비수도권 대학 2,405억 원이라고 제시했다. 학생 1인당 교육비도 2025년 기준 수도권 1,986.3만 원, 비수도권 1,665.2만 원으로 차이가 난다. 2024년 일반대학 취업률 역시 수도권 65.4%, 비수도권 61.2%로 나타났다.
이 수치들은 지방대학의 위기가 단순히 신입생 모집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학생이 줄면 등록금 수입이 줄고, 재정이 줄면 교육투자가 줄어든다. 교육투자가 줄면 우수 학생과 교원이 떠나고, 대학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대학 경쟁력이 약화되면 지역 인재 양성과 산업 연계 기능도 약해진다. 교육부 시안이 말한 ‘미충원 심화-재정여건 악화-교육투자 감소-우수인재 유출-지역경제 침체’의 악순환은 이미 여러 지방대학이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이번 사업에서 ‘특성화’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학과를 유지하는 백화점식 운영으로는 학령인구 감소 국면을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학과와 시설, 교원, 행정조직은 그대로 유지된다면 대학의 단위 교육비와 운영 부담은 커진다. 교육부는 지방대학이 강점 분야를 정하고, 그 분야에 교육과정과 인프라를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줄일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다.
850억 원과 15교, 숫자보다 중요한 조건
이번 사업의 2026년 예산은 850억 원이다. 선정 규모는 지방 사립대학 15교 내외다. 단순 계산하면 학교당 약 50억 원 수준의 지원이 가능하다. 지원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이며, 2년 뒤 중간평가를 거쳐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중간평가 이후에는 지원액도 차등화된다.
지원 대상은 비수도권 사립대학 중 대학혁신지원사업 참여대학이다. 글로컬대학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이번 사업의 정책적 위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글로컬대학이 이미 대규모 혁신과 지역 거점화를 전제로 별도 지원을 받는 대학이라면, FIRST 사업은 그 밖의 지방 사립대학 중 특성화 가능성이 있는 대학을 대상으로 한 별도 선별 장치에 가깝다. 말하자면 지방 고등교육 정책의 또 다른 선별 트랙이다.
교육부는 사업명에 ‘선도대학’이라는 표현을 붙였다. 하지만 이 선도성은 단순히 우수 대학을 가려내는 방식이 아니다. 정부가 제시한 구조개편 조건을 수용하고, 대학의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대학을 찾는 방식이다. 신청은 대학 단위가 원칙이며, 분교 단위 신청도 가능하다. 컨소시엄은 ‘대학 간 역할 및 기능 조정’ 특성화에 한해 최대 2개까지 허용된다. 컨소시엄당 참여대학은 최대 3교까지 가능하다.
필수 참여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30학년도까지 2025년 입학정원 기준 대학별 입학정원의 3% 이상 감축이다. 다른 하나는 특성화 분야 중심의 학과 재구조화다. 교육부는 조기 감축 시 가산점을 부여하고, 2030학년도에 감축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간 역할 및 기능 조정’ 특성화를 추진하는 대학은 정원 감축 비율이 대학별 2%로 완화된다.
정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대학은 먼저 자신을 줄여야 한다. 다만 아무렇게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특성화 분야를 남기고 비특성화 분야를 줄이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업은 재정지원사업이면서 동시에 구조개편 유도사업이다.
정원 3% 감축, 실제 부담은 더 클 수 있다
정원 3% 감축은 숫자로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입학정원 1,000명 대학이라면 30명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시안의 정원 감축 인정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정원 감축분 계산 시 ‘선제적 감축’과 ‘미충원분 감축’을 구분한다. 선제적 감축은 1명을 줄이면 1명으로 인정된다. 반면 미충원분 감축은 1명을 줄여도 0.2명만 인정된다.
예를 들어 입학정원 1,000명인 A대학이 2025년에 신입생 15명을 충원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3% 감축 기준을 맞추려면 인정 감축 인원 30명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미충원 15명을 그대로 정원에서 줄여도 인정되는 감축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7명은 선제적으로 추가 감축해야 한다. 결국 실제 감축 인원은 42명이 되어야 인정 감축 인원 30명을 채울 수 있다.
이 설계는 정부가 단순한 서류상 정원 감축을 막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미 미충원된 인원을 정원에서 빼는 방식만으로는 구조개편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방대학 입장에서 보면 체감 부담은 커진다. 특히 이미 미충원을 겪는 대학일수록 미충원분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기준을 채우기 어렵다. 실제 운영 정원을 줄이는 선제적 감축이 필요하다.
사업비 배분 방식도 감축을 유도한다. 전체 사업비는 정원 감축 계획 40%, 특성화 평가 결과 60%로 나뉜다. 정원 감축 계획에 해당하는 사업비는 340억 원, 특성화 평가 결과에 해당하는 사업비는 510억 원이다. 정원 감축 비율이 3%를 넘고 5% 이하이면 선제적 감축분에 가중치 2.0이 적용되고, 5%를 넘으면 가중치 3.0이 적용된다. 반면 미충원분 감축은 3% 초과분에 대한 가중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는 대학들에 두 가지 신호를 준다. 첫째, 정원 감축을 피할 수 없다. 둘째, 단순히 미충원분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정부는 지방 사립대학이 실제 입학정원을 줄이고, 줄어든 정원만큼 대학 구조를 다시 설계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감축 이후다. 입학정원 감축은 등록금 수입의 장기 감소와 연결된다. 지원금은 5년이지만 줄어든 정원은 이후에도 대학 운영 구조에 영향을 준다. 정부가 지원하는 동안에는 특성화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지원 종료 이후에도 줄어든 정원과 재정 구조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이번 사업의 핵심 쟁점은 정원 감축 자체가 아니라 감축 이후의 지속가능성이다.
학과 재구조화, 교육 혁신과 구조조정의 경계
교육부는 특성화 분야 중심의 학과구조 개편을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학은 특성화 분야 선정 사유, 정원 감축 및 학과구조 개편 계획, 특성화 분야 교육과정 개편·운영 계획, 교육환경 개선 계획, 학생 진로·취업 지원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특성화 예시로는 대학 간 역할 기능 조정, 캠퍼스 특성화, 디지털 전환 특성화, 대학 자체 특성화 등이 제시됐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특성화 예시에서 제외됐다.
학과 재구조화는 대학 혁신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유사·중복 학과를 통폐합하고, 지역 산업과 미래 신산업 수요에 맞춰 교육과정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지방대학이 모든 학문 분야를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선택과 집중은 피할 수 없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실제 교육 혁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학과 이름 바꾸기와 정원 조정에 그칠지다.
대학 현장에서 학과는 단순한 교육 단위가 아니다. 교수의 소속이고, 학생의 전공이며, 졸업생의 정체성이고, 대학 재정의 기본 단위다. 학과를 줄이거나 통합하는 일은 교육과정 개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학생 학습권 보호, 교원 신분과 전공 적합성, 직원 업무 재배치, 동문 반응, 지역 산업체와의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얽힌다. 특히 지방 사립대학은 학과 하나의 존폐가 지역사회와 직접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교육부 시안도 이 점을 알고 있다. 특성화 대학 선정 지표에는 축소·폐지 학과에 대한 대책, 구조개선 계획에 대한 대학 구성원 간 합의와 참여 방안, 절차적 타당성 확보가 포함돼 있다. 이는 학과 재구조화가 단순 행정 결정으로 추진될 수 없다는 뜻이다. 대학이 특성화 계획서를 잘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절차와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학생 모집이 어려운 학과라고 해서 곧바로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 있고, 그 분야를 전공한 교원이 있고,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 기능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학생 수가 많은 학과라고 해서 반드시 대학의 장기 강점 분야라고 보기도 어렵다. 특성화는 단기 충원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대학의 역사, 지역 산업, 미래 수요, 교원 역량, 학생 진로, 재정 구조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업은 지방 사립대학에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 대학이 반드시 남겨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영역은 어디인가. 줄어드는 학령인구 속에서도 학생이 찾아올 이유를 만들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대학은 사업비를 받더라도 구조개편의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학과 빅딜’은 가능할까
이번 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학 간 역할 및 기능 조정’이다. 교육부는 대학 간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교우위 학과를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쉽게 말하면 A대학과 B대학이 모두 비슷한 분야를 운영하는 대신, A대학은 ㄱ분야를 강화하고 B대학은 ㄴ분야를 강화하는 식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대학 간 역할을 나누고 중복 투자를 줄이려 한다.
이 트랙에 참여하는 대학에는 인센티브도 제시된다. 정원 감축 기준을 3%에서 2%로 완화하고, 사업비 배분 시 기준의 120~150%를 배정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정성평가 시 평가 등급을 1등급 상향하는 안도 포함됐다. 규제특례도 눈에 띈다. 교원 이동 활성화를 위한 공개채용 예외 적용, 특성화 분야 교원 이동 시 정년기준 완화, 기자재 교환 허용, 협동수업 학점 인정 범위 확대,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운영과 공동 학위 수여 지원 등이 예시로 제시됐다.
정책적으로는 매력적인 구상이다. 지방대학들이 각자 모든 학과를 유지하려 하기보다, 인근 대학과 역할을 나누고 강점 분야를 키운다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도 여러 대학이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점을 폭넓게 인정한다면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다. 지역 산업 입장에서도 대학별 강점이 분명해지면 산학협력 파트너를 찾기 쉬워진다.
그러나 실제 실행은 매우 복잡하다. 대학 간 역할 조정은 국공립대학 간 통합이나 캠퍼스 특성화와 다르다. 이번 사업의 주 대상은 지방 사립대학이다. 사립대학은 각각 다른 학교법인, 이사회, 재산 구조, 인사 체계, 임금 체계, 대학 문화, 지역 기반을 갖고 있다. A대학의 기자재를 B대학과 교환하는 일, A대학 교원이 B대학으로 이동하는 일, 두 대학이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 이동을 제도화하는 일은 모두 법적·행정적·노무적 쟁점을 동반한다.
특히 교원 이동은 민감하다. 공개채용 예외와 정년기준 완화가 규제특례로 가능하더라도, 실제 교원이 이동하려면 신분, 임금, 연구실, 수업권, 연금, 승진, 소속감 문제가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학생 이동도 마찬가지다. 입학한 대학과 다른 대학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공동학위를 받는 방식이 학생에게 이득이 되려면, 학사운영 체계와 학위 브랜드, 통학 여건, 장학금, 기숙사, 비교과 프로그램까지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학 간 역할 조정은 이번 사업의 가장 중요한 실험이 될 수 있다. 개별 대학 단위의 특성화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인근 대학들이 같은 학과, 같은 시설, 같은 장비, 같은 교육과정을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다만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규제특례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 간 신뢰, 지자체의 조정 능력, 지역 산업체의 참여, 구성원 보호장치가 함께 필요하다.
이 사업이 ‘학과 빅딜’이라는 표현만 남기고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는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는 몇 개 지역에 집중적으로 컨설팅과 법률·노무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대학 간 역할 조정은 사업계획서의 문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실제 협약, 교원·학생 보호, 자산 관리, 학사제도 조정, 재정 배분 원칙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 특성화, 이름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교육부는 특성화 방향 중 하나로 디지털 전환 특성화를 제시했다. 인공지능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학이 디지털 전환을 특성화 전략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지방대학은 지역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재직자 재교육과 성인학습자 교육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특성화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대학이 AI, 데이터, 반도체, 스마트제조, 바이오디지털, 디지털헬스 같은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곧바로 특성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전환은 고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과정, 교수역량, 학습지원, 산학협력, 데이터 기반 행정, 학생 진로지원 전체를 바꾸는 일이다.
지방 사립대학이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단기 사업비를 활용한 외형적 디지털 투자다. 5년간 지원금이 있을 때는 플랫폼과 장비를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지원 종료 후 유지비와 라이선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오히려 재정 부담이 된다. 디지털 전환 특성화는 ‘무엇을 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교육부 기본계획 시안의 해외 사례도 이 지점에서 읽어야 한다. 시안은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학과 재구조화와 AI 활용, 시드니대학교의 생성형 AI 활용 가이드와 정규과목, 영국 오픈대학교와 캐나다 아타바스카대학교의 유연한 학사운영 사례 등을 제시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대학 운영모델의 전환이다. 온라인 기반 수업, 모듈형 학사운영, 성인학습자 친화적 제도, AI 활용 교육과정, 산업 연계 프로그램이 함께 움직인다.
지방 사립대학의 디지털 전환도 같은 방향이어야 한다. 지역 제조업의 AI 전환을 지원하는 계약학과, 지역 병원과 연계한 디지털헬스 실습, 농업·물류·관광 분야 데이터 교육, 지역 중소기업 재직자 대상 마이크로디그리, 학생 맞춤형 AI 튜터와 진로지원 시스템 등이 실제 교육모델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름만 디지털인 학과 개편은 오래가지 못한다.
RISE와 글로컬대학 사이, FIRST의 위치
이번 사업은 단독으로 볼 수 없다. 최근 정부의 지방 고등교육 정책은 RISE, 글로컬대학, 대학혁신지원사업, 거점국립대 투자, 사립대학 구조개선 논의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RISE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로, 지자체가 지역발전전략과 연계해 대학지원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도록 하는 구조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RISE를 전국 시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글로컬대학은 비수도권 대학 중 세계적 수준의 지역 혁신대학을 육성하겠다는 선별 지원 정책이다. 이 정책은 대규모 재정지원과 규제혁신을 통해 대학이 담대한 혁신을 추진하도록 설계됐다. 반면 FIRST 사업은 글로컬대학을 제외한 비수도권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정부가 지방 고등교육을 여러 층위로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거점국립대와 글로컬대학 같은 대형 축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지역 사립대학의 특성화와 구조개편을 유도하는 축이 있다. RISE는 이 둘을 지역발전전략 안에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는다. FIRST 사업은 이 흐름 속에서 지방 사립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 정책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업은 지방 사립대학에 기회이자 압박이다. 글로컬대학에 선정되지 못한 대학, 거점국립대 중심의 투자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밀려난 대학, 학령인구 감소와 미충원 압박을 동시에 겪는 대학에는 새로운 재정지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가 요구하는 정원 감축, 학과 재구조화, 성과관리, 사후관리 기준을 감당해야 한다.
정책의 방향은 분명히 ‘보편 지원’에서 ‘선별 집중’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방대학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받는 시대가 아니라, 지역과 산업, 학생 수요에 맞는 특성화 계획을 제시하고 구조개편을 실행할 수 있는 대학이 지원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대학과 학생, 교직원, 지역사회에 대한 대책은 별도로 필요하다.
성과관리 10년, 혁신을 만들까 행정을 키울까
FIRST 사업은 5년 지원사업이지만, 관리기간은 더 길다. 교육부는 사업 2년 뒤 중간평가를 실시하고, 성과가 미흡한 대학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또 재정지원 종료 이후에도 5년간 사업 이행실적을 매년 점검한다. 사업기간 5년과 사후관리 5년을 합하면 총 10년의 관리체계가 작동하는 셈이다.
성과관리는 필요하다. 대학 재정지원사업이 단순한 예산 배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원 감축과 학과구조 개편이 실제로 이행되는지, 특성화 분야의 충원율과 중도탈락률, 진학·취업률이 개선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업 목적 외 예산 사용이나 부정청구에 대해서도 엄정한 관리가 필요하다. 교육부는 공공재정환수법상 부정청구 등에 해당할 경우 사업비 환수 외에 제재부가금을 최대 5배까지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성과관리가 지나치게 행정 중심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지방 사립대학의 행정조직은 이미 각종 평가와 재정지원사업, 인증, 정보공시, 지자체 사업 대응으로 상당한 부담을 지고 있다. 여기에 10년 동안 정원 감축 실적과 사업성과를 관리해야 한다면, 대학은 혁신보다 평가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다.
특히 성과지표가 단기 충원율과 취업률 중심으로 설계될 경우, 대학은 장기적 교육모델보다 단기 실적을 우선할 가능성이 있다. 지방대학의 특성화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역 산업과 교육과정을 연결하고, 성인학습자를 유입하며, 학생의 지역 정주를 높이고, 산학협력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성과관리는 엄격하되, 지표는 정교해야 한다.
특성화 분야 충원율, 중도탈락률, 진학·취업률은 기본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 기업과의 공동교육과정 운영 실적, 재직자 교육 참여, 성인학습자 등록, 지역 정주 취업,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 공동장비 활용, 대학 간 공동교육과정 이수, 학생 만족도, 폐지·통합 학과 재학생 보호 이행 등도 함께 봐야 한다. 지방대학 특성화의 목표가 지역 주도 성장이라면, 성과지표도 지역과 연결되어야 한다.
지방 사립대학이 마주한 선택
이번 사업에 참여하려는 대학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교육부는 6월 중 의견수렴을 거쳐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8월까지 사업계획서 접수와 평가를 진행한 뒤 9월에 지원대학 선정과 사업비 교부를 추진하는 일정을 제시했다. 일정이 빠르다. 대학 입장에서는 몇 달 안에 정원 감축, 학과 재구조화, 특성화 분야, 교육과정 개편, 재정투자 계획, 성과관리 체계, 구성원 합의 방안을 한꺼번에 정리해야 한다.
이는 대학에 상당한 부담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동안 미뤄왔던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한다. 우리 대학의 핵심 분야는 무엇인가. 지역이 우리 대학에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우리 대학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5년 뒤 지원이 끝나도 유지할 수 있는 교육모델은 무엇인가. 줄어든 정원만큼 어떤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인가.
지방 사립대학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해 왔다. 학과 명칭을 바꾸고, 유망 분야 학과를 신설하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성인학습자 전형을 확대하고, 지자체 사업에 참여하고,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늘렸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전략은 대학 전체의 구조 전환으로 이어지기보다 단기 대응에 머물렀다. 이번 사업은 그런 단기 대응으로는 통과하기 어렵다.
특성화 계획은 대학의 강점과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 정원 감축과 학과구조 개편 계획은 적극성과 실현가능성을 갖춰야 한다. 교육과정은 혁신성을 보여야 한다. 교육환경 개선, 진로·취업 지원, 운영체계, 성과관리, 재정지원 종료 후 지속가능성까지 평가 대상이다. 결국 대학은 하나의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대학의 중장기 생존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이 하는 분야’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모든 지방대학이 AI, 반도체, 바이오, 스마트팩토리, 이차전지, 디지털헬스를 외친다면 특성화는 다시 백화점식 경쟁이 된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 보유한 교원, 기존 학과의 축적, 산업체 네트워크, 학생 특성, 성인학습자 수요를 기준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정해야 한다. 작지만 강한 특성화가 필요하다.
정부도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정원 감축에 따른 재정 공백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입학정원 감축은 단기적으로 정부 지원금으로 보완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등록금 수입 감소를 초래한다. 특히 사립대학은 등록금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정원 감축은 재정 구조에 직접 영향을 준다. 정부가 정원 감축을 요구한다면, 감축 이후 대학이 성인학습자, 재직자 교육, 산학협력, 지역 연계 교육으로 새로운 수익과 교육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를 열어야 한다.
둘째, 대학 간 역할 조정의 법적·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규제특례는 출발점일 뿐이다. 사립대학 간 교원 이동, 기자재 교환, 공동교육과정, 공동학위, 학생 이동, 재정 배분은 실제 운영 단계에서 많은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학들이 개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법률·노무·재정 컨설팅을 제공해야 한다. 대학 간 협력은 선언보다 조정이 중요하다.
셋째, 재학생 보호대책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학과 재구조화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체는 학생이다. 축소·폐지 학과 재학생의 졸업 보장, 전공 선택권, 편입·전과 지원, 수업 개설, 실험실습 유지, 장학금, 진로지원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대학 구조개편은 학생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지역과 산업의 참여를 실질화해야 한다. FIRST 사업이 지역 주도 성장과 연결되려면 지자체와 지역 산업체가 계획서의 협력기관으로 이름만 올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 산업 수요를 공동으로 분석하고, 교육과정을 함께 설계하며, 현장실습과 취업, 재직자 교육, 공동연구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학의 특성화는 대학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다섯째, 성과관리의 균형이 필요하다. 엄정한 관리는 필요하지만,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방식은 대학을 보수적으로 만든다. 특성화는 새로운 시도를 포함한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학사제도, 공동교육과정, 성인학습자 모델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부정과 미이행에는 엄격하되, 혁신 과정의 시행착오에는 학습과 개선의 기회를 줘야 한다.
‘특성화’라는 말의 무게
지방대학 정책에서 특성화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특성화가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학과 이름을 바꾸는 데 그쳤고, 때로는 정부 사업기간 동안만 유지되는 프로그램으로 끝났다. 사업이 끝나면 조직과 예산이 사라지고, 대학은 다시 이전 구조로 돌아갔다. 이번 FIRST 사업이 과거 사업과 달라지려면 특성화의 의미부터 달라져야 한다.
특성화는 특정 학과에 돈을 더 주는 일이 아니다. 대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정하는 일이다. 어떤 학생을 가르칠 것인지, 어떤 지역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어떤 산업과 연결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졸업 후 삶을 지원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지방 사립대학의 특성화는 더 절박하다. 수도권 대학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은 지방 사립대학에 선택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조금씩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줄일 것은 줄이고 남길 것은 강하게 만들 것인가. 정부는 후자를 선택한 대학에 재정과 규제특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이 줄이는 데만 성공하고 남기는 데 실패한다면, 특성화는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에 그칠 수 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숫자로 시작됐지만, 해법은 숫자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학령인구 326만 명 감소 전망, 비수도권 감소 규모 190만 명, 1교당 평균 재정규모 격차, 학생 1인당 교육비 격차, 취업률 격차는 위기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어느 학과를 남기고 어느 학과를 줄일지, 어떤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지, 어떤 지역 산업과 연결할지를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번 사업의 성패는 교육부의 850억 원보다 대학의 판단에 달려 있다. 대학이 자신의 강점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구성원과 충분히 논의하며, 지역과 산업을 실제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지원 종료 이후에도 유지 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정부도 대학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규제특례와 재정지원뿐 아니라 전환 비용과 갈등 조정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줄이는 대학이 아니라 남기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2026년 지방대학 특성화 선도대학 육성사업은 지방 사립대학 정책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사업은 지방대학에 재정을 투입하지만, 동시에 정원 감축과 학과 재구조화를 요구한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말하고, 대학은 생존과 정체성의 문제를 마주한다. 지역사회는 이 과정이 지역 인재 양성과 산업 기반 강화로 이어질지 지켜보게 된다.
이번 사업을 단순히 “지방 사립대 15곳에 850억 원 지원”으로만 이해하면 핵심을 놓친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지방 사립대학을 남길 것인가”다. 지원금은 일시적이지만, 구조개편은 오래 남는다. 정원 감축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지만, 특성화의 성과는 학생의 선택, 지역의 신뢰, 산업의 참여, 졸업생의 진로, 대학의 지속가능성으로 증명된다.
지방대학의 특성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교육부의 진단은 현실적이다. 그러나 특성화가 필수라면, 그만큼 섬세해야 한다. 정원을 줄이는 일은 비교적 명확하다. 학과를 통합하는 일도 행정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대학의 교육력을 살리고,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며,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다.
FIRST 사업은 지방 사립대학에 마지막 기회라기보다, 새로운 시험대에 가깝다. 이 시험의 답은 사업계획서의 화려한 문장에 있지 않다. 5년 뒤에도 남아 있을 교육모델, 10년 뒤에도 지역이 필요로 할 대학의 역할, 줄어든 정원 속에서도 더 강해진 학습 경험에 있다.
결국 지방대학 특성화의 핵심은 ‘얼마나 줄였는가’가 아니다. ‘무엇을 남겼는가’다. 정부와 대학이 이 질문을 놓치지 않을 때, 이번 사업은 구조조정의 이름을 넘어 지방 고등교육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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