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김문수·대학교육연구소,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상생 및 재정 지원 방향』, 2025)
한국의 고등교육정책을 보면 언제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문제는 정확히 진단하지만, 해법은 늘 ‘원칙’과 ‘선언’에 머무른다. 2025년 국회의원 김문수실과 대학교육연구소가 공동 발간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상생 및 재정 지원 방향』 보고서 역시 그 전형에 가깝다. 보고서는 데이터로 위기의 실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학령인구는 1990년 90만 명에서 2045년 23만 명으로 반 토막 나고, 지난 15년간 입학정원의 80% 이상이 지방에서 줄었다. 대학은 구조적으로 줄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한계는 그 이후에 등장한다. ‘권역별 협의체를 통한 자율 정원 조정’, ‘재정지원 연계’, ‘정원외 관리 강화’—모두 그럴듯한 말이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낮다. 문제의 본질은 숫자에 있지 않다. 정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대학의 기능과 국가의 역할을 재정의하지 않는 한 ‘상생’은 현실이 아닌 위안의 언어로 남는다.
보고서의 강점은 데이터다. 단순한 위기 담론이 아니라, 지난 15년간의 정원 변화와 충원율, 정원외 비중 등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2010~2025년 사이 전체 대학 입학정원은 21.4% 줄었고, 감축의 80% 이상이 지방에서 이루어졌다. 전문대학 감축률은 –39.4%로, 일반대학의 –9.8%보다 4배 이상 높다. 이 데이터는 ‘지방대 위기’가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통계적 사실임을 입증한다. 또한 신입생 충원율 96.2%, 재학생 충원율 92.6%라는 수치는 대학의 위기를 가시화한다. 충원율이 80% 이하로 떨어진 대학이 30여 개에 이르고, 전문대 중도탈락률이 8.9%에 달한다는 분석은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대학 체제의 왜곡된 구조를 수치로 보여준다. 수도권 정원 비중은 36%에서 40%로 상승했고, 지방은 그만큼 줄었다. 이는 “줄였는데도 수도권만 커진” 역설이다.
여기까지의 진단은 타당하다. 이 보고서는 위기를 정확히 본다. 하지만 그 이후, 즉 “어떻게 줄일 것인가”로 넘어가면 문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보고서의 핵심 해법은 ‘권역별 협의체를 통한 자율적 정원 조정’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처음부터 모순적이다. 정원은 대학의 생존과 직결된다. 감축은 곧 재정 축소이며, 교원 감원과 폐과, 나아가 폐교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 간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이타적 이상론에 가깝다. 수도권 대학은 충원율이 높기 때문에 줄일 이유가 없고, 지방대학은 이미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여력이 없다. 결국 협의체는 합의가 아닌 책임의 분산 도구가 된다. 정부는 ‘합의에 따른 자율 조정’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는 명백한 정책의 자기모순이다. 조정자 없는 조정, 강제력 없는 자율, 책임 없는 유도—이 세 가지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한다. 정책이 아니라 ‘책임의 회피 장치’에 가깝다.
보고서의 또 다른 축, ‘재정지원 연계’ 역시 불명확하다. 감축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구상은 원칙적으로 옳다.하지만 감축 여력이 있는 대학은 이미 재정이 안정적이고, 여력이 없는 대학은 지원이 있어도 감축이 불가능하다.즉, 이 구조에서는 지원이 가능한 대학만이 지원을 받는 기형적 순환이 발생한다. 결국 ‘자율 감축’은 “스스로 줄일 수 있는 대학에게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의미로 바뀐다. 상생은 경쟁으로 변하고, 구조조정은 시장의 논리로 흡수된다. 정부는 조정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고, 보고서는 그 과정을 ‘자율’이라는 언어로 포장한다.
보고서가 주목한 또 하나의 대목은 정원외 모집이다. 외국인과 성인학습자 중심의 정원외 모집은 이미 대학 생태계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대학의 정원외 비중은 전체의 58%, 전문대학은 84%에 달한다. 이는 충원율의 착시를 만드는 요인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대거 유치한 대학은 겉보기엔 충원율이 100%를 넘지만, 내국인 신입생 충원은 70%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보고서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정원외를 단순화하고, 정원 내외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 제안은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지방대학 상당수는 정원외, 특히 외국인 유학생 유치 수입에 의존해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정원외 모집을 제한하면 재정은 즉각 붕괴하고, 결국 폐교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양적 제한’을 말하지만,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질적 관리’다. 누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유학생을 교육할 것인가가 문제이지, 몇 명을 받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이 지점을 놓친 채 단순히 비율만 조정하면, 정원외 정책은 또 다른 구조조정의 이름이 된다.
결국 정원외 확대는 위기의 증상이자 대학 재정 구조의 적응 전략이었다. 이를 제한하는 것은 증상을 없애는 대신 생존의 통로를 끊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의 본질은 ‘관리’가 아니라 ‘대학 재정 구조의 공공화’다. 정원외 문제에 대한 제안은 타당하지만, 어쩌면 실행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큰 처방이 될 수도 있다.
보고서는 대학 구조조정의 공공적 축으로 거점국립대 육성을 제안한다. 2030년까지 서울대 수준(1인당 교육비 6,300만 원)에 근접하도록 단계적으로 인상하자는 것이다. 현재 거점국립대의 1인당 교육비는 2,539만 원으로 서울대의 40% 수준이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한 제안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역거점대학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타당하다. 문제는 예산의 현실성이다. 교육부 예산은 줄고 있고, 일반재정지원사업은 이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그런 상황에서 국립대 1인당 지원액을 두 배 이상 늘린다는 것은 정치적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형평성이다. 거점국립대에 집중하면, 지역의 비거점 국공립대와 사립대는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다. 결국 지역 안에서도 ‘거점대 중심 집중화’라는 또 다른 불균형이 생긴다. 보고서가 지적한 수도권 편중의 구조를 지역 내부에 재현하는 셈이다. 사립대 지원 방안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는 사립대 재정지원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자구노력과 투명성 강화”를 전제로 둔다. 그러나 ‘자구노력’이란 무엇인가. 법인 전입금 확대인가, 부정비리 근절인가, 경영 개선인가. 기준이 불분명한 조건은 오히려 지원을 지연시키는 구실이 된다.

이 보고서의 미덕은 위기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수치와 지표는 정확하고, 문제의 본질도 분명하다. 그러나 처방은 선언에 머문다. 협의체를 통한 자율 조정, 재정지원 연계, 정원외 관리, 거점국립대 육성—이 모든 제안은 방향적으로 옳지만, 현실적 실행 경로가 없다. 결국 보고서는 “옳은 말을 하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갇혀 있다. 이상적 해법은 정치적 언어로는 유용하지만, 정책의 언어로는 무력하다. 자율 감축은 자율이 아니라 방임이고, 상생은 실질이 아니라 상징이다. 정부가 조정자로 나서지 않는다면, 대학 간 합의는 불가능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협의가 아니라 공공적 결단이다. 그러나 그 결단은 단순히 ‘얼마나 줄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대학정책의 중심은 정원 감축이 아니라 대학의 재정의(redefinition) 로 옮겨야 한다. 감축은 결과일 뿐, 출발점이 될 수 없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떤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 지역과 사회 속에서 대학이 어떤 공공적 역할을 맡을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합의 없이 숫자를 줄이는 일은 ‘정책’이 아니라 ‘행정’이다.
대학은 더 이상 청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성인 학습자, 지역 인력, 산업 전환기에 놓인 노동자들이 함께 배우는 지식 생태계의 허브로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은 정원의 조정이 아니라 대학 기능의 재구성이어야 한다. 산업 중심 대학, 지역 혁신 중심 대학, 평생학습 중심 대학, 연구 기반 대학 등으로 기능을 분화하고, 그 위에서만 감축과 지원의 기준이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런 전환이 없이 단순히 ‘줄이는 일’만 반복하면,결국 남는 것은 대학이 아니라 통계상의 감축률뿐이다. 정확한 진단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단만으로는 환자가 낫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현상을 정확히 보았지만, 체질을 바꿀 용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감축 로드맵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정원 상생”이라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정책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