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공백과 숙련 인력 활용 위해 ‘정년연장’ 논의 본격화… 청년 고용 위축과 기업 부담 우려도 병존
초고령사회, 이제는 ‘정년 65세’ 논의할 때
한국은 이미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동시에 출산율은 0.75명으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생산가능인구는 2070년까지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러한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노동시장, 복지 재정, 국민연금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위기를 예고한다. 이 가운데 정년연장이 고령층의 조기 퇴직 문제, 소득 공백, 숙련 인력의 이탈을 완화하는 해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제22대 국회에는 관련 법 개정안이 다수 계류 중이며, 정부 역시 2025년 내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년연장 논의는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이해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년연장의 필요성과 현실 사이
정년은 법적 퇴직 시점을 뜻하며, 현재 한국은 60세로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라는 점이다. 이 5년의 소득 공백은 많은 고령층의 빈곤으로 이어지며, 연금재정의 조기 고갈 문제와 맞물려 고령자 고용안정에 대한 정책적 해법이 절실해졌다. 특히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은퇴 연령에 본격 진입하면서, 이들의 노동시장 이탈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교육수준과 직업역량이 높은 이 세대는 단순히 ‘은퇴자’가 아닌 ‘계속 일하고자 하는 숙련 인력’이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 중 69.4%가 “앞으로도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으며, 희망하는 근로 연령은 평균 73.3세에 달했다.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과 조건을 둘러싼 입장차는 뚜렷하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 자체를 65세로 연장하되, 임금피크제 등 부수적 조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년연장을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노후빈곤 예방의 핵심 수단으로 본다. 반면 경영계는 법정 정년은 그대로 두고, 필요시 기업이 자율적으로 재고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특히 정년연장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 없이 추진될 경우, 중견·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업 규모별 수용 가능성과 산업별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제22대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들
현재 국회에는 총 13건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다수 개정안은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되, 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연계하는 방식이다.일부 개정안은 법정 정년 60세를 유지하면서도,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계속고용 의무제’ 도입을 제안한다. 일본이 시행 중인 이 제도는 정년 이후 일정 기간 재고용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일정 수준의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령화가 전 세계적 현상인 만큼, 주요국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미국과 영국은 아예 정년 상한 자체를 폐지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 정년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일본은 법정 정년은 유지하되, 65세까지의 고용을 의무화하고, 70세까지의 취업은 기업의 ‘노력 의무’로 둠으로써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용 중이다.
한국의 경우도 단일한 정년 연장보다는 연금제도, 임금체계, 기업 규모, 산업별 특성 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쟁점①: 정년연장 방식 – ‘연장’이냐 ‘재고용’이냐
노동계는 고용법 개정을 통한 법정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자율적 재고용 방식 선호로 맞서고 있다. 전자는 제도화로 인한 강제성과 고용 안정성을 내세우고, 후자는 유연성과 기업 자율권을 강조한다. 단순한 연장 여부를 넘어, 어느 방식이 더 실효적인 고용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논의가 요구된다.
쟁점②: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의 정합성
현재 60세 정년과 65세 연금 수급 연령 사이의 ‘5년 공백’은 고령층 소득 단절과 빈곤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법정 정년을 연금 개시 시점에 맞추는 것은 제도 간 정합성을 높이고 정책적 연계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부담 증가와 운영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유예 기간 설정 등 보완책이 필수적이다.
쟁점③: 임금체계와 근로조건의 개편
정년이 연장되면 자연히 임금체계와 노동조건도 조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고수할 경우, 고령 인력의 인건비는 급증하게 된다. 이에 경영계는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년은 늘리되 임금은 깎지 말라’는 입장이지만,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정부의 중재와 유인책이 절실하다.

쟁점④: 청년고용과의 충돌 가능성
가장 예민한 문제는 ‘정년연장이 청년의 일자리를 잠식하진 않는가’다. 이 부분은 정부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연구는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보나, 중소기업과 공공부문에서는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회 전체의 고용파이를 키우는 정책 없이는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정년연장, 준비 없는 결정은 위험하다
결국 정년연장은 단일 해법이 아니라 복합 해법이 되어야 한다. 특히 기존의 노사정 협의틀을 넘어 청년, 고령자, 중소기업,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확장된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이 선결과제다. 또한 단계적·점진적 시행이 필요하다. 대기업, 공공부문, 중소기업의 수용 여건이 다른 만큼, 업종별·규모별 맞춤 전략이 요구된다. 동시에 임금·근로시간 조정, 고용지원금 및 세제 혜택, 전직지원 컨설팅 등 다층적 정책 수단이 동반되어야 한다.
정년연장은 단순한 법 개정 문제가 아니다. 노동시장 구조, 복지 재정, 청년 일자리, 기업 운영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 정책 결정이다. 제도 시행 자체보다도, 어떻게 준비하고 누구와 논의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령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세대의 공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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