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교정으로 대사 경로 재설계…스테로이드 핵심 원료 ‘디오스게닌’ 1% 수율 확보
길가와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까마중’이 스테로이드계 의약품의 핵심 원료를 생산하는 식물 공장으로 전환됐다. 합성생물학과 유전자 교정 기술을 접목해 기존 약용식물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생산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KAIST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경상국립대학교 박순주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까마중(Solanum nigrum)의 대사 경로를 재설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의 필수 출발 물질인 디오스게닌(Diosgenin)을 고효율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디오스게닌은 소염제, 면역조절제, 피임약 등 다양한 스테로이드 의약품 합성의 핵심 원료다. 현재는 주로 마(Dioscorea)의 뿌리에서 추출하지만, 수확까지 수년이 소요되고 유전자 조작이 어려워 생산 확대에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효모나 담배를 이용한 대체 생산 연구도 진행됐으나 수율이 낮아 상업적 전환에는 제약이 있었다.
연구팀은 한 세대가 약 3개월로 짧고 유전자 조절이 용이한 까마중에 주목했다. 까마중은 본래 독성 스테로이드 성분을 생성하지만, 그 중간 대사물질이 디오스게닌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열매에서 솔라소딘 생성을 유도하는 GAME4 유전자를 제거하고, 잎에서 티고게닌 계열 합성을 담당하는 GAME25를 억제해 대사 흐름을 디오스게닌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열매와 잎 모두에서 디오스게닌 계열 물질 축적이 확인됐다. 특히 까마중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효소(SaF26G)를 활용해 별도의 화학 공정 없이 ‘자연 발효’만으로 안정적 구조 전환을 구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열매 건조 중량 기준 약 1% 수준의 디오스게닌 수율을 확보했다. 이는 기존 산업용 원료 식물과 유사한 수준이다.
여기에 경상국립대 연구팀이 개발한 열매 수확량 증대 기술(S 유전자 변이)을 결합해 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대폭 향상시켰다. 디오스게닌 고농도 합성과 다수 열매 형질을 동시에 구현함으로써, 동일 면적에서의 총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연구는 단순 성분 전환을 넘어, 식물 고유의 대사 네트워크를 정교하게 ‘재배열(Rewiring)’해 고부가가치 약용 성분을 생산하는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산 가수분해 공정을 대체할 친환경 자연 발효 기반 생산 체계로 확장 가능하다는 점도 산업적 기대를 높인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Plant Biotechnology Journal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한국연구재단 합성생물학 핵심기술개발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까마중 기반 식물 공장이 스테로이드 의약품 원료의 국산화와 공급 안정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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