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비 전용과 사립학교법 위반, 대법원 판결이 남긴 기준
2010년대 중반, 한 지방 사립대학의 총장이 교비회계 자금으로 소송비용과 자문료를 지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의 발단은 대학 내부에서 발생한 인사 갈등과 노사 분쟁이었다. 일부 교수의 징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명예훼손 고소, 그리고 복수노조 설립 이후의 법률자문까지, 일련의 문제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학교는 수많은 법적 대응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비용의 재원이 ‘교비회계’였다. 검찰은 이를 사립학교법 위반이자 업무상횡령으로 판단하고 기소했다. 사립학교법 제29조는 학교법인의 회계를 법인회계와 학교회계로 구분하고, 교비회계의 수입과 재산은 다른 회계로 전출하거나 목적 외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핵심 쟁점은 단 하나였다. “이 지출이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회계 문제를 넘어, 사립대학 운영의 근본 원리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이후 1심, 항소심,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6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1심 판결 – 교육관 분쟁은 ‘학교교육’, 인사소송은 ‘법인사무’
2020년 8월 12일, 제주지방법원은 피고인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2019고정55). 법원은 교비회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며, 지출의 성격에 따라 유죄와 무죄를 명확히 나누었다. 법원은 우선, 대학이 추진한 교육관 신축공사와 관련된 소송비용은 무죄로 판단했다. 신축공사는 학생 교육에 직접 필요한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 해결비용은 교육을 위한 필수적 경비로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또한, 복직한 교수의 수업방해로 인해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었던 가처분 사건 비용 역시 학생의 학습권 보호와 직결된 사안으로 보아 교비지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교원 징계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대응, 명예훼손 형사고소, 노무법인 자문비용 등은 모두 학교법인의 운영에 관한 문제로 보았다. 이사회 의사록의 공개, 교직원 인사, 노사 관계는 학교법인 고유의 사무이며, 학교교육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을 교비회계에서 지출한 행위는 사립학교법 제29조 위반에 해당하며, 동시에 교비의 용도를 벗어난 사용으로서 업무상횡령이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을 다른 회계로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없으며, 교비회계의 세출은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로 한정된다”며 “용도 외 사용은 불법영득의사를 실현한 것으로 횡령죄가 된다”고 밝혔다. 결국 1심 법원은 피고인의 일부 지출을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사립대학의 재정운용에서 ‘교비회계의 직접성 원칙’을 다시 확인한 첫 단계였다.
항소심 – “고의가 없었다”는 항변, “미필적 고의”로 일축
피고인과 검사는 모두 항소했다. 피고인은 자신이 교비를 사용한 행위에 불법의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실무 담당자의 보고와 법무법인 자문, 타 대학의 사례를 참고해 적법하다고 믿었으며, 교비 사용이 학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1년 6월 17일,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2020노640). 항소심은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10년 이상 총장과 이사로 재직한 인물로, 교비회계와 법인회계의 구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육부의 회계관리 안내서, 대법원 기존 판례, 법무법인의 자문서 등에서도 인사 관련 소송비용은 교비에서 지출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원은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피고인이 교비 전용의 위법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했다는 결론에 이 르렀다. 즉,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또한 불법영득의사에 대해서도 명확히 판시했다. 피고인이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교비의 용도를 벗어난 사용행위 자체가 불법영득의사 실현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교비는 학교교육을 위한 공적 자금이며, 그 사용 목적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용도 외 사용만으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2도12408 등)를 그대로 적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교비는 학교의 교육 및 연구를 위한 재정적 기반으로, 그 목적을 벗어난 사용은 학교의 본래적 기능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결국 1심의 판단이 전면 유지되었고,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 교비회계의 ‘직접성’ 원칙 확립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피고인과 검사 모두 상고했지만, 2025년 4월 10일 대법원 제2부는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2021도8805).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먼저 사립학교법 제29조의 입법 취지를 다시 짚었다.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회계와 학교회계를 분리하도록 규정한다. 교비회계는 교육과 연구를 위한 자금으로, 다른 회계로의 전용이나 대여가 금지된다. 그 목적은 사립학교 재정의 투명성과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는 데 있다. 이어 대법원은 교비회계에서의 소송비용 지출 가능 여부를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소송이 학교교육의 본래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직접 필요한 경우에 한해 교비 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판단 기준으로는 소송의 경위와 성격, 비용 규모의 적정성, 지출 목적과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었던 교육관 신축공사 관련 소송비용에 대해서는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시설 확보와 관련된 것으로 교비지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면, 교원 징계와 이사회 의사록 공개, 명예훼손 고소, 노무법인 자문 등은 모두 학교법인의 사무로서 학교교육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은 명확했다. “교비회계의 자금은 학교의 학문 연구와 교육, 학교운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다른 회계로의 전용은 금지된다.” 교비 전용 금지는 단순한 행정 지침이 아니라 형사책임이 따르는 법적 의무라는 점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교비지출의 기준 – ‘학교교육과의 직접성’
이번 판결은 교비회계의 지출 가능 범위를 구체적으로 확립했다. 핵심은 ‘직접성’이다. 단순히 학교 운영에 필요하다는 사유만으로는 교비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학교교육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거나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인정된다.
법원이 제시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교육시설 건립과 관련된 분쟁 해결비용은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시설 확보를 위한 경비로 인정된다. 반면, 교원 인사, 노사분쟁, 법인 운영, 감사 대응과 같은 사무는 학교법인의 영역으로 본다. 교비회계는 학생 교육과 학문 연구를 위한 영역이고, 법인회계는 학교의 조직 운영과 인사, 자산 관리, 법적 책임을 담당한다는 구조적 분리가 다시 강조됐다. 따라서 교비지출의 허용 범위는 “학교교육의 본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지출”로 한정된다. 이 원칙은 단순히 특정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향후 모든 사립대학의 회계 운영 기준으로 작용할 법적 잣대가 되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학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용도가 제한된 자금을 그 목적 외에 사용하는 것은 그 사용이 학교나 법인을 위한 것이라도 불법영득의사를 실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는 교비 전용 행위의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근본 원칙을 제시한 판례로 평가된다. 즉, 개인적 이득의 유무와 무관하게, 용도 외 사용 그 자체가 횡령으로 간주된다. 교비는 ‘교육이라는 공공목적을 위한 자금’이지, 학교조직의 일반적 운영을 위한 자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피고인은 “학교를 위했다”는 명분으로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법원은 “교비의 용도 외 사용이 학교의 교수·학습활동에 제약을 초래할 수 있으며, 학교의 공공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립대학의 회계 구조는 일반 기업이나 공공기관보다 복잡하다. 대학은 법인과 학교가 분리되어 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두 회계가 긴밀히 얽혀 있다. 인사나 노사 문제, 각종 감사 대응은 학교 운영에 필수적이지만, 법적으로는 학교법인의 사무로 분류된다. 그동안 많은 대학이 이러한 비용을 교비에서 지출해왔고, 일부는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 을 받거나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해당 판결은 이런 현실적 관행에 분명한 경고를 보낸 셈이다. 법원은 “학교운영에 필요하더라도 교육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교비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는 단지 특정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사립대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교비회계와 법인회계의 경계는 행정적 편의가 아니라 법적 의무이며, 이를 위반하면 형사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 판결 이후 대학들은 교비전용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와 회계분리 시스템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사립학교법 제29조의 현실적 과제
사립학교법 제29조는 교비회계의 수입·세출 범위를 규정하지만, 그 세부 기준은 모호한 부분이 많다. 교육부가 매년 발간하는 ‘사립대학 회계관리 안내서’가 사실상 유권해석의 역할을 해왔지만, 이는 행정지침에 불과하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직접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다만, 여전히 경계선은 존재한다. 인사와 노무, 감사 대응 등은 학교교육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사안이 교수와 학생, 교육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직접성’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 교비지출의 범위를 한정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사립학교법과 하위 시행령에 교비회계 지출 판단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법적 명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립학교의 교비회계는 단순한 회계 항목이 아니라, 학교교육의 심장과도 같다. 등록금으로 조성된 이 자금은 교수와 학생의 학문활동, 연구, 장학, 시설 개선 등 학교의 본래적 기능을 지탱하는 재원이다. 이번 판결은 그 교비를 둘러싼 오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교비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그 용도를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로 한정했다. 이는 단순히 불법과 합법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사립대학이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이제 대학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출은 정말 교육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교비의 의미는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사립학교법 #교비회계 #교비전용 #업무상횡령 #대법원판결 #사립대투명성 #교육공공성 #스포트라이트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