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적립금, 등록금 억제 논리가 아니라 재정 혁신의 지표여야 한다

연세대·고려대·홍익대 수백억 원 적립… 누적 적립금만으로 등록금 인상 필요성을 차단하는 접근은 부적절하다

2025년 9월, 대학교육연구소에서 발표한 「2024년 사립대 적립금 분석」은 대학 재정을 둘러싼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사립대학이 보유한 교비회계 적립금 총액은 11조 5,644억 원으로 전년보다 4,287억 원 증가했다. 이는 2023년 증가액(3,804억 원)보다 더 큰 폭이다. 전국 대학 274곳 가운데 3곳 중 2곳(184곳, 67.2%)에서 적립금이 증가했고, 39곳은 변화가 없었으며 51곳은 감소했다. 전체적으로는 꾸준한 증가세다.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100억 원 이상 적립금을 늘린 대학’ 17곳이다. 연세대는 전년보다 365억 원을 더해 적립금이 6,548억 원에 달했고, 고려대는 342억 원, 홍익대는 334억 원, 한양대는 317억 원을 추가로 쌓았다. 이화여대는 204억 원, 울산대 177억 원, 계명대 161억 원, 가천대 144억 원, 수원대 132억 원, 청주대 129억 원도 100억 원 이상을 적립했다.

그런데 이들 대학 대부분은 같은 시기 등록금을 인상했다. 연세대는 4.98%, 고려대는 5.0%, 홍익대는 4.98%, 한양대는 4.9%, 수원대는 5.3%, 청주대는 5.1%, 영남대는 5.4%를 각각 인상했다. 이는 법정 상한선(5.49%)에 근접한 수치다. 교육부는 이미 “이월금 및 적립금 비율이 높은 대학은 등록금을 동결하라”고 권고했지만, 대학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막대한 적립금을 보유하고도 등록금을 인상해 학생·학부모의 부담을 키우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족 인출·과다 적립, 계획과 실행의 괴리

보고서가 드러낸 또 하나의 문제는 예산과 결산 간의 괴리였다. 사립대학들은 2024년 한 해 동안 적립금에서 1조 1,775억 원을 인출하겠다고 예산을 세웠지만, 실제 집행액은 9,559억 원으로 계획의 81%에 그쳤다. 반대로 적립은 9,115억 원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1조 3,903억 원, 즉 계획보다 53%나 초과했다.

연세대는 인출 계획 1,535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93억 원만 사용했고, 적립은 270억 원 초과한 1,058억 원을 기록했다. 고려대도 인출은 124억 원 줄이고, 적립은 482억 원을 더했다. 울산대는 인출 계획 2억 원에서 실제 62억 원을 쓰는 반면, 적립은 계획보다 83억 원 많은 239억 원을 채웠다. 이처럼 “인출은 줄이고, 적립은 늘린다”는 패턴은 여론의 불신을 키운다. 대학들이 대외적으로는 재정난을 호소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출을 줄이고 적립을 늘리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누적 적립금=등록금 억제 논리’는 단순하다

여기서 사회적 논의는 종종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다. “대학들이 적립금을 쌓으면서 등록금을 올린다 → 그러니 등록금 인상을 막아야 한다.” 이 단순한 도식은 학생과 학부모의 분노를 대변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대학 재정과 경쟁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하다. 적립금은 총액이 크다고 해서 즉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아니다. 상당 부분은 건축 기금, 지정 장학금, 연구기금 등 특정 용도가 지정돼 있다. 또 적립금의 일부는 건물 감가상각비 등 회계 규정상 반드시 적립해야 하는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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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따라서 적립금 총액을 근거로 등록금 인상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왜 적립금을 쌓느냐”가 아니라 “그 적립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다.

이 논점을 분명히 하려면 해외 대학의 Endowment 모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의 명문대학들은 적립금을 단순한 회계 잉여금이 아니라, Endowment(영구 기금)으로 발전시켰다.

하버드는 2024년 기준 5,320억 달러가 넘는 Endowment를 보유하고 있다. Harvard Management Company(HMC)는 이를 장기적이고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로 운용하며, 매년 원금의 4.5~5%만 지출한다. 이 수익은 장학금, 교수 급여, 연구비, 캠퍼스 인프라에 투입된다. 그 결과 학생 1인당 연간 6만 달러 이상을 지원할 수 있다. 등록금 수입보다 Endowment 수익이 더 큰 구조가 가능해진 것이다. 스탠퍼드의 Endowment는 2023년 3,650억 달러에 달한다. 전체 자산의 75%는 ‘Merged Pool’에 투자돼 있으며,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투자 원칙을 반영한다. 스탠퍼드는 장기적 투자 전략과 함께 재무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기부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기부금 확충으로 이어진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는 2022년 기준 60억 파운드의 Endowment를 보유한다. 설립 이후 224%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누적 14억 파운드 이상을 장학금과 연구, 인프라 확충에 배분했다. 옥스퍼드는 이를 통해 신설 학과를 세우고, 도서관과 IT 인프라를 강화하며, 학생들에게 다양한 장학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해외 대학의 Endowment는 단순한 누적 잔액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투자와 활용을 통해 교육·연구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자원이다.

한국 대학 적립금의 구조적 한계

반면 한국 대학의 적립금은 Endowment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대부분 등록금 회계의 잉여금이나 특정 사업비 적립에 불과하다. 장기 투자 수익을 기반으로 한 기금이 아니기에, 규모 자체가 작고 운용도 제한적이다. 전체 사립대 적립금 11조 원은 달러로 환산하면 1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버드 한 곳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이마저도 일부 상위 대학에 집중돼 있고, 다수 대학은 여전히 운영비 부족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문제는 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이다. 사립대 재원의 60% 이상이 등록금에서 나오고, 정부 지원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민간 기부 문화 역시 취약하다. 결국 한국 대학에서 적립금 규모만을 놓고 등록금 인상 여부를 논하는 것은 구조적 맥락을 무시한 접근이다.

그렇다면 적립금은 어디에 쓰여야 하는가. 세 가지 방향이 명확하다. 첫째, 장학금 확대다. 적립금의 일정 비율을 안정적 장학 재원으로 할당하면, 등록금 부담 완화 효과를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체감할 수 있다. 둘째, 연구기금화다. 정부 과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대학이 학문적 자율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적립금을 자체 연구기금으로 운용하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지원이 가능하다. 셋째, 교원 처우 개선이다. 낮은 급여와 부족한 연구 지원은 우수 인재 유출의 핵심 원인이다. 적립금을 교수 연봉과 연구 환경 강화에 투입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다. 교원 처우 문제는 단순한 내부 갈등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 EB 비자를 통해 이주한 한국인은 5,800명 이상으로, 일본·중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상당수가 연구자와 고급 인력이다. 서울대조차 우수 교수진 유출을 막기 위해 ‘특임석좌교수’ 제도를 도입해 정년을 넘어 75세까지 재임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전략적 적립금 활용 없이는 우수 인재를 지킬 수 없다.

앞으로 적립금 논의는 단순한 ‘총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학 재정의 투명성과 전략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전환돼야 한다. 대학은 적립금 운용 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성과를 사회와 공유해야 하고, 정부는 대학 재정 평가 지표에 ‘적립금 활용도’를 포함해야 한다. 민간 기부 활성화와 세제 혜택을 통해 Endowment식 장기 기금을 확충해야 한다. 등록금 동결 권고 같은 단기 처방을 넘어, 대학 재정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사립대 적립금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누적 총액만을 근거로 등록금 인상의 필요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적립금은 등록금 억제 논리의 무기가 아니라, 대학 재정의 건전성과 활용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표여야 한다. 적립금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다. 해외의 Endowment 사례가 보여주듯, 기금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한국 대학이 적립금을 단순한 잔액이 아닌 미래 경쟁력의 자산으로 전환할 때, 등록금 논란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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