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행위 공포를 넘어선 선택 – 맨체스터대가 AI를 ‘전면 도입’한 이유

생성형 AI가 대학 캠퍼스에 처음 등장했을 때, 대학이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혁신’이 아니라 ‘위기’였다. 학생들이 과제를 대신 쓰게 될 것이라는 우려, 시험과 평가의 공정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 교육의 성실성을 지탱해 온 최소한의 규범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이 빠르게 확산됐다. 많은 대학들은 이 새로운 기술을 학습 도구로 보기보다,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먼저 인식했다. AI 사용 금지 선언이 이어졌고, 표절 탐지 소프트웨어와 AI 판별 도구 도입이 급증했다. 생성형 AI는 ‘학습을 돕는 기술’이 아니라 ‘부정행위를 유발하는 위험 요소’로 규정됐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은 오래가지 못했다. AI 도구의 확산 속도는 대학의 규제와 감시 체계를 압도했고, 기술은 빠르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학생과 연구자들은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었고, 대학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좁아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지와 적발 중심의 대응이 학습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불신과 회피를 낳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은 AI를 막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했지만, 그 노력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금지는 답이 아니라는 깨달음

이 지점에서 일부 대학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이미 사용되고 있는 기술을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특정 학생이나 일부 전공만의 도구가 아니라, 학습과 연구 환경 전체를 바꾸는 기반 기술이 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이 여전히 금지와 처벌의 논리에 머문다면, 학생들은 비공식적으로 AI를 사용하게 되고, 교육기관은 그 사용을 지도하거나 교정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개념이 부상했다. ‘AI 활용’이 아니라 ‘AI 문해력(AI literacy)’이다. 이는 단순히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AI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학습과 연구 과정에서 책임 있게 사용하는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일부 대학들은 이제 AI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AI를 금지하는 대신, AI를 가르치고, 그 사용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대학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The University of Manchester의 결정이다. 맨체스터대는 2026년을 앞두고, 재학생과 교직원 약 6만 5천 명 전원을 대상으로 Microsoft 365 Copilot에 대한 접근 권한과 교육을 제공하는 전면 도입을 결정했다. 이는 특정 학과나 시범 그룹에 국한된 실험이 아니라,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일괄적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대학은 AI 사용을 개인의 선택이나 편법의 영역에 맡기지 않고, 제도적 책임 아래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맨체스터대가 강조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사용 방식’이었다. 대학은 Copilot을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 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조건에서 AI를 접하고, 교육을 통해 그 한계와 위험까지 이해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AI 사용을 허용하되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대학은 AI가 이미 일상화된 환경에서, 불균등한 접근과 비공식적 사용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선택은 AI를 ‘막을 수 없는 기술’로 인정한 결과이자, 대학이 여전히 학습의 기준과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AI 문해력이라는 새로운 과제

AI 문해력이라는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는, 생성형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학습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정보를 찾고 활용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면, AI 문해력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생성 과정을 이해하며, 오류와 편향 가능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사고와 판단을 어디까지 위임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핵심이 된다. 이는 기술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적·윤리적 역량의 문제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대학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AI를 사용하는 방법만을 알려주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언제 사용해서는 안 되는지, AI가 제시한 답변을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까지 포함해 가르쳐야 한다. 특히 평가와 학습의 경계가 흐려진 상황에서, 학생들이 AI를 통해 ‘더 쉽게 답을 얻는 것’과 ‘더 깊이 사고하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대학이 아니면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다. AI 문해력은 개인의 윤리 의식에만 맡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정과 제도 설계를 통해 체계적으로 길러져야 할 역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의 역할 정의 자체를 흔들고 있다. AI를 둘러싼 초기 대응에서 대학은 감시자이자 규제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AI 문해력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대학은 통제 기관이 아니라 학습 환경의 설계자로 이동하고 있다.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과 맥락에서 사용하도록 안내할 것인가가 중심 질문이 된다. 이는 규정 몇 조를 추가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과 평가, 지원 체계를 함께 재설계해야 하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책임의 주체다. AI 사용을 전적으로 개인의 윤리 문제로 돌리던 접근은 한계에 부딪혔다. 접근 가능한 도구와 교육 기회가 불균등한 상황에서, ‘정직하게 사용하라’는 요구는 오히려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 일부 학생과 연구자는 비공식적으로 AI를 활용하며 앞서 나가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뒤처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대학이 AI 접근과 교육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AI를 사용하는 환경 자체를 공공의 책임 아래 두는 것이, 오히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판단이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AI 사용 여부를 단속하는 기관에 머물 수 없다. 대신 AI가 일상화된 학습 환경 속에서, 학생과 연구자가 어떤 사고 능력과 판단 기준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는 기술 변화에 대한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대학이 여전히 지식 생산과 교육의 중심 기관으로 남기 위한 능동적 선택에 가깝다. AI 문해력이 대학의 핵심 과제가 되면서,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르는 영역은 교육과 평가 방식이다. 생성형 AI가 보편화된 환경에서 기존의 과제와 시험은 더 이상 같은 의미를 갖기 어렵다. 결과물의 완성도만으로 학습 성취를 판단하는 방식은 AI 앞에서 빠르게 무력해진다. 중요한 것은 답을 얼마나 잘 만들어냈는지가 아니라, 그 답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졌는가다. AI를 활용했다면, 왜 사용했는지, 어떤 부분을 위임했고 어떤 부분은 스스로 사고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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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는 평가 기준의 이동을 요구한다. 지식 재현 중심의 평가에서 사고 과정과 판단 능력을 드러내는 평가로, 개인의 산출물에서 맥락과 근거를 중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과제 유형을 바꾸는 문제를 넘어선다. 교수자의 역할 역시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설계자와 촉진자로 이동해야 한다. AI를 전제로 한 수업 설계, 토론 중심의 학습, 비판적 검토를 요구하는 과제는 추가적인 준비와 역량을 필요로 한다. 결국 AI 문해력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된다.

한국 대학에 던져지는 질문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대학의 현재 위치를 돌아보게 된다. 많은 대학들이 여전히 AI를 둘러싼 논의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일부는 규정을 통해 사용 범위를 제한하고, 일부는 사실상 방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두 접근 모두 AI가 이미 학습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금지는 실효성을 잃기 쉽고, 방치는 불평등한 사용과 혼란을 낳는다. 맨체스터대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를 둘러싼 선택은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어떤 교육 기관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이다. AI 문해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교수자와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지원과 기준을 마련할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그 책임을 개인이 아니라 제도 차원에서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AI를 가르치지 않는 대학은, 결국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비판 없이 소비하는 인력을 배출하게 될 위험을 안게 된다. 이제 대학은 AI를 막는 기관이 아니라, AI와 함께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대학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 학생들이 어떤 도구를 사용할 것인지는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대학이 그 사용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안을 것인가에 있다. AI를 금지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습의 실제 환경과 대학 교육 사이의 괴리를 키운다. 반대로 AI를 제도 안으로 들여오는 선택은 더 많은 책임과 고민을 요구하지만, 대학이 여전히 학습의 기준을 설정하는 기관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맨체스터대의 선택은 기술 낙관이나 도구 숭배의 결과라기보다, 이 현실을 인정한 판단에 가깝다. AI가 이미 학습과 연구의 일부가 된 상황에서, 대학의 역할은 사용을 막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위임하고 무엇을 스스로 사고해야 하는지, AI의 결과를 어떻게 검증하고 비판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이는 기술 교육이 아니라 사고 교육의 문제이며, 대학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내세워 온 핵심 영역이기도 하다.

AI를 가르치지 않는 대학은 결국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해석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인력을 사회로 내보내게 된다. 대학이 지금 내리는 선택은 특정 도구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AI 시대에도 여전히 공공적 교육기관으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다. 금지에서 문해력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대학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그 선택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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