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만으론 부족한 시대, 실용성과 연결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학습자들을 위한 고등교육의 과제
로빈 영(Robin Young)의 이력은 전통과 전환의 교차점에 서 있다. 그는 박사 과정 중 교육의 이상을 좇던 학자였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구조 너머에서 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의 필요를 느꼈고, 결국 MBA 과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선택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었다. 교육이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질문의 시작이었다. 지금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더럼칼리지에서 ‘기업 맞춤 교육’(Corporate Training Services) 팀을 이끌고 있다. 그가 최근 Higher Education Digest 쓴 칼럼의 제목은 이렇다. “고등교육의 다음 장: 수요 중심 학습(Demand-Led Learning)”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다. “교육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필요에 맞닿아야 한다.”
학생이 바뀌었다. 그런데 대학은 아직 그대로다
오늘날의 학습자는 이전과 다르다. 유튜브에서 필요한 정보만 찾아보고, 강의보다 실무 예제를 먼저 클릭한다. 이들에게 교육은 ‘일단 듣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바로 찾는 것’이다. 로빈은 말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건 짧고, 명확하며, 당장 쓸 수 있는 배움이다.” 하지만 많은 대학은 여전히 긴 시간, 복잡한 절차, 일방향 강의를 중심에 두고 있다. 문제는 명확하다. 학생은 변했지만, 교육의 틀은 그대로다.
로빈이 말하는 Demand-Led Learning, 즉 ‘수요 중심 학습’은 지금의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 방식이다. 이는 단지 새로운 유행어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수요 중심 학습은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산업과의 공동 설계. 교육기관이 산업계와 협력해 커리큘럼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럼칼리지는 지역 소방서와 함께 ‘엘리베이터 구조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몇 주에 걸친 이론 강의가 아니라, 며칠 만에 실전 대응 능력을 갖춘 교육이 바로 시작되었다.
둘째, 짧고 실용적인 학습 모듈. 전통적인 2년, 4년제 학위 프로그램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단기간에 이수할 수 있는 마이크로 자격증이 중심이 된다.
셋째, 학문과 실용의 균형. 수요 중심 학습은 학문적 탐구를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론과 실용을 모두 살려, 현실의 삶과 연결된 교육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러한 구성은 단지 수업 운영 방식을 바꾸는 차원을 넘는다. 교육이 사회와 맞닿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학생은 이제 ‘학습자’이기 전에 ‘소비자’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더 이상 대학이 시키는 대로만 배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 수업을 들으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죠?” “취업에 도움이 되나요?” “시간과 돈을 들일 만큼 가치가 있나요?” 이 질문들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교육이 마주해야 할 당연한 질문들이다. 배움이 삶의 목표에 닿지 못하면, 교육은 의미를 잃는다. 로빈은 말한다. “이 변화는 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교육이 이론과 실용을 통합할 수 있다면,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로빈은 대학과 기업의 관계를 ‘협업’으로 다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함께 교육을 설계하고, 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반영하되, 대학의 학문적 기준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육은 더 실용적으로 바뀌고, 기업은 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게 된다. 무엇보다 학생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사회 속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 체감할 수 있다.
미래 교육은 ‘짧고, 정확하고, 연결된’ 경험이 될 것
로빈은 미래 교육의 키워드를 다음처럼 정리한다. “짧고(stackable), 명확하며(impactful), 산업과 연결되고(co-designed), 삶의 맥락에 맞는(contextualized) 학습 경험.” 이 네 가지 요소는 지금 시대에 진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더 이상 강의실 안에서만 통하는 지식이 아니다. 현장과 연결된, 삶과 연계된 교육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TEDx 강연에서 로빈은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더 잘 배운다.” 수요 중심 학습은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공감의 교육 설계다. 학생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이 진짜 필요한 순간에 교육이 손에 닿도록 만드는 일. 그게 진짜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
로빈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미 전문성과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건, 그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잘 전달하는 능력이다.” 고등교육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막, 다음 장(next chapter)이 열리고 있을 뿐이다. 그 장에는 전통적인 학위도 있고, 실용적인 단기 교육도 있다. 그리고 산업과 대학이 함께 만든 새로운 학습 경로가 있다. 이제는 “전통이냐 변화냐”를 고를 필요가 없다. 그 둘을 모두 품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 교육의 핵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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