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천 명 규모의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국가창업시대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창업의 기회를 넓히는 일과 실패의 비용을 줄이는 일, 그리고 창업 열기를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바꾸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다. 이번 프로젝트가 창업을 일부의 선택이 아니라 모두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이제 검증의 시간도 함께 시작됐다.
창업은 오래전부터 미래의 언어였다
정부는 지난 3월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에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중소기업과 지역 간 양극화된 K자형 성장구조를 넘어설 대안으로 창업을 다시 전면에 세웠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지원사업 공고가 아니라, 창업정책을 국가가 창업 인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자료에는 전 국민이 혁신에 자유롭게 도전하는 창업인재 육성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제시돼 있고, 도전·보육·경연·재도전이 연결되는 전주기 성장경로가 핵심 구조로 담겼다. 그러나 창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르는 일 자체는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수년 전부터 벤처와 스타트업을 성장의 언어로 호명해 왔다. 청년 일자리, 지역 소멸, 산업 전환, 기술 경쟁력 같은 거대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창업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문제는 창업 담론의 확산이 곧 창업 기회의 대중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실제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자본과 정보, 네트워크,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한 이들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창업은 모두의 가능성처럼 말해졌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일부의 선택처럼 남아 있었다.
이번 정책은 바로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말한다. 정부는 예비창업가부터 재창업가까지 참여 범위를 넓혀 총 5천 명의 혁신 창업가를 발굴하고, 지역 균형성장을 고려해 비수도권 창업가를 70% 이상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보육기관 100여 곳, 선배 창업가 멘토단 500여 명, 창업열풍펀드 500억 원, 최종 우승자 10억 원 이상 지원 같은 숫자도 제시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이 프로젝트는 분명 기존 창업 지원보다 더 넓고 더 크게 설계돼 있다.
‘모두의 창업’은 무엇을 바꾸려 하나
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은 창업을 일회성 공모나 단기 보조금 중심으로 다루지 않고, 도전에서 성장까지 이어지는 흐름으로 재구성하려 한다는 데 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기술 분야는 공모·보육, 지역오디션, 권역오디션, 대국민 경진대회로 이어지는 단계별 구조를 갖추고 있고, 로컬 분야 역시 별도의 성장경로를 마련했다. 초기 아이디어 단계에는 창업활동자금이 지원되고, 이후 사업화자금, 상금, 투자 연계, 글로벌 진출 패키지까지 연결된다. 단순히 한 번 선발하고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살아남는 창업가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제시한 지원 방식도 눈에 띈다. 국내 AI 스타트업이 개발한 범용 AI 솔루션을 창업가에게 제공하고, 정부가 AI 스타트업의 첫 구매자 역할을 하겠다는 대목은 단순 보육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수요까지 연결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여기에 규제 스크리닝과 법률자문, 비즈니스 모델 수정 지원, 지식재산 컨설팅까지 더해 아이디어가 제도와 시장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보완 장치를 깔겠다고 했다. 이것은 창업을 개인의 열정에만 맡기지 않고 제도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신호다.
이런 점에서 ‘모두의 창업’은 창업 지원사업의 외연 확대라기보다 창업정책의 문법을 조금 바꾸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창업기업이 아니라 창업 인재에 투자하겠다고 직접 밝힌 점도 상징적이다. 창업을 몇몇 성공 사례를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도전하고 그중 일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구조로 옮겨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단계다. 도전의 문을 넓히는 일은 중요하지만, 창업의 진짜 난관은 시작보다 그 이후에 있기 때문이다.
창업의 가장 높은 문턱은 실패 이후에 놓여 있다
정부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실패 문제를 비켜가지 않았다. ‘도전 경력증명서’를 발행해 참여 이력을 경력으로 축적하고, 향후 창업지원사업 참여 시 우대하겠다고 밝힌 점은 상징성이 크다. 또 한 번 참여한 창업가가 ‘제2차 모두의 창업’에 다시 신청할 경우 우대하고, 지식재산처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굴한 혁신 인재를 연계해 범부처 차원의 도전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실패를 끝이 아니라 다음 기회의 바탕으로 보겠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현실에서 창업이 어려운 이유는 단지 시작할 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실패 이후의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업이 멈췄을 때 개인에게 남는 것은 단순한 금전 손실만이 아니다. 경력의 공백, 신용의 악화, 관계의 단절, 자기책임의 낙인이 함께 남는다. 다시 도전하라는 말은 쉽지만, 실패의 무게가 온전히 개인에게 떠넘겨지는 구조에서는 재도전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된다. 그래서 창업을 모두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선언은 결국 실패를 어떻게 사회가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도전 경력증명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종종 지워야 할 이력으로 취급돼 왔다. 반면 이번 자료는 도전 과정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향후 지원사업 참여의 우대 근거로 삼겠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실제로 작동한다면, 실패 경험을 결손이 아니라 학습과 경험의 자산으로 보는 인식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상징이 곧 현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 경력증명서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력을 가질지, 이후 창업 지원과 투자 심사, 채용과 재교육의 장면에서 얼마나 인정될지는 여전히 남는 문제다. 문서를 발급하는 것과 실패의 낙인을 줄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정책의 진짜 성패는 몇 명을 선발했는가보다 몇 명이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는가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창업을 장려하는 사회는 많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는 사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모두의 창업’이 정말 모두의 창업이 되려면, 이 프로젝트는 도전의 기회만이 아니라 재도전의 조건까지 바꾸는 정책으로 읽혀야 한다.
열풍은 만들 수 있어도 생태계는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창업을 하나의 사회적 분위기로 확산시키려는 의도도 분명히 갖고 있다.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동시에 발대식을 열고, 지역에서 권역으로, 다시 대국민 경진대회로 이어지는 창업 오디션 구조를 제시했다. 선배 창업가 500여 명이 멘토단으로 참여하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10억 원 이상 지원과 후속 성장 패키지를 연계하겠다고 했다. 창업을 정책 용어에 머물게 두지 않고, 국민이 체감하는 이벤트이자 도전의 장면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장치는 분명 필요하다. 창업은 본래 위험과 불확실성이 큰 영역이고, 많은 사람은 시작 이전에 이미 자신과 무관한 세계라고 느낀다. 그런 점에서 오디션과 경연, 스타 창업가의 참여, 가시적인 지원 규모는 창업을 더 가까운 언어로 만드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책이 대중과 만나려면 어느 정도의 상징성과 흥행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열풍과 생태계는 다르다. 열풍은 짧은 시간 안에 관심을 모으고 참여를 확장시킬 수 있지만, 생태계는 실패를 흡수하고 다시 연결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발표회와 모집공고, 오디션과 파이널 무대는 눈에 잘 보이는 장면이지만, 생태계는 오히려 그 이후의 덜 화려한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창업가가 사업모델을 수정하고, 실증 기회를 찾고, 후속 투자자를 만나고, 규제 문제를 넘고,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버텨내는 구조가 있어야 비로소 창업은 생태계 안에서 자란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가 500억 원 규모의 창업열풍펀드 조성과 후속 성장 패키지를 제시한 것도 이런 문제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펀드와 자금 지원은 출발점이지 완결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자금이 어떤 기준으로, 어느 단계에서, 어떤 성장 가능성을 가진 창업가에게 연결되느냐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무대 위로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대 아래에서 다음 단계를 만들어 주는 연결망이 촘촘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열기를 남길 수는 있어도 구조를 남기지는 못한다.
지역에서 창업하라는 말이 현실이 되려면
이번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비수도권 창업가를 70% 이상 선발하겠다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기술 분야는 비수도권 70%, 로컬 분야는 비수도권 90%라는 세부 비율까지 제시됐다. 창업을 수도권 중심의 기회가 아니라 지역 균형성장과 연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셈이다. 이는 그동안 지역 창업정책이 안고 있던 한계를 정부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하지만 지역 창업의 문제는 선발 비율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지역에서 창업하라는 말이 현실이 되려면, 그 지역에 남아도 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기술을 시험할 공간, 실패를 감당할 시간, 연결 가능한 투자자, 사업을 함께 키울 보육기관, 필요한 인재를 붙잡을 주거와 생활 조건까지 함께 돌아가야 한다. 창업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생활과 산업, 교육과 자본이 얽힌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후속 과제로 AX·방산·기후테크 등 산업 분야별 혁신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모두의 챌린지’ 시리즈와 ‘창업도시 조성 프로젝트’도 순차적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모두의 창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창업가를 발굴하는 것과 창업기업이 자랄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역에서 창업하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결국 정책은 사람을 뽑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이 지역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대학과 보육기관은 조연이 아니라 실행의 중심이다
정부 자료를 보면 이번 프로젝트에는 프라이머, 퓨처플레이, 소풍커넥트,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전국의 우수한 보육역량을 가진 100여 개 창업기관이 참여하고, 토스의 이승건 대표, 뤼튼의 이세영 대표,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 등 선배 창업가 500여 명이 멘토단으로 나선다. 창업가와 기관, 멘토단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두의 창업플랫폼’도 구축된다. 정부는 이를 하나의 작은 창업생태계라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창업정책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놓이는가다. 중앙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자금을 배분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명의 예비창업가가 실제 사업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현장에서 진행된다.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듣고, 가능성을 판단하고, 초기 시행착오를 견디게 도와주고, 투자자와 연결하고, 규제와 시장의 장벽 앞에서 함께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그래서 대학과 보육기관, 지역 창업거점은 이번 프로젝트의 조연이 아니라 사실상 실행의 중심이다.
실제로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대학과 기관들은 그동안 축적해 온 창업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 거점 역할을 맡게 된다. 호서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이 이번 정책 국면에서 함께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서대는 별도 자료를 통해 창업중심대학사업, 벤처육성실, TIPS 운영조직, 호서벤처스테이션 등을 바탕으로 창업자 발굴과 보육, 투자 연계가 가능한 전주기 창업지원 체계를 강조했다. 기사의 본질은 특정 대학의 홍보가 아니라, 이런 현장 거점이 실제로 창업생태계의 연결자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중앙의 발표가 현실이 되려면 결국 이런 중간 거점의 역량이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대학의 역할도 다시 보게 된다. 대학은 더 이상 단순히 예비 창업자를 배출하는 장소가 아니라, 기술과 인재, 실험과 실증, 지역과 기업을 잇는 중간 플랫폼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이름만 올린다고 곧 창업 거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학생과 연구자, 지역 청년, 초기 창업가가 실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보육의 질과 후속 연결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가 더 중요하다. 대학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운영기관이라는 명패보다 실제 창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현장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모두의 창업’은 선언을 넘어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분명 이전보다 진전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창업을 소수의 영웅담이 아니라 전 국민의 도전 기회로 보겠다는 점, 실패를 경력으로 남기겠다는 점, 비수도권 비중을 높이고 지역을 정책의 중심축으로 끌어오겠다는 점, 멘토링과 플랫폼, 펀드와 후속 지원을 함께 설계하겠다는 점은 모두 가볍게 볼 수 없는 변화다. 한국의 창업정책이 단순 지원금 경쟁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인 구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을 만하다.
그럼에도 이 정책이 곧바로 ‘모두의 창업’을 현실로 만들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창업의 기회를 넓히는 것과 실패의 비용을 낮추는 것은 다르고, 선발 규모를 키우는 것과 생태계를 깊게 만드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하려면, 실패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조가 먼저 있어야 한다. 지역에서 창업하라고 말하려면, 지역에 남아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대학과 기관이 참여한다고 말하려면,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사람을 붙들고 다음 단계로 연결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국가창업시대의 첫 시험대는 결국 숫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5천 명을 선발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중 몇 명이 진짜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는지, 실패한 사람 가운데 몇 명이 다시 도전의 경로 안으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역과 대학, 보육기관이 얼마나 실질적인 버팀목이 되었는지다. ‘모두의 창업’이 진짜 모두의 창업이 되려면, 이 프로젝트는 이벤트를 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열풍은 시작을 알릴 수 있지만, 생태계는 남겨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의 크기보다 구조의 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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