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정보의 경쟁을 넘어, 대학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먼저 각인시켜야 한다
입시 시즌이 다가오면 대학의 홍보는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학과 소개가 정리되고, 취업률이 강조되며, 장학금과 등록금 정보가 체계적으로 제시된다. 캠퍼스 투어 영상과 홍보 브로슈어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입학처 홈페이지에는 수험생과 학부모가 궁금해할 만한 정보들이 빠짐없이 배치된다. 대학은 이제 자신이 가진 조건을 설명하는 일에는 상당히 능숙해졌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 대학 홍보의 오래된 착각이 있다. 설명을 잘하면 선택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정보를 많이 제공하면 관심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다. 입학처가 준비한 콘텐츠가 충분히 정리되어 있으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대학을 이해할 것이라는 전제다.
문제는 그 설명이 대개 너무 늦게 도착한다는 점이다. 학생이 이미 관심 대학의 범위를 좁히고, 어느 정도 마음속 후보군을 정한 뒤에야 대학의 세부 정보는 본격적으로 소비된다. 다시 말해 모집요강, 장학금, 학과 소개, 취업률은 선택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선택 이후의 확인 자료에 가깝다.
미국의 고등교육 마케팅 전문가 매트 기싱(Matt Gissing)은 최근 칼럼에서 대학 홍보의 한계를 자동차 판매에 비유했다. 그는 소비자가 렉서스 매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렉서스에 대해 ‘조용한 고급감, 신뢰성, 편안함’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인식은 판매 현장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브랜드 경험과 반복된 신호가 소비자의 머릿속에 먼저 자리를 잡은 결과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입학처가 제공하는 정보는 일종의 ‘판매 현장’에 해당한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는 그 자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대학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다. 어떤 대학은 역동적으로 느껴지고, 어떤 대학은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대학은 창의적인 분위기를 주고, 어떤 대학은 관료적이고 딱딱하게 보인다. 이 인상은 입학설명회 당일에 형성되지 않는다. 훨씬 이전에 접한 기사, 영상, 학생들의 이야기, 온라인 콘텐츠, 주변 평판, 캠퍼스 이미지가 쌓여 만들어진다. 지금 대학 홍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이 ‘이전 단계’다. 대학은 지원자가 관심을 가진 뒤에 무엇을 설명할지는 잘 준비하지만, 관심 자체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충분히 설계하지 못한다.
설명은 충분한데, 기억은 남지 않는다
요즘 시대 학생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다. 유튜브, 숏폼, 스트리밍 플랫폼, 크리에이터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다. 이들은 매일 수많은 콘텐츠를 접하고, 몇 초 만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무엇이 광고인지, 무엇이 억지로 만든 홍보물인지, 무엇이 실제 분위기를 담고 있는지 빠르게 감지한다. 이 환경에서 전통적인 대학 홍보 방식은 한계를 드러낸다. 잘 정리된 학과 소개 영상, 캠퍼스 전경을 담은 홍보물, 총장 인사말, 재학생 인터뷰, 취업률 그래프는 필요한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학생의 마음속에 특정한 감각을 남기기 어렵다. 많은 대학의 홍보 콘텐츠는 말끔하지만 비슷하다. 학생들은 밝게 웃고, 교수는 전문성을 말하며, 캠퍼스는 아름답게 촬영된다. 드론은 하늘에서 캠퍼스를 훑고, 자막은 미래와 도전과 혁신을 말한다. 그러나 영상을 다 보고 나서도 정작 그 대학만의 성격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싱은 이를 두고 대학들이 기관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기관의 성격을 전달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말은 한국 대학 홍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학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어떤 시설을 갖췄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열심히 말한다. 그러나 그 대학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곳의 학생들은 어떤 태도와 감각을 공유하는지, 그 대학이 학생에게 어떤 정체성을 제공하는지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정보는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기억을 만드는 것은 정보만이 아니다. 기억은 반복되는 이미지, 말투, 분위기, 이야기, 감정의 결합 속에서 만들어진다. 학생이 어떤 대학을 떠올릴 때 “거기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하려면, 대학은 설명보다 먼저 인상을 설계해야 한다.
학생은 학과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할 세계를 선택한다
대학 선택은 겉으로는 학과와 성적, 등록금과 취업률의 문제처럼 보인다. 물론 이 요소들은 중요하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부담, 청년 고용 불안이 겹친 현실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실용적 지표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선택은 언제나 숫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은 전공을 선택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할 세계를 선택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어떤 언어를 배우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갈지 상상한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청년기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이다.
이 점에서 대학 홍보는 입학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우리 대학에는 이런 학과가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곳에 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의 ‘What Can You Imagine at Purdue?’ 캠페인은 이 전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캠페인은 전통적인 캠퍼스 소개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로버를 만들고, 미시적 연구를 수행하고, 의류를 디자인하는 장면을 빠른 호흡의 시각적 서사로 엮었다.
이 콘텐츠의 핵심은 정보의 나열이 아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그 대학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역동성, 도전, 실험, 창의적 에너지가 장면을 통해 전달된다. 학생은 그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 안에 자신을 놓아본다.
이것이 브랜드 호감의 출발점이다. 학생이 대학을 비교표 위에 올려놓기 전에, 먼저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대학 홍보는 “우리 대학은 훌륭하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이 “저곳에 내가 있어도 좋겠다”고 느끼게 만든다.
홍보영상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만의 서사다
링링예술디자인대학(Ringling College of Art and Design)의 사례는 더 직접적이다. 이 대학은 영화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전형적인 프로그램 소개 영상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The Ringling Ghost’라는 모큐멘터리 형식의 콘텐츠를 내놓았다. 이 콘텐츠는 먼저 하나의 이야기로 기획되었고, 그다음에 마케팅 자산으로 기능했다. 이 접근은 대학 홍보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학생들이 억지로 봐야 하는 홍보물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싶어지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대학의 유머, 창의성, 분위기, 학생 문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식의 새로움만이 아니다. 모큐멘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이 해당 대학의 성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영화 프로그램을 홍보하면서 영화적 형식으로 자신을 드러냈고, 학생들에게 “이곳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 대학들도 홍보영상을 많이 만든다. 그러나 상당수는 대학 전체를 한꺼번에 설명하려다 보니 아무것도 선명하게 남기지 못한다. 모든 학과를 보여주고, 모든 시설을 담고, 모든 장점을 언급하려 할수록 콘텐츠는 평균적인 기관 소개물로 수렴된다.
대학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홍보물이 아니라, 더 선명한 대표 서사다. 한 해에 하나라도 대학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특정 연구실의 도전일 수도 있고, 한 학생의 성장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낸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통해 대학이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한국 대학 홍보가 놓치고 있는 것
한국 대학의 홍보는 오랫동안 입시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수시와 정시 일정에 맞춰 모집 정보를 제공하고, 전형 방법을 설명하며, 학과별 장점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필요하고, 또 정확해야 한다. 입시 정보의 오류는 학생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은 이 영역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입시 홍보가 대학 홍보 전체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모집 정보는 대학을 선택하려는 학생에게 마지막 확인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관심을 처음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이 차이가 더 중요해진다. 학생 수가 줄어들수록 대학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정보가 많아질수록 학생은 더 피로해진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대학이 남긴 인상의 질이다.
한국 대학의 메시지가 비슷해지는 것도 문제다. “글로벌 인재”, “창의 융합”, “미래 사회”, “혁신 교육” 같은 표현은 거의 모든 대학의 홍보 문구에서 반복된다. 표현만으로는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차별화는 문장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야기로 전달될 때 비로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기싱이 말하는 브랜드 호감(brand affinity)은 단순한 인지도와 다르다. 이름을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고, 좋아하는 것과 자신을 그 안에 연결해보는 것도 다르다. 브랜드 호감은 대학을 떠올릴 때 생기는 감정적 연결, 즉 “나와 어울릴 수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대학이 이 감각을 만들지 못하면, 학생은 결국 숫자와 조건만 놓고 대학을 비교하게 된다. 그 비교표 안에서 대학은 쉽게 대체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대학은 이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대학 홍보는 입시 정보를 버릴 필요가 없다. 모집요강, 장학금, 등록금, 취업률, 전형 방법, 학과 소개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홍보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대학은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대학을 떠올릴 때 학생들이 어떤 감정을 갖기를 원하는가. 우리 대학은 어떤 사람들의 공간인가.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태도로 성장하는가. 우리 대학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홍보는 계속 설명에 머문다. 설명은 필요하지만, 설명만으로는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기싱은 대학들이 매년 최소 하나의 대표 콘텐츠 자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콘텐츠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대한 호감을 만들기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이 제안은 한국 대학에도 유효하다. 모든 대학이 대규모 예산을 들여 화려한 영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진실한 장면을 찾는 일이다. 어떤 대학은 지역과 깊이 연결된 교육 경험을 보여줄 수 있고, 어떤 대학은 학생들의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보여줄 수 있다. 어떤 대학은 작지만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보여줄 수도 있다. 핵심은 ‘무엇이 우리 대학다운가’를 찾는 것이다.

성과 측정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대학 홍보가 바뀌려면 콘텐츠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정보 콘텐츠와 브랜드 콘텐츠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새로운 시도는 쉽게 위축된다. 입학전형 안내 페이지는 정확한 정보 전달과 전환율이 중요하다. 반면 브랜드 호감을 만드는 콘텐츠는 즉각적인 지원자 수 증가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그것은 대학에 대한 인식, 반복 노출, 감정적 반응, 공유 가능성, 장기적 기억을 통해 효과를 만든다.
그런데 대학 조직은 종종 모든 콘텐츠에 즉각적이고 계량적인 성과를 요구한다. 조회 수가 충분한지, 지원율에 바로 영향을 주었는지, 입학 상담 신청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묻는다. 물론 이런 지표도 필요하다. 그러나 브랜드 형성의 영역에서는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안전한 콘텐츠는 내부 결재를 통과하기 쉽다. 그러나 안전한 콘텐츠는 바깥에서 쉽게 잊힌다.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고, 어떤 논란도 만들지 않으며, 모든 부서가 무난하게 동의할 수 있는 콘텐츠는 대개 학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대학 홍보가 살아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구체성이 필요하다. 구체성은 때때로 선택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려는 콘텐츠보다, 우리 대학이 어떤 학생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콘텐츠가 더 강하다.
학생은 지원서를 쓰는 순간에 대학을 처음 선택하지 않는다. 이미 그 전부터 선택은 시작된다. 어떤 대학 이름을 들어봤는지, 어떤 대학 콘텐츠를 우연히 끝까지 봤는지, 어떤 대학의 학생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는지, 어떤 캠퍼스 이미지가 자신과 어울린다고 느꼈는지가 선택의 초기 지형을 만든다. 입학처가 등장하는 시점은 생각보다 늦다. 모집요강은 선택을 확정하는 데 필요하지만, 대학을 마음속 후보군에 올리는 힘은 그 이전의 브랜드 경험에서 나온다.
따라서 대학은 “어떻게 지원하게 만들 것인가”만 묻지 말고, “어떻게 먼저 떠올리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그 대학에 자신을 연결해보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학생은 단지 프로그램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정체성, 공동체, 미래를 선택한다. 대학이 그 미래를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로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홍보는 모집을 넘어 브랜드가 된다. 대학 홍보의 다음 과제는 더 많은 설명이 아니다. 더 선명한 기억이다. 더 많은 문구가 아니라, 더 살아 있는 서사다. 대학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지 못하면, 학생은 결국 조건표 위에서 대학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대학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학생은 그 대학을 단순한 지원처가 아니라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세계로 받아들이게 된다.
입시는 마지막 관문이다. 브랜드는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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