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혁신 담론이 반복해서 놓치는 것 : 변화의 언어는 넘치지만, 구조에 대한 질문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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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년간 ‘대학 혁신’을 이야기해왔다

우리나라 대학 사회는 수년째 혁신을 이야기해 왔다. 교육과정 혁신, 교수학습 혁신, 디지털 전환, 산학협력 강화, 지역 연계 전략까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지 않은 과제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혁신 담론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대학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는가. 대학을 둘러싼 위기는 완화되었는가. 오히려 많은 지표에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고, 위기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ㅜ이 간극은 단순히 혁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는 혁신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혁신이라는 언어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어 왔다는 데 있다. 혁신은 계속 선언되었지만, 그 혁신이 무엇을 전제로 하고 무엇을 바꾸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는지는 충분히 질문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체계 전환을 요구하는 단계로 이동했다. 이제 대학의 문제는 개별 대학의 노력이나 창의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학 혁신은 대부분 개별 대학 차원의 시도였다. 교육 프로그램을 바꾸고, 조직을 재편하고, 새로운 사업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각 대학은 나름의 혁신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 혁신은 공통적으로 일정한 경계를 넘지 않았다. 정원 구조, 재정 배분 방식, 퇴출과 통합의 기준, 고등교육 체계 전체의 역할 분담과 같은 문제는 대학 혁신의 논의 대상에서 지속적으로 비켜나 있었다. 그 결과 혁신은 축적되기보다 소진되었다. 각 대학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았지만, 변화의 방향은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혁신 담론은 위기를 돌파하는 언어라기보다, 구조적 결정을 유예하는 완충 장치로 기능해 온 측면도 있다. 혁신을 말하는 동안, 무엇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밀려왔다.

대학 혁신 담론은 언제나 옳은 말로 시작된다

대학을 둘러싼 혁신 담론은 대체로 무난한 언어로 시작된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변화해야 한다는 말, 기술은 수단일 뿐 목적은 교육이라는 말, 구성원의 신뢰와 참여가 중요하다는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 이 문장들은 옳고, 동시에 안전하다. 누구도 크게 반대하지 않고, 갈등을 촉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학 혁신에 관한 많은 논의는 시작부터 합의 가능한 문장들로 채워진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혁신 담론이 자주 멈춘다는 데 있다. 변화의 필요성은 반복해서 선언되지만, 그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흔들고 무엇을 잃게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은 뒤로 밀린다. 혁신은 말하지만, 그 혁신이 어떤 불편을 동반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학 혁신 담론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 중 하나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는 변화, 고유한 사명을 유지하는 혁신은 듣기 좋은 표현이다. 그러나 정체성이라는 말은 때로 중요한 질문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무엇이 정체성이고, 무엇이 관행인지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오래 지속되어 왔다는 이유만으로 정체성으로 호명되는 요소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는 특정 시기의 제도적 선택일 뿐이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담론은 변화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제한한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미리 나누어 놓음으로써, 논의는 안전한 영역에서만 이루어진다. 그 결과 혁신은 방향을 잃지 않는 대신, 깊이를 잃는다.

혁신은 말하지만, 무엇을 내려놓을지는 말하지 않는다

대학 혁신 담론에는 늘 추가와 확장의 언어가 많다.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기술, 새로운 협력 모델이 제시된다. 그러나 무엇을 중단하고, 무엇을 축소하고, 무엇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을 것인지는 상대적으로 잘 언급되지 않는다. 혁신은 흔히 더 많은 것을 하자는 제안으로 나타나지만, 대학의 현실은 이미 과잉된 구조 위에 놓여 있다. 내려놓지 않는 혁신은 피로를 낳는다. 기존 구조는 유지된 채 새로운 과제가 덧붙여지면, 변화는 곧 부담이 된다. 이때 혁신 담론은 현장에 동력을 제공하기보다, 또 하나의 관리 언어로 인식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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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학 혁신을 말할 때 구조에 대한 언급은 의외로 적다. 학사 구조, 고용 구조, 재정 구조와 같은 핵심 요소는 혁신 담론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대신 교육 방법, 기술 도입, 조직 문화와 같은 상대적으로 조정 가능한 영역이 논의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는 혁신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구조를 건드리는 순간 논의가 갈등과 선택의 문제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구조는 이해관계가 맞닿는 지점이다. 그래서 구조를 논의하지 않는 혁신은 합의를 얻기 쉽지만, 변화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대학이 반복해서 비슷한 혁신 담론을 되풀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한, 혁신은 언제나 미완의 상태로 남는다.

혁신 담론이 관리자 중심의 언어로만 유통될 때, 현장의 체감은 달라진다. 구성원들은 변화의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그 변화가 자신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혁신은 추상적인 목표로 제시되고, 실행은 개별 부서와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이 간극이 반복되면 혁신은 동기가 아니라 피로의 원인이 된다. 이때 나타나는 냉소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변화가 언제나 말로만 존재해 왔다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혁신 담론이 실패하는 이유는 구성원이 변화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혁신이 정말 어려운 이유

대학 혁신이 어려운 이유를 의지 부족이나 보수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질문의 방향에 있다. 우리는 종종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묻지만, 무엇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지를 먼저 묻지 않는다. 변화의 방법을 논의하면서, 변화의 대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질문의 결핍 속에서 혁신 담론은 반복된다. 언어는 세련되어지지만,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 결과 혁신은 늘 진행 중인 상태로 남고, 완결되지 않는다.

지금 대학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혁신 모델이나 전략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어떤 전제를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떤 구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지를 묻는 질문이 필요하다. 이 질문은 불편하고, 때로는 명확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질문을 피하는 한, 혁신 담론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 혁신은 선언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질문으로 깊어진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보다, 무엇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가를 묻는 순간부터 변화는 구체성을 갖는다. 혁신 담론이 그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학의 변화는 말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 다시 물어야 할 질문

이제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더 혁신할 것인가”가 아니다. 그 질문은 이미 충분히 반복되었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다. 개별 대학 차원의 혁신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끝내 바꾸지 못했는가.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어떤 구조적 선택을 미뤄왔는가. 대학이 직면한 위기는 혁신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결단을 혁신의 언어로 대체해 온 시간의 결과일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더 정교한 혁신 전략이 아니라, 대학 차원을 넘어선 고등교육 체계의 불가피한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혁신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구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제 대학 혁신 담론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가를 묻는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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