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조정 논의에서 당위에 밀리는 현장의 피로감

미국 고등교육 전문매체 Inside Higher Ed에 실린 레이첼 투어와 고든 지의 대담형 칼럼 「The Real Crisis in Higher Ed」는 대학 위기의 핵심을 단순한 재정난이나 교수사회의 저항으로만 보지 않는다. 두 필자는 대학이 변화의 압박 속에 놓여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그 변화가 현장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신뢰하며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섰다는 점을 짚는다. 특히 “교수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신뢰하고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더 빠르게 변화를 흡수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대학의 구조조정 논의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한국 대학에서 구조조정은 이미 익숙한 단어가 됐다. 학령인구 감소, 등록금 동결, 재정지원사업, 대학평가, 정원 감축, 학과 통폐합, 지역대학 위기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학의 생존을 말하는 자리에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제시되고, 대학본부는 숫자와 지표를 앞세워 더 빠른 결정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를 설명하는 언어가 많아질수록 정작 그 위기를 매일 견디는 현장의 언어는 사라진다는 데 있다. 대학 구조조정 논의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주체는 총장과 대학본부다. 그들은 재정과 평가, 정원과 조직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대학의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 반대로 가장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주체는 교수사회다.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고, 정원 조정에 저항하며, 기존의 전공 체계를 지키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구도만 놓고 보면 대학의 위기는 변화를 시도하는 행정과 변화를 거부하는 교수의 충돌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교수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교수들은 이미 강의실에서 변화의 압력을 몸으로 겪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 준비도는 예전과 달라졌고,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은 늘고 있으며, 취업 불안과 생계 부담은 수업 태도와 학습 지속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교수는 교육자이면서 연구자이고, 행정 문서 작성자이며, 평가 지표의 수행자이기도 하다.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을 상담하고 연구 성과를 내고 각종 사업과 위원회 업무를 처리하는 사이, 대학의 미래를 차분히 토론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구조조정의 순간이 오면 이 모든 피로는 쉽게 지워진다. 대학본부는 “이대로는 어렵다”고 말하고, 교수는 “왜 우리 학과부터인가”라고 묻는다. 본부는 숫자를 보여주고, 교수는 절차를 묻는다. 본부는 속도를 말하고, 교수는 신뢰를 요구한다. 그 사이에서 논의는 자주 감정적 대립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 대립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기득권 방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피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각,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불신, 그리고 교육 현장을 더는 예전 방식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무력감이 함께 놓여 있다.

대학 구조조정이 어려운 이유는 대학이 단순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이라면 수익성이 낮은 부서를 줄이고 새로운 사업 부문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선명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학과는 단지 행정 단위가 아니다. 학문적 정체성, 교수의 경력, 학생의 소속감, 지역사회와의 관계, 졸업생의 기억이 얽힌 공간이다. 한 학과를 없애거나 통합한다는 것은 시간표를 조정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직업적 생애와 학문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학과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학령인구가 줄고, 산업구조가 바뀌고, 학생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대학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는 방식이다. 구조조정이 숫자의 언어로만 전달될 때, 현장은 그것을 대학의 미래를 위한 설계가 아니라 생존 책임을 구성원에게 떠넘기는 절차로 받아들이기 쉽다. “학생이 줄었다”, “재정이 부족하다”, “평가 지표가 나쁘다”는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 사실만으로 구성원이 변화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동의는 정보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특히 교수사회가 느끼는 피로감은 단순한 업무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대학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과 연결돼 있다. 평소에는 각종 위원회와 사업, 학생 상담과 비교과 프로그램에 동원되지만, 정작 대학의 큰 방향을 정하는 순간에는 이미 짜인 안을 전달받는다고 느낄 때 불신은 깊어진다. 그때 교수의 반응은 “변화가 싫다”가 아니라 “왜 지금, 왜 이런 방식으로, 왜 우리에게만 책임을 묻는가”에 더 가깝다. 한국 대학의 구조조정 논의에서도 이 지점은 자주 빠진다. 교수의 저항은 보이지만, 교수의 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회의장에서 나오는 격한 발언은 기록되지만, 수업 후 무너진 학생을 붙잡고 상담하는 시간은 구조조정 자료에 들어가지 않는다. 학과 존치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이기주의로 해석되지만, 그 학과에서 학생 한 명을 더 붙잡기 위해 교수들이 해온 작은 노력은 숫자로 남지 않는다. 대학의 위기를 설명하는 표와 그래프는 많지만, 현장의 소진을 설명하는 언어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대학 리더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원문 칼럼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총장과 교수 사이의 소통 문제다. 위기를 알고 있는 총장들은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압박을 느끼지만, 교수들에게 그 현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교수들은 대학본부가 위기를 과장하거나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이용한다고 의심한다. 이 간극은 한국 대학에서도 익숙하다. 대학 리더십의 실패는 단순히 설명을 덜 했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설명이 결정 이후의 절차로 배치된다는 데 있다. 많은 대학에서 구성원 의견 수렴은 이미 방향이 정해진 뒤에 이루어진다. 공청회는 열리지만 실제 선택지는 제한돼 있고, 위원회는 구성되지만 핵심 자료는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들이 반발하면 본부는 “현실을 모른다”고 말하고, 교수들은 “소통이 없다”고 말한다. 양쪽 모두 어느 정도 맞는 말을 하지만, 그 말들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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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위기의 리더십은 구성원을 설득하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위기를 공동의 문제로 만드는 과정이다. 재정 상황이 어렵다면 그 어려움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어떤 지표가 나빠지고 있는지,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각 선택지가 가져올 비용과 위험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를 구성원들이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야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이 공론장에 올라올 수 있다. 특히 대학은 일반 조직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절차적 정당성을 요구받는다. 대학이 스스로 비판적 사고와 민주적 토론을 가르치는 기관이라면, 내부 의사결정 역시 그 가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모든 사안을 끝없이 토론할 수는 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빠른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빠른 결정이 곧 일방적 결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리더십은 속도와 참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고, 그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 조건은 정보의 투명성이다.

대학 구조조정 논의에서 또 하나 빠지기 쉬운 주체는 학생이다. 학과 통폐합이나 정원 조정은 대개 모집률과 취업률, 충원율과 중도탈락률 같은 지표로 설명된다. 그러나 학생을 지표로만 보면 대학이 실제로 마주한 변화의 깊이를 놓치게 된다. 지금의 학생들은 더 불안정한 삶의 조건 속에서 대학에 다닌다.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취업 경쟁, 가족의 경제 상황, 정신건강 문제, 관계의 고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을 단순히 의지가 부족한 학생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교수들이 느끼는 피로감도 여기에서 커진다. 강의실은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교수는 수업 중 학생의 무기력과 불안을 마주하고, 과제 미제출 뒤에 놓인 사정을 듣고, 때로는 상담자와 행정가의 역할까지 떠안는다. 하지만 대학의 평가는 여전히 성과 중심으로 움직인다. 연구 실적, 취업률, 충원율, 사업 수주, 혁신 프로그램 운영 여부가 교수와 학과를 압박한다. 학생은 더 많은 돌봄과 안내를 필요로 하는데, 제도는 더 많은 성과와 문서를 요구한다. 이 모순 속에서 교수는 쉽게 소진된다.

이 지점에서 대학의 변화는 교육의 변화와 분리될 수 없다. 학과를 줄이고 전공을 통합하고 새로운 융합학부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이 왜 배우기 어려워졌는지, 어떤 방식의 수업과 평가가 지금의 학생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지, 교수들이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교육의 재설계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이름만 바뀐 조직 개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학 내부의 피로만큼 중요한 것은 대학 밖의 시선이다. 미국 칼럼에서 제기된 문제 중 하나는 대학에 대한 공적 신뢰의 하락이다. 한국에서도 대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 대학은 여전히 청년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기관으로 기대되지만, 동시에 비싼 등록금, 취업과의 괴리, 지역사회와의 단절, 내부 기득권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학이 어렵다고 말할 때 사회가 곧바로 공감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 안에서만 설명될 수 없다. 사회가 대학을 더 이상 특별한 공공기관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재정 지원과 자율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학은 학문과 교육의 가치를 말해야 하지만, 그 말이 사회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대학 내부의 운영 방식 역시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학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학생과 지역, 학문의 미래를 위한 재배치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 구성원 내부의 신뢰 회복이 먼저다.

여기에서 교수사회도 자기 성찰을 피할 수 없다. 모든 반대가 정당한 것은 아니다. 변화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학생 수요의 변화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전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 전공이 오늘의 학생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새롭게 설명해야 한다. 학문은 시장의 요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지만, 사회와의 대화를 중단해서도 안 된다. 대학이 공공성을 말하려면 그 공공성이 강의실과 지역사회, 학생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 한국 대학의 구조조정 논의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현장의 피로감이다. 이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변화를 감당할 힘과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 가깝다. 교수는 지쳐 있고, 학생은 불안하며, 총장은 쫓기고, 대학본부는 지표에 압박받는다. 법인과 이사회, 정부와 지역사회도 각자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은 쉽지만,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의 변화는 구성원을 적으로 돌리는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대학본부는 교수사회를 설득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미래 설계의 공동 책임자로 대해야 한다. 교수사회는 변화 요구를 행정의 공격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학생과 대학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학생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대학 변화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결국 “무엇을 없앨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 대학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구호가 아니다. “혁신”, “생존”, “경쟁력”, “미래형 대학”이라는 말은 이미 충분히 많다. 필요한 것은 그 말을 실제로 견디고 실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는 일이다. 강의실에서 학생을 만나고, 연구실에서 성과 압박을 견디고, 회의실에서 학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보지 못한 채 추진되는 구조조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현장의 피로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순간, 변화는 저항을 뚫고 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될 수 있다.

대학의 진짜 위기는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어렴풋이 알면서도, 서로를 믿지 못해 함께 움직이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대학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기반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위기를 숨기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지 않으며, 현장의 피로를 변화의 장애물이 아니라 변화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 그것이 대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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