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 학생 정신건강의 경계,정서적 고통, 대학이 감당해야 할 몫인가

정서적 어려움,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자해, 불안, 강박, ADHD,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등 다양한 정신건강 이슈를 안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상담센터를 찾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상담센터는 과연 그 모든 문제를 떠안아야 할까?

BBC는 최근 「Should student mental health responsibility fall to universitie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해당 기사에는 우울과 자해 경력이 있었던 한 학생이 입학 당시 교사 추천서를 들고 상담센터에 갔으나, 시간이 갈수록 더 외면당하고 무기력해졌다는 고백이 나온다. 심지어 상담 요청 이후 자신이 “서로 미루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 사례는 비단 영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기 초가 되면 정신건강 위험군 선별검사가 실시되고, 해당 학생들은 대학 상담센터에 연계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대학은 “자살위기 개입 매뉴얼”까지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담자를 받아줄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

대학 상담센터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대학 상담센터는 원래 ‘대학생활 적응’을 위한 곳이었다. 시험 불안, 진로 고민, 대인 갈등처럼 비교적 일상적인 수준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상담센터에 ‘임상적인 수준’의 문제를 들고 온다. 문제는 상담센터가 병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학 상담사는 임상 심리사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아닌 경우가 많고, 정신과 진료나 약물 처방이 필요한 경우에는 외부 연계를 권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당수 학생들은 병원보다는 상담센터를 ‘먼저’ 찾고, 병원 연계가 거절처럼 느껴져 오히려 낙담한다.

기사에 등장한 임상심리학자 Sandi Mann 교수는 “정신질환과 일상적 스트레스를 구분할 줄 아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모든 정서적 고통이 질병은 아니며, 상담센터가 일상적 어려움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교육의 장이어야지, 중증 심리치료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학생들을 둘러싼 책임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대학은 학생들을 ‘성인’으로 대하면서도, 심리적 위험이 발생하면 보호의 의무를 요구받는다. 이는 영국 브리스톨대 자살 사건의 사례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소셜 불안장애를 앓던 여학생이 구두 발표 과제를 수행하다 자살한 사건 이후, 부모는 학교가 적절한 조정을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합리적 조정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대학이 단지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법적 ‘보호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위험한 선례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대학들이 “학생은 성인”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정작 정서적으로 취약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할 때, 행정적인 벽이나 복잡한 절차가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대학이 모든 걸 감당할 수는 없다

대학은 병원이 아니며, 교수는 심리치료사가 아니다. 그리고 상담센터는 응급 정신의료기관이 아니다. 지금의 시스템은 위험군 학생을 발견하면 대학 상담센터에 연계하도록 구성되어 있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경계선’ 학생들이 방치되고, 결과적으로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채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BBC 기사에서도 “사람들이 그 틈 사이로 빠져나간다(people can slip through the gaps)”는 표현이 반복된다. 복잡한 접근 절차, 비전문적 초기 응대, 그리고 지속적인 치료의 부재가 만든 구조적 공백이다. 무엇보다 대학은 한정된 자원 안에서 운영되며, 최근 한국에서도 대학 상담센터에 배정된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대학들의 관련 예산은 지난 5년간 평균 73% 증가했지만,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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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제 대학 상담의 역할을 명확히 할 때다. 정서적 불편을 가진 학생들에게 심리적 도움을 제공하되, 정신과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에는 지역사회 의료기관이나 전문 심리상담소와의 연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정서적인 문제를 대학에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성인으로서의 자율성과 사회적 지원 체계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병원을 찾는 것이 두려워 대학 상담센터에만 의지하려는 태도, 대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 이런 것들은 오히려 학생의 회복을 지연시킨다. 학생이 겪는 정신건강의 문제를 축소해서도 안 되지만, 대학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도 현실적이지 않다. 대학은 출발선일 뿐, 완결된 치료 시스템이 아니다.

학생 정신건강은 분명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이 대학의 책임이라는 전제는 점검이 필요하다. 대학은 정서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첫 번째 문이 될 수는 있으나, 마지막 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서적 문제는 학생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 전체와 연결된 문제다. ‘대학생이라서’ 받는 상담이 아닌, ‘성인이기에’ 선택할 수 있는 자발적이고 책임 있는 치료 환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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